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tartup’s Story #503] 목소리가 악기가 되는 순간…사라지는 영감을 AI로 붙잡다

에드윈 샤츠 멜로다이저 COO ⓒ플래텀

음악과 기억의 경계에서

“저희가 하는 일은 여러분의 목소리를 악기로 쉽게 변환하는 것입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물줄기가 어깨를 타고 흐르는 샤워 중에, 혹은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갑자기 한 선율이 마음속에 떠오른다. 어딘가 다른 차원에서 전송된 신호처럼 선명하게 머릿속을 채운다. 그러나 그 선율을 기록할 방법이 없다. 샤워를 마치고 몸을 닦는 동안, 또는 창가에서 일어나 커피를 마시러 가는 사이, 그 멜로디는 이미 증발해버린다. 남는 것은 “아, 좋은 멜로디였는데”라는 아쉬움뿐이다. 꿈속에서 완벽한 소설을 썼다가 눈을 뜨는 순간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식의 경계에서 일어난 창조적 순간이 현실의 중력에 무너져내리는 경험이다.

이런 덧없는 창조의 순간들을 붙잡아두기 위해 태어난 기업이 있다. 독일에서 시작해 한국의 토양에서 움트고 있는 ‘멜로다이저(Melodizr)‘라는 이름의 스타트업이다. 공동설립자이자 COO인 에드윈 샤츠(Edwin Stricharz)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의 대화는 기술과 예술의 접점, 창조의 본질, 그리고 시간의 압축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면의 소리를 붙잡는 기술

“저희가 하는 일은 여러분의 목소리를 악기로 쉽게 변환하는 것입니다.”

샤츠의 이 간결한 회사 소개에서 인간 창조성의 근원적인 형태를 떠올렸다. 목소리는 우리의 첫 번째 악기다. 아기들은 말을 배우기 전에 소리의 높낮이와 리듬을 탐험한다. 인류는 언어를 발명하기 전에 노래했을 것이다. 목소리는 생각과 영혼 사이의 가장 직접적인 연결 통로다. 그러나 그 원초적 표현을 바이올린이나 첼로, 신시사이저의 복잡한 음색으로 변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멜로다이저는 이 간극을 파고들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멜로다이저는 생각을 직접 텍스트로 변환하는 것처럼, 머릿속 멜로디를 직접 악보로 옮기는 일을 돕는다. 내적 음악 풍경과 외적 소리 세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존재론적 시도다. 베토벤은 수천 페이지의 스케치북을 남겼는데, 그 중 완성된 작품으로 이어진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모차르트조차도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현대의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 트랙의 기본 구조를 잡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잠재적 작품들이 사라져버리는지 모른다.

시간의 압축: 창조적 밀도를 높이는 여정

멜로다이저의 탄생 배경은 바로 이러한 창작의 고통스러운 비효율성에 있다. 회사 CEO인 알렉산드라 악스트(Alexandra Axt)는 가수이자 작곡가로서 음악적 영감을 붙잡지 못하는 좌절감을 깊이 경험한 사람이다.

“그녀는 항상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포착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가들이 아이디어 구상 단계를 가속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지만, 창조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 모순은 모든 창작자가 마주하는 실존적 딜레마다. 샤츠는 이 딜레마의 구체적 양상을 설명한다.

“음악 프로듀서들이 한 곡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명확한 방향성을 설정해야 합니다. 어떤 장르로 만들지, 어떤 분위기를 표현할지, 어떤 음계와 화음을 사용할지 등 기본적인 틀을 잡아야 하죠. 이렇게 첫 번째 시안을 만드는 데만 보통 4~6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프로듀서들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이런 과정을 평균 5번 정도 반복합니다. 결국 좋은 아이디어의 기초를 잡는 데만 하루 종일 시간을 써야 하는 셈이죠.”

시지프스가 바위를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반복과도 같다. 창조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지루하며, 시간을 소모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잠재적 걸작들이 탄생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릴까?

“우리와 함께 하면 지금보다 10배 더 짧은 시간 안에 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시간의 압축은 창조적 밀도를 높인다. 더 많은 시도, 더 많은 실패, 더 많은 변주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창조는 결국 무수한 실패의 과정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빛나는 순간이다. 이 과정을 가속화한다는 것은 창조적 가능성의 확장을 의미한다.

“저희 멜로다이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가 간단히 노래를 부르거나 흥얼거리기만 해도 그 소리를 바탕으로 10가지 다양한 버전의 음악을 자동으로 만들어냅니다. 사용자는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버전을 선택한 후,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직접 세부적인 수정과 편집을 할 수 있습니다.”

에드윈 샤츠 멜로다이저 COO ⓒ플래텀

인간과 AI: 대체가 아닌 공명의 관계

멜로다이저는 현재 AI를 둘러싼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AI가 인간의 창의성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는 반면, 멜로다이저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의 목표는 음악 제작자들의 창의적인 작업을 돕는 것입니다. AI 기술을 통해 창작자의 아이디어와 독창성을 더욱 빛나게 하는 거죠. 저희는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자가 자신의 음악적 비전을 더 효율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샤츠는 많은 SF 소설과 영화들이 묘사한 인간과 기계의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고 공명하는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피아노가 작곡가의 적이 아니라 동반자인 것과 같다. 도구는 사용자를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용자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러한 방향성은 멜로다이저가 여타 유사한 AI 음악 생성 도구와 자신을 차별화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다른 도구에서는 AI가 전체 작업 과정을 주도한다. 반면 멜로다이저에서는 인간의 목소리, 인간의 창의적 충동이 출발점이 된다.

