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끔 스마트폰 속 앱들이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 밤이 되면 화면 속에서 아이콘들이 저마다의 영역을 넓히려 암투를 벌이는 모습을. 그런 상상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너무 무심하게, 너무 자연스럽게 그 전쟁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황이라는 단어가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쿠팡을 켰다. 월평균 3,329만 명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3천만 개가 넘는 일상의 순간들,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낀 찰나의 욕망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다. (참고 : 와이즈앱·리테일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커머스 앱 이용 현황’)
흥미로운 건 2위부터 4위까지가 모두 ‘배달’과 관련된 앱이라는 점이다. 배달의민족, 당근, 쿠팡이츠.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것들을 집 앞까지 가져다달라고 부탁하게 되었을까. 아니, 부탁이라는 말도 어색하다. 그냥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몇 년 전만 해도 당근은 중고거래의 대명사였다. 이웃과 이웃을 연결하는, 조금은 따뜻한 느낌의 서비스였다. 그런데 지금은 커머스 앱 순위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사고파는 방식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당근이라는 서비스 자체가 변한 것일까.
가장 인상적인 건 성장률이다. 쿠팡이츠가 전년 대비 75.1% 성장했다는 것. 다이소몰이 74.2%. 이 수치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경제가 어렵다고, 소비가 줄었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의 스마트폰은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다이소몰의 성장이 특히 흥미롭다. 다이소라는 브랜드는 ‘싸다’는 것의 상징이었다. 천 원짜리 물건들로 가득한 곳. 그런데 이제는 그 천 원짜리 물건들마저 앱으로 주문해서 집으로 받아보는 시대가 되었다. 굳이 매장에 가지 않아도, 굳이 진열된 상품들 사이를 헤매지 않아도 되는 세상.
지그재그의 38.9% 성장도 눈에 띈다. 패션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사다. 불황이든 호황이든,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새로운 옷, 새로운 스타일에 대한 욕망은 경기와 상관없이 지속된다.
이 모든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선명해진다. 물리적 거리는 의미가 없어졌고, 시간의 개념도 바뀌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받아볼 수 있는 세상.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새로운 일상.
하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이 모든 편리함 뒤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물건을 고르기 위해 매장을 돌아다니던 시간들, 점원과 나누던 짧은 대화들,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뜻밖의 물건들. 그런 것들이 우리 삶에서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3,329만 명이 쿠팡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점점 비슷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앱을 쓰고, 같은 방식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같은 종류의 편리함에 길들여져가면서.
어쩌면 이것이 바로 현대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결과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숫자로 표현되는 일상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원하고, 주문하고, 기다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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