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107] 원형의 가치를 패션 아이템이 담는 브랜드 ‘로우로우(RAWROW)’의 이의현 대표
직업 상 노트북을 들고 다닐 일이 많아 얼마 전 백팩을 하나 샀다. 아니 회사에서 사내 복지로 구입해 지급 해줬다. 그 과정에서 작은 에피소드라면 편집장이 ‘스타트업 미디어는 스타트업 제품을 써야 돼. 어딘가에서 재미있는 제품을 봤는데…’ 라며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는 것이다. 결국 편집장은 한겨레 신문에 실린 어느 기업의 인터뷰를 기어코 찾아내 회사명을 확인한 뒤 그 제품을 주문을 해줬다. 그때 받은 가방이 바로 로우로우(RAWRAW) 백팩으로 현재 내 등을 책임져 주고 있다.
몇 달 동안 메고 다녀 본 소감이라면, 이 제품 마음에 든다. 일단 착용감이 좋고 디자인도 마음에 든다. 맥북에 맞춰진 가방 사이즈로 인해 보유 중인 노트북을 넣는 것이 조금 애매했다는 것만 빼면 딱히 흠 잡을 것도 없다. 그러던 차에 문득 궁금해졌다. 이 제품을 만든 기업과 창업가는 누구일까? 우린 궁금하면 만나야 한다. 로우로우 이의현 대표와의 만남은 그들과 정말 잘 어울리는 홍대에서 이루어졌다.
로우로우를 소개해 달라.
로우로우는 본질만 남긴 제품을 만드는 디자인 회사다. 단순한 것이 더 좋은 것임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있고. 주로 가방 등 패션 쪽 잡화 아이템들을 제작하고 있다. 굳이 규정하자면 브랜드 회사이자 디자인 회사라고 말하고 싶다.
멤버들은 어떻게 구성했나?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 사회 생활 하면서 생각이 잘 맞았던 친구들이다. 창업 전에는 다들 각자의 영역에 있었지만, 가치관과 마음이 맞아서 모인 멤버들이다. 패션 산업에 있었던 사람은 나와 MD(김동헌) 뿐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다른 산업군에 있었다. 창업 전에는 그저 형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꿈 꿨었고, 언젠가 시작하면 같이 하자고 했던 친구들이다.
팀 빌딩에 있어 어려움은 없었나? 설득이라던가.
설득을 할 수 없었다. 내가 능력이 안 되서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설득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일을 하면 당연히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매출은 하나도 없지만, 우리 서로 사랑하니까 들어와서 공짜로 일해줘’라고 할 수 없어서다. 그런식의 접근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든일을 혼자서 하다가 사업 가능성이 좀 보이고, 최소 동료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줄 수 있을 때 정도가 되어 요청을 했고 모셔들 올 수 있었다.
2011년 설립으로, 3년차 브랜드다. 아무리 시장을 잘 알고 가치관이 맞는 이들과 창업을 했다 해도 그간 어려움이 있었을 거라 본다.
사실 한 번도 없었다. 창업은 3년차지만, 본격적으로 사무실을 얻어 시작한 지는 정확히 1년 조금 넘었다. 2012년 12월이다. 그때 공식적으로 론칭 한다고 세상에 알렸고 그 전에는 개인사업자로 유통망을 뚫고 있었다. 판매를 하긴 했으나 베타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멤버 간 갈등도 없었나?
전혀 없었다. 회의 하면서 의견이 다양한 건 있지만.
팀원은 현재 몇 명인가? 그리고 역할은?
현재 8명이다. 디자이너 세 명, MD 두 명, 영업 생산 재무가 한 명. 온라인 담당이 한 명이다.
로우로우의 기업 문화라면? 그리고 직원 복지는 중 이야기 해 줄 부분이 있다면?
자랑할 만한 내용은 없다. 다만 스타트업 평균보다는 잘 해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먹는 거에 대해서는 무제한으로 용인한다. 회식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하는 것 같고. 더불어 책 사는 것도 제한없다. 그리고 매달 동료들끼리 평가해서 점수가 제일 높은 친구에게 포상을 해주고 있다. 나중에 크게 잘 되서 모두에게 차 한 대 씩 해주고 그러면 자랑하고 싶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창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로우로우는 어떻게 시작됐나?
