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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의 시간’ – 시간을 디버깅하다 #9

제9화: 역습

위기의 순간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12년 여름, 테헤란로의 한 지하 카페에서 우리는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게 모든 증거입니다.”
현우가 USB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모래시계가 지난 6개월간 벌인 모든 불법 행위들이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던 지글의 법무팀장이 USB를 집어들었다.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것 같네요.”

현우와 나는 3주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backdoor로 의심되는 코드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뜻밖의 것을 발견했다. 모래시계가 국내 주요 포털들의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해온 증거였다. 그들은 우리의 인증 시스템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법무팀장이 물었다.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편의점에 들르는 회사원들, 일상적인 도시의 풍경. 2025년의 기억 속에서 이런 순간은 없었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현재였다.

“공론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천천히 말했다.
“다만… 지글과 우리의 파트너십을 더 강화하고 싶네요.”

법무팀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이해했다. 우리는 모래시계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클라우드 사업부를 분사하는 건 어떨까요?”
내가 제안했다.
“지글과 우리가 50대 50으로 지분을 나누고…”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것은 윈윈이었다. 지글은 모래시계의 불법 행위를 덮을 명분을 얻고, 우리는 아시아 최대 클라우드 기업의 공동 주주가 되는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현우가 물었다.
“2025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요?”

“전혀요. 이건 완전히 새로운 전개예요.”
내가 답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미래…”

“무섭지 않으세요?”
현우의 목소리가 조용했다.
“이제는 정말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잖아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두려웠다. 2025년의 기억이 더 이상 지도가 되지 못하는 상황, 모든 선택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현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해방감도 느껴졌다.

“오히려 좋아요.”
내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는 진짜 우리의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요.”

다음 날 아침, 뉴스가 터졌다. 지글이 클라우드 사업부를 분사하고, 우리 회사가 공동 대주주가 된다는 발표였다. 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모래시계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이제 진짜 전쟁이 시작되겠네요.”
지연이 뉴스를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래시계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한발 앞서 있었다.

“준서 씨.”
늦은 밤, 현우가 내 사무실을 찾았다.
“가상화폐 준비는 잘 되가나요?”

“네. 이미 상당량을 확보했어요.”
내가 답했다.
“2017년의 폭등을 기다리는 중이죠.”

“근데 말이에요…”
그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이런 식으로 미래를 바꿔도 되는 걸까요? 나비효과가 너무 커지면…”

나는 모니터를 껐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었다. 2025년의 서울과는 많이 달랐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변화가 이미 도시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었다.

“미래는 고정된 게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건, 미래가 바뀌는 게 아니라 바뀌지 않는 거죠.”

현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뭘 하죠?”
그가 물었다.

“공격하죠.”
내가 답했다.
“이제는 우리가 게임의 룰을 정하는 거예요.”

git commit -m “feat: changing the game rules”
git push origin new-world-order

밤이 깊어갔다. 하지만 우리의 새로운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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