“우리 서비스는 주로 음악 프로듀서, 특히 비트를 만드는 창작자들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다른 AI 음악 도구와 저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출발점이 사용자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저희 기술은 여러분의 목소리, 여러분의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하며, 여러 음악 제작 프로그램과도 호환됩니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불분명한 출처의 데이터로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창작물에서 출발하는 것이죠.”

이는 지적 재산권과 창조의 진정성에 관한 중요한 질문과도 연결된다. 현재 AI 생성물의 저작권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멜로다이저는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한다.

“저희 서비스로 만든 음악의 저작권은 모두 창작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음악의 출발점이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단지 여러분이 입력한 목소리를 AI로 처리해서 다양한 악기 소리로 변환해 드릴 뿐입니다. 결국 최종 결과물은 여러분의 창작물에서 시작되어 여러분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죠. 여러분의 목소리가 다른 형태로 표현된 것일 뿐,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창조는 결국 자기표현의 확장이며, 그 시작점이 자신의 목소리인 한, 결과물은 여전히 자신의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계의 공명을 통해 증폭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문화적 경계를 넘어선 창조

멜로다이저가 한국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규모와 성장률에서 손꼽히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K-pop의 세계적인 성공은 한국 음악 산업의 창의적 잠재력과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한다. 다만 외국 스타트업으로서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샤츠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인이 자국이 아닌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 장벽부터 비즈니스 문화의 차이, 그리고 행정적 절차까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는 한국 내 행정적 절차에서 난항을 겪었다고 토로한다. “한국에서는 외국 회사나 스타트업이 현지 한국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여러 규제를 충족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창업팀 구성에 관한 규정들이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또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 신청서나 각종 행정 서류들이 대부분 한국어로만 제공되어 언어 장벽이 높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외국 창업자들에게는 추가적인 진입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그럼에도 샤츠는 한국의 역동성에 감탄한다. “한국이 정말 좋다고 느끼는 점은 이곳의 창의성과 빠른 실행력입니다. 독일에서라면 몇 달이 걸릴 제품 개발이 한국에서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질 수 있어요.”

독일의 문화는 체계적이고 방법론적인 접근을 중시한다. 반면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은 빠른 실행과 적응을 강조한다. 이러한 차이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샤츠는 외부인의 관점에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를 관찰하고 있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액셀러레이터와 투자자 간 긴밀한 네트워크가 특징으로 보입니다. 업계 관계자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 일단 이 생태계에 진입하기만 하면 많은 기회가 열립니다. 문제는 처음 그 문을 여는 것이 외국 스타트업에게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멜로다이저는 한국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낙관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계 최대의 음악 시장인 미국으로의 진출을 꿈꾼다.

샤츠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우선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 시장은 유망한 시장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가장 많은 제작자와 음악가들이 있는 미국 시장으로 진출할 예정입니다.”

기술과 창조성의 경계에서: 멜로다이저의 비전

일견 멜로다이저의 비전은 거창해 보인다.

“저희의 최종 목표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음악 제작 플랫폼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초기 스케치 단계에서 쉽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전문 음악가부터 취미로 음악을 만드는 일반인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창의적 영감을 실제 음악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런 목표는 단순한 상업적 야망을 넘어선다. 글쓰기가 문자의 발명과 인쇄술의 보급으로 소수의 특권에서 대중의 것이 된 것처럼, 음악 창작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목소리는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표현 수단이다. 우리는 글자를 배우기 전에 말했고, 말하기 전에 소리를 냈다. 목소리를 통한 창작으로의 회귀는 가장 원초적인 표현 방식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제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한국에 온 외국 스타트업으로서 멜로다이저가 마주한 도전과 기회는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났을 때 생기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이 부딪치고 섞일 때, 뜻밖의 창의적 돌파구가 열린다. 여러 악기가 모여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이룰 때, 각각으로는 불가능한 화음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샤츠는 잠재적 사용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음악 프로듀서로서 좋은 아이디어를 찾느라 고생하고 계신가요? 적절한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멜로다이저를 써보세요. 저희 서비스는 여러분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도와드립니다.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말고,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경험해보세요!”

이 초대에는 약속이 담겨 있다. ‘사라지는 순간들을 붙잡겠다’는 약속.

에드윈 샤츠 멜로다이저 COO ⓒ플래텀

멜로다이저가 추구하는 가치는 결국 창작의 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창조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적 표현을 실현할 수 있게 돕는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에드윈 샤츠와의 대화를 마치며, 멜로다이저 공동창업자들의 SNS에 공통으로 적혀있는 표현이 떠올랐다. “Less Chaos, More Music!” – 복잡한 과정은 줄이고 음악 자체에 집중하자는 이 말은 디지털 시대의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샤워 중에 떠오른 멜로디, 출근길에 흥얼거린 후렴구, 꿈에서 들은 화음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고 실제 음악으로 완성될 수 있는 세상. 멜로다이저는 그 사라지는 창조의 순간들을 붙잡아, 우리 모두가 음악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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