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은 늘 의심받는다. 특히 경이로운 매출 성장은 운이나 시장 상황의 산물로 분석되기도 한다. 리캐치와 리멤버가 공동으로 발간한 벤치마크 리포트는 그런 의심에 차갑게 답한다. 운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리캐치와 리멤버는 국내에서 2022년 대비 2023년에 매출이 2배 이상 성장한 B2B 기업 총 121개사를 선정하여 조사를 진행했다. 그들이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닌 패턴이었다. 통계학자들은 말한다. 한 번은 우연, 두 번은 의심, 세 번은 패턴이라고. 그렇다면 121개 기업에서 동시에 발견된 성공 요소들은 어떤가? 그것은 이미 법칙에 가깝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94.6%의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상위 25%는 309.8%라는 숫자를 보여줬다. 특히 100억-500억 원 규모 기업들 중 상위 25%는 428%에 달하는 성장률을 보였다. 경이로운 수치다. 하지만 경이로움의 이면에는 냉정한 계산이 있다.
성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구체적인 숫자들로 측정되는 결과다. 그 숫자들을 만들어낸 과정을 따라가 보자.
채널: 전통과 혁신 사이의 균형점
“만약 두 개의 문이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처럼, B2B 기업들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전통적 채널이냐, 디지털 채널이냐.
고성장 기업들의 대답은 흥미롭다. 그들은 양자택일을 거부한다. 그들은 모든 문을 동시에 활용한다.
기존 네트워크(64%), 제휴/파트너십(54%), 박람회(54%)와 같은 전통적 채널이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특히 매출 500억 이상 기업에서는 기존 네트워크 활용도가 81%에 달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적 관계의 힘은 여전하다.
하지만 고성장 기업들, 특히 상위 25%는 다른 전략을 보인다. 그들은 박람회(68%), 기존 네트워크(65%), 제휴/파트너십(61%)의 전통적 채널을 강조하면서도, 웨비나/세미나/컨퍼런스(48%), 이메일/뉴스레터(39%) 같은 디지털 채널도 적극 활용한다. 이것은 양자택일이 아닌 균형이다.
가장 효과적인 채널을 물었을 때, 그들의 답변은 더욱 분명했다. 기존 네트워크(70%), 직접 방문(50%), 제휴/파트너십(37%)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디지털 채널은 보조적인 역할에 그쳤다. 여전히 B2B 비즈니스의 핵심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다는 냉정한 현실이다.
리드 육성: 개인화의 역설적 중요성
디지털 채널이 확대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개인화된 접근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매출 2배 이상 기업의 91%가 체계적인 리드 육성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1:1 개인화 이메일(49%)과 전화(47%)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성장률 상위 25% 기업들은 이 점에서 더 강한 집중도를 보였다. 1:1 개인화 이메일(62%), 전화(45%)의 활용률이 더 높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개인적 접촉의 가치는 더 커진다.
그들은 또한 체계적이었다. 93%가 리드 선별 절차를 갖추고 있었고, 매출 규모(52%), 비즈니스 모델(49%), 직무(36%), 직책(31%)을 주요 선별 기준으로 활용했다. 리서치(61%)와 디스커버리 콜(48%)을 통해 이러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들은 감에 의존하지 않았다. 데이터에 의존했다.
속도: 기다림은 죽음이다
“때를 놓치면 모든 것을 놓친다.” 이는 B2B 세계에서도 진리다.
인바운드 문의에 대한 응대 속도는 경이로웠다. 52%의 기업이 1시간 이내에 응대했다. 글로벌 평균이 42시간인 것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더 놀라운 것은 상위 26%의 글로벌 기업들이 5분 이내의 응대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이 가장 높은 순간은 그들이 스스로 문의했을 때라는 것을. 그 순간을 놓치면 관심은 다른 곳으로 향한다. 시간은 돈이 아니라 기회다. 그리고 기회는 한 번 지나가면 되돌아오지 않는다.
