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VC한테 투자 받으려면 해야 한다는 ‘플립’, 어떤 기준으로 결정해야 할까요?
‘플립(flip)’을 아시나요? 요즘 잘 팔린다는 휴대폰 브랜드를 이야기하는 건 아닙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 지사를 두는 형태의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구조가 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플립’을 통해서 합니다. 플립이란 한국에서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미국 진출을 위해 미국에 본사를 설립하고 기존의 한국 법인을 지사로 만드는 개념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입니다. 쿠팡은 미국 ‘쿠팡LLC’가 한국 쿠팡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구조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쿠팡은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인 셈입니다.
플립을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대표적으로 미국VC의 투자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미국VC는 낯선 한국법보다는 익숙한 미국법 내 회사를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현지 고객과의 원활한 거래를 위해 서일 겁니다. 미국 시장이 타깃이라면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 회사의 중심이 있는 게 여러모로 원활할 테니까요. 그리고 한국에서 불법인 서비스 모델이 미국 등지에서 합법일 때 고려되기도 합니다.
플립은 흔한 일이 아니기에 하는 것 자체가 복잡합니다.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한 회사가 굳이 미국에 법인을 세울 일은 흔치 않을 테니까요. 플립을 하려면 한국 법률대리인, 한국 회계세무 대리인, 미국 법률대리인이 필요한데 플립에 대한 경험이 있는 국내 대리인층이 매우 얇고, 관련 전문 지식이 있는 경우도 많지 않죠. 그리고 플립은 업무 특성상 책상에 앉아서 법률 검토를 해주는 자문과 달리 외환은행, 한국은행, 기재부 등 여러 정부 기관과 직접 소통을 해야 하고 모르는 절차를 직접 물어보면서 몸으로 뛰어야 하기에 해줄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스타트업씬에서 플립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하지만 선례도 많지 않고 이를 속 시원하게 풀어줄 전문가도 찾기 어렵습니다. 미국VC한테 투자유치를 하려면 필요하다고는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장점은 알겠는데, 단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 8월 30일 디캠프의 시그니처 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피스아워(미국진출 A-Z)에서 플립을 메인 주제로 다뤘습니다.
이날 행사의 멘토이자 좌장은 김범수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파트너가 맡았는데요. 이날 김범수 파트너는 “플립을 반드시 할 필요는 없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플립이라는 건 한국에 있는 회사가 미국 회사가 된다는 것일 뿐 그것 자체가 사업이 되고 안 되고 와는 상관없다. 한국 법인이든 미국 법인이든 기업은 사업을 잘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한국 기업이 플립을 한다고 해서 미국 VC들이 투자를 하는 건 아니다. 현재 국내 투자 자본시장 규모는 예전과 다르다. 50억에서 100억, 누적 금액으로 한 200억까지는 국내서도 가능하다. 진짜로 좋은 창업팀이고 좋은 제품이면 충분히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미국 가서 맨땅에 헤딩하며 조달하는 것보다 국내서 자금 유치를 하는 것이 더 쉽다”라고 조언했습니다.
이날 행사는 일 방향 강연이 아닌 6개 스타트업(알고케어, 빌통코리아, 샵풀, 누트컴퍼니, 레드윗, 프록시헬스케어) 관계자들과의 질의응답식으로 진행됐는데요. 멘토링 및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플립을 고민하거나 미국 진출을 고려하는 스타트업에게 참고가 될 내용입니다.
‘플립’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김범수 트랜스링크인베스트먼트 파트너 :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하자면, 저는 플립이라는 것이 사업하는데 있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한국에 있는 회사가 미국 회사가 된다’는 것일 뿐, 그것 자체가 사업이 되고 안 되고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예요. 한국 법인이든 미국 법인이든 기업은 사업을 잘 하는 게 핵심이죠.
그런데 제가 한국으로 출장을 가거나 이렇게 온라인으로 화상 미팅을 할 때 미국 진출을 고려하는 스타트업 대표님들이 플립 질문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주제를 플립으로 잡았어요. 제가 플립을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스타트업에서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서예요.
우선 제가 생각하는 플립의 원칙을 먼저 말씀드리려고 해요.
첫 번째로 플립을 하는 것과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미국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해서 꼭 본사를 미국 법인으로 바꿀 필요는 없어요. 그 두 개는 다른 겁니다. 한국 회사로도 미국 시장에서 얼마든지 매출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본사를 미국에 두는 것이 중요한 회사도 있을테지만 소수의 경우라고 봅니다. 창업자 태생이 한국이고 대부분 한국 사람들로 팀이 구성되어 있다면 미국 법인으로 바꾼다고 해서 얻는 이점을 다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플립이 미국 진출’이라는 공식은 일단 깨고 접근하시는 게 좋을 듯 싶어요.
두 번째 플립을 했을 때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플립을 해야 미국 VC한테 투자를 받을 수 있죠. 아시겠지만 한국의 유니콘 기업들 대부분이 외국 VC 투자를 받았습니다. 빠르게는 시리즈 A, 늦어도 시리즈 B부터는 다 해외 자본들이 리드를 했습니다. 향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현재 기준에서는 예외없이 그런 케이스입니다.
한 가지 눈여겨보실 부분은 유망한 사업을 하는 유니콘 기업조차도 시드나 시리즈 A에는 해외자본으로부터 많은 펀딩을 받지는 못했어요. 그만큼 해외 VC는 초기 투자를 할 때 법률 제도나 규제가 낯선 다른 지역 기업에 잘 투자를 안 합니다. VC라는 게 보통 태생적으로 로컬 비즈니스입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과거 실리콘밸리 투자업계에 돌던 말 중에 하나가 “VC는 자기가 1시간 정도 운전해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도 했을 정도예요.
