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497]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숨쉬는 현재로” 버틀러리의 한옥 스테이 실험
우리는 종종 전통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마치 오래된 것들의 보존이 곧 전통의 계승인 양 착각하면서. 하지만 한옥을 바라보는 청년 이동우 시선은 조금 달랐다. 그는 한옥이 박제된 과거가 아닌, 살아있는 현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유년기부터 숙박사업에 뜻이 있던 그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 업무를 시작으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홍대 지역 반지하 공간에서 자신의 사업체를 설립했으며, 한국 전통 가옥을 테마로 한 숙박 사업을 전개했다. 외국인들이 한옥마을과 경복궁을 좋아한다면, 그곳에서 하룻밤 묵고 싶어하지 않을까? 때로는 이렇게 단순한 통찰이 복잡한 논리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
우리가 흔히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사실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조선시대의 한옥과 일제강점기의 한옥이 달랐듯이, 현대의 한옥도 달라져야 한다. 이동우가 말하는 ‘전통의 보존’은 역설적으로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낡은 단열재 대신 현대적 소재를, 이불과 요 대신 포근한 매트리스를, 수동 관리 대신 IoT 기술을 도입한다. 얼핏 보면 전통을 해치는 것 같지만, 그는 이런 변화야말로 한옥을 살아남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사업이 단순한 숙박업을 넘어선다는 점이다. 그가 운영하는 한옥들은 마치 작은 문화원처럼 기능한다. 투숙객들은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다도를 배우고, 옛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체험한다. 이것은 관광 상품이면서 동시에 문화적 교류의 장이 된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의 시도가 그렇듯, 그의 도전도 수많은 장애물과 마주한다. 그중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보존’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각종 규제다. 2층 이상을 올리지 말라, 외관을 바꾸지 말라, 이런저런 것들을 하지 말라. 규제는 때로 보존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배반한다. 살아있는 것을 죽은 것처럼 보존하려 들기 때문이다.
강화도의 한 한옥을 되살리면서 그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한옥은 그 자체로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 숨쉬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주민들을 고용하고, 지역 환경 자산을 한옥에 담아냈다. 한옥은 이제 단순한 건물이 아닌, 지역 살리기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종종 과거와 현재를 대립항으로 생각한다.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동우의 시도는 그 둘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은 보존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현재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살아있는 전통이 된다.
결국 한옥의 미래는 우리가 전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을 박제된 과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현재와 대화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볼 것인가. 이동우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동우 프라우들리 대표를 만났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프라우들리는 한옥 스테이 브랜드 ‘버틀러리‘ 운영사다.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 적부터 숙박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대 후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청소 알바로 시작했죠. 이후 객실과 예약 관리 매니저 일을 하면서 ‘내가 직접 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홍대 반지하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게스트하우스를 열게 된 것이 첫 시작이었어요.
서비스 이름을 ‘버틀러리(BUTTLER.LEE)’로 지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꽤 단순한 이유입니다. 제 영문 성(Lee)에 ‘집사’라는 뜻의 ‘버틀러(Butler)’를 결합했어요. 직관적인 접근이었죠.
게스트하우스에서 한옥으로 전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외국 손님들을 모시다 보니 제가 직접 관광 안내도 하고 맛집으로도 데려가곤 했어요. 그 과정에서 한옥마을이나 경복궁은 빠짐없이 방문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분들이 한옥에서 직접 머물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옥 스테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한옥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마치 우리가 일본에 가서 료칸에 묵고 싶어하는 것처럼, 외국인들도 한국만의 독특한 전통적인 분위기를 체험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한옥 관련 규제가 많다고 들었어요.
네, 한옥마을에서는 전통 양식을 벗어난 건물은 아예 지을 수 없어요. 건물 높이도 2층 이상은 제한되고, 디자인 규제, 용도 규제도 상당히 엄격하죠. 전통문화를 보존하려는 취지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규제들로 인해 고택들이 빈집이 되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사업적 측면에서는 저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규제로 인해 비어있는 가옥이 많아지다 보니 소유주들이 저희에게 연락을 주시곤 하죠.
초기에는 임대할 한옥을 직접 찾아다니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구하셨나요?
처음엔 정말 발로 뛰며 부동산을 일일이 방문했고, 마음에 드는 전통가옥이 있으면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기도 했어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져 집주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고, 매주 4-5곳에서 먼저 연락이 옵니다. 지역 주민들끼리 소식이 잘 퍼지기 때문이죠.
한옥을 현대적으로 운영한다고 들었어요. IoT 기술은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가장 중요한 건 통합 감지기입니다. 소음, 온도, 습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화재나 연기까지 감지하죠. 고객이 너무 시끄러우면 주변 주민들께 피해가 될 수 있어 소음도 체크해요. 물론 녹음은 절대 하지 않고요. 온도가 갑자기 상승하면 화재 위험이 있으므로 저희와 감지기에 동시에 알림이 가고, 에어컨도 IoT로 자동 조절됩니다. 조명 역시 태블릿으로 제어 가능하며, 현관문도 원격으로 열 수 있어요. 문 앞엔 CCTV가 설치되어 있지만, 실내에는 당연히 없습니다.
관광사업 허가를 받으실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가장 어려웠던 건 한옥 기준이 너무 모호하다는 점이었어요. 정부 자료에는 ‘전통적인 형상을 갖춰야 한다’라고만 되어 있는데, 이를 실사 나온 공무원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더군요. 예를 들어 지붕을 철판이나 강판으로 덮는 것은 인정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한옥 건축 기준을 더 철저히 지키고 있어요.
투숙객들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가 있나요?
