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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간’ – 시간을 디버깅하다 #5

제5화: 운명의 변주

사람들은 미래를 알면 모든 것이 쉬워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미래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마치 이미 본 영화를 다시 보는 것처럼, 모든 장면이 익숙하지만 그럴수록 더 긴장되는 아이러니.

2010년 8월, 우리 회사는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리즈 A 투자 유치 후 강남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고, 직원도 스무 명으로 늘었다. 2025년의 기억으로는 이때부터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른 선택을 해야 했다.

“모래시계에서 또 연락이 왔습니다.”
지연이 회의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이번에는 기술 제휴를 제안하더군요.”

나는 피식 웃었다. 2025년의 기억 속에서, 모래시계는 우리를 인수하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달랐다. 우리가 모바일 시장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조건이 어떻습니까?”
현우가 물었다.

“그들의 메신저 서비스에 우리 인증 시스템을 탑재하고 싶답니다. 독점 계약으로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이 제안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 모래시계의 메신저 서비스는 아직 출시 전이었지만, 2025년에는 국민 메신저가 될 것이다.

“거절하세요.”
내가 말했다.

“네?”
지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이런 기회는…”

“3개월 후에 레인보우가 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할 겁니다.”
나는 마치 일기 예보를 읽듯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이 성공할 거예요. 우리는 양쪽 다와 협업해야 합니다.”

현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의 의심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

“준서 씨.”
그가 입을 열었다.
“레인보우가 메신저를 준비하고 있단 얘기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현우의 의심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내가 평범한 창업자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합니다.”
결국 애매한 대답을 선택했다.
“체스는 상대방의 다음 수를 읽는 게임이 아니라, 게임 전체의 흐름을 보는 거니까요.”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현우가 내 옆에 바싹 붙었다.

“언제까지 비밀로 하실 건가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준서 씨는 달라요. 2주 전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현우가 말을 이었다.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현우의 직감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내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이 어색하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온 투자자도 그랬어요. 준서 씨가 마치 이미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우리는 잠시 말없이 걸었다. 늦여름의 햇살이 강남역 일대를 비추고 있었다. 15년 후, 이 거리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2025년에는 그랬다.

“현우 씨는 SF 좋아하세요?”
잠시 후 내가 물었다.

“갑자기 무슨…”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제가 미래에서 왔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현우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의심과 호기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왜 돌아오셨는지 궁금하네요.”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현우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레인보우 이야기는 진짜예요.”
내가 말했다.
“정확히 93일 후, 그들은 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대성공할 거고요.”

“…농담이시죠?”

“시간이 답해줄 거예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던 우리는 강남역 근처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대화가 오갔다.

“정말 미래에서 오신 거예요?”
현우의 목소리는 반신반의했다.

“믿기 어려우시죠?”

“아뇨, 오히려… 이상하게 납득이 가요.”
그가 맥주잔을 들었다.
“그동안의 수상한 점들이 전부 설명되니까요.”

“비밀로 해주실 수 있나요?”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조건으로요.”

“뭔데요?”

“앞으로의 선택… 혼자 하지 마세요. 같이 의논해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2025년의 기억 속에서, 나는 늘 혼자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실수였다.

“좋아요.”
결국 나는 수락했다.
“앞으로 모든 걸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제가 아는 미래가 이제는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주세요.”

“그게 더 재미있지 않나요?”
현우가 웃었다.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밤이 깊어갔다. 강남역의 네온사인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2010년의 이 순간,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93일 후에 정말 레인보우가 메신저를 출시하면…”
현우가 마지막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그때는 제가 치킨 살게요.”

“좋아요. 그리고 제가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내가 답했다.
“2012년에 있을 가상화폐의 폭발적 성장에 대해서요.”

현우의 눈이 반짝였다. 새로운 게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git commit -m “feat: sharing future secrets”
git push origin timeline-change

누군가는 말했다. 비밀은 혼자 간직할 때는 무겁지만, 둘이서 나누면 가벼워진다고.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동반자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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