여느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로우로우의 첫 사무실은 친구가 스튜디오의 책상 하나 들어가는 드레스룸이었다(웃음). 회사 다니면서 모아놓은 장가갈 돈 2 ~ 3000천만 원 투자해서 가방 300개를 만들었다. 그게 본격적인 사업의 시작이자, 제품의 시작이자, 로우로우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패션 산업 쪽에서 일을 했기에 위탁, 수수료, 마크업 등 우리나라 유통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하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무형이든 유형이든 판로 개척과 유통 플랫폼이다. 그런데 내 입장에선 그 부분에 대한 난관은 크지 않았다. 그게 2012년 4월 경이다.
당시 좁은 사무실에서 동생 혼자 전화도 팩스 없고 핸드폰으로 다 일했던 시절이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하냐면, 회사가 이 정도 되고 건물 있고 직원들도 이 정도 있으니까, 몇 억을 투자 받아 했겠지 또는 부모를 잘 만났나 보지라는 선입견이 있어서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투자를 받은 적도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적도 없다. 그야말로 무에서 시작했다. 대출도 없다. 각설하고.
제품이 알려지다 보니 여러 유명 편집삽에서 연락이 왔다. 가로수길 매장 입구 진열대에 우리 제품이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매장 입구에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는 것은 그 매장의 주력 상품이라는 이야기니까. 그런 과정을 거쳐 들어가고 싶었던 매장에는 다 들어갔다. 그렇게 판로 개척이 이루어졌다. 들어가서 판매가 안 되면 민망 했을텐데 다행스럽게 판매도 잘 됐고.
입점제안서를 한 번도 쓰지 않고도 원했던 곳도 다 들어 갔다는 건데.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그건 진짜로 모르겠다(웃음). 제품이야 소비자들이 판단하는 거니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거짓말을 안했다는 것이다. 보통 가방 사용 설명서를 보면 수식어가 많다. 그게 거짓말은 아니지만 장식이다. 진짜 좋은 제품은 아이폰 같은 거다. 제품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쉽고 간결하고 보자마자 뭔지 알 수 있는 제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디자인과 완성도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한다. 더불어 내가 MD를 했기에 원자재를 이 만큼 쓰면 가격이 얼마나 되고 얼마를 만들어야 마크업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다는 것도 감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비교적 잘 들어 맞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사업을 꿈 꿨다고 했다. 사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명확하게 ‘이거다’라는 이유는 없었다. 성격인 것 같다. 나서는 거 좋아하고, 누구 뒤나 밑에 있는 것 싫어 했고. 어릴 때부터 앞에 나가 까불고 그랬다. 확실한 거라면 내 뜻을 담은, 내 의지를 담은,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은 있었다. 사실 어렸을 땐 농구를 좋아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인데 그때부터 내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은 넌 좋아하는 일 해서 좋겠다고 하지만, 난 원래 농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근데 쉽지가 않더라. 내가 큰 키도 아니고(웃음). 조던을 너무 좋아했고, 조던 신발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도대체 그 신발이 왜 그렇게 좋을까 생각하게 됐다. 판타지였으니까. 그렇게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공부를 일찍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창업한 케이스다. 사회 생활은 어느정도 했나?
4-5년 정도다. 남들 보다 좀 일찍 시작했고, 승진도 늦지 않았다. 좋은 기회도 많아서 당시 까불거리면서 살았다(웃음). 공자가 서른 살 전에 이립[而立]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 나는 죽기 전에 천억을 벌어야 한다고 입에 달고 살았다(웃음). 실현 가능성 보다는 가장이기에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아버님이 개척 교회 목사님이시라 집이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진짜 노력했다. 노력이라는 게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겠지만. 워커홀릭이라는 말도 듣는데,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다가 로우로우로는 어떻게 연결된 것인가?