그런데 한국 기업이 플립을 한다고 해서 미국 VC들이 투자를 잘 해 줄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플립은 스타트업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단점, 약점 중에 하나 정도를 줄여줄 뿐입니다. 플립한다고 해서 미국 VC가 회사 문 앞에 줄 서 있지는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플립과 미국 VC 투자를 동일시하는 것’도 잘못된 접근입니다. 세간에 회자되는 플립의 이론적 장점이 모든 기업에 해당되지는 않아요. 플립의 장점을 최대한 얻으려고 한다면 만반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법적으로 회사 위치를 바꾼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겁니다.
회사가 플립의 장단점을 충분히 인지한 뒤 미국 스타트업이 되어 어떻게 펀딩받아 안착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 작전이 머릿속에 있어야 합니다. 유학 갈 때 미국 학교가 본인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데인지 아닌 데인지를 알고 가야 하잖아요. 그냥 한국에서 어려우니까 막연하게 미국에 가는 건 올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그런 차원에서 플립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미국으로 갈 때의 장단점을 충분히 알고 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제가 플립에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거예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아요. 상황에 따라 다른 것 뿐입니다. 제가 주도해서 큰 금액을 투자한 회사 중에 플립을 한 회사가 여러 건 있어요. 창업자들에게 굉장히 오랜 기간 플립을 설명했고 변호사 등 플립 관련해서 도와줄 사람들을 알선해서 연결했죠. 사실상 저도 같은 팀이되어 플립을 한겁니다. 그냥 플립을 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고 잘 알고 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플립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플립을 꼭 해야하는 이유와 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 등을 고려하셔야 해요. 무조건 하거나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여기까지가 제가 생각하는 플립에 대한 기본 틀입니다.
누트컴퍼니 신동환 대표 : 데모데이 채널에 올린 영상을 보면 ‘미국VC의 투자 과정에서 마지막 장애물을 없애주는 형식적인 요인으로 플립이 작용할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었는데요. 해외 기업과 M&A 할 때도 플립이 같은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김범수 파트너 : 기본적으로 투자나 인수를 하고 싶다는 확신이 먼저지 법인이 어디있느냐는 다음 사안일 아닐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남녀가 국제 연애를 한다고 가정해 보자고요. 일단 사랑에 빠진 상대가 있어야 그다음을 생각하는 게 순서겠죠. 사랑할 상대가 없는데 굳이 국제, 원거리를 고민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투자자나 인수기업이 보기에 정말 매력적인 기업이 되는 게 우선입니다.
물론 투자보다는 M&A가 더 수월하기는 해요. VC 투자는 시작이지만 M&A는 끝이니까요. M&A는 어느 나라에 있든 법적으로 그 회사의 자산만 확실히 인수를 하고 끝내면 돼요. 하지만 VC 투자는 미래를 봐야하기에 피투자 기업이 속한 국가 법체계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해요. 그래서 M&A보다 VC 투자가 고민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봐요.
알고케어 정지원 대표 : 미국 시장을 눈여겨보는 중입니다. 외국 회사가 미국에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때 소비자(B2C)와 기업(B2B)의 심리적인 장벽은 없을까요?
김범수 파트너 : 미국 소비자들은 시장에서 팔리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어느 나라 건지 잘 몰라요. 과거에는 삼성이 한국 회사인지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어요. 브랜드가 어느 회사 건지, 원산지가 어딘지, 한국인지 중국인지를 기준으로 소비자들이 구매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폰은 애플의 브랜드이지만 사실 메이드 인 차이나잖아요. 즉 어느나라 상품인지 상관은 없어요.
B2B나 B2C를 하려면 결국 미국 법인이 있어야 되잖아요. 텍스ID(세금등록번호)를 부여받아 미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면 본사냐 지사냐는 법인격체의 지분 구조 차이일 뿐입니다. 국방이나 의료 등 보안 이슈가 되는 품목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도 적습니다.
미국 소비자는 편리하고 좋으면 씁니다. 거의 모든 미국 사람들이 부킹닷컴을 미국에서 만든 서비스인 줄 알고 있는데,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회사예요. 스포티파이도 미국에서 시작된 줄 아는데, 사실 10년 전 스웨덴에서 출범한 기업이예요. 다시말해 B2B든 B2C든 서비스가 진짜 좋고 베네핏이 있으면 미국 사람들은 국적을 따지지 않아요.
하지만 외국 기업은 약간 표가 날 때가 있긴 해요. 국내 기업 웹사이트를 보면 콩글리시가 종종 보여요. 비단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 웹사이트도 그런 것들이 좀 있어요. 또는 현지화를 제대로 안 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어요. 만약에 미국 소비자한테 네이버 서비스를 바로 쓰라고 하면 어색해 할 겁니다. 네이버가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된 건 한국인의 사용 특성을 반영한 거잖아요. 그런데 미국인에게 그걸 그대로 가져다 주면 쓰기 힘들거예요. 구글이 단순한 UI를 갖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죠.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자국 회사로 착각할 만큼 만들어야 통한다는 거죠. ‘당연히 미국에서 만든 거겠지’라고라고 인식을 줄 수 있으면 원산지가 어디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지원 대표 : 초기 기업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이 어려울겁니다. 미국 VC 투자유치는 어떨까요? 시장에 핏을 맞춘 제품을 만들고, 숫자가 나오는 단계가 되면 가능하다고 보면 될까요?
