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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간’ – 시간을 디버깅하다 #2

제2화: 체스게임의 시작

“모바일이 전부를 바꿀 겁니다.”

현우는 이력서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근거가 있으신가요?”

“1년 내에 아이폰이 한국 시장을 완전히 장악할 겁니다. 2년 안에 안드로이드가 추격하고, 3년 안에 모든 서비스가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될 거예요.”

현우가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면접관의 이런 확신에 찬 발언은 처음이었다.

“카카오가 메신저로 시작해서 슈퍼앱이 될 거고, 모바일 결제가 현금을 대체하겠죠. 우리는 그 변화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 재미있네요.”
현우의 눈이 반짝였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 건가요?”

준서는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마커로 그린 그림은 단순했지만 명확했다.

“모든 서비스는 인증이 필요합니다. 특히 모바일에서는 더욱 그렇죠. 우리는 그 핵심을 장악할 겁니다.”

“경쟁사가…”

“네, 있죠. 하지만 그들은 아직 PC 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레거시에 발목 잡혀서요.”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면접이라기보다는 마치 사업 계획을 논의하는 것 같았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현우가 입을 열었다.
“왜 저를 뽑으려고 하시는 거죠?”

준서는 잠시 망설였다. 2025년의 기억에서, 현우는 최고의 CTO였다. 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의 블로그를 봤어요. 2년 전부터 이미 클라우드와 분산 시스템을 연구하고 계시더군요. 우리에겐 그런 선견지명이 필요합니다.”

현우의 눈이 다시 한 번 반짝였다. 자신의 블로그를 읽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회사는 그저 스펙만 보고 섭외했다.

“언제부터 일하실 수 있나요?”
준서가 물었다.

“지금 당장이요.”
현우가 웃으며 답했다.
“사실 어제 회사를 퇴사했거든요.”

일주일 후, 삼성역 근처 작은 사무실. 여섯 개의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준서의 눈에는 제국의 시작처럼 보였다.

“우리가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2년 내에 시리즈 A를 받을 겁니다. 3년 안에 업계 표준이 되고요.”
준서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5년 뒤에는 아시아 시장을 장악할 거예요.”

“굉장한 자신감이네요.”
현우가 말했다.
“근거가 있나요?”

준서는 빙그레 웃었다.
“체스는 다음 수를 읽는 게임이 아닙니다. 10수, 20수 앞을 내다봐야 하죠.”

그때 전화가 울렸다. 모래시계의 전략기획실이었다.

“김준서 대표님 되시나요? 저희가 흥미로운 제안이 있습니다만…”

준서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2025년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모래시계의 자회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죄송하지만 M&A는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준서에게 쏠렸다.

“우리가 귀사의 모바일 인증을 전담하겠습니다. M&A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십으로요.”

현우가 놀란 눈으로 준서를 바라봤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이 업계 최고 기업에게 이런 제안을 하다니.

“무슨 자신으로…”
모래시계 측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6개월 안에 모바일 시장이 폭발할 겁니다. 귀사의 현재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질 거고요.”
준서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지금 계약하시면 파격적인 조건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3개월 후엔 이 조건을 받을 수 없을 거예요.”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검토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준서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대단한 도박이네요.”
현우가 말했다.

“도박이 아닙니다. 확실한 수만 두는 거죠.”

준서는 창밖을 바라봤다. 테헤란로의 고층빌딩들이 햇살에 반짝였다. 2025년, 저 빌딩들 중 하나가 그들의 사옥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자, 이제 시작해볼까요?”
그가 화이트보드 앞으로 걸어갔다.
“우리에겐 할 일이 많습니다.”

체스게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스타트업은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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