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라 무라티(Mira Murati)는 특별한 사람이다. OpenAI의 전 CTO로, ChatGPT 개발을 주도했다. 그녀가 회사를 나와 창업한다고 하자, 벤처캐피털들이 달려들었다. 그녀의 이름 하나만으로도 투자자들은 지갑을 열었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경제학이다. 과거에는 공장이 있어야 했고, 제품이 있어야 했고, 매출이 있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사람 하나면 충분하다. 그것도 희소한 사람이면.
‘희소한 사람’이란 무엇인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ChatGPT를 만든 사람들, 그들의 다음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가치가 된다. 실제로 무라티의 팀 중 3분의 2가 OpenAI 출신이다. 이들은 ChatGPT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다. 이런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
20억 달러짜리 빈 서랍
미라 무라티가 20억 달러를 받았다. 그녀가 올해 2월에 설립한 ‘Thinking Machines Lab(씽킹 머신즈 랩)’이라는 회사가 Andreessen Horowitz 주도로 투자를 받은 것이다. 100억 달러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투자 금액이 계속 올라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10억 달러를 목표로 했다가 20억 달러로 2배 증가했다. 기업가치도 9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뛰었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은 회사의 ‘기대값’이 실시간으로 상승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투자 참여 조건이다. 최소 투자 금액이 5,000만 달러였다. 그 돈이 있어야만 게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이것은 이미 부자들만의 게임이다.
5,000만 달러 클럽
이 투자에는 숨겨진 문턱이 있었다. 참여하려면 최소 5,000만 달러를 투자해야 했다. 이것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자격’의 문제였다. 그 돈이 있어야만 게임에 참가할 수 있었다.
일반 투자자는 아예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개인 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고, 중소 벤처캐피털도 어려운 금액이다. 오직 거대 펀드와 억만장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특권층 전용’ 투자였다.
더 흥미로운 것은 회사의 지배구조다. 미라 무라티는 이사회에서 다른 모든 이사들보다 강력한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 창립 주주들의 의결권은 일반 주주들보다 100배 강하다. 20억 달러를 받았지만, 실질적 통제권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다. 돈은 받되 권력은 나누지 않는다. 투자자들은 돈만 대고, 의사결정은 창립자가 독점한다. 민주주의 없는 투자, 책임 없는 자본이다.
기대의 자본주의
투자자들은 무엇을 사는 것일까? 제품을 사는 게 아니다. 가능성을 사는 것이다. 미라 무라티가 다음에 만들 것에 대한 기대, 그녀의 팀이 다시 한 번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
이것은 꽤 합리적인 계산이다. AI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누군가는 다음 ChatGPT를 만들 것이다. 그 누군가가 미라 무라티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지금 투자하는 것이 나중에 투자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위험도 크다. 그녀가 실패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가 먼저 혁신을 이룰 수도 있다. 20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투자자들은 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팅한다.
인재 프리미엄의 시대
AI 시장에서는 인재가 모든 것이다. 알고리즘은 공개되어 있고, 컴퓨팅 파워는 돈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제대로 조합해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소수만이 가지고 있다.
PayPal에서 나온 사람들이 Tesla, SpaceX, LinkedIn, YouTube를 만들었다. Apple에서 나온 사람들이 Nest를 만들었다. 이제 OpenAI에서 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있다. Anthropic의 Dario Amodei, Safe Superintelligence의 Ilya Sutskever, 그리고 이제 Thinking Machines의 Mira Murati까지.
속도의 경제학
AI 분야는 빠르게 변한다. 6개월 후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서 출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너무 느리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속도 때문이 아니라 희소성 때문이다. ChatGPT 급의 혁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몇 명 없다. 그들이 시장에 나타나는 순간, 모든 자본이 달려든다. 늦으면 기회를 놓친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희소한 자원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면 가격이 오른다. 미라 무라티라는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20억 달러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투자자들도 이를 안다. 그래서 제품이 없는 상태에서도 투자한다. 제품을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다른 투자자에게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이다.
버블인가, 혁명인가
이런 현상을 보면 버블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품도 없는 회사에 20억 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정상일까? 1999년 닷컴 버블 때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닷컴 버블 때는 인터넷이 ‘가능성’이었다. 지금 AI는 ‘현실’이다. ChatGPT는 이미 수억 명이 사용하고 있다. 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다.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구조다. 닷컴 버블 때는 누구나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었다. 진입장벽이 낮았다. 하지만 AI는 다르다. 수백억 달러의 자본과 최고 수준의 인재가 있어야 한다.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다.
이것은 버블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구조의 탄생이다. 소수의 거대 기업이 시장을 독점하고, 그들이 만든 기술을 나머지가 사용하는 구조. 미라 무라티는 그 소수 중 하나가 되려는 것이다.
실패의 비용, 놓친 기회의 비용
투자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다. 잘못된 곳에 투자해서 돈을 잃을 위험과, 올바른 곳에 투자하지 않아서 기회를 놓칠 위험.
미라 무라티에게 투자하는 것은 첫 번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녀가 실패하면 20억 달러가 사라진다. 하지만 투자하지 않는 것은 두 번째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녀가 성공하면 수백 배의 수익을 놓치게 된다.
VC들은 이런 계산을 한다. 10개에 투자해서 9개가 실패하고 1개가 대성공하면 전체적으로는 이익이다. 미라 무라티가 그 1개가 될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새로운 가치의 정의
제품이 없는 회사가 100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것은 가치에 대한 우리의 정의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가치는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했다. 공장, 재고, 매출, 이익. 만질 수 있고, 셀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제는 가치가 추상적이고 잠재적이다. 아이디어, 경험, 네트워크, 가능성.
이 변화는 필연적이다. 산업사회에서는 물리적 자산이 중요했다. 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기술이 중요하다. AI 시대에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가장 중요하다.
미라 무라티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공장도, 제품도, 고객도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더 귀중한 것이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 이것이 100억 달러의 가치다.
문제는 이런 가치가 극도로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물리적 자산은 분배할 수 있다. 하지만 창의성과 상상력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이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베팅
결국 미라 무라티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대한 베팅이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믿음, 그 변화를 주도할 사람이 그녀라는 확신에 기반한 베팅.
이런 베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할 때의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체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투자라면 더욱 그렇다.
20억 달러는 큰 돈이다. 하지만 AI가 만들어낼 가치에 비하면 작은 돈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 가치가 언제, 어떤 형태로 실현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제품 없는 회사의 시대
미라 무라티의 사례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런 일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제품이 없어도 사람과 아이디어만으로 거대한 투자를 받는 회사들이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실체 없는 기대와 추측에 기반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가능성에 투자한다. 더 이상 제품이 아니라 사람에게 돈을 건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피한 변화일 수도 있다. AI 시대에는 인간의 창의성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그리고 창의성은 제품으로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저항해야 할까?
방향은 분명하다. 이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 5,000만 달러를 가진 사람들만의 게임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으로. 소수의 특별한 인재들만이 혜택을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다수의 창의성이 존중받는 시스템으로.
미라 무라티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성공이나 실패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제품 없는 회사의 가치가 100억 달러라면, 아이디어 하나의 가치는 얼마일까?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바로 우리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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