김범수 파트너 : 저희같은 VC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수익이 많이 나는 분야, 사업에 투자를 합니다. 그걸 판단하려면 매출과 이익 등 지표를 많이 봐야겠죠. 그런데 초기 기업은 그게 없잖아요. 시장에 막 제품을 내놨는데 어떤 숫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초기는 창업자와 팀 등 사람을 보고 평가할 수 밖에 없어요. 미국 VC 입장에서 같은 문화, 환경에서 자란 미국인 창업자를 평가하는 것은 감이 좋을 수 밖에 없어요. 근데 유럽이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 문화적으로 익숙하지도 않은 인종, 문화권 사람들을 보고 판단하는 건 어렵죠. 그 나라의 게임을 룰을 모르는 상황에서 얼굴만 보여주고 누가 공부 잘하는 사람인지 맞춰야하는 상황인거죠.
초기에 회사의 얼리 트랙션이 조금 좋다는 거는 초등학교 때 반에서 1등 한 번 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100점 받은 거랑 좋은 대학을 가는건 다른 이야깁니다. 초등학교 때 100점 맞으면 부모는 자식이 다 신동인 줄 알아요. 그 사람들 다 서울대나 하버드 갔으면 지금 대학교 정원이 100배는 늘어났어야 될 거예요. 마찬가지로 어떤 스타트업이 초반에 타깃을 잘 찾았을 때 약간 반짝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기업이 과연 진짜로 하버드 갈 때까지 유지를 할 수 있느냐는 다른 이슈예요. 초기에 성장 사인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걸 만들어 낸 창업 팀의 능력에 대한 평가 척도 정도로 의미가 있는 거지 미래 성장을 담보하는 건 아니에요. 투자자라는 사람은 초등학교 1학년 때 한 번 영어 100점을 맞은 사람이 나중에 영문과에 간다고 생각을 안 해요. 초기 기업의 제품이나 지표를 보고 무조건 되겠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거의 없다는 거죠.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주당 7% 성장하는 것이 유니콘이 되는 속도’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쯤되는 지표를 보여주는 성장이라면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필요없어요. 고등학교 성적표 수준이고, 훨씬 높은 확률로 어느 대학교에 갈지 맞출 수 있잖아요. 근데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는 초등학교 영어 100점 성적표를 가지고 자신있게 VC에게 찾아오와서 영문과 간다고 말하는 거예요. 투자자 입장에서는 1학년 때 100점 맞았던 학생 몇 천명을 이미 만난 상황이고요.
다시 플립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플립한다고 해서 VC투자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초기 기업은 더욱 필요성이 떨어집니다. 옛날에는 플립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았어요. 한국 시장에서 50억 원 조달하는 것도 쉽지가 않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제가 한국 VC 업계에 들어간 게 21년 전, 2000년 1월이예요. 그때는 100억 원 규모 펀딩라운드도 흔치 않았어요. 50억 원 규모도 거의 없었어요. 창업자가 미국 시장에 뭔가를 팔아야 하는 데 한국에서는 그 비용을 모을 수 없는 거예요. 그대로 있으면 어차피 안 되니까 죽기살기로 현지로 간거죠. ‘반집으로 지나 만방으로 지나 똑같으니 미국 가서 한번 하다가 안 되면 그냥 돌 던지고 끝내지’라는 생각으로 한 거죠. 그런데 지금 한국 투자 생태계가 풍부하게 바뀌었잖아요. 50억에서 100억, 누적 금액으로 한 200억까지는 가능해요. 진짜로 좋은 창업팀이고 좋은 제품이면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어요. 한국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게 미국에 가서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더 쉽지 않겠어요.
정지원 대표 : 미국을 오고가며 플립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지금은 플립을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미국 시장에 먹히는 아이템인지, 어떻게 시장 핏에 잘 맞게 만들 건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법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그렇게 막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범수 파트너 : 맞습니다. 원론적으로 플립보다는 사업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겁니다. 다만 반대로 미국을 안 가고 한국에서 원격으로 다 할 수 있다라고 판단하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플립은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무조건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미국에 있어야 해요. 반쯤 미국 사람이 된다는 각오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시장에서 승부하기 어렵습니다. 플립은 안 해도 되지만, 미국화는 되셔야 해요. 당연히 미국에서 시간을 많이 쓰셔야 합니다. 물리적 공간은 사람의 사고 제한을 많이 해요. 미국 시장이 얼마나 큰지는 직접 와서 판단해야 해요. 얼마나 방대한 시장인지, 다양성이 있는 시장인지 한국에 있으면 잘 모를 수 밖에 없어요. 한국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은 모두가 비슷한 걸 소비하기에 시장의 다양성을 잘 인지하지 못해요.
이민이나 본사를 옮기지는 않더라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며 여기 사람들이랑 함께 많이 구르지 않으면 편광렌즈를 끼고 보는 거예요. 중서부 미주리에 있는 미국인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인은 같은 미국인이라도 어마어마하게 성향이 달라요. 그거를 서울이랑 대전 정도 차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실제로는 서울이랑 평양 정도의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걸 느끼지 않으면 미국 시장에서 효과적으로 사업을 하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플립은 안 해도 되지만 미국화는 되어야 하고, 현지에 의사결정권자가 시간을 많이 보내야 됩니다. 그걸 하기 위한 출사표로 플립을 던질 수는 있는 거겠죠. 현지인 하나 뽑는 걸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형태로 되는 케이스를 별로 본 적은 없어요.
