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콩 스타트업 생태계는 ‘사이버포트’ 전과 후로 나뉜다.”
중국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이자 ‘중국으로 향한 창(窓)’이 되어 호황기를 맞던 홍콩이 2000년 대 초반 성장 한계에 부딪치며 꺼내든 카드가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정부가 대규모 자금을 들여 신산업 육성의 메카 ‘사이버포트’와 ‘사이언스파크’ 등 대규모 혁신창업 단지를 조성하면서 시작됐다.
특히 사이버포트는 홍콩 산업을 금융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첨병 역할을 했다. 개관 초에는 홍콩의 강점인 금융 인프라를 활용한 핀테크 스타트업이 다수였지만, 지금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다양한 영역 스타트업이 육성되고 있다. 이곳에는 현재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웹서비스 등 다국적 대기업 아시아·태평양 총괄 법인과 벤처캐피털 및 스타트업 1,200여 개 사가 입주해 있으며 멤버사는 2,000여 개(2023년 10월 기준 2,002개 사)에 달한다.
사이버포트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부터 중기까지 창업 단계별 지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극초기 단계에서부터 상용 서비스를 출시해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한 스타트업까지 총 5단계로 맞춤형 액셀러레이션을 제공한다. 입주 공간과 사무 지원은 물론 단계별 시드 투자도 하며, 성장단계에 접어든 스타트업에는 자체적으로 운용 중인 ‘매크로펀드(MACRO FUND)’를 통해 지분 투자도 집행한다.
‘에릭 챈(Eric Chan)’ 사이버포트 공공미션 운영 총괄(Chief Public Mission Officer)을 홍콩에서 만났다. 에릭 챈은 ICT 업계에서 3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인물로, 사이버포트에 합류하기 전에는 허치슨, PCCW, 케이블 & 와이어리스 HKT 등 글로벌 기업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 특히 교육 및 산업 훈련, 전문 기관, 자선 단체 등 공공 서비스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에릭 챈 총괄에게서 홍콩 창업 생태계와 사이버포트의 중점 추진 정책, 그리고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홍콩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홍콩은 지리적인 강점이 있다. 전 세계 절반 이상 국가는 비행기로 5시간이면 오고 갈 수 있다. 아시아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려는 스타트업에게는 이상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홍콩 정부는 스타트업 지원에 문을 크게 열어 놓고 있다. 창업은 물론이고 채용, 사업 개발, 연구개발, 자금 조달, 해외 진출에 이르기까지 사업 전체 과정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홍콩은 기술 기업이 R&D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대 1,000만 홍콩달러(프로젝트당)의 자금을 매칭 지원하는 기업 지원 제도(Enterprise Support Scheme (ESS))가 있다. 또한 6개 대학에 기술 창업 및 R&D 결과물 상용화를 위한 자금을 지원하는 기술스타트업 지원제도(Technology Start-up Support Scheme for Universities (TSSSU)), 홍콩기업이 중국 본토와 아세안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한 산업개발기금인 브랜딩, 업그레이드 및 국내 판매전용 펀드(Dedicated Fund on Branding, Upgrading and Domestic Sales (BUD Fund))도 있다.
국내외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대표적으로 매년 열리는 홍콩 스타트업 페스티벌(StartmeupHK Festival)은 유명 연사와 석학의 강연, 데모데이, 워크숍, 취업 박람회, 스타트업 피치, 투자자 및 비즈니스 매칭 등 프로그램으로 구성되는 행사이다. 이 행사를 통하여 스타트업, 투자자, 업계 리더, 학계 및 정부가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관계를 맺고, 미래를 정의한다.
해외 스타트업이 홍콩에서 사업을 한다면 어떤 이점이 있을까.
낮은 세금제도, 자유로운 자본흐름, 경쟁력 있는 국제 금융 플랫폼, 중국 본토로 향하는 관문이라는 강점을 들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장 먼저 고려할 부분은 세금 제도일 거다. 홍콩은 수익세, 급여세, 재산세 세 가지 직접세만 부과하는 굉장히 단순한 조세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홍콩의 급여세 표준 세율은 15%로, 미국과 영국과 비교하면 절반에 불과하다.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이 홍콩에서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
홍콩은 자금흐름이 자유롭다. 금융 안정성이 확보된 상황이기에 더 나은 비즈니스 및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아울러 자유무역 정책을 추구하기에 국제 무역에 대한 장벽이 없다. 공중 보건, 안전, 보안과 관련된 상품에만 관세를 부과할 뿐 기타 품목에는 관세를 매기지 않는다. 홍콩은 세계무역기구의 창립 회원국으로서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안정적인 다자간 무역 시스템을 적극 지지하고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투자자, 금융가, 자산 관리자, 펀드 및 금융 기관 모두에게 포괄적이고 수준 높은 금융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국제 금융 중심지라는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원 부서를 설립해서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홍콩은 세계와 중국 본토 간 연결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홍콩은 세계 최대 위안화(RMB) 비즈니스 중심지이며, 중국 내 외국인 직접투자(FDI)와 해외 직접투자(ODI) 3분의 2가 중개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 의지와 중국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수요는 글로벌 스타트업에게 더 많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홍콩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The Belt and Road Initiative), 광둥-홍콩-마카오 베이 지역(GBA), 핀테크, 인프라 투자 및 녹색 금융과 같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 이런 장점을 바탕으로 홍콩은 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빠른 성장률을 보이는 창업 생태계로 꼽힌다.
