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우리는 지금, 컴퓨터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를 목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픈AI가 조니 아이브의 스타트업 ‘io’를 65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로 약 9조 원이다. 오픈AI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다.
조니 아이브.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디자인한 남자. 애플의 황금기를 이끈 디자이너이자, 스티브 잡스가 가장 신뢰했던 동반자. 그가 2019년 애플을 떠난 후 설립한 회사가 바로 io다. 그리고 이제 그 회사가 ChatGPT를 만든 오픈AI의 품으로 들어간다.
전액 주식 거래로 이뤄지는 이번 인수는 단순한 기업 합병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오픈AI는 이미 io의 23%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에 추가로 50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지급해 완전 인수에 나선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처럼 자연스럽게.
io는 작은 회사다. 조니 아이브를 비롯해 애플 출신 디자이너들과 하드웨어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55명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그 55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65억 달러는 오히려 저렴한 투자일지도 모른다.
조니 아이브는 말했다. “지난 30년간 내가 배운 모든 것이 이곳, 이 순간으로 이끌었다는 느낌을 점점 더 강하게 받는다.” 그의 말 속에는 확신이 담겨 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새로운 제품에 대한 확신.
오픈AI의 CEO 샘 올트먼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AI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측면에서 큰 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려면 새로운 종류의 컴퓨팅 폼팩터가 필요하다.”
새로운 종류의 컴퓨팅 폼팩터. 아마도 그것은 스마트폰이 아닐 것이다. 스마트폰을 대체하지도 않을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 화면이 없을 수도 있고, 손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집 안 곳곳에 스며들어 있거나, 우리 몸에 가까이 붙어 있을 수도 있다.
이번 인수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애플과의 관계다. 조니 아이브가 애플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그동안 애플은 AI 분야에서 다소 뒤처진 모습을 보여왔다. 구글의 제미나이, 오픈AI의 ChatGPT가 세상을 놀라게 하는 동안, 애플은 여전히 Siri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애플에게 이번 소식은 분명 자극이 될 것이다. 자신들이 가장 아꼈던 디자이너가 경쟁자와 손을 잡았다는 사실. 그것도 AI 하드웨어라는, 애플이 가장 잘해야 할 분야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픈AI는 이제 자체 하드웨어를 통해 구글, 애플 등 기존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사용자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 것이다. AI 서비스의 배포력과 영향력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WSJ은 이번 협력을 두고 “AI 기반 소비자 기술의 새로운 시대를 예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럴듯한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지금 AI 기술 경쟁의 무게중심이 ‘플랫폼’에서 ‘디바이스’로 이동하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경쟁에서 하드웨어까지 아우르는 전면전으로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구글, 메타, 그리고 애플. 이들 모두가 이제 새로운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특히 중국과 유럽의 IT 기업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내 AI 기술과 하드웨어 역량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제품이 공개되는 것은 2026년이다. 아직 1년이 더 남았다. 하지만 이미 실리콘밸리는 술렁이고 있다. 조니 아이브의 디자인과 오픈AI의 AI 기술이 만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두가 궁금해한다.
올트먼은 “이전에는 결코 없었던 수준의 품질을 갖춘 소비자용 하드웨어 제품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컴퓨터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C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왔듯이, 이제 스마트폰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넘어가는 시점.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조니 아이브가 관여한 제품들은 언제나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었다는 것. 그리고 오픈AI는 지금 가장 혁신적인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이들의 협업에서 나올 제품을 두고 사람들은 벌써 “AI의 아이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연 그럴까. 아이폰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까. 기존 컴퓨터, 스마트폰, 웨어러블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팅 폼팩터가 정말 가능할까.
9조 원. 그 돈의 무게만큼이나 우리의 기대도 무겁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거운 것은 이 일이 가져올 변화의 무게다. AI 기술의 일상화, 사용자 경험의 혁신, 그리고 글로벌 생태계의 재편.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조니 아이브라 해도, 아무리 오픈AI라 해도 말이다. 기술 역사상 화려한 실패작들도 수없이 많았다. 구글 글래스를 기억하는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킨엑트는 어떤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제품들 중 상당수는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다린다.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냐하면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제품들은 대부분 불가능해 보였던 순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2026년, 그들이 내놓을 답을 조용히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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