해야 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독립운동, 민주운동 같은 거랄까(웃음)? 농담삼아 의적활동을 하고 싶다고도 말한다. 이전 세대에 받은 혜택이 크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세대는 건국을 했고, 부모님 세대는 민주화를 했다. 부모 세대가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뭔가를 했던 거에 비하면 우린 정말 편하게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혜택을 받고 살고 있음에도 힐링을 찾는다. 우리 윗세대는 소유하고 싶어서 살았고 우리는 그걸 향유하며 살고 있다. 나쁘다고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이젠 세대가 힘들었으니 시쳇말로 빡세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전 세대의 그걸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가서 느낀 건 브랜드 회사 제품 대부분을 한국에서 만들더라는 것이다. 본사라 불리우는 곳은 회사 브랜드랑 디자인 만들고 제품은 결국 한국에서 만들더라는 것이다. 진짜 가치있고 빛나는 건 외국에서 하고 있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우리나라의 디자인력과 브랜드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나는 국력이 브랜드력에서 온다고 본다. 독일은 벤츠와 BMW가 있고, 일본은 도요타가 있고 소니가 있다. 미국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있다. 한국은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과 K-POP이 있긴 하지만 사랑받는 브랜드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땐 막연히 1,000억을 벌 수 있는 브랜드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랑 받는 브랜드, 소위 100년의 브랜드를 고민한다. 시간이 지나도 가치 있는 브랜드가 한국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걸 하고 싶었다. 나도 외국 브랜드 좋아하긴 하지만, 일종의 우리나라에 대한 자긍심이랄까. 그걸 브랜드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로우로우를 만든 이유라고 보면 되나?
맞다.
로우로우만의 가치관은 무엇인가?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관은 ‘단순하고 쉽게’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심플한 것을 좋아한다. 세상은 차별성이 과잉되어 있다. 예를 들어, 흰 우유 종류만 36개다. 어른 우유, 아이 우유, 칼슘 우유, 살 안 찌는 우유 등등. 이렇게 까지 나눌 필요가 있는가? 남을 이기려 경쟁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남다른 게 있어야 하고,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불필요한 것이 보태지고 보태진 것 같다. 요즘에 사업이 잘 되는 곳도 망하는 곳도 많은데. 사업이 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필요 이상의 것을 만들어 차별성을 보여 주려다 발생하는 것 같다. 차별성을 강조 하다보면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만들게 된다.
로우로우의 목적은 그러한 부분을 바로 잡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에센스다. 우리 브랜드의 모든 것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RAW’다. 의미는 보태지 않고, 가공 되지 않은 본연 모습, 원형이란 것을 말한다. 시쳇말로 브랜드가 뜬다는 것은 제품 때문에 떠야하는데, 어디어디 출신이라는 것으로 래핑되서 뜨는 건 원하지 않는 모습이다.
가방이라는 제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패션 아이템 중 가장 목적성 있는 게 가방이다. 물론 모든 아이템에는 목적이 있다. 옷은 추우니까 입고 부끄러우니까 입고 하듯이 말이다. 여담이지만, 백화점에 가보면 캐주얼만 여덟 개는 되는 것 같다. 감성캐쥬얼, 럭셔리, 빈티지, 스타일리쉬 캐주얼 등등. 또 옷 마다 감성마케팅이다. 영국 감성, 미국 감성, 그 둘의 믹스 매치, 퓨전 등등. 이러한 구분은 회사의 전략이다. 그들의 철학일테고.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나에겐 ‘으악’소리가 날 정도로 낯설고 어렵다. 그래서 우린 RAW를 추구한다. 왜 발전만 추구하나? 보존할 게 이렇게 많은데. 내가 ‘RAW’라는 단어를 좋아 하는 게 원형이라는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큰 목적 중 첫 번째는 멋진 것도 좋지만 옳은 것을 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발전도 좋지만 보존하고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것을 할 때의 원칙은 세 개가 있다. Essence, Simplicity, Fun이다. 회의를 할 때, 마케팅을 할 때, 프로젝트를 할 때, 제품을 만들 때, 이 세 개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을 고려한다.
이런 목적성을 두고, 불필요하고 과한 걸 하지 말자는 생각에서 가방을 선택 했다. 가방은 어떤 브랜드에서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예술이고 전략이겠지만, 우리의 전략은 ‘가방 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판단은 사용자가 할 것이다. 제 아무리 수식어를 붙여도 가방은 그냥 물건을 담는 것이다.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해준다면?
