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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역설’ 한국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불균형 성장 지도

한국의 기후테크 산업은 지금 흥미로운 변곡점에 있다.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우리나라도 이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현황: 분야별 현황 분석을 중심으로’ 보고서는 이런 배경 속에서 우리 기후테크 생태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있다.

2025년 2월 기준 우리나라에는 272개의 기후테크 스타트업이 활동 중이다. 언뜻 적지 않은 숫자처럼 보이지만, 이 숫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에코테크(25.7%)와 푸드테크(27.6%) 분야에 절반 이상의 스타트업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거나, 친환경 소재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거나, 대체육을 개발하는 등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고 소규모 자본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분야에서 창업이 활발한 셈이다.

반면, 지오테크 분야는 전체의 11.4%에 불과하다. 탄소 관측이나 예측, 기상정보 활용 같은 고도의 기술과 인프라가 필요한 분야에서는 아직 스타트업의 활동이 미미하다. 이런 분포는 우리나라 기후테크 생태계가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대규모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보다는 상대적으로 시작하기 쉬운 분야에 기업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투자 현황을 살펴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클린테크와 카본테크 분야에 투자금이 집중되는 반면, 스타트업 수가 많은 에코테크와 푸드테크는 상대적으로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분야별 평균 누적투자금액을 보면, 클린테크(249.6억 원)와 카본테크(157.6억 원)가 에코테크(74.9억 원)와 푸드테크(71.0억 원), 지오테크(24.6억 원)를 크게 앞서고 있다. 누적 투자금이 가장 많은 기업은 클린테크 분야의 한 업체로, 무려 4,740억 원을 유치했다.

이런 투자 쏠림 현상은 시장의 성숙도와 투자자들의 선호도를 반영한다. 태양광, 풍력,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등 클린테크 분야의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투자 대비 성과가 비교적 뚜렷하다. 카본테크도 탄소 감축 효과가 입증된 기술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RE100과 같은 글로벌 이니셔티브가 기업들에게 친환경 에너지 사용을 압박하면서, 클린테크와 카본테크 시장은 더욱 성장하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산나눔재단과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등이 분석한 글로벌 기후테크 Top100 스타트업 중 무려 68%가 클린테크(33개)와 카본테크(35개) 분야에 속해 있다. 분야별 대표 기업들을 보면, StartCampus(클린테크, 포르투갈), Northvolt(카본테크, 스웨덴), Redwood Materials(에코테크, 미국), Impossible Foods(푸드테크, 미국), Generate(지오테크, 미국) 등이 각 분야에서 상당한 투자금을 유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2030년까지 기후테크 유니콘 10개 육성”이라는 목표는 다소 의아하게 들린다. 현재 국내에는 기후테크 유니콘이 단 하나도 없다. Pitchbook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전 세계 기후테크 유니콘은 54개인데, 이 중 미국이 25개, 중국이 19개로 두 나라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 규모가 글로벌 상위 10개국 평균의 7.5배나 적다는 점이다. 한 기업당 누적 투자금액도 상위 10개국 평균의 3.8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처럼 투자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 갑자기 유니콘 10개를 육성한다는 목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낙관론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정부의 이 야심 찬 목표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수치적인 목표를 쫓기보다는 국내 기후테크 스타트업의 현 상황에 맞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국내 전문가들은 기후테크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리스크의 크기로 투자가 결정되는 분야이므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적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클린테크와 카본테크 중심의 투자 전략과 함께, 우리나라가 강점을 보이는 에코테크와 푸드테크 분야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맞춤형 지원이 병행되어야 한다. 에코테크와 푸드테크는 생활 밀착형 기술로 빠른 시장 확장과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속 가능한 소비와 생산을 기반으로 한 혁신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점차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대체육, 친환경 농업, 폐기물 업사이클링 같은 기술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자원 순환을 촉진하는 측면에서 기후 대응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한국 기후테크 산업의 미래는 결국 수치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특성을 이해하고 성장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정책적 접근에 달려 있을 것이다. 현재 CB Insight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유니콘 기업은 15개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테크 분야에서만 10개의 유니콘을 육성하겠다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과도한 목표일 수 있다.

유니콘 기업의 탄생은 정책의 결과물이지,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대표적 유니콘 기업들이 미래에 대한 성장 가능성으로 수십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정작 수익을 전혀 내지 못하는 현상, 시장 왜곡과 문서상 기업가치에 대한 과도한 집중을 초래했다는 비판적 시각을 제기한 바 있다.

따라서 각 분야별로 성장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없는지, 개별 기업이 한계에 다다른 영역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성장 지원정책을 재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책이 마련될 때, 비로소 우리나라의 기후테크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이 단순히 유니콘 기업이 되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할 수 있는 혁신 기업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그것이 결국 우리가 이 분야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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