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사심 갖고 일하는 사람은 바보다?
예전에, 아니 아주 예전도 아닙니다. 불과 십수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하면 커다란 운동장에 신입사원 수천명을 모아놓고 애사심 고취 행사를 했습니다. 직원들은 우르르 움직이며 회사 로고를 형상화합니다. 이후 회장님이 나오셔서 “XX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신 뒤 커다란 사기를 휘두릅니다. 그러면 뒤에서 웅장한 사가가 흘러나옵니다. “자랑스런 XX인, 세계로 나가자…”
아마 요즘 이런 행사 한다고 하면 첫 마디가 이거겠죠? “제정신인가?”
리멤버 커뮤니티 원문 글 보기 > 애사심이란 말이 존재하긴 하는 건가요?
애사심이 고리타분한 단어가 된 이유 : 그러면 십수년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저런 행사를 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입사란 마치 결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번 정해지면 평생 가는 것. 20대에 입사하면 60세 까지 내 생계를 책임져주는 곳. 그래서 애사심이 필요했습니다. 결혼 서약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 까지 사랑하겠습니까”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사랑고백을 하고 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져주지 않는 것입니다. 회사를 사랑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나에게 “당신이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그 경험이 누적되자 사람들은 점점 회사를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거래하는 대상’으로 정의하기 시작합니다. 일한 만큼 돈 받고, 서로가 싫으면 언제든지 헤어지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 거래 관계가 되고 나면 헤어져도 상처는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원 입장에서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아무튼 하루에 8시간은 회사에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와 하루에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붙어 지내는 것도 곤욕입니다.
아울러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성공을 바랍니다. 평생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의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져주진 않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배운 것이 다음의 커리어로 이어집니다.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생깁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많이 배울 수 없으니까요.
사랑고백의 방향이 바뀌었다 :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요. 그래서 자신이 열심히 일해도 성장할 수 없거나 합당한 보상을 주지 않는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떠나면 회사의 손해입니다. 이제 회사가 사랑고백을 할 차례입니다.
좋은 회사는 더 이상 “회사를 무조건 사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해도, 그에 상응하는 댓가(평생을 책임져줌)를 주지 못하는 것을 아니까요. 직원들에게 “내가 이렇게 해 줄테니 회사를 사랑해 달라”라고 구애를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고, 좋은 복지를 제공합니다. 과거 아랫사람들을 하대하던 문화는 없어지고, 서로가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게 합니다.
개인 입장에서도 이 ‘구애’가 싫을 리는 없습니다. 더 편안한 환경에서 본인의 성장을 위해 노력할 수 있고 보상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회사와 개인이 같이 성장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집니다. 직원이 회사를 짝사랑하는 것이 아닌, 직원과 회사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만들어 집니다.
결과적으로 인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깁니다. 더 좋은 보상과 좋은 문화를 제공하는 쪽에는 좋은 인재들이 몰립니다. 그 회사는 더 빠르게 성장합니다. 반면 과거에 갇힌 회사들, 여전히 회사를 향한 짝사랑을 강요하는 회사들에서는 인재들이 떠납니다. 그 회사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요즘 ‘유니콘’이라고 불리우는 대형 스타트업들이 경쟁적으로 보상과 문화에 대한 홍보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