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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간’ – 시간을 디버깅하다 #8

제8화: 균열

모든 예측가는 광범위한 패턴은 읽을 수 있지만, 세세한 디테일은 놓친다. 나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과거로 돌아온 순간부터 미래는 이미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고, 그 균열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2012년 봄, 회사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직원이 200명을 넘어섰고, 매출은 당초 예상의 두 배를 기록했다. 2025년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성장 곡선이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날 아침, 현우가 급하게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서버에 이상한 접근이 감지됐어요.”

나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2025년의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심각한가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하지만…”
현우가 노트북을 펼쳤다.
“패턴이 심상치 않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우리 시스템을 분석하고 있어요.”

화면에는 수상한 접근 기록들이 끝없이 스크롤되고 있었다. IP 주소를 역추적해보니 대부분 중국발이었다. 하지만 그건 위장일 가능성이 높았다.

“레인보우일까요?”
현우가 조심스레 물었다.
“자체 인증 시스템 개발한다더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다른 건가요. 더 큰 누군가…”

말끝을 흐렸다. 회의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제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조심스럽게, 때로는 불안하게.

“이봐요, 준서 씨.”
현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2025년에는 이런 일이 없었나요?”

“전혀요. 이건 완전히 새로운 변수예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였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빨리 성장한 탓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더 컸다. 우리의 성공이 거대 기업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그들은 2025년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그때 지연이 급하게 들어왔다.
“대표님, 지글에서 긴급회의를 요청했어요.”

현우와 나는 눈빛을 교환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뭔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지글 본사 회의실. 그들의 클라우드 사업부 대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시스템에 backdoor가 발견됐어요. 당신들의 인증 모듈을 통해서.”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건 재앙이었다. 보안 회사가 보안 문제를 일으킨다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불가능합니다.”
현우가 즉각 반박했다.
“우리 시스템은…”

“증거가 있습니다.”
지글의 대표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
“당신들의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데요.”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나는 현우를 힐끗 바라봤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해가 안 돼요.”
마침내 현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코드를 수백 번은 검증했는데…”

“누군가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거예요.”
내가 말했다.
“문제는 누구냐는 거죠.”

창밖으로 2012년의 서울이 흘러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2025년과는 달랐다. 우리의 성공이 만들어낸 나비효과는 이제 통제불능이 되어가고 있었다.

“잠깐.”
현우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혹시… 모래시계 아닐까요?”

나는 숨을 들이켰다. 맞았다. 모래시계. 우리가 그들의 M&A 제안을 거절한 이후,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하지만 증거가…”

“있어요.”
현우가 휴대폰을 꺼냈다.
“backdoor가 발견된 시점이 석 달 전이에요. 그때 모래시계 출신 개발자를 우리가 영입하려다 실패했었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왔다. 밤새도록 코드를 분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실을 발견했다.

“여기 있어요.”
현우가 외쳤다.
“이건 해킹이 아니에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코드예요. 그것도 내부에서.”

나는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교묘하게 숨겨진 코드. 모래시계의 서버와 통신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죠?”
현우가 물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25년의 기억은 이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역으로 가죠.”
내가 말했다.
“이걸 역추적해서 모래시계의 불법 행위를 밝히는 거예요.”

현우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이미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재미있어질 것 같네요.”
그가 웃었다.
“이번에는 미래도 모르는 일이라…”

git commit -m “feat: facing unknown crisis”
git push origin survival-mode

우리는 다시 한번 시간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래에 대한 지식도, 과거의 경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직 현재, 이 순간의 선택만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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