홍콩 스타트업 생태계는 사이버포트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한다. 사이버포트는 어떤 비전으로 운영되고 있나.
사이버포트는 홍콩의 디지털 기술 플래그십이자 창업 인큐베이터로, 스타트업의 성장 여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홍콩 I&T(혁신기술) 인재 풀을 키우고 혁신과 기술의 대중화를 위해 정부와 협력해오고 있다. 우리의 미션이자 비전은 혁신과 기술생태계의 강화를 통해 홍콩의 ‘새로운 산업화(New Industrialization)’를 달성하는 것이다.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표 프로그램을 소개해 준다면.
우린 초기 인큐베이션, 시드 펀딩, 시장 진출 지원, 사업 확장, 투자 매칭에 이르는 종합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있다.
2009년에 시작된 ‘사이버포트 크리에이티프 마이크로 펀드(Cyberport Creative Micro Fund (이하 CCMF))’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의 초기 여정을 돕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시장 테스트를 위한 최소 실행 제품(MVP) 또는 프로토타입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CCMF는 전문가 프로그램(Professional Programme (PP)), 청년기업가 프로그램(Hong Kong Young Entrepreneur Programme (HKYEP)), 그레이터 베이 지역 청년기업가 프로그램(Cyberport Greater Bay Area Young Entrepreneurship Programme (GBA YEP)), 사이버포트 대학 파트너십 프로그램(Cyberport University Partnership Programme (CUPP))과 같은 4개의 하위 프로그램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사이버포트 인큐베이션 프로그램(Cyberport Incubation Programme (CIP))은 글로벌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이다. 신생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재무, 기술 및 비즈니스 자문을 종합적으로 제공한다. 기업 단계별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고, 투자자와 매칭시키는 한편, 홍콩 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사이버포트 액셀러레이터 지원 프로그램(Cyberport Accelerator Support Programme (CASP))은 사업에 필요한 다양한 전문 분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 국내외 시장 개척 지원 제도(Overseas/Mainland Market Development Support Scheme (MDSS))를 통해 스타트업이 중국 본토 및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아울러 자체 운영하는 매크로 펀드(Cyberport Macro Fund(CMF))를 통해 투자 지원을 한다. CMF는 사이버포트와 벤처캐피탈, 엔젤 투자자가 결성한 펀드다. 투자 규모는 기업당 100만 홍콩달러(약 1억 6천만 원)에서 2000만 홍콩달러(33억 원)이다.
해외 스타트업이 사이버포트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글로벌 진출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일거다. 멤버사에게 어떤 기회를 제공하나.
I&T 허브인 사이버포트는 글로벌 액셀러레이터를 지향한다. 다양한 분야 국내외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협업하는 것을 지향한다. 홍콩 스타트업과 글로벌을 연결하고, 글로벌에서 홍콩에 진출하려는 스타트업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입주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글로벌 파트너 및 투자자 네트워크를 꾸준히 확장해 오고 있다.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를 비롯해 중국, 그레이터 베이 지역, 일대일로 지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스타트업에게 새로운 시장 개척 기회를 제공 중이다. 사이버포트 멤버사 상당수가 30개 이상 해외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이버포트 엔터프라이즈 네트워크(Cyberport Enterprise Network (CEN)), 사이버포트 투자자 네트워크(Cyberport Investors Network (CIN)), 사이버포트 기술 네트워크(Cyberport Technology Network (CTN)), 사이버포트 전문 서비스 네트워크(Cyberport Professional Services Network (CPN))는 멤버사에게 투자와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최근에는 투자자들과 사이버포트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온라인 포털(iStart-up)도 론칭했다. 이런 프로세스가 스타트업이 새로운 기회를 찾는 데 필요한 리소스로 작용하고 있다.
이외 직간접적으로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다지고,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홍콩 스타트업과 글로벌 생태계의 접점을 마련하는 행사 참가를 지원하거나 직접 개최하기도 한다.
사이버포트를 거쳐간 유니콘 기업도 많다. 지금까지 사이버포트의 성과를 이야기해 준다면.