자주 오거나 오래 있으려면 거기에 맞는 방법을 찾으셔야겠죠. 이스타 비자로는 한계가 있을테니까요. 워킹 비자도 없는 사람이 자주 와서 장기 체류하다 나가면 이민국에서 의심할 수도 있을겁니다. 그런 테크니컬한 부분은 좀 신경 쓰셔야 되는데, 일단은 미국 시장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언론에 보도된 미정보만 보고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레드윗 김세연 PM : 저희가 신제품을 MVP(최소 요건 제품)로 출시를 해서 여러 나라에 배포를 해 봤더니 가장 많이 유입되는 국가가 미국이더라고요. 미국 시장에서의 니즈는 확인했고 활성 사용자가 저희가 기대하는 액션을 많이 해서 미국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단계입니다. 현지 시장에 의사결정권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최소 인력은 어느정도로 꾸려야 할까요?
김범수 파트너 : 창업을 할 때 망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거예요. 통계적으로 99%가 망해도 본인은 안 그럴거라 자기 최면을 걸죠. 마찬가지로 좋은 제품을 시장에만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알아서 찾아 쓸거라는 판단을 하는 창업자들도 있어요. 물건이나 서비스를 출시하고 난 뒤 결과가 안 나면 “이렇게 좋은 우리 제품을 왜 안 쓰지.”라는 생각을 하죠.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걸로 끝내면 안 됩니다. 고투마켓(Go-to-Market, 신규 시장에서의 성공을 위해 필요한 모든 단계를 세분화해놓은 전술적 프레임워크)을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해요.
앞서 말했듯이 한국과 미국은 시장이 달라요. 꽤 많은 펀딩을 받은 저희 국내 포트폴리오 회사 중에 강남역에서 전단지 돌리는 광고하는 회사들이 아직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여전히 통하는 마케팅 방식인거죠. 근데 여기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그걸로는 아무 효과도 안 나요. 유동인구가 한국 강남역처럼 그렇게 많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멘하탄 한복판 같은 곳 말고는 그런 데가 없어요.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회사의 실력과 제품, 서비스는 당연히 뛰어나야 해요. ‘프로덕트 마켓 핏(Product Market Fit, PMF)’이 맞아야 하는거죠. 회사는 그걸 가지고 고투마켓을 할 때 시장에서 소비자들한테 어떻게 노출을 시킬 것인가에 대한 계획도 있어야 해요. 그게 회사의 실력이에요. 그 계획은 교과서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스타트업과 미팅을 하다보면 느끼는 건데 고투마켓 전략이 생각보다 뭉툭한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되게 획일적인 사회라서 그래요. 전 국민이 롱패딩을 한 철에 다 입어버리고, 어떤 해는 온 국민이 찜닭을 먹었다가 그 다음 해는 조개구이를 1년 먹는 식으로 도는 문화가 우리에게 있어요.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가면 마켓을 뚫는 진짜 깊은 고민을 할 수 없게 돼요. 미국에서는 물건을 캘리포니아에서 파는 것과 에리조나 가서 파는 거랑 텍사스 가서 파는 게 완전히 다른 활동이예요.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도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사는사람과 옆 지역이 달라요. 샌프란시스코처럼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에 갈지, 아니면 LA처럼 자영업자가 많은 쪽에 갈 지에 따라 고투마켓 전략이 달라져야 해요. 그걸 한꺼번에 다 하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고투마켓 전략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스타트업의 굉장히 큰 역량인겁니다. 그걸 역량이라 생각 안 하고 그저 제품 좋은 것만 생각하고 팔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어렵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현지에 팔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그런데 현지 직원이 어떤 제품이든 주는 대로 고투마켓을 잘 할 수 있으면 그 직원이 왜 우리 회사 일을 해요. 자기가 창업해서 돈을 버는 게 맞죠. 그런 귀인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 귀인을 만나려면 대표가 엄청난 전문성이 있어야 해요. 요식업이라면 백종원 대표 정도의 전문성이 있어야 누가 좋은 지배인인지를 알고 뽑을 수가 있습니다. 대표가 음식점 장사를 하나도 모르는데 어떤 일이 되겠어요. 돈이 있다면 자기 브랜드가 아니라 맥도널드 같은 표준화된 프랜차이즈를 하는 게 나아요. 음식점을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멋모르고 요식업에 뛰어들다 거의 다 망하잖아요.
미국 시장에 진출을 할 때도 똑같아요. 어떤 전략을 세우고 추진하는건 그것 자체가 회사의 내재된 실력이어야 합니다. 그거를 누가 대신해 주길 바라면 안 돼요. 그런데 많은 한국 스타트업이 그걸 대신 시키려고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현지에서 경영진이 맨 땅에서 구르면서 배워야 해요. 미국 스타트업도 다 그렇게 해요. 미국에 살아도 자기가 태어난 지역이나 알지 미국 전체 소비자가 어떤 형태인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닥부터 올라가야 해서 시간도 들어가고, 노력도 많이 해야죠. 여러 사람이 같이 그 고생을 해서 그게 회사의 내재된 지식과 경험으로 쌓이면 그때 미국에서 고투마켓을 잘하실 수가 있어요.
갈피가 안 잡힌다면 조언을 구하세요. 미국 현지에서 의미있는 성공을 거둔 한국인 창업자분들이 많아요. 또 그분들은 되게 순수한 마음으로 조언도 많이 하세요. 그런 분들한테 조언을 구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봐요. 어쨌든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한테 경험을 들으면 좋은 거니까요. 물론 공부는 내가 하는 겁니다. 아무리 좋은 선생님을 모셔와 봐야 내가 공부해서 내 걸 만들어서 시험을 쳐야죠. 누가 내 시험을 대신 쳐줄 수 없으니까요. 미국을 뚫고 들어가는 것도 똑같아요. 현지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돼요. 다만 한국에 계신 몇 분이 미국 시차에 맞춰서 현지에 이렇게 산다라는 각오로 일을 한다면 물리적으로 미국에 직원이 없어도 하실 수 있을겁니다.