마케팅이 일방적인 경우가 너무 많다. TV CF를 보면 큰 돈 들여 하기는 하는데 공감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물론 모든 마케팅에는 근거가 되는 팩트가 있기에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거다. 그러나 일방적이다. 우리는 일방적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다. 일방적이지 말자. 주입시키지 말자. 멋진지 이쁜지 최고인지는 소비자가 알아서 판단하게 하자는 것. 최소한의 말과 최소한의 표현으로 말이다. 몰론 사려면 사고 말려면 말라는 투는 아니다(웃음). ‘이런 고민과 생각으로 만든 제품이다’ 라는 PR은 하고 있다. 유저들이 이해해 주면 고맙다는 이야기고.
로우로우의 매출은 공개 가능한가?
지난해 35억 정도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조금 높은 추이로 가고 있다.
빠른 성장 수치로 보인다.
나도 놀라고 있다. 그래서 조금 겁난다. 그래서 판매를 조절 하고 있다. 잘 나간다고 많이 찍어 내는 건 아닌것 같다. 그런 식으로 브랜드가 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유저들이 많이 찾아 주고 잘 팔리는 지금은 달콤하다. 물건도 계속 품절 되고 있고. 그렇다고 품절 방지 하기위해 재고를 많이 만들어 놓고 있지는 않다. 우리 기준으로 적당하고 오버하지 않는 수준에서 진행하고 있다. 현재 스코어로 보면 올해 매출이 작년보다 더 갈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내부에서 이야기 하는 목표는 작년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면 유저와 소통하는 모습이 참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저와의 소통은 희열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 사랑 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얼마 전 어떤 분이 매장 문 닫을 시간 삼십분 전에 전화가 와 ‘택시타고 가고 있으니, 문 닫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상품을 구매 하신 다음 진짜 고맙다고 막 인사를 하시더라. 요즘 세상에 ‘물건을 팔아주셔서 감사하다’ 라는 말을 듣는게 쉬운 일인가?
얼마 전 제조 장인과 함께 하는 콜라보를 봤다. 어떤 의도였나?
우리도 처음에는 크고 유명한 곳과 콜라보를 했었고 성과도 좋았다. 그 다음에 의미 있는 콜라보가 뭘까 고민했다.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가치를 보존 하는 것을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서 매일 이야기 하는 게 ‘가방다운 가방’, ‘사업다운 사업’, ‘협업다운 협업’이다. 협업다운 협업이 뭘까를 생각해 보니 우리와 매일 만나는 제조 공장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아무도 공장은 조명하지 않더라. 심하게 말하면 하청 업체라고 인식이 있는 듯 싶었다. 하지만 사업 초기 우리 입장에서는 만나기 제일 어려운 곳이 공장이었다.
그 분에 대한 것은 익히 경력은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1/4은 그분들 만든 가방을 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 손에서 100개가 넘는 브랜드의 가방이 만들어 졌다. 그 브랜드들은 연예인들 이름이 붙어 유명해 지지만, 정작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그저 흰 머리 난 아저씨로 남더라. 그렇게 30년 동안 일 하신 거다. 정말 엄청난 건데 아무도 조명하지 않아서 우리가 하자고 했다. 그리고 일부러 설레발을 쳤다. 그런 거 별로 안 좋아 하지만 열심히 알리고 싶었다. 이번에 우리가 콜라보하는 곳은 진짜 최고라고. 이게 우리식 협업이다. 유저들 반응도 우호적이었다. 무척 뿌듯했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한 패션 브랜드에서 로우로우 디자인을 카피해 이슈가 있었다. 그때 상황을 말해준다면?
옛날에는 해외 유명 브랜드를 우리나라 브랜드가 카피를 많이 했었다. 좋은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던 환경이 있었다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요즘은 로컬 브랜드를 비롯해 신진 디자이너들의 디자인까지 카피를 많이 한다. 내 주변 친구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그냥 대충 끝내더라. 대응 방법도 모르고, 고소 방법도 모르고, 해본 적도 없고. 해봤자 어떻게 되겠냐는 생각이 많다. 누가 봐도 카피긴 한데 디자인 고유의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만의 것이라는 디자인 등록이 되어 있는는 것도 아니고. 도트무늬가 우리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러나 솔직히 만든 사람은 안다.