사이버포트는 900개 이상의 입주사와 1,100여 개 외부 스타트업 및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함께하는 활성화된 커뮤니티가 강점이다. 2018년 1,000여 개였던 멤버사가 지금은 2,000여 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중 ‘유니콘’ 대열에 진입한 기업은 7개사(고고엑스(GOGOX), 클룩(KLOOK), TNG, 위랩(WeLab), 애니모카 브랜즈(Animoca Brands), ZA 인터셔널(ZA International), 서틱(CertiK))이 있다.
사이버포트의 노력은 정부 및 다양한 업계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2020년 과학기술부(MOST)로부터 ‘국가급 과학기술 기업 인큐베이터(State-level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Enterprise Incubator)’로 지정되었고, 2020년 아시아 금융 기술자 협회(Institute of Financial Technologists of Asia, IFTA)가 주최한 핀테크 어워드(Fintech Achievement Awards)에서 핀테크 생태계 공헌 명예상(Fintech Ecosystem Contribution Honorary Award)을 수상했다.
사이버포트는 2022년 홍콩 정부의 ‘홍콩 가상자산 발전에 관한 정책 선언’을 계기로 웹 3.0 산업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2023년 1월 ‘웹 3 허브 @사이버포트(Web3 Hub @Cyberport)’를 설립했고, 210개 이상의 기업을 유치했다.
커뮤니티 기업 누적 투자금은 2023년 8월 기준 367억 홍콩달러(한화 약 6.1조 원)를 돌파했고 멤버 스타트업 1,400여 사가 국내외 어워드에서 사업성을 인정받아 수상을 하기도 했다. 수상 이력이 사업 성공을 보증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발전 중이라는 바로미터는 될 거라 본다.
또한 사이버포트의 커뮤니티 스타트업이 획득한 지적 재산권은 500여개 이상이며, 260여 개 기업이 국내외 액셀레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사이버포트에 1,20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그중 스타트업의 비율, 해외 기업 비율은 어떻게 되나. 업종은 어느 분야가 가장 많나.
입주 기업 5분의 1이 외국 스타트업이다. 한국을 비롯해 벨기에, 브라질,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독일, 일본, 네덜란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페인, 스웨덴, 태국 기업이 함께하고 있다. 주요 사업 분야는 핀테크, 스마트 리빙,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및 e-스포츠이다.
사이버포트는 400여 개 이상 핀테크 기업이 모여 있는 홍콩 최대 핀테크 클러스터다. 특히 가상 보험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3개 기관(ZA Insure, Bowtie, OneDegree)과 가상 은행 라이선스를 부여받은 2개 기관(WeLab Bank, ZA Bank), 라이선스를 받은 가상 자산 거래 플랫폼(HashKey)이 포함되어 있다.
스마트 리빙과 스마트 시티 분야에는 76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이 분야는 환경 기술, 스마트 모빌리티, 헬스케어, 시니어 테크, 스마트 빌딩, 리테일 및 전자상거래, 에듀테크, 사물인터넷, 로봇 공학 등이 포함된다.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및 e스포츠 분야에는 160개 이상의 기업이 NFT,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영역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있다.
해외 스타트업 중에 소개해 줄 기업이 있다면.
사이버포트에는 우수한 해외 기업 및 합자 법인이 매진하고 있다. 한국 기업인 로라테크놀로지스(LORA Technologies)는 애스크로라(AskLORA)라는 투자 솔루션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애스크로라는 투자자가 쉽게 주식을 거래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이다. 홍콩 금융 기관 등과 PoC(기술검증)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이외 뉴질랜드 기업인 ‘사피엔스(NZ SAPIENS LIMITED)’, 메탈림픽스(Metalympics Limited), 슈퍼노멀(Supernormal Limited)도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지난 2년은 스타트업 투자 경색기로 불리운다. 사이버포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홍콩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과 성과’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스타트업 대부분이 민간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답했다. 민간 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사이버포트는 글로벌 벤처캐피, 엔젤투자자, 사모펀드 등 투자 주체가 참여하는 체계적인 플랫폼 ‘사이버포트 투자자 네트워크(CIN)’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 경색 시기와는 별개로 현재 홍콩은 새로운 기업 설립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핀테크, 인공 지능, 전자상거래 등 기술과 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홍콩투자청이 실시한 202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홍콩에는 3,985개의 스타트업이 있으며, 특히 핀테크와 사물 인터넷 영역 회사의 비중이 높았다.
끝으로 한국 스타트업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홍콩은 양질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고 정부 또한 적극적이다. 홍콩은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스타트업에게 이상적인 장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홍콩의 기업 친화적인 정책과 세금 제도, 풍부한 인재 풀, 홍콩 정부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은 전 세계 혁신가와 기업가들이 꿈을 이루는 바탕이 될 거다.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 스타트업에게 방대한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는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교두보로 홍콩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