미국에 간다고 해도 꼭 대표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직급이나 사람 숫자가 중요한 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나라 스타트업이 그렇겠지만, 특히 한국은 대표이사의 파워가 강해요. 그리고 한국에는 조직에서 연장자나 권위자에 수긍하는 문화가 있어요. 치고 받고가 안 되는 너무 공손한 예의의 문화예요. 그래서 상급자의 말을 그냥 인정해버리는 습관이 좀 있어요. 하지만 현지에 누군가 있어야 한다면 회사 내에서 대표님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야해요. “대표님, 이거는 아니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하면 안 돼요.” 정도의 챌린지를 하실 수 있는 분이어야 하는거죠. 강하게 최고 의사결정권자에 직언할 수 있을 사람이 현지 시장을 리드해야 합니다. 그런 분이 없다면 대표가 전담하는 좋고요.
아마 MVP 제품을 페이스북 등에 광고를 해서 소비자 반응을 보셨을거라 봐요. 그런 반응은 하나의 밸리데이션은 될 수는 있는데, 결국 회사가 잘 되느냐 안 되느냐는 ‘오가닉 트래픽(organic traffic, 검색엔진 혹은 도메인으로 유입되는 트래픽)’, 입소문을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봐요. 광고로 다 된다면 돈 많은 회사가 하면 무조건 잘 되야 하잖아요. 여담인데 제가 과거 미국에서 창업했을 때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당시 제가 광고비를 무척 많이 썼어요. 페이드 트래픽(돈을 들여 알리는 방법)의 데이터를 보고 있었던 거죠. 그 즈음에 유명한 한인 VC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범수, 광고 다 꺼. 이렇게 광고를 돌리면 제품이 가진 내실과 매력이 뭔지 영원히 모를 수 있어. 이건 다 잡음이야. 니가 광고를 해서 데려오는 모든 사람은 다 잡음이고 숫자가 적더라도 먼저 오가닉하게 입소문으로 사람을 어떻게 데려오느냐가 관건이야.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광고비 써가지고 데려오는 건 혼자 위안하는 것 밖에 안 돼. 이런 방식은 너한테 남는 게 없어. 광고 빨리 꺼!”라고요. 그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의미없는 허수가지고 저 혼자 만족했던 거에요. 왜냐하면 불안하니까 광고라도 돌리며 숫자를 보며 위안을 찾았던 겁니다. 그때 실리콘밸리의 역사에 이름 한 줄 넣을 수 있는 훌룡한 친구가 제 잘못을 지적해 준거예요. 그래서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걸 멈췄어요. 제가 하던 사업이 교육관련 테마였는데, 오가닉 트래픽을 만들기 위해 학생들이 공부하다가 검색할 때 우리 회사가 검색에 제일 먼저 뜨게하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구글 첫 페이지에 어떻게 나오게 할지를 연구하다가 아예 웹사이트를 롱테일 키워드 중심으로 설계를 바꾸고 영상도 숏폼으로 다시 찍었어요. 300만 달러 들어간 기존 방식을 싹 다 뒤집은 거죠.
정지원 대표 : 서비스 출시를 하고 제품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려고 해요. 회사 마케팅 리드는 3개월 간 광고 없이 오가닉하게 해서 입소문이 얼마나 나는지 테스트해보자고 하고, 저는 마음이 급해서 광고비를 조금이라도 쓰자는 입장이예에요. 어떤 방식이 나을까요.
김범수 파트너 : 오가닉 트래픽을 미국 시장에서 만들려면 대표가 테스크포스의 리드를 해야 돼요. 제가 광고비 10만 달러씩 쓰다가 멈춘 뒤 6개월 동안 승부를 건다고 했어요. 제가 리드하기로 하고 계획을 짜서 전 직원을 하루에 2시간씩은 SEO(검색 최적화) 관련 일을 하도록 했어요.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다 이야기 했어요. 누군가가 우리 쪽에 백링크를 걸어주면 구글은 보팅 하나처럼 봐주기 때문에 크레딧을 더 줘요. 위키피디아 같은 데에 걸리면 더 좋고 학교 사이트 같은 곳은 구글이 가점을 더 줘요. 그래서 전 직원이 하루에 두 시간씩 학교에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고 막 그런 거를 한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 달 동안 구글 트래픽이 하나도 안 올라서 뭐 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4개월 반 정도 지나니까 구글 검색 결과에서 15만 명씩 오기 시작하는거예요. 임계치가 있었던 거죠. 영어 실력이나 살 빼는 것도 리니어하게 되지는 않잖아요.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빠졌다가 살이 안 빠지다가 또 확 빠지고 그러잖아요. 그런 과정이 있기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대표가 리드를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냥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이 “대표님, 이거는 무조건 6개월 걸리니까 절 믿고 기다리세요”라고 말하기 쉽지 않아요. 미국 시장에서 오가닉 트래픽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테스크포스의 헤드는 대표님이 하시는 게 맞다고 봅니다. 물론 대표는 바쁘죠. 몸이 하나인데 모든 걸 다 하기 어려워요. 결국 할 일과 안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이게 스타트업 대표의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걸 더 하시고 다른 거를 좀 덜 하세요. 그 방법밖에 없어요.