효율성: 불필요한 것은 모두 제거한다
세일즈 미팅 횟수도 효율적이었다. 48%가 1-3회, 40%가 4-9회의 미팅으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타깃 고객 규모에 따라 그 횟수는 달라졌다. 소기업(50인 이하) 대상은 평균 3.4회, 중견/대기업(301인 이상) 대상은 평균 7회였다.
계약까지의 기간도 주목할 만했다. 47%가 1-3개월, 31%가 4-6개월 내에 계약을 완료했다. 78%의 기업이 6개월 이내에 계약을 맺었다. B2B 판매 주기가 길다는 통념과는 달리, 효율적인 프로세스가 정착되고 있었다.
특히 상위 25% 기업들은 이런 효율성에서 더 뛰어났다. 그들은 시간이라는 자원을 낭비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만 집중적으로 수행했다. 불필요한 미팅, 불필요한 소통, 불필요한 시간은 모두 제거했다. 경영의 본질은 결국 효율성이다.
통합: 마케팅과 세일즈의 경계를 지우다
전통적으로 마케팅과 세일즈는 분리된 영역이었다. 마케팅은 리드를 생성하고, 세일즈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고성장 기업들에서는 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었다.
마케팅과 세일즈 팀 간의 소통 빈도는 놀라웠다. 48%가 상시 소통하며, 31%가 주 1회 미팅을 진행했다. 80%의 기업이 정기적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마케팅 팀의 KPI 역시 이러한 통합을 반영했다. 신규 획득 잠재고객 수(56%)와 매출(56%), 신규 세일즈 미팅 수(49%)가 주요 KPI였다. 마케팅임에도 세일즈 영역의 지표를 핵심 성과 지표로 삼았다. 30.7%의 기업은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관리했다. ‘리드 수 → 미팅 수 → 매출’로 이어지는 전체 파이프라인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인식한 것이다.
도구: 시스템을 구현하는 방법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도구 활용에서도 드러났다. CRM 도입률은 71%에 달했다. 세일즈포스(59%)와 리캐치(21%)가 주로 사용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상위 25% 고성장 기업 중 71%가 RevOps/BizOps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케팅과 세일즈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적 접근이었다.
리드 선별 도구로는 세일즈포스(48%), 리캐치(22%), 허브스팟(17%)이 활용됐다. 리드 수집에는 구글폼(85%)이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도구들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시스템을 구현하는 수단이었다.
인력: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효율성
마케팅 팀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다. 1-10인 기업은 평균 2명, 11-50인은 4-5명, 101-300인은 7-8명이었다. 세일즈 팀은 약간 더 컸지만, 역시 상대적으로 소규모였다.
주니어 마케터의 연봉은 주로 3,000-4,000만원, 시니어는 4,000-6,000만원 사이였다. 세일즈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높은 연봉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스템 속에서 훨씬 큰 가치를 창출했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소수의 인력도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들은 인력을 늘리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에 집중했다.
냉정한 결론: 성공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고성장 기업들은 전통적 채널과 디지털의 균형, 개인화된 고객 커뮤니케이션, 빠른 응대 속도, 마케팅과 세일즈의 통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원하는 도구들을 통해 성공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은 말한다. “계획에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계획이 필요하다”고. 성공적인 B2B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성공 뒤에는 치밀한 계획이 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단순한 의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시스템으로 구현된다.
우리는 가끔 성공한 기업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리포트는 그런 낭만적 해석을 냉정하게 부정한다. 운이 아니라 시스템이 성공을 만든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충분히 분석하고 모방할 수 있다.
무작위로 던진 주사위가 계속해서 6이 나올 확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194.6%의 성장률, 그것도 121개 기업에서 동시에 일어났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우연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필연이다. 냉정하고 계산된 결과다.
데이터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121개 기업의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공은 복제 가능하다. 필요한 것은 냉정한 분석과 체계적인 실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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