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부족해보이더라도 일단 감투를 씌우고 나면 책임감 따위가 발동해 그 위치에 어울리는 사람이 절로 된다는 말입니다. 회사에서 이 말을 많이 쓰죠. 실제로 팀원일 때는 평범했던 직원이 팀장 자리에 앉자 기대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어째서 역량과 태도가 부족한 사람이 승진하고 나서야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곤 하는 걸까요. 지난주 리멤버 커뮤니티에는 ‘실력없는 후배를 진급시켜야 하나요’라는 고민이 올라왔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라는 말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습니다.
리멤버 커뮤니티 원본 글 보기 > 실력없는 후배를 진급(팀장) 시켜야 하나요?
실무자의 역량과 팀장의 역량은 다르다
먼저, 실무자로서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 팀장으로서 팀원들을 이끌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다르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맡겨진 일을 잘 해내던 사람도 리더가 되면 허둥지둥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입니다. 팀장은 실무보다 커뮤니케이션, 동기부여, 전략적 사고를 잘 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일을 잘 하는 사람이 리더의 역할도 잘 수행해낼 확률이 높겠지만 그게 꼭 직접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실무를 할 때는 눈에 띄진 않던 사람이 팀장이 되자 팀을 기대 이상으로 잘 이끄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소통 능력 등에 특화된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필요 역량의 차이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나오게 만든 것 같습니다. 기대가 적었던 실무자가 리더가 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생기니까요.
자리는 없던 능력을 만들진 않지만, ‘드러나게’ 한다
리더의 어깨는 무겁습니다. 리더는 팀원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팀원 한 명 한 명의 현재와 미래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다음 분기 전사 차원의 실적이 낮다면 모든 화살이 리더에게 향하기도 합니다.
이 압박은 겪어보기 전까진 알기 힘든 것이며 이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좋은 리더인지 판가름이 납니다. 리더가 발휘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동기부여, 전략적 사고 같은 능력은 실제로 그 자리에 앉아 무게감을 실감하기까지는 내보이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자리는 아예 없던 능력을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신입사원에게 바로 리더를 맡긴다고 아무 문제없이 해낼 확률은 극히 적겠죠. 하지만 자리는 누군가의 능력을 그제서야 드러내곤 합니다. 때문에 어떤 직원을 평가할 때 너무 쉽게, 획일적 기준으로 단정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 사람은 소통은 곧잘 하는데 실적이 안 좋아서 안 돼”라며 넘어가지 말고 인사에 있어 개방적 사고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기대하지 못했던 사람이 좋은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말이고, 이는 곧 인사에 있어 노련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좋은 리더를 놓칠 수도 있었던 거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자리에 올라서야 능력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다’라고 해석하고 그런 사람을 미리 볼 수 있는 눈을 인사권자가 키워야한다는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맹목적으로 좇는 건 위험하다
자리는 직원의 역량을 드러나게 하고, 그렇게 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맹목적으로 좇는 건 위험합니다. 예전에는 많은 기업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인식 하에 움직였습니다. 조직 내 자리를 미리 정해두고, 단순한 기준(연차)으로 기업 내 요직에 사람을 앉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능력도 없는 사람이 팀장 자리에 올라 팀원들을 고생시키기도 하고, 나아가 기업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모습도 흔했죠. 예전에야 그렇게 기업을 운영해도 여차저차 벗어날 수 있었다면, 굴지의 기업도 하루아침에 고꾸라질 수 있는 요즘에는 위험한 일입니다.
정해진 자리에 사람을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하면 탈이 납니다. 요즘은 리더 트랙과 전문가 트랙의 투 트랙 전략으로 인사제도를 운영하는 회사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실무자로서의 능력은 출중하지만 리더의 역량은 부족한 사람을 해당 분야의 기술 전문가로서 키워내는 방식이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적재적소의 원칙으로 직원을 기용하는 유연한 용병술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