판교의 스타트업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은 현실적인 묘사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많은 독자들로부터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이 소설은 ‘거북이알’이란 아이디를 쓰는 중거거래 앱 이용자가 어뷰저(abuser, 악성 사용자)인지 충성 사용자인지에 대하여 논쟁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CASE: 우동마켓의 거북이알
주인공 안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우동마켓은 ‘우리 동네 중고마켓’을 줄인 말로, 안나의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중고거래 앱 서비스입니다.
우동마켓의 대표이사 데이빗은 회의에서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그칩니다. 거북이알은 우동마켓에 하루에도 백 개씩 글을 올리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다양한 물건들을 파는 이용자입니다. 거북이알과 거래한 사람들은 하나 같이 ‘좋은 물건 싸게 팔아줘서 고맙다’는 훈훈한 댓글을 달았습니다.
데이빗은 거북이알이 우동마켓의 취지에 맞지 않는 어뷰저이기 때문에 패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데이빗은 이용자가 앱을 켜고 들어왔는데 온통 거북이알 글로 도배가 되어 있다면, 그들의 서비스를 ‘우리 동네 중고마켓’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안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안나는 거북이알은 어뷰저가 아니라 오히려 충성 사용자라고 반박합니다. 거북이알 때문에 페이지뷰, 사용자 수, 재방문율 등의 지표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그러자 데이빗은 안나에게 10만원을 주면서, 거북이알을 직접 만나서 거래를 해 보라고 지시합니다. 결국, 안나는 거북이알을 직접 만나 거북이알이 그렇게 많은 물건을 팔게 된 웃기지만 슬픈 사연을 듣게 됩니다.
거북이알은 데이빗의 말처럼 어뷰저일까요? 안나의 말처럼 충성 사용자일까요?
정답은 우동마켓이 어떤 서비스인지에 따라서 다릅니다.
소설 속 거북이알이 실제 유사 모델인 D마켓이나 B장터를 사용한 경우 어뷰저 취급을 받았을 지 아니면, 충성 사용자 취급을 받았을 지 알아보고, 서비스에 최적화된 이용약관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D마켓은 자사의 서비스를 이렇게 정립하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부터 동네 정보까지, 이웃과 함께 해요. 가깝고 따뜻한 당신의 근처를 만들어요.”
D마켓은 중고거래를 시작으로 궁극적으로는 지역생활 커뮤니티 서비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서비스 내에 전문적인 업자들이 많다면, 당장 중고거래 활성화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웃과 함께 하는 지역생활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D마켓의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D마켓의 서비스 목표는 D마켓의 이용약관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D마켓의 이용약관에서는 서비스를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제재조치(이용정지, 강제탈퇴 등)를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D마켓의 홈페이지에 공개된 이용정책에 의하면 D마켓에서 개인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량으로 판매하거나 새상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한다면 전문판매업자로 분류되어 게시글이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D마켓은 소설 속 데이빗의 의견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거북이알이 실제 D마켓에서 물건을 판매했다면, 데이빗의 말처럼 전문판매업자로 분류되어서 패널티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면, B장터는 자사의 서비스를 아래와 같이 정립하고 있습니다.
“직거래부터 택배거래까지 쉽고 안전하게, 취향 기반 중고거래 플랫폼”
B장터는 중고거래에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고거래를 쉽고 안전하게 취향 기반으로 하기 위해서는 앱 내에 전문판매업자가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실제 B 장터는 이런 슈퍼 셀러들을 육성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B 장터의 서비스 목표는 B마켓의 이용약관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 B장터의 이용약관은 물품의 판매를 업(業)으로 하는 판매자를 ‘업자인 판매자’로 그렇지 아니한 판매자를 ‘업자 아닌 판매자’로 나누고, 업자인 판매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B장터는 소설 속 안나의 의견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거북이알이 B장터에서 물건을 판매했다면 제재를 받지 않고, 오히려 충성 사용자로서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겉보기에 비슷한 서비스들도, 이용약관을 해당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규정해야 합니다. 추후 약관의 해석을 달리 함에 따라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많은 스타트업이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회사의 이용약관을 회사 이름만 바꿔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용약관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서비스에 최적화된 이용약관을 마련하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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