빌통코리아 문종만 대표 : 저는 빌통(남아공 육류 간식)을 한국에서 사업화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시장 진출, 미국VC 투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플립을 해서 미국에서 먼저 평가받을 생각도 있고요. 저희 같이 식품 소비재 기업, 공장 설비가 있어야 하는 회사들은 어떻게 미국 자본을 설득해야 할까요. 제품력으로 미국 VC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요?
김범수 파트너 : 저는 하이테크 쪽에만 투자를 20년 동안 한 사람이기에 CPG(소비재)쪽은 전문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고, 제 사견을 말씀 드릴께요. 보통 VC는 창업자가 제품의 맛을 강점으로 내세우면 눈도 깜짝 안 해요. 사실 맛이란 건 상대적인 거잖아요. 그것보다는 VC가 생각해보지 못 한 번뜩이는 고투마켓 전략을 어필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이는 소비재나 소프트웨어나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슬랙이 편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쓰기 불편하다고 해요. 노션도 어떤 사람은 너무 좋다며 쓰지만 어떤 사람은 손에 안 붙는다고 해요. ‘무조건 좋다’라고 절대적으로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거의 없어요. 어떻게든 부스트랩을 해서 매출로 증명을 하시기 전에는 어떤 투자자를 만나도 제품의 맛만으로는 설득이 쉽지 않을겁니다.
확연한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 하면 VC는 유통을 이미 갖고 있는 기존 회사들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할겁니다. 그래서 식품회사들이 미국에선 코스코에서 들어가고 싶어하는 거예요. 거기 한 번 들어가면 어마어마하게 팔립니다. 어지간한 지역에 코스트코는 다 있어요. 대표적으로 비비고가 있겠죠. 비비고는 글로벌 브랜드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덤플링은 없었거든요. 그 앞에 있었던 중국과 일본 만두에서 맛보지 못하던 맛을 냈다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맛은 부차적인 것이고 고투마켓에 대한 걸 VC에게 어필하셔야 할거예요. 그게 없으면 얘기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시장도 크지만 육포 회사도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제가 투자하는 미국 소프트웨어 회사들에게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돈 없는 스타트업의 고투전략은 굉장히 날카로운 송곳처럼 뚫고 들어가야 한다”라는 겁니다. 두리뭉실하게 고투마켓을 하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어요.
문종만 대표 : 매출 지표 없이 제품 경쟁력과 제품 제조 기술 프로세스 시스템으로 미국VC의 투자 검토가 가능할까요?
김범수 파트너 : 결론부터 말해 이론적으로는 가능한데,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일단은 제조업은 그로스 마진이 소프트웨어보다 낮아요. 그로스마진이 높은 비즈니스를 VC들은 기본적으로는 좋아하게 돼 있거든요. 그로스마진이 낮은 제조업은 VC 입장에서 망설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결국 VC가 망설이게 하는 요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VC는 더 많이 보고 결정하고 싶어해요. 제조업은 세부적으로는 정말 힘들게 만드는데 외부에서는 그 힘듦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잘 팔아서 직접 매출 나는 걸 보여줘야 투자자도 카드를 만질 수 있게되는 거죠. 세상에 존재 안 했던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쉽지 않아요.
프록시헬스케어 김영실 이사 : 저희 회사는 250년 동안 혁신이 없었던 칫솔이라는 걸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안전하다는 걸 여러 인증을 통해 입증했고 올해 목표한 매출울 달성할 거라 확신하며 신제품 론칭 전략도 가지고 있어요. 저희같은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을 하려면 플립을 반드시 해야 할까요?
김범수 파트너 : 우리가 나스닥이든 코스닥이든 상장을 하는건 결혼할 상대자를 찾고나서 서울에서 살지 부산에서 살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 거는 굉장히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할 수 있을 정도의 지표가 있으면 당연히 한국 증시도 상장할 수 있을테니까요. ‘내 수중에 100억 원이 있을 때 집을 어디다 살까’와 같은 고민이랑 똑같아요. 100억원을 먼저 벌고 집은 그때 가서 고민해도 늦지 않습니다.
어떤 제품이 왜 혁신적인지를 회사가 계속 설명해 줘야 한다면 그건 고투마켓을 그렇게 잘한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기 전까지 스마트폰이 스마트하다는 걸 메이커들이 강조해야 했어요. 왜냐하면 쓰기가 그렇게 편하지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이폰이 등장한 뒤 사람들은 아이폰을 스마트폰이라고 안 부르고 그냥 아이폰이라고 불렀어요. 사람들이 쓰다가 ‘이게 혁신이구나’라고 느끼는 것이지, 회사가 제품이나 서비스가 왜 혁신적인지, 왜 스마트한 건지를 설명을 할 필요가 없어야 됩니다.
칫솔같은 제품이 조금 어렵죠. 소비자가 제품을 써서 좋아졌다 안 좋아졌다를 아는 데 시간도 걸리고, 코릴레이션이 분명하고 뚜렷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회사가 ‘우리가 혁신적이다’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마켓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 수도 있어요.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은 이런 걸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었다고 봐요. 그 사람의 피치를 보면 초등학생도 다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설명해요. 얼마나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지, 어느 회사 반도체를 썼는지는 언급 안 하잖아요.