나는 다행히 회사 생활을 통해서 제도적인 안전 장치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품 등록, 디자인 등록, 상표 등록 다 있었다. 그런 차에 카피캣이 생겨서 대응을 했다. 잘 걸렸다 싶기도 했지만 겁도 났다. 우리에 비하면 엄연히 큰 회사니까. 거기서 더 비싼 변호사 대서 붙을 수도 있고, 괜히 까불었다가 더 손해볼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주변에서 이런 일이 종종 있어 ‘총대 메겠다’ 했다. 갈 때까지 가겠다 마음 먹고 시작 했는데, 생각 외로 어마어마하게 유저들에게 바이럴이 됐다. 주변에서는 노이즈 마케팅 했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말 들으면 그냥 그렇다고 이야기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 법적으로는 신뢰회복, 손해배상, 잔존물에 대한 처분, 이 세 가지에 대해 보상이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그쪽 회사 제품의 판매는 당연히 중지 됐고, 팔린 물건에 대한 손해 배상 받았다. 더불어 재고 물품은 소각한다고 하더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소각도 누굴 위한 소각인가 싶었다. 누군가는 용달에 싣고 날라야 하고, 불구덩이에 넣어야 되고 말이다. 매연도 생기고 하지 않겠는가? 멀쩡한 가방을 왜 태우나 싶더라. 그냥 우리가 다 받아서 어려운 나라에 기부했다. 그렇게 마무리 됐다.
홍대 지하철 역에 붙은 광고가 인상적이다.
마찬가지다(웃음). 광고 다운 광고는 뭘까 고민했다. 결론은 무조건 쌍방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지하철 역 안에 거울이 다 없어졌다. 광고판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과연 그게 광고일까? 보기 싫어도 봐야하는 시각적 오염은 아닐까? 그래서 거울을 달았다. 대신 뒤를 돌면 로우로우 가방을 메고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 제작했다.
로우로우에서 제작한 빅이슈 조끼도 이슈가 되었다.
우린 디자인 회사고 브랜드 회사다. 디자인 회사로서, 브랜드 회사로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빅이슈를 좋아했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빅이슈 자체를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더라. 어떤 사람은 역 앞에서 나눠주는 전단지인줄 알기도 하고. 아는 사람만 사더라. 그래서 좀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그 분들 사용성에 맞고 빅이슈 식별성을 살릴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신사역 8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판매하는 분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언제나 웃음 가득한 얼굴을 유지한 채 너무 밝게 인사를 하신다. 그 분을 통해 빅이슈에 대한 정말 좋은 인상을 받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긴데. 그분은 잡지를 사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오천 원짜리 지갑을 만들어서 잡지를 하나 팔 때마다 선물로 주셨다고 한다. 눈물 나더라. 잡지가 오천 원인데 말이다.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일 좋은 원단 쓰고 디자인을 하다보니 개당 5-6만원 들었다.
마케팅 하는 분들은 지하철역 입구마다 걸어 다니는 광고판을 만든 거라고 하더라. 돈 안들고 광고 잘했다고. 그러다 보니 조선일보에는 똑똑한 마케팅이라는 기사도 났다. 처음부터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한 건 아니다. 해야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한 거다. 디자인을 좀 할 줄 아는 누군가가 그분들의 복장을 고쳐줘야 했었고 우리가 했다. 해야 할 일을 한거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오다 가다 보이는 과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있다. 맥주, 담배 등 우리나라 독과점 산업이 38개 정도 있다. 브랜드로 풀어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커피 다운 커피는 뭘까라는 이야기를 우리끼리 해본 적이 있다. 콜롬비아를 실제로 가보면 후라이팬에다가 볶아서 마늘 빻듯 가루로 만들어 거즈에 싸서 쫙 내려서 마신다. 커피의 원형이 비싼 로스팅 기계와 능력 좋은 바리스타에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는 신 커피를 좋아하고 누구는 단 걸 좋아하고 누구는 쓴 걸 좋아하는 어떤 취향이 있을 뿐이지. 확실한 건 로열티 탓일지 좀 많이 비싼 것 같다. 적당한 가격 구조가 필요할 것 같다.
