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의 마지막 주, 실리콘밸리에서 20억 달러(약 2조 8,800억 원)짜리 거래가 성사됐다. 메타가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인수한 것이다. 왓츠앱, 인스타그램에 이어 메타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의 M&A였다.
마누스를 만든 건 1992년생 샤오홍(Xiao Hong)이다. 화중과기대학교 출신의 젊은 창업가가 실리콘밸리의 역사에 이름을 새겼다. 중국 AI 기술력의 쾌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거래에는 씁쓸한 반전이 있다. 샤오홍이 이 순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누스의 탄생
2022년 베이징. 샤오홍은 “단순한 챗봇이 아닌, 실제로 인간처럼 사고하고 복잡한 업무를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 AI”를 만들겠다며 창업했다. 우한과 베이징에 연구 거점을 뒀다. 그가 붙인 이름 ‘마누스’는 라틴어로 ‘손’을 의미한다. MIT의 모토 ‘멘스 엣 마누스(Mens et Manus)’에서 가져온 것이다. 정신과 손.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올해 3월 공개한 데모 영상은 실리콘밸리를 술렁이게 했다. 이력서를 선별하라고 하면 압축 파일을 스스로 해제하고 후보자 프로필을 제공한다. 여행 계획을 부탁하면 경로를 짜고 여행 책자까지 만들어준다. 사람의 개입 없이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AI 에이전트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열에 섰고, 사람들은 이를 ‘제2의 딥시크’라고 불렀다.
샤오홍의 선택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4월, 미국 벤처캐피털 벤치마크가 7,500만 달러 투자를 주도했다. 기업가치 5억 달러. 실리콘밸리가 마누스의 가능성을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 사업을 키우기는 어려웠다. 마누스의 작업당 가격은 약 2달러. 중국 정부가 압박하는 무료 서비스 모델과는 맞지 않았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로 고성능 칩 확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고, 미국 모델에 의존하는 서비스를 중국 안에서 키우는 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일이었다.
5월, 미국 정치권까지 들끓었다. 텍사스 공화당 상원의원 존 코닌은 X에 이렇게 썼다. “미국 투자자들이 AI 분야 최대 적국을 지원하는 게 좋은 생각이라고 누가 생각하나? 나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돈을 벌 수 없고, 미국에서는 국적이 문제가 됐다.
7월, 샤오홍은 떠나기로 했다. 싱가포르로 본사를 이전하고, 알리바바와 추진하던 중국어 버전 개발을 백지화하고, 텐센트와 젠펀드, HSG의 지분을 정리했다. 고향과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끊어냈다. 블룸버그는 “마누스의 탈중국은 함정”이라며 ‘국적 세탁’을 비판했다.
5개월 뒤, 마누스는 메타의 품에 안겼다. 기업가치 20억 달러. 네 배 점프였다.
알렉산드르 왕 메타 최고AI책임자(CAIO)는 X에 “싱가포르의 마누스 팀은 오늘날 모델의 잠재력을 탐구해 강력한 에이전트를 구축하는 데 있어 세계적 수준”이라고 썼다. 샤오홍은 “메타 합류로 운영 방식이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서 더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기반 위에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떠났지만, 자기 방식은 지켰다는 얘기다.
중국의 반응은 갈렸다. 치후360의 저우훙이 회장은 “중국 AI 로드맵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중국 엔지니어가 만든 기술이 2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중국 언론은 마누스를 ‘변절자’로 불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AI 기업들의 대거 이탈 우려”를 보도했고, 베이징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국 외교부는 관련 질문에 “담당 규제 기관에 문의하라”며 침묵했다. 마누스가 이미 싱가포르 법인인 상황에서, 막을 방법도 없었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헨리 가오 교수는 이렇게 분석했다. “글로벌 자본과 규모에 접근하려면 중국 기업이 뿌리를 옮겨야 한다는 신호다.” 중국이 키운 인재를, 중국이 붙잡지 못하는 구조. 마누스는 그 구조의 첫 번째 증거가 됐다.
나비효과의 역설
마누스의 모회사 이름은 ‘버터플라이 이펙트’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일으킨다는 그 이론에서 따왔다. 우한의 작은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이번 사건은,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이 나비는 고향 하늘을 날지 못한다. 메타는 인수 완료 후 마누스의 중국 내 서비스를 완전히 중단하고, 중국 측 지분을 모두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신과 손을 연결하겠다던 샤오홍의 비전이 메타라는 거대한 플랫폼 위에서 펼쳐지게 됐지만, 그 AI는 그를 키운 땅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승리와 상실이 공존하는 이 아이러니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음 나비는 어디로 날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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