보통 칫솔같은 소비재 제품은 D2C로 온라인에서 팔기 시작하다가 어느 정도 브랜드가 생기면 리테일 마켓에 들어가요. 유통을 뚫는 거죠. 유통을 뚫었다고 해서 다 성공하는 건 아니예요. 그러다가 없어진 칫솔 브랜드들도 있었어요.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가 살고 있지만 오하이오주에 있는 사람은 저랑 전혀 다른 기준에서 칫솔을 판단할지도 몰라요. 우리가 뭔가를 다 안다라고 생각을 하지 말고 항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부딪혀서 검증되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가겠다라는 마음으로 하셔야 해요.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정신으로 가길 바랍니다.
정지원 대표 : 미국 창업자들 중에 뻔뻔할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꿈이 큰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모습이 철저하게 시장 검증을 해야한다는 스타트업 방향성과 다소 상반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김범수 파트너 : 저는 모든 미국 창업자가 그렇다고 보지는 않아요. 제가 아는 미국창업자들은 굉장히 디테일에 민감합니다. 미국은 똑같은 서비스를 하더라도 한국에서 매출 100억 날 때 붙이는 데이터 애널리틱스 툴을 매출 1억도 나기 전에 다 써요. 사용자 데이터를 봐야 제대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예요. 그냥 매출이 올라가니까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넘겨짚는 추측을 배제하려고 노력합니다. 지레짐작을 없애고 의사결정을 하려면 굉장한 집착을 해야 합니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가 있죠. 얼핏보면 봉이 김선달 같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잖아요. 최근에 일론 머스크가 어떤 테크 저널리스트랑 자기 공장을 걸으면서 대담하는 내용을 봤는데요. 기술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어요. “저 사람은 솔라 패널 하는 회사도 해야지, 전기자동차도 만들어야지, 스페이스x 로켓도 화성에서 쏴야 되는데 언제 그걸 다 공부했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저 같은 일반인은 일론 머스크를 보면 좌절감까지 듭니다. 일론 머스크급 사람들은 기술을 설명할 때 직원들에게 시키지 않아요. 테크 저널리스트와 만나 구구절절 썰을 풀 수 있는 디테일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요. 일론 머스크도 하는데 스타트업 창업자가 그런 디테일이 없으면 말이 되겠어요. 스타트업 창업자는 오직 디테일로 승부하는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큰 일을 잘하는 사람 중에 디테일이 약한 사람도 별로 없다라고 봅니다. 우리는 의사 결정과 데이터를 보는 방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근데 데이터가 바로 의사 결정이에요.
샵풀 박순무 대표 : 미국에 있는 상품을 한국으로 가져와 판매하는 커머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팀원도 일부 미국에 있습니다. 현재 큰 금액은 아니지만 해외 투자도 검토 단계에 있고요. 플립도 고민했지만 저는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는 쪽으로 팀원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팀원 중 한 명은 시민권자이고 한명은 영주권자라서 조금 고민입니다.
김범수 파트너 : 고객이 한국에 있는 거잖아요. 미국 판매자한테는 우리가 돈을 주고 물건을 사오는 거고요. 그러면 회사는 고객 가까이에 있는 게 맞다고 봅니다. 회사의 본사 소재지를 어디로 둘 것인지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게 좋다라고 생각해요. 샵풀의 사업은 본사든 지사든 한국 쪽 회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회사의 핵심 경쟁력은 한국 고객에 대한 이해에 있는거구요. 이런 경우는 한국에 본사가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에게는 한국 회사 스톡옵션이 의미없겠지만, 한국계 직원이라면 덜 불편하리라 봅니다.
창업 초기에는 뭘 할지 정하는 것보다 뭐를 안 할지 포기하는 게 더 힘들어요. 근데 그걸 잘하셔야 돼요. 하고 싶은 리스트는 수백 개가 있을 겁니다. 문제는 그걸 다 못한단 말이에요.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시간도 부족해요. 그럼 그중에 무엇을 포기를 잘 결정하느 게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죠. 결혼해서 안정감을 갖고 싶으면 결혼할 때 따라오는 속박도 수용을 해야죠. 이 세상에 내가 좋은 것만 쏙 빼서 다 가질 수 있는 건 없겠죠.
그리고 좋기만 한 의사결정은 없어요. 창업에서 의사결정의 위험은 항상 도사려 있습니다. 모든 의사결정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업사이드와 다운사이드가 항상 섞여 있어요. 그때 과감하게 덜 중요한 것을 버리는 것도 필요해요. 그건 지분을 제일 많이 가진 대표가 결정해야 돼요. 저희 포트폴리오 창업자분들한테는 그런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실시간 질문1) 플립을 안 해도 초기에 미국 VC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을까요?
김범수 파트너 : 이론으론 가능하지만 통계적으로 사례는 거의 없어요. 복권도 누구나 당첨될 수 있지만 확률은 낮잖아요. 그만큼 초기 기업은 미국 VC가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회사가 정말 매력적이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이커머스 사이트에 소비자를 데려왔을 때 최종적으로 하나라도 구매하는 데까지 가야 컨버전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컨버전은 항상 매력과 프릭션의 함수예요. 프릭션이라는 건 돈을 안 내고 구매를 안 하게 하는 장애 요소들인 거예요. 10년 전부터 그로스해킹(growth hacking,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더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접근해 저비용으로 최고의 광고 효용을 추구하는 마케팅기법)에서 나오는 말이 ‘매력을 높이는 것보다 프릭션을 낮추는 게 더 쉽다’고 하잖아요. 미국 VC 입장에서 한국에 법인이 있으면 귀찮은 것이 눈에 보여요. 그것 자체가 투자를 주저하고 망설이게 하는 요소죠. 게다가 창업자가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니라면 소통이 쉽지 않으니 더 주저하겠죠. 그런걸 다 무시하고도 투자를 꼭 하고 싶을 만큼의 매력이 회사에 있으면 투자받으실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아마 미국 VC가 “한국 법인은 도저히 못 하겠고 플립을 하면 투자할게”라고 제안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혼할 상대를 찾았으니 미국으로 오게 하는 겁니다. 미국으로 결혼하러 이민 가면 안 되는거죠. 우선 결혼할 상대부터 찾으셔야 해요.
