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시 7군 지역, 사이공전시컨벤션센터(SECC) 맞은편 업무 중심 지구에 ‘코비타워 원’과 ‘코비타워 투’로 명명된 17층, 20층짜리 건물 두 동이 솟아있다. 이 건물은 한국 기업인 코비그룹의 부동산 투자개발 자회사 ‘코비원’이 2020년 착공해 올해 완공한 랜드마크 빌딩이다.
코비그룹은 락앤락 창업자인 김준일 회장이 설립한 기업이다. 김 회장은 2017년 락앤락 지분 전량을 약 6293억원에 매각해 베트남에 코비원(부동산 임대 사업), 코비로지스(종합물류 사업), 코비인(HO-RE-CA 유통업/F&B 사업) 등 법인을 설립했다. 코비그룹은 베트남에서 부동산 개발과 유통산업, 물류단지 조성 등 3개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코비타워 외 대지면적 2만5600㎡, 연면적 5만 3000㎡ 지상 5층 규모로 호찌민시에서 조성되고 있는 대규모 쇼핑몰 코비홈은 코비그룹의 핵심사업이다. 아울러 호찌민에 인접한 롱허우 산업단지에 코비로지스 물류센터를 통해 토탈 솔루션도 제공 중이다.
호찌민 코비타워에서 코비그룹 김상욱 부장, 김동선 차장을 만났다. 두 사람에게 베트남 현지 비즈니스 현황을 들었다.
호찌민 7군(7郡) 지역으로 많은 기업들이 근거지를 옮기는 추세라고 들었다. 국내서 서울 강남이 개발되던 시절이 떠오른다. 배경은 뭐고 전망을 어떻게 보나.
김동선 차장(이하 김동선) : 호찌민 1군 지역은 건물 등 공간이 노후화가 돼 있음에도 많은 회사들이 오피스를 두고 있다. 고급 인력 수급을 원활히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때문에 좋은 입지를 구하려는 기업의 경쟁이 과열되어 임대료가 많이 올랐다. 1군이 포화되며 2군 쪽으로 오피스가 이동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토지 보상 등 산재된 이슈가 있어 원활하진 않다. 그래서 대안으로 7군 쪽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많다.
김상욱 부장(이하 김상욱) : 우선 7군은 접근성이 좋다. 호찌민 중심지에서 30분 정도면 올 수 있고, 지역에 고급 인력이 많이 거주하기에 인재 영입에 유리하다. 1군에 비해 임대료가 훨씬 저렴하기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새 건물이 많기에 건물 컨디션이 좋다는 것도 강점이다. 아울러 베트남에서 비즈니스를 하면 거치게 되는 SECC 전시장이 이곳에 있다. 호찌민에 오피스 단지가 형성돼 있는 지역은 1군 CDB(중심업무지구)와 7군 밖에 없다.
김동선 : 정리하자면, 비용 절감을 위해 많은 기업들이 1군 외 대안을 찾기 시작했고, 입지가 좋은 7군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건물이 집단으로 형성돼 있고, 여타 지역에 비해 관리가 잘 돼 있고, 대규모 전시장이 위치해 있다. 베트남 정부도 이 지역에 더 투자를 할 거라 예측되고 있다.
중국은 토지를 개인이나 기업이 소유할 수 없는데, 베트남은 어떤 구조인가.
김상욱 : 똑같다고 보면 된다. 50년간 토지를 빌려주는 개념이다. 건물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해 주지만, 토지 사용권은 국가에 있다. 베트남에 외국계 기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게 1987~1988년쯤이다. 90년대 초반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도 있는데 베트남 정부의 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은 기업들의 토지 이용 권리를 연장해줬는데, 베트남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올해 상반기 부동산법이 개정되며 부동산 표준 계약서가 나왔지만 내용이 애매모호하게 돼 있다. 원칙적으로 연장은 안 되지만 정부와 협의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되어있을 뿐이다. 임대가 끝나면 원상복구 조항도 있어서 난해하다.
물론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는다. 베트남 경제에 외국계 투자자나 법인들이 큰 역할을 하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도 외자 기업과 연관된 법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을 거쳐왔다.
김상욱 부장은 20여년 간 베트남에서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간 베트남, 호찌민시의 발전을 눈으로 직접 봤을 거다.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김상욱 : 2000년 대 초반이 기억난다. 당시 4군 지역이 우범지대여서 현지인조차 7군에 가기 어려웠다. 그러다 중앙정부가 갱스터 두목을 잡는 등 소탕작업을 해서 4군이 개방되었고 1군과 7군이 연결되었다. 지역 개발 의지가 있던 정부가 대규모 범죄조직을 와해시킨건데, 당시 제일 큰 뉴스였다. 이후 대만 부동산 개발회사가 들어와 7군 개발이 본격화 됐다.
