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결국 돈은 ‘허례허식’보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 흐른다

어떤 시대나 본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들 불황이라더니’, ‘소비 심리 최악이라더니’ 반복되는 뉴스와 달리, 우리의 소비 데이터는 가장 솔직한 진실을 말해준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가 최근 발표한 <2025년 모바일인덱스 트렌드 리포트>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몇 개 짚어봤다.

‘불황에는 약하던 기업이 무너지고 강한 기업은 더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1등만 살아남는 잔혹한 시장의 법칙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작동하고 있다. 2024년 1분기 대비 2025년 1분기 업종별 카드결제 금액을 살펴보면 명품(-18.95%), 도서/티켓(-14.25%), 온라인쇼핑(-9.49%), 식료품(-8.96%)등 주요 업종 대부분이 감소세를 보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빨간불’ 현상 속에서도 독보적인 1등 기업들의 점유율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쿠팡의 경우 온라인 쇼핑 업종에서 전체 카드 결제 금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쿠팡을 포함한 온라인 쇼핑 업종의 전체 카드 결제 금액은 2025년 3월 기준 약 5조 원이지만, 쿠팡을 제외하면 약 1.8조 원에 불과하다. 불황 속에서도 1등 기업만 숨통이 트이는 한국형 ‘위너 테이크 올’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걸 ‘균형’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2025년 3월 기준 온라인 쇼핑 업종 내 쿠팡의 카드 결제 금액 점유율은 무려 64%에 이른다. 2024년 3월 58%였던 것이 1년 만에 6%p나 증가했다. 쿠팡의 재구매율 역시 압도적이다. 2025년 2월 기준 쿠팡의 재구매율은 83.12%로, 2위인 알리익스프레스(59.35%)를 훨씬 웃돈다. 이쯤 되면 독점이 아니라 ‘제국’에 가깝다.

뷰티/헬스케어 업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된다. 올리브영을 포함한 뷰티/헬스케어 업종의 월간 카드 결제 금액은 증가 추세처럼 보이지만,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오히려 하락세를 보인다. 시장은 성장하는 게 아니라, 1등이 다른 기업들의 파이를 뺏어가고 있는 셈이다.

음식 배달 시장에서도 강자의 지위는 계속 공고해지고 있다. 배달 업종 전체가 정체되는 가운데, 유일하게 쿠팡이츠만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쿠팡이츠의 월간 카드 결제 금액은 2023년 1월 1,505억 원에서 2025년 3월 5,933억 원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에 비해 배달의민족은 같은 기간 1조 1,384억 원에서 8,759억 원으로 오히려 감소했고, 요기요는 1,468억 원에서 803억 원으로 반 토막이 났다.

이 승부의 갈림길을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는 앱 설치와 삭제율이다. 2025년 4월 15일 기준 배달의민족의 신규 설치 건수는 19,191건, 쿠팡이츠는 16,705건으로 배달의민족이 더 많았지만, 설치 후 6일 내 삭제율은 배달의민족이 63.18%, 쿠팡이츠가 37%로 큰 차이를 보였다. 다운로드는 호기심이지만, 삭제는 냉정한 평가다. 소비자들은 이미 마음으로 승자를 골랐다.

불황의 시기, 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명확하게 변한다. 2022년 1분기 약 2,876억 원이었던 주요 명품 기업들의 카드 결제 금액은 2025년 1분기 1,174억 원으로 60%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다이소,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가성비’ 기업들의 카드 결제 금액은 2022년 1분기 약 4,558억 원에서 2025년 1분기 1조 553억 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다이소 앱의 월간 사용자 수는 2023년 1월 96만 명에서 2025년 3월 283만 명으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카드 결제 객단가도 2023년 3월 15,912원에서 2025년 3월 18,468원으로 높아졌고, 재구매율도 2024년 2월 49.13%에서 2025년 2월 50.83%로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명품 백에 돈을 쓰는 대신, 필요한 것들을 다이소에서 더 많이, 더 자주 사고 있다.

영화관은 이제 추억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다. 2023년 1월 CGV의 카드 결제 금액은 343억 원이었지만, 2025년 3월에는 99억 원으로 71%나 감소했다.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각각 66억 원, 60억 원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2025년 3월 기준 넷플릭스 앱의 월간 사용자 수는 1,409만 명으로, CGV(260만 명), 롯데시네마(157만 명), 메가박스(132만 명)를 모두 합친 549만 명의 2.5배를 넘는다. 영화관 앱을 모두 합친다 해도 너무 늦었다. 세상은 이미 스트리밍으로 기울었고, 그 흐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런데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여행’이다. 경기침체 속에서도 여행/숙박 업종의 카드 결제 금액은 2022년 1월 235억 원에서 2025년 3월 855억 원으로 3.6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이 ‘나를 위한 소비’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 앱 사용자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한항공 앱 사용자 수는 2023년 1월 85만 명에서 2025년 1월 130만 명으로, 스카이스캐너는 87만 명에서 109만 명으로, 인천공항 스마트패스는 40만 명에서 63만 명으로 증가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갑이 얇아진 시대, 사람들은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서도 정작 삶의 질을 높이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명품은 줄이고 여행은 늘리는 소비 패턴의 변화는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닌, 소비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결국 우리는 생존과 행복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고 있는 중이다.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지금 아니면 또 언제’라는 절박함이 있다. 이런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기업만이 불황 속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데이터는 늘 그렇듯, 우리가 말로는 하지 않지만 행동으로 증명하는 진실을 보여준다.

기자 /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전달하며, 다양한 세계와 소통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 I want to get to know and connect with the diverse world of start-ups, as well as discover their stories and tell them.

댓글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트렌드

화면으로 번진 불

스타트업

쿠팡, 앱 영문 버전 베타 출시…”외국인 고객 쇼핑 편의성 강화”

트렌드

광고 패러다임의 조용한 전복

스타트업

코코지, 쿠팡 디지털학습완구 카테고리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