정리하자면, 초기에 미국 VC한테 투자를 받으려면 VC가 망설이는 요소를 다 잊어먹을만큼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창업팀의 매력일 수도 있고 세상에 없던 제품의 매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쉬운 게 아니란건 다들 아실겁니다.
(실시간 질문2) 플립을 할 때 변호사 고용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김범수 파트너 : 법률 전문가가 아니라서 명확한 설명은 어려울 듯 싶어요. 다만 법인 설립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간단한 일이에요. 법무사나 변호사, 세무사 없이도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VC 투자나 플립은 스타트업 회사 설립을 많이 해본 변호사를 고용하시는 게 좋아요. 로펌 나오면 다 변호사지만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와 경험이 없는 사람은 기업 입장에서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예요. 한국 변호사 중에도 스타트업 전문가는 있지만 풀이 작아요. 저희가 투자를 할 때는 미국에서 탑티어 로펌을 써요. 꽤 비쌉니다. 파트너급 변호사를 쓰려면 시간당 1200~1300불인가를 지불해야 해요. 그게 부담스러우면 큰 로펌 출신 중에 약간 낮은 가격에 부티크로 하는 곳도 있어요. 플립을 하는 저희 포트폴리오들에게는 그런 변호사를 추천드리고 있어요.
참고로 여기 변호사는 플립할 때 한국에서 벌어지는 것을 미리 안다거나 미루어 짐작하지 않아요. 그건 자기가 책임질 수 있으니 얘기를 안 해요. 그런 부분은 한국 변호사나 세무사를 고용해서 해줘야 돼요. 이렇게 한국과 미국 양쪽에 법적 조언, 세금 관련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갖추어야 하는거죠. 플립할 때 미국 변호사한테 ‘플립을 할까, 말까’를 물어보면 절대 답 안해줍니다. 그 사이 비용만 늘어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고민을 변호사랑 한 시간 얘기할 때 그 변호사는 빌러블 아우어(billable hour, 수임료 청구서)가 1시간 늘어나는 거예요. 미국식으로 얘기하면 결국 ‘변호사는 법적인 해석만 해줄 뿐, 판단은 의뢰자가 직접해야 된다’라는 겁니다. 결국 모든 얘기를 다 듣고 의사결정은 대표가 해야 된다는 걸 잊지 마셔야 해요.
스타트업이 생존하려면 갖춰야 할 것
김범수 파트너 : 결국 스타트업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크게 되려면 셋 중에 하나가 있어야 돼요.
하나는 제품이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거여야 해요. 사람들이 보고 “이런걸 만들다니” 정도의 감정을 느껴야 합니다. VC도 그런 제품을 보면 “이거는 우리가 투자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할거예요.
또는 창업자가 대동강 물을 팔 수 있어야 해요. 저 같은 투자자를 만나서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얘기를 듣고 보면 “이건 투자해야 될 것 같은데”라는 마음이 들게하는 마법사같은 창업자들이 있어요. 제가 실제로 투자한 기업 대표가 그런 사람이예요. 샌디에이고에 설립된 반도체 회사였는데 그 회사가 한때 실적이 좀 안 좋았어요. 저를 포함한 파트너들이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나 잔소리를 하기로 입을 모았죠. 그러고 미팅을 시작했는데 그 회사 대표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미팅이 끝날 때쯤 되니까 “지금 조금 매출이 안 나오지만 곧 잘 되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것도 그 사람의 능력이에요. 70을 가졌는데 200인 것처럼 가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창업자의 능력입니다. 결국 똑같은 내실을 가진 제품을 얼마로 인식시키느냐도 창업자의 역량이예요.
혹은 내 물건을 팔아서 들어오는 돈으로 현금 흐름을 가져가며 오가닉 그로스를 하는거예요. 옛날에 애플이 설립될 때 그렇게 한 거죠. 두 사람이 차고에서 컴퓨터 보드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재료 사고 한거죠. 물론 요즘은 이모델로는 경쟁에서 이기기가 쉽지 않죠. 보통 내가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으면 누군가 이미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이미 자리 잡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을 수도 있고요. 돈이 될 것 같은 아이템을 나 혼자 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요. 내가 버는 돈으로 성장하면 좋지만 그런 게임의 방식으론 점점 더 이기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정말 새로운 걸 해서 펀딩을 받든지 아니면 창업자가 긍정적인 의미로 약을 잘 팔던지 해야 해요.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원정을 갔을 때 매듭(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꽁꽁 묶여있는 마차를 발견하는데 그 지역에서는 이 복잡한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된다는 말이 전해져다고 해요. 알렉산더 대왕도 매듭을 풀려했지만 매듭이 너무 복잡하고 정교해 도무지 풀 수 없었죠. 그래서 그의 선택은 칼로 매듭을 끊어 버린거였습니다. 창업자는 늘 문제를 풀어야 해요.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배팅해 볼 수 있는 본인과 팀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바탕으로 계획을 짜보시는 걸 조언합니다.
[참고]
–플립,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까
–플립해야 미국 VC에게 투자받을 수 있다?
–플립의 타이밍과 장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