북촌라운지에서 무료로 길 안내와 짐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통차도 판매하며 한국어 클래스와 다도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객실에서도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키트를 제공하고요. 재미있었던 건 농심에서 협찬받은 짜파구리 키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입니다. ‘기생충’ 영화 덕분에 외국인들이 아주 좋아했어요. LG와 협업해 스타일러도 설치했습니다.
전통 체험 프로그램 중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단연 다도 체험입니다. 북촌라운지에서는 창가를 따라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는데, 전통차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차를 내려드려요. 테이블마다 티팟이 있어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한옥 리모델링 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한옥을 생각하면 ‘불편하겠다’고 먼저 떠올리는데, 그 편견을 깨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특히 단열에 많은 공을 들였어요. 한옥은 창이 많아 추울 수밖에 없는데, 고급 창호와 꼼꼼한 벽 단열로 이를 보완했습니다. 또 외국인들은 난방 문화가 다르다 보니 천장에 온풍기도 설치했어요. 화장실은 세면대, 변기, 샤워부스를 따로 분리해 그들에게 익숙한 구조로 만들었습니다.
예술적인 시도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얼마 전 재미있는 시도를 했습니다. 영국의 초현실주의 작가 헬가 스텐첼의 작품을 아름재 지점에 전시해, 한옥에서 현대 미술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죠. 작가도 직접 와서 머물다 가셨고, 한 달 정도 전시하며 묵으신 손님들께는 미술관 티켓도 제공했습니다.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닌,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한류가 한옥 스테이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크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BTS가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도 한옥에서 촬영했잖아요. 그때부터 한옥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경복궁을 먼저 찾고, 자연스럽게 한옥 숙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트렌드가 넓고 프라이빗한 공간을 선호한다던데, 한옥 스테이와는 어떻게 맞나요?
저희가 제공하는 택시 호출 서비스를 이용해보면 포시즌스 호텔을 오가는 고객들이 많아요. 그만큼 여유 있는 분들이 일부러 한옥을 찾는다는 거죠. 호텔은 다 비슷하지만 한옥은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또한, 저희 한옥들은 약 15평(49m²) 정도로, 서울에서 이 정도 크기의 호텔 객실은 상당히 비쌉니다. 한국적 특색도 느끼고 넓은 공간에서 숙박할 수 있으니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죠.
앞으로의 경쟁력을 위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호텔급 서비스와 시설을 갖추는 것이 목표입니다. 청소도 호텔 수준으로 철저히 점검하고 고객의 요청 사항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합니다. 택시 호출이나 맛집 추천 같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으며, 조만간 조식과 발렛 파킹 서비스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한옥 리모델링 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나요?
일반적인 리모델링이라면 도배나 바닥 시공은 큰 차이가 없지만, 서까래 공사는 정말 까다로워요.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업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대목장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러나 대목장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비용도 많이 들죠. 일반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로 해결할 수 있지만, 한옥은 모든 부분을 나무로 맞춰야 해서 더 어렵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한옥 스테이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강화도에서 좋은 사례가 있습니다. 외딴곳에 방치된 한옥을 저희가 위탁 운영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어요. 집주인은 수익을 얻게 되고, 원할 때 머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게 되었어요. 서울에서 직원을 보내기보다는 현지 주민들을 고용하기 때문입니다. 인천, 김포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모델이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옥 스테이가 인구 소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최근 여행 트렌드가 많이 바뀌었어요. 꼭 유명 관광지를 방문하기보다 좋은 숙소에서 쉬며 주변 맛집을 가고,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죠. 파인스테이 같은 플랫폼을 보면, 외딴곳에 위치하더라도 숙소가 좋으면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매력적인 숙박시설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청년들이 창업할 기회도 생기며 일자리도 늘어날 것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현재는 40채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는 전국의 빈집 소유주들과 연결해 한옥 스테이 전문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관광공사와 함께하는 ‘베터리(BETTER里)’ 사업을 통해 안동시와 봉화군과도 협력하고 있어요. 전주나 안동 같은 한옥 밀집 지역뿐만 아니라, 시골에 있는 한옥도 찾아 활성화하고 싶습니다. 집주인에게는 수익을, 지역에는 활력을, 그리고 우리 문화 보존까지 이루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우려 섞인 제언을 남겼다. 한옥의 보존은 규제가 아닌 ‘활용’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한옥은 아무리 외부의 심폐소생술을 받더라도 결국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는 한옥을 향한 깊은 애정과 현실적 고민이 공존하고 있었다.
“한옥 스테이 허가를 반대하는 분들은 주로 정주성 침해를 문제로 삼으시더군요. 하지만 모든 원인이 한옥 스테이에만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현재 서울시는 관광 진흥을 위해 한옥 스테이를 장려하고 있지만, 종로구는 오히려 신규 진입을 막으려 하고 있어요. 이러한 정책 충돌로 인해 현장에서는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옥의 정체성을 하나의 기준으로 단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한옥은 시대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취해 왔습니다. 조선시대의 한옥, 1950년대의 한옥, 1990년대의 한옥이 모두 존재하고, 그 각각이 고유의 특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 시대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이것은 한옥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이러한 경직된 기준으로는 한옥을 제대로 보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좀 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한옥의 존속을 위해서는 결국 ‘경쟁력’이 관건입니다. 아무리 외부의 지원과 노력이 투입되더라도, 한옥 자체의 경쟁력이 없다면 그 존재는 결국 희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서울에서 한옥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입니다. 한옥이 진정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카페나 상업시설, 스테이 등으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야 합니다. 규제로 억제하기보다는, 한옥을 보전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활용 방안을 개방하고 장려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