여담이지만,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반대편에서 싸웠던 역사가 있다. 개인적으로 공무원, 군인, 기업인 등 베트남 사람들을 만날 때 관련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베트남 사람들 모두 한국의 잘못은 아니나고 답하더라. 특히 베트남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장애를 얻은 참전 군인 부부가 “한국은 당시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김동선 차장은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기를 현지에서 지켜 봤다. 두 나라는 공산주의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김동선 : 같은 공산주의 국가지만 중국 정부는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는데 비해 베트남 정부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서인지 양국의 변화 속도 차이가 있다. 베트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빠지지 않는 어젠다가 부정부패 척결이다. 하지만 전당대회 전후로 본보기성 징계만 있을 뿐 크게 나아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 의지가 있는 정치인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건설을 통해 조성하는 인프라 확충 계획도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다. 호찌민에 지하철에 들어선다는 발표는 몇년 전부터 있었지만 아직까지 요원한 상황이다. 피가 돌지 않으니 전체적인 발전도 더디다. 몇십 년째 이런 것이 반복되니 국민도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
김상욱 : 언론은 중국에 비해 자유로운 편이다. 과거에는 보도를 통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언로를 막는 움직임이 크지 않다. 또한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도 자유롭다. 어떤 사람들은 공안 등 정부 관계자와 나눈 대화 녹음파일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게 뉴스가 되기도 한다. 당장 큰 변화는 어렵겠지만 국민 인식이 높아지고 있기에 10년 내 베트남도 많이 바뀔 거라 본다. 중국 정도의 급격한 발전은 힘들겠지만 변화 폭은 분명 클 거라 전망한다.
김동선 : 다른 측면에서 보면 부족한 것, 모자란 부분이 많기에 기업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개도국에서 선진국이 된 경험이 있는 한국 기업은 더 유리할 수 있다.
베트남은 여느 국가와 다른 변수가 있는 나라다.
김상욱 : 베트남 기업들은 이전에 비해 긍정적으로 변했다. 과거에는 건설을 국영기업이 했지만 지금은 민간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 민간의 움직임에 정부가 발을 못 맞추고 있을 뿐이다. 베트남에서 일이 느리게 진행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관공서나 법 체계가 미비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동선 : 여전히 관공서의 부정부패가 남아있다. 공무원이 어느날 찾아와서 ‘인사를 안 하냐’며 시비를 걸기도 하고, 문제없이 서류작업을 했음에도 흠집을 잡아서 뒷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할 때 교통경찰들이 붙잡고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었고 기업들도 많이 발전을 했는데 정부쪽 변화는 아직 미미하다.
베트남은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극단적인 봉쇄 조치를 했었다. 지금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려놓은 상황이다.
김상욱 : 군경이 도로를 봉쇄하고 허가받지 않고 집 밖으로 나오면 체포됐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통제를 해서 기업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정부가 내놓은 대처는 공장이나 회사에서 숙식을 하면서 생산을 하라는 것이었다. 해외 OEM 공장들이 많은데 주문량을 맞출 수 없었고 마진이 안 남는 상황이었기에 생산성도 떨어졌다. 그래서 외국계 기업들이 베트남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있었다. 지금은 기업 활동이 정상화되어가고 있다.
봉쇄조치 이전과 이후 달라진 부분이 있나. 한인 사회도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김동선 : 물갈이가 됐다. 베트남 기업은 물론이고 외국계 기업들 중 재무 구조가 좋지 않았던 회사들은 다 쓸려 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에 기업 구조가 튼튼한 회사들은 버텨냈고, 비어버린 시장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까지 잡았다. 대표적으로 대기업들이 F&B사업에 진출했다. 먹거리 영역은 그간 중소 자영업자들의 영역이었는데 대기업 프렌차이즈들이 그 자리를 매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대기업이 더 커지는 기재로 작용한 거다. 경제가 바닥을 쳤기에 정부도 자본력이 있는 기업을 밀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고 있다.
김상욱 : 제조 기업은 다른 양상이다. 봉쇄조치로 인해 대규모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는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베트남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들도 예외가 없었다. 이들이 생산라인을 철수하지는 않겠지만 다른 나라로 분산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인 창업자 및 주재원과 베트남 현지인 간 관계도 변화가 있을 듯싶다.
김상욱 :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와는 다르게 현지인과 함께 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수평적인 관점의 파트너 관계가 되어가는 중이다.
베트남 시장에서 뷰티 사업이 유망하다는 인식이 있다. 그런데 대기업 제품을 제외하고 딱히 회자되는 히트상품이 없다. 그냥 막연히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도하는 겨우가 많은듯 싶다.
김동선 : 뷰티 영역에서 베트남에 연착륙한 브랜드는 손에 꼽는다. 한국에서 성공했다고해서 베트남에서도 통할 거라 확신하면 안 된다. 한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은 날씨가 다르듯 피부색도 다소 차이가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 히트하거나 통할만한 상품은 베트남 사람들이 핸드캐리 등을 통해 빨리 움직여 가져온다.
