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시간의 심연
시간 여행자의 고통은 선택에 있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그대로 둘 것인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면, 잘못된 선택은 돌이킬 수 없는 혼돈을 낳을지도 모른다. 2010년 7월의 어느 오후, 나는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테헤란로의 한 카페,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온 투자자와 마주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김. 한국계 2세로, 세계적인 VC 펀드의 파트너였다. 2025년의 기억으로는, 그는 우리의 첫 번째 투자자가 되어 회사를 크게 키우는데 도움을 줬지만, 동시에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했다.
“Your growth projection is fascinating.”
그가 태블릿을 넘기며 말했다.
“But too aggressive, don’t you think?”
나는 천천히 커피잔을 들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2025년의 나는 이미 이 숫자들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Numbers don’t lie.”
결국 나는 가장 간단한 답을 택했다.
“모바일이 모든 것을 바꿀 거예요. 우리는 그저 그 변화의 시작점에 있을 뿐입니다.”
마이클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내 말투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 같았다. 단순한 젊은 창업자의 허세가 아닌, 무언가 다른 것.
“Tell me honestly.”
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 숫자들, 어디서 나온 건가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마치 그가 내 비밀을 알아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그저 날카로운 투자자의 직감일 뿐이었다.
“철저한 리서치의 결과입니다.”
내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모바일 시장은…”
“아뇨, 그게 아닙니다.”
그가 말을 자르며 웃었다.
“당신은 마치… 이미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현우에 이어 마이클까지. 미래에서 온 사람의 흔적이 그렇게 쉽게 드러나는 것일까.
“제안하나 하죠.”
마이클이 새로운 화제를 꺼냈다.
“500만 달러, 지분 25%. 그리고 이사회 멤버십.”
2025년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이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너무 많은 지분을 내주면서 우리는 조금씩 회사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갔다.
“조건을 수정하고 싶습니다.”
내가 말했다.
“300만 달러에 지분 15%. 이사회는 옵저버 자격으로.”
마이클의 얼굴이 굳었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이렇게 당당하게 역제안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이다.
“그 정도 밸류에이션을 받으려면, 상당한 근거가 필요할 텐데요.”
나는 가방에서 USB를 꺼냈다. 2025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준비한 자료들이었다. 모바일 시장의 성장세, 인증 시스템의 진화 방향, 그리고 가장 중요한 – 경쟁사들의 실수들.
“이게 무슨…”
자료를 보던 마이클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이런 분석이…”
“시간이 답해줄 겁니다.”
내가 말했다.
“6개월만 기다려보세요. 제가 옳았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회사로 돌아오는 길, 나는 잠시 테헤란로의 거리를 걸었다. 2010년의 이 거리는 아직 스타트업의 메카가 되기 전이었다. 하지만 곧 이 거리는 제2의 실리콘밸리가 될 것이다. 적어도 2025년에는 그랬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현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묻어있었다.
“아직 진행 중이에요.”
나는 애매하게 답했다.
“준서 씨.”
현우가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 수 있는 거죠?”
나는 창가로 걸어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테헤란로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5년 후, 이 거리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기억하는 미래일 뿐, 이번에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
“믿어주시겠어요?”
내가 되물었다.
“제가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이 길이 맞다는 걸 확신한다고 하면.”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날카로운 직감은 분명 뭔가를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 그 순수함을 잃지 말자고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2025년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정확히 그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마이클에게서 메일이 왔다. 우리의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시리즈 A 투자, 300만 달러, 지분 15%. 새로운 미래의 첫 발걸음이었다.
“다들 축하드립니다.”
나는 팀원들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우리에겐 훨씬 더 큰 꿈이 있으니까요.”
지연의 눈이 반짝였고, 민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는 여전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시간 여행자의 고통은 선택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축복일지도 모른다.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
나는 다시 한번 창밖을 바라봤다. 2010년의 테헤란로가 황혼빛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git commit -m “feat: new future begins”
git push origin master
새로운 시간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