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잠이 줄어든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침대 옆 테이블에서 손목 밴드를 집어 들었다. 밴드를 착용하자 작은 진동과 함께 어제의 수면 데이터가 분석되어 나온다. ‘얕은 수면 35%, 깊은 수면 20%, 렘 수면 28%, 각성 17%.’ 나의 신체 나이보다 생체 시계가 4년이나 젊다고 알려준다.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그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명해 낸 숫자 놀음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나라가 되었다. 2025년이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나는 인구통계학자가 아니지만, 이런 변화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에게는 위기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시니어 비즈니스 모델 50(한국프롭테크포럼 발간)』이라는 자료집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 사회의 변화상을 알아보는 일은 기자에게 일종의 습관과도 같다. 자료집을 넘기는 동안 머릿속에는 지난 10년간 거리에서 만난 노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건강을 파는 사람들
노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단연 건강이다. 돈이 많아도 아플 때 쓸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
방문형 진료 서비스라는 것이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의 집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직접 찾아간다. 일본의 ‘온케어’나 ‘프라이머리케어 24’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한다. 어디 아프세요, 하고 묻는 젊은 의사에게 노인들은 삶의 모든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의사는 사실 노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 이것은 의료 서비스인가, 아니면 말벗 서비스인가. 노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AI 기반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도 있다. 손목 밴드, 센서 매트, 스마트 미러가 노인의 건강을 감시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거울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혈압 수치가 어제보다 조금 높네요. 소금 섭취를 줄이는 게 어떨까요?” 거울은 말한다. 거울과 대화하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했다. 노인은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가 익숙해질 것이다. 손목시계와 대화하고, 냉장고와 대화하는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헬씨 밀플랜 서비스는 노인 맞춤형 식단을 배달해준다. 단백질 섭취량, 염분 함량, 당지수를 계산한 도시락이 문 앞에 도착한다. 혼자 사는 노인들은 점점 요리하는 법을 잊어간다. 요리할 의욕도 사라진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영양사가 계산한 완벽한 식단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없으면 어쩌나. 젊은 영양사들은 노인의 입맛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남은 인생을 팔아보자
노인은 왜 살아야 하는가. 젊었을 때도 명확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은퇴하고 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있다.
‘시니어 전용 커뮤니티 플랫폼’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노인들을 연결해준다. 동네 바둑 모임, 건강 강좌, 시 낭송회 등을 온라인으로 모집한다. 코로나19 이후 노인들도 화상 통화에 익숙해졌다. 안 될 것 같던 일이 되기도 한다. 노인들은 신기하게도 적응한다. 어쩌면 우리는 노인의 적응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령자 맞춤형 여행 패키지도 있다. 이동이 편리하고, 숙소와 화장실이 가까우며, 충분한 휴식 시간이 보장된다. 의료 인력이 동행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여행을 상상했다. 조용히 걷고, 자주 앉아서 쉬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먹는 여행. 사실 나는 젊었을 때도 그런 여행을 좋아했다. 여행은 발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까.
스마트홈 시스템은 노인이 혼자서도 안전하게 살 수 있게 돕는다. 음성 인식 조명, 자동 가스 차단기, 낙상 감지 센서, 약 복용 알림 시스템. 기술은 노인을 보살피는 가족이 된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은 무엇을 해야 할까. 노인은 기술에게 몸을 맡기고, 가족에게는 마음을 맡길 수 있을까.
늙어서도 일하는 사회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 60세에 은퇴하고 90세까지 산다면, 은퇴 후의 삶이 30년이나 된다. 인생의 3분의 1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다.
‘시니어 재취업 플랫폼’은 노인의 경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연결해준다. 젊은이들은 노인의 경험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경험은 때로 효율성보다 더 중요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니까.
한편, ‘시니어 크리에이터 양성 교육’은 노인들에게 유튜브나 틱톡 같은 SNS 플랫폼 활용법을 가르친다. 젊은이들이 유튜브 스타를 꿈꾸듯, 노인들도 꿈꿀 수 있다. 요리 영상, 건강 상담, 책 소개, 인생 조언.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해줄 이야기는 많다. 다만 그것을 듣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노후 불안에 대처하는 법
노인의 가장 큰 불안은 돈이다. 병원비, 요양원비, 장례비까지 계산하면 얼마나 필요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돈에 대한 불안은 끝이 없다.
‘연금관리 컨설팅 서비스’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준다. 가장 효율적인 수령 방식을 제안하고, 세금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노인이 돈을 받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유산 설계 서비스’는 재산 분배를 계획하고 유언장 작성을 도와준다. 유언장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노인은 언젠가는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은 남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다.
‘AI 보험 설계 플랫폼’은 개인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보험을 추천한다. 치매나 골절 같은 노인성 질환에 특화된 상품들이다. 기술은 노인의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그리고 그 예측을 바탕으로 현재의 행동을 추천한다. 하지만 인간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돌봄의 진화
노인 요양은 더 이상 가족만의 책임이 아니다. 사회적 돌봄 체계가 발달하고 있다.
‘커뮤니티 기반 요양 모델’은 지역 주민들이 함께 노인을 돌보는 시스템이다. 이웃이 이웃을 돌본다. 마을 주민이 요양보조 활동에 참여하고, 복지관과 지역 병원이 연계된다. 이는 지방 중소도시에서 특히 중요하다. 농촌에 남은 노인들, 그들은 누가 돌볼 것인가.
‘치매 예방 프로그램’은 인지훈련, 미술·음악 치료, 반려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치매를 늦추려 한다. 한번 치매에 걸리면 돌이킬 수 없다. 예방만이 답이다. 하지만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두뇌가 퇴화하고 있다는 인정이 아닐까. 그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돌봄 로봇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음성으로 대화하고, 약 복용을 알려주고, 위급 상황을 자동으로 신고한다.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일본과 유럽에서는 이미 상용화되었다. 로봇이 노인을 돌보는 세상, 그것은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함께 살아가기
노인의 주거 공간도 변하고 있다. 집은 더 이상 단순한 거처가 아니다. 그것은 서비스이고, 커뮤니티이고, 안전망이다.
‘공유형 노인 주거 공간’은 실버타운과 셰어하우스의 중간쯤 되는 형태다. 개인 공간은 작지만 공용 식당, 운동 공간, 취미실이 있다. 혼자 살면서도 외롭지 않은 공간. 이런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공유 주거는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무장애 리모델링 서비스’는 기존 주택을 노인 친화적으로 개조한다. 문턱을 없애고, 미끄럼 방지 바닥을 설치하고, 자동문을 달아준다. 나이 들면 집이 위험한 공간이 된다. 그토록 오래 살아온 공간이 갑자기 적이 된다.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경험, 그것이 노화의 본질이 아닐까.
시니어 비즈니스의 발전은 단순히 상품과 서비스의 진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노인의 삶을 어떻게 존중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돈을 벌기 위한 산업이 아니라,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지금 우리가 만드는 세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다. 노인을 위한 사회는 결국 모두를 위한 사회다.
손목 밴드가 다시 진동했다. “오늘의 걸음 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모자를 쓰고 산책을 나갔다. 봄 햇살이 따스했다. 공원에서 만난 노인들과 가볍게 목례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같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함께 늙어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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