우선적으로 염두에 둬야할 것은 베트남은 쉽지 않은 시장이라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계획없이 도전하면 어려울 수 있다. 철저히 시장조사하고 시도하는 대기업도 잘 안 되는데, 작은 기업이 몇 가지 긍정적인 요인만 가지고 도전하는 것은 위험하다. 베트남 내수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가 크게 성공한 사례는 식품 쪽 말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식품 쪽도 현지 공장을 설립해서 원가를 절감한 특별한 케이스다.
김상욱 : 베트남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락앤락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기업이 베트남에서 저가정책으로 갈 때 락앤락은 고가 브랜드 전략을 펼쳐서 성공했다. 현지 유행을 빨리 파악해서 그에 맞는 신제품을 적시에 선보였는데 제품 개발 속도가 엄청 빨랐다. 그것이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김동선 : 베트남은 완전 저가이거나 고가가 먹히는 시장이라고 본다. 애매모한 가격은 오히려 독이 된다. 베트남에도 명품 매장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잘 팔린다고 한다. 수입차 가격도 한국보다 베트남이 더 비싼데도 수요가 높다. 평균소득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지만 베트남이 그런 시장이다.
김상욱 : 베트남에 중산층이 등장하면 중간 수준 가격대 제품들도 가능성이 있겠지만 그게 언제쯤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 타이밍을 잡는 것이 관건일 거다. 품질좋은 해외 제품에 니즈가 있는 베트남 부자들을 위한 하이엔드급 서비스나 금융관련 서비스는 전망이 있다고 본다.
코비그룹은 베트남 직원 처우를 어떻게 하고 있나. 복지정책도 있을 텐데.
김상욱 : 임금은 타 회사 대비 평균 이상으로 책정되어 있다. 급여를 너무 높이면 다른 회사의 급여 체계를 흔드는 거라 복지쪽에 조금 더 신경쓰는 중이다. 특히 본격적인 사업에 맞춰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창업주가 강조하는 것이 ‘회사랑 직원이 윈윈하려면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보상이 잘 되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금액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파격적인 수준이다. 연간 평가를 통해 평군 15%, 최대 35%까지 임금이 올라간 케이스도 있다. 정말 일 잘하는 직원들은 우대하는 것인데 직원들 호응이 높다.
김동선 : 업무 환경도 강점이다. 다른 기업 오피스를 보면 컨디션이 안 좋은 경우가 많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 한 장소에 많은 인원을 배치하다 보니 일단 공간이 좁다. 의자를 뒤로 빼면 뒷자리 직원과 부딪치는 너비다. 우린 업무 공간 구조를 한국 기준에 맞췄다.
또한 여타 한국 회사의 매니저급이 한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우린 베트남 직원도 매니저로 직위를 올려주고 있다. 위에서 다그친다고 해서 일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때 더 큰 효과가 나온다. 이런 회사 정책이 직원들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있다. 코비그룹은 직원 퇴사율이 굉장히 낮다. 1년에 퇴사하는 직원이 5명 전후다. 애사심이 높다고 자부한다.
김상욱 : 베트남 인재들 수준이 이전에 비해 많이 올라왔다. 베트남에 진출한 해외 다국적 기업은 현지 매니저가 대표나 법인장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기업은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창업주가 ‘우리도 능력있는 베트남 직원이 있으니 그들이 성장할 환경을 만들자’고 했다. 그룹 사업이 본격화되면 전체 인원도 두 배로 늘어날 거고 현지인 매니저도 더 나올 거라 예상한다.
창업주인 김준일 회장은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한다. 한국 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김상욱 : 아시아발전재단-코비 장학기금을 통해 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문화재단(KCF)을 세워 한글, 한국어를 포함해 K-팝, K-푸드 등 각광받는 한국문화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한국인과 결혼한 베트남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제빵 교육사업도 진행 중이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중 베트남 진출을 염두에 두는 곳이 많은데, 조언을 해준다면.
김동선 : 우선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해외에 나오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해외에서 한국식 기준으로 일을 추진하면 낭패를 맞을 수 있다. 각 나라마다 기준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문화가 있는데 한국식 가치관과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옳은 방향은 아닌 것 같다. 아울러 인종 차별적 행동도 유의해야 한다. 나도 해외서 일하며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을 많이 겪었는데, 베트남에서 한국인이 그럴 때 씁쓸했다. 대우받고 싶다면 대우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평가되지 않나.
김상욱 : 기본적인 것만 주의하면 된다. 한국인이 베트남인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여타 아시아 국가에 비하면 좋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인들과 화합해서 일을 하면 큰 문제는 안 생길거라 본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