맥주의 경우는, 좋은 맥주 브랜드들을 보면 어떤 무드가 있는 것 같다. 특정 장소에서 생각나는 맥주가 있지 않나. 클럽에선 하이네켄, 어두운 조명의 분위기 있는 곳에서는 아사히. 바닷가에선 코로나 같이 말이다. 이게 브랜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맥주는 그냥 치킨 집에서 500cc 맥주라는 생각이 들더라. 물론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무드가 없는 게 아쉽다. 제도적으로 양조장에 몇 만 리터를 양산해낼 시스템이 없으면 유통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괜찮은 하우스 맥주가 참 많은데 유통이 막혀있다. 마트랑 호프집에 들어 가야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이렇듯 커피나 맥주. 특히 휴대폰 통신사 번호이동 보조금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누가 봐도 불합리한 것들을 로우로우답게 디자인으로, 브랜드로 풀어내는 일을 해보고 싶다. 거창하게는 의적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로우로우의 올해 사업 계획을 말해준다면?
올해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그냥 작년 만큼만 하자고 생각한다. 정성 들여 제품을 만들고 유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그렇게 성실하고 진심으로 하자는 것이다.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억지 부리고 욕심 부려서 만들어 낸 일이 없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들이다. 지난해 광고비와 접대비는 0원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익률이 높다. 그렇게 회사가 큰 것 같다. 보도자료도 한 번도 뿌린 적 없고. 다만 열심히 일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았고 큰 불편함 없다. 적당히 피곤한 상태에서 잠드는 그 기분이 너무 좋다. 물론 이건 내 성격이고 성향이다.
홍대지역이 좋은 이유는 만들어낸 동네가 아니라 만들어진 동네여서이다. 홍대는 길거리에서 음악하고, 그림 그리다 만들어진 동네이기 때문에 나름의 소울(soul)이 있다. 그래서 홍대가 좋다. 우리 사업도 그렇다. 가방 잘 만들고, 가끔 공연도 하고 전시도 하고, 프로젝트 하는 거다. 우리 가방 자체가 마케팅이다. 유저가 가방 들고 다니는 그 자체가 우리의 광고판이 되는 것이고. 우린 거기에 집중한다. 이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다. 시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제품이 번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담이지만, 모자와 신발에 대한 수요가 있어 하나씩 만들고 싶다. 내부적으로 신발을 개발 중에 있다. 꽤 까다롭더라. 그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진행 중에 있다. 몇 년 내 나올듯 싶다. 여담이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모자도 우리가 만든 제품이다.
최근에 가장 뿌듯한 부분이라면?
거창하게 들릴 지 모르겠지만, 수출이다. 현재 10개국 넘게 수출하고 있다. 영어로 자료를 내보낸 적도 없고, 해외에서 PT를 해본 적도 없다. 외국 사람에게 영업을 뛴 적도 없고. 그런데 어디서 알고 왔는지 연락이 오더라. 중국, 미국, 일본, 스위스, 캐나다, 독일, 싱가폴, 대만, 등에서 말이다. 기적 같았다. 대체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어 보니 명동이나 가로수길 지나다 봤다고 하더라. 실제로 한 싱가폴 친구는 한국에 놀러왔다가 우리 제품을 사서 가지고 간 뒤 주변 반응을 보고 다시 왔다고 한다. 친구들한테만 팔아도 백 개는 팔 것 같다고. 이걸로 사업하고 싶다고 해서 물건을 가져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는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ONLY 1)이 되고 싶다. 디자인, 제품, 마케팅, 프로젝트, PR, 로고, 컬러, 폰트, 사진 등 모두 말이다. 나는 브랜드를 인격체라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자마자 ‘로우로우 것 같다’라고 인지하게끔 만들면 성공한 거라 생각한다. 다른 이들의 길을 따라가기 보다 ‘Own my way’를 걷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