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간을 닮은 기계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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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로봇 스타트업 유니트리의 이족보행 로봇 ⓒ플래텀

빌딩 숲 속 평범한 건물 안에서 세계를 뒤흔들 무언가가 탄생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본사다. 모든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는 이곳에서, 미국 기업들이 수천억을 투자한 기술을 단 6%의 비용으로 만들어냈다. 디지털 냉전이라 불리는 미·중 AI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순간이었다.

바야흐로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도래했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이제야 그 꿈이 현실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술을 따르고, 사진을 찍는 로봇들. 마치 SF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 광경이 우리가 맞이할 미래다.

두 거인의 서로 다른 길

미국과 중국은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앞서 있는 양대 강국이다. 2022년부터 2025년 사이 전 세계에서 공개된 66개 휴머노이드 로봇 중 중국이 41개, 미국이 14개를 차지했다. 단순히 숫자만 보면 중국의 우위는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이 숫자 뒤에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철학과 전략이 숨어 있다.

미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첨단 칩 분야의 세계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로봇의 ‘두뇌’에 주력한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 피규어AI 등은 인간과 유사한 움직임과 사회적 상호작용, 범용 인공지능(AI)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스마트폰 이후 최대 혁신 분야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휴머노이드 산업에 투자하는 것이 20여 년 전 애플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기회라고 평가한다. 테슬라, 엔비디아,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며, 기술력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휴머노이드 생태계의 중심에 서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기술을 집약해 ‘옵티머스’를 개발했고, 2025년부터 본격 양산하여 자사 공장 생산라인에 투입할 계획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초 개방형 휴머노이드 모델 ‘GR00T’와 AI 개발 플랫폼 ‘Cosmos’를 공개하며,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를 제공한다. Figure AI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연 1만 2천 대 규모의 휴머노이드 양산 공장 ‘BotQ’를 설립했다.

산업 현장 적용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조지아 신설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을 도입해 자동차 조립 공정의 40%를 자동화할 계획이다. 이는 자동화 비율이 낮았던 조립 공정까지 로봇이 진출하는 상징적 사례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와도 직결된다.

반면 중국의 접근법은 다르다. 중국은 하드웨어, 즉 로봇의 ‘몸체’와 대량 생산, 가격 경쟁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니트리, 유비테크, 엔진AI, 아지봇 등 30여 곳의 스타트업이 정부 지원 아래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2025년부터 본격적인 대량 생산에 돌입했다.

중국의 진짜 강점은 전기차 산업에서처럼 부품 공급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액추에이터·배터리·센서 등 핵심 부품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터, 감속기, 센서 등 핵심 부품의 국산화와 저비용 공급망을 이미 완성해, 빠른 기술 발전과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의 휴머노이드에 대한 열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6년부터 중국 최대 명절 춘절 특별방송 ‘춘완(春晚)’에서 중국은 로봇 기술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과시했다. 2016년에는 540대의 ‘알파1S’ 로봇이 군무를 선보였으며, 2018년에는 24마리의 ‘지무’ 강아지 로봇이 음악에 맞춰 춤을 선보였다.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11월, 중국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글로벌 수준의 완성품 제작, 2027년까지 세계 선도국가 도약을 목표로 했다. 실제로 2024년 베이징 세계 로봇 컨퍼런스에서는 27종의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공개되었다.

경쟁 그 이상의 의미

어쩌면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것은 두 국가가 지닌 서로 다른 세계관과 사회 시스템의 충돌이자, 앞으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벌이는 철학적 대결이기도 하다.

미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은 제조업 생산성 정체, 노동력 부족, 인건비 상승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팬데믹 이후 조기 은퇴자 증가와 임금 상승 압박이 심화되면서, 휴머노이드 기술이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의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로 ‘중국제조 2035’ 같은 장기적 정책을 통해 휴머노이드 산업을 육성한다. 베이징시는 2025년 8월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이미 지난달 21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 최초의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를 열며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하고 있다.

미국은 민간 주도의 혁신과 자본, 플랫폼 경쟁력을,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양산과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주도권 경쟁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시장은 2023년 약 24억 3천만 달러에서 2032년 약 660억 달러로 27배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 가정용 휴머노이드 로봇 보급이 시작되어, 2040년 800만 대, 2050년 6,300만 대까지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의 선택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사실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과거가 있다. 2000년대 초반, ‘휴보’와 ‘마루’는 세계적 수준의 로봇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생기를 잃은 채 전시관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잊혀진 영웅들처럼.

휴머노이드에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성과가 주목받기 시작한 지난해부터다. 다시 말해, 남들이 성공한 후에야 그 가치를 인정한 셈이다. 뒤늦게 로봇 산업 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리고, 국가 첨단 전략 기술로 지정했다.

반면 중국은 이미 2016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로봇 기술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왔다. 춘완이라는 13억 인구가 시청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로봇 기술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한편, 산업적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아니, 어쩌면 우리만의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 부품 기술과 IT 소프트웨어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독자적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미국의 소프트웨어·AI 중심 전략과 중국의 하드웨어·대량생산 중심 전략 사이에서, 한국은 핵심 부품과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면서 산업 현장 적용 사례를 확대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세계 시장을 석권한 K-팝이나 K-드라마처럼, K-로봇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까?

희망의 불씨

국내 휴머노이드 제조 회사 ‘에이로봇’의 연구실에서 로봇 ‘앨리스 4세대’는 인간의 행동을 모방하는 학습에 여념이 없다. 매일 두 시간씩 다양한 동작을 연습한다. 물통을 집어 옮기는 단순한 동작도 로봇에게는 복잡한 계산의 연속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로봇에게는 수많은 변수와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것이 인간과 기계의 차이일 것이다. 아직은.

2016년 춘완에서 540대의 로봇으로 군무를 추던 시절, 우리는 기술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산업화하고 대중에게 보여주는 데는 소홀했다. 중국이 국가적 자부심으로 로봇 기술을 키우는 동안, 우리는 단기 성과에 집중했다.

미국과 중국이 선두를 다투는 휴머노이드 시장에서 한국은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뒤늦은 출발이지만, 기회는 여전히 있다. 우리가 휴대폰 시장에서 그랬듯이, 후발주자로 시작해 선두로 올라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드는 여정은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술의 발전은 멈추지 않는다.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들이 우리 곁에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들과 어떻게 공존하며, 어떤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거인들의 무대에서, 우리는 관객이 아닌 주연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가 지금 내리는 선택에 달려 있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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