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트렌드

“지도가 말해주지 않는 것들” 데이터 반출과 국가 경쟁력

12일 국회에서 열린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 현장. 사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거리를 걷다가 지도 앱을 켜보면 세상은 간단해진다. 시작점과 도착점, 그 사이를 잇는 파란색 선.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세상은 명료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이 작은 화면 속에 담긴 데이터의 가치와 의미를 생각해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국경을 넘어가려는 그 데이터의 움직임 속에 국가의 미래가 그려진다는 사실을.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 산업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가 열렸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조개혁 실천포럼’, 디지털경제포럼이 공동 주최한 이 자리에는 학계와 산업계, 정부 관계자들이 모였다.

고동진 의원의 개회사는 직설적이었다.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위치 정보를 넘어, 자율주행과 스마트시티 및 첨단 국방 기술의 핵심 기반”이라며, “최근 국내 고정밀 지도데이터의 관리는 우리 산업 경쟁력과 국가 안보, 그리고 데이터 주권이라는 국가적 이익을 지키는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모정훈 연세대 교수의 발제는 고정밀 지도의 경제적 가치를 조명했다. PDF 자료에 따르면,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국내 주요 첨단혁신산업 규모는 현재 약 342조원으로 조사되었으며, 2030년 경에는 약 7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자율주행, 도심항공교통(UAM), 로봇, 드론, 디지털 트윈 등 다양한 산업의 기반이 되는 핵심 인프라로, 국가 메타버스 기술 역량이 집약된 전략 자산이다.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조세 측면에서 본 해외 기업의 국가 자산 활용’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구글맵 사용자가 계속 증가하며 국내 플랫폼 시장 점유율이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구글과 네이버의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이 2016년 88:1에서 2024년 45:48로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지도 시장도 비슷한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는 해외 플랫폼이 국내 사용자의 데이터를 활용해 수익을 올리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이나 사회적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창준 성균관대 교수는 “고정밀 지도는 국가전략 자산이고 산업 혁신의 핵심인프라”라며, “기술 패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산업-조세-법제 통합 전략을 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PDF 자료에 따르면, 구글은 2018년 지도 API 요금제를 대폭 개편하며 동적 지도 로딩 기준 1,000회 호출당 비용을 약 1,400% 인상한 바 있어, 이에 따라 전 세계 수천여 개의 스타트업이 기능 축소 또는 사업 철수로 이어지는 위기에 처했다.

이일호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본부장은 “최근 공간정보 사업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외 반출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90%에 달한다”라며, “국내 정부의 행정력이 발휘될 수 없는 해외 빅테크 사업자의 영향력에 대한 공포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주연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전문위원은 “이미 구글이 국내 디지털 산업 생태계의 핵심 가치사슬을 장악한 상황에서, 고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확보하게 되면 지도 API 이용 또한 구글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PDF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주요 빅테크 기업의 지도 API 관련 기부금 비율은 구글이 0.01%, 카카오 0.41%, 네이버 0.77%로, 상대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더 높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장원 산업통상자원부 디지털경제통상과 과장은 “정부에서 구글의 고정밀지도 반출 요청에 대해 국외 반출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산업부는 관광, 위치정보산업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토론회를 마무리하며, 이상우 연세대 교수는 “지도 데이터는 단순한 길 찾기 도구가 아니라, AI 시대의 디지털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기반”이며, “정보 주권을 지키는 일이 곧 국가 미래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 토론회를 통해 드러난 것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지도 앱이 단순한 편의 도구를 넘어서 국가 안보와 경제 주권, 그리고 디지털 미래와 직결된 핵심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스마트폰 화면 속 작은 지도가 그리는 것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국가의 미래 경로일지도 모른다. 그 경로를 누가 통제하느냐의 문제는, 이제 단순한 기술적 논쟁을 넘어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댓글

Leave a Comment


관련 기사

트렌드 인사이트

‘대한민국 경제의 전환점’ 차기 정부가 주목해야 할 스타트업 정책

트렌드

인공지능의 물줄기, 우리는 어떤 제방을 세울 것인가

트렌드

생성형 AI 생태계의 중심에 선 도전자들

이벤트 트렌드

“규제보다 혁신 재투자로 외식산업 성장 기여토록 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