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활은 치열하게, 헤어짐은 쿨하게
흔한 스타트업의 점심시간, 결혼예찬론자와 연애예찬론자가 만났다.
- 연애는 무조건 다다익선이야 vs 한 명을 만나도 깊고 뜨겁게 만나면 돼
- 연애하면서 니가 내 전부다, 너 밖에 없다 떠들면 뭐 하나. 돌아서면 바로 남인데 vs 그냥 돌아서면 남 될 수 있는 게 감사한 일일 수도. 결혼은 싫다고 돌아서도 남이 안 돼. 전 남편으로 떡하니 남잖아. 애까지 있어봐, 이혼하겠냐.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야지
- 결혼 생활은 남녀의 교집합이다 vs 아니, 합집합이지
- 애가 둘이면 두 배 힘든 거지. vs 모르는 소리, 육아는 제곱으로 가. 둘이면 제곱, 셋이면 세제곱이야.
깔깔대며 남자와 여자, 연애와 결혼에 대한 온갖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러다 한결 진지해진 주제. 스타트업의 생리는 연애와 결혼을 묘하게 섞어놨다는 거다.
스타트업의 생활은 결혼이다.
스타트업을 결혼 생활에 빗대자면 창업자와 팀원들은 부모, 사업 아이템은 자식이 되는 셈이다.
첫 자식(첫 사업 아이템)이 태어나면 우리도(첫 창업자)도 부모라는 걸 처음 겪는다. 아기를 안는 것도 처음이고 씻기는 것도 처음이다. 어떻게 해야 울지 않는지도 처음엔 모른다. 해본 적이 없다고 안할 순 없는 일이다. 내가 좋아서 만든 내 자식이니 무조건 어루고 달래고 끼고 만져야 한다. 어떻게 해줘야 아기가 잘 놀고 잘 자는지, 아기의 모든 표정과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점차 적응해나가야 한다. 아기(사업 아이템)는 친절히 말로 설명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아기와 나 사이의 치열한 사투인 것.
재미있는 건, 첫 자식을 낳고 키우며 ‘감당 못하겠다, 이건 두 번 다시 못할 짓이다’ 싶다가도 어느 정도 안정기(이를테면 첫째가 뛰어 노는 게 여유롭게 눈에 들어오는 시기, 즉 서비스의 안정화)에 접어들면 둘째, 셋째 계획을 한다는 것이다. 사업 아이템으로 따지자면 서비스2.0 또는 3.0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아이템이 될 수도 있다. 이때는 조금 익숙하다. 안아주는 것도 달래는 것도 손에 익어 있으니까. 물론 아기마다 타고난 성향이 다르니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아예 겪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첫 째 때만큼 당황하진 않는다. 부모로서 배포가 생긴 거다.
그러다 막둥이가 태어난다. 이건 내가 4남매 중 늦둥이 막내이기 때문에 확언하건데, 막내는 상황이 키운다. 주변에서 받는 것도 많다. 누구 집에 애가 또 태어났냐며 동네 어른(업계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주기도 하고 언니, 오빠(기존 서비스, 혹은 코-웍(co-work)이 가능한 다른 서비스)들이 옷이며 책이며 다 물려준다. 부모 눈에 이런 막내는 뭘 해도 예쁘다. 부모 눈에’만’ 예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스타트업의 헤어짐은 연애다.
그렇게 치열하게 부대끼며 자식 보고 지내다가도 ‘이 사람이 아니다’ 싶으면 이별 외엔 방법이 없는 게 또 스타트업이다. 죽을 만큼 사랑한다 외치다가도 돌아서면 남인 연애인 것. 결혼이야 배우자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가장 마지막에 있다. 관계 개선을 위한다는 전제 조건 하에 잠시 각방을 써볼 수도, 별거를 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졸망졸망 커가는 자식을 보면서 언제 싸웠는지 모를 때도 있지 않나. 이혼 문턱까지 가더라도 조정기간이란 게 있고 말이다.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에서도 비슷하다. 업무나 팀원이 나와 맞지 않으면 이별을 선언하기 전에 시도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다. 인사 개편을 한다거나 부서 이동을 한다거나 업무를 다시 분담한다거나 말이다. 반면 작은 스타트업 안에서는 내 일에 얘 일이고, 얘 일은 쟤 일이고, 쟤 일이 또 내 일이니 이건 업무분담을 할 수도 인사이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냥 무조건 부대끼고 지내야 한다.
더불어 아주 초기부터 함께 해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경우, 사람이 변했다는 게 느껴지면 답이 없다. 가난했지만 나만 사랑했던 순애보 남자(혹은 여자)가 잘나가기 시작하면서 허세가 드는 경우다. 허세가 좀 들었다고 해도 서로 통제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라면 내부 합의나 갈등을 통해 조직 문화를 바로 잡아 나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허세 가득한 남자(혹은 여자)의 생각과 행동이 기업 문화로 직결된다. 이럴 때, 남은 사람은 돌아서는 것 외에 선택지가 없다.
이별에 너무 슬퍼할 건 없다. 청춘도 스타트업도 헤어짐에 익숙할 필요가 있으니까. 헤어짐을 겪으며 내가 나아질 수 있는 방향에 대해 생각하고, 더 나은 누군가를 만나면서 우리의 삶은 더 깊어지는 것 아닐까.
아무리 이야기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남녀에 대해 떠들다가도 결국 우리 이야기는 ‘기-승-전-스타트업’이었고, ‘생활은 치열하게, 헤어짐은 쿨하게’가 스타트업의 생리라는 게 그날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