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디지털 노마드’ 이야기
5월 20일,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 비리비리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단어는 ‘Flowith(플로위스)‘였다. 위챗 지수는 하루 만에 120만을 기록했고, X(구 트위터)에서는 초대 코드를 달라는 수천 건의 멘션이 쏟아졌다.
무엇이 이런 광풍을 만들었을까? 바로 AI 에이전트 ‘Neo’였다. 《매트릭스》 주인공의 이름을 딴 이 제품을 만든 회사가 Flowith다. 전체 직원이 열 명뿐인 스타트업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의 나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창업자가 1996년생, 스물여덟 살이다. 나머지는 더 어리다. 한국으로 치면 ‘MZ 세대’가 주축인 팀이 중국 AI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중국에서 나오는 AI 관련 소식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그 중 상당수는 과장된 마케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의 이야기 속에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놓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은 Flowith에 대한 소개가 아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접근 방식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스물여덟 살 CEO의 9년 창업 이력
Derek(니정민, 1996년생)의 이력을 처음 봤을 때 의외였다. 스물여덟 살에 9년의 창업 경력이라니. 한국에서라면 과장으로 여겨질 법한 이력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장은 아니었다. 첫 번째 창업은 2016년, 스무 살 때 시작한 ‘X ACADEMY’라는 과학기술 여름캠프다. “미국 학생들은 과학기술과 창업에 접할 기회가 많은데 중국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더 놀라운 건 이 여름캠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들이 창업한 회사들의 총 기업가치가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으로 치면 KAIST나 포스텍 창업동아리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네트워크를 십대 후반에 만들어낸 셈이다.
Derek의 이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의 ‘선택’들이다. 16세에 수능을 포기했다. 칭화대학교 특별 프로그램의 강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18세에 독일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분위기가 너무 느슨하다”며 자퇴했다. 미국 리버럴아츠 칼리지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했지만 창업을 위해 두 차례나 휴학했다.
한국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들이다. 안정적인 길을 계속해서 포기하면서까지 자신만의 길을 고집하는 모습. 결과적으로 그 선택들이 지금의 Flowith를 만들어낸 바탕이 되었다.
한국에서 이런 이력의 창업자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대학 졸업 → 대기업 경험 → 창업’이라는 공식을 신봉한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수순이긴 하다. 하지만 혁신은 대개 그런 ‘합리적’ 선택에서 나오지 않는다.
“범용 에이전트는 스타트업의 기회가 아니다”
Neo 출시 직후 가장 많이 비교된 제품은 Manus다. 둘 다 AI 에이전트 제품이고, 둘 다 화제성에서 비슷한 수준의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erek은 “제품 전체적으로는 비교할 점이 많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
“Flowith는 AI 창작 도구입니다. Manus는 에이전트 제품이고요. 저희는 창작 분야의 수직형 에이전트이고, Manus는 더 범용적입니다.”
여기서 그의 핵심 논리가 나온다. “범용 에이전트는 스타트업의 기회가 아닙니다.”
Derek의 설명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범용 에이전트는 물리적 세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외식 주문, 실제 사람과의 일정 조율, 물리적 환경 제어 등. 하지만 현재 제품들은 모두 그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범용 에이전트의 종착점은 AGI입니다. 이는 소수 기업이 아니라 전 인류의 목표죠.”
이 관점은 한국의 많은 AI 스타트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일 수 있다. ChatGPT의 성공 이후 수많은 팀들이 ‘범용 AI 어시스턴트’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Derek의 논리대로라면, 그런 방향은 스타트업에게는 승산이 낮은 싸움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와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창작’이라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역 안에서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다른 에이전트 제품들이 20-40단계를 거쳐 1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저희는 5단계로 5-10분 안에 완성합니다. 에이전트가 바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기술 과시가 아니라, 진짜 효율성을 위해서죠.”
Neo의 사용 비용은 동종 제품의 1% 수준이라고 한다. 이런 주장들의 정확성을 검증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명확해 보인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특정한 것을 잘하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

캔버스 인터페이스와 인간-AI 협업의 미래
Neo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기존의 채팅창 방식을 벗어난 캔버스 인터페이스다. 사용자는 일대일 대화가 아니라 여러 AI가 동시에 작업하며 협력하는 환경에서 작업한다.
공동창업자 Zion(우이천, 1998년생)의 설명을 들어보자.
“인간의 사고는 일차원적이지 않잖아요. 과거의 창작 패러다임은 인간이 주도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도구들이 인간에게 최대한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졌죠. 하지만 현재와 미래의 창작 패러다임은 AI가 주도합니다. AI가 더 많이 창작하고, 인간은 더 상위 레벨에서 심미적 판단, 사고, 지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캔버스는 단순한 인터페이스 변경이 아니라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반영한 것이다.
캔버스 형태의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에게 더 높은 학습 비용을 요구한다. 실제로 과거 한국에서 출시된 캔버스 형태의 제품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대해 Derek은 “캔버스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고 답한다.
“대형 언어모델은 본질적으로 병렬 정보 처리기인데, 단일 스레드 채팅창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단일 에이전트에서 멀티 에이전트로 변화하는 트렌드에 맞춰 여러 에이전트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면 이런 형태가 필요하죠.”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사용자 편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오히려 혁신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사용자 편의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약간의 학습 비용을 요구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초기 아이폰이 그랬던 것처럼.

모방과 혁신, 그리고 ‘직접적 대응’의 중요성
지난해 Flowith의 캔버스 인터페이스를 모방한 AI 창작 제품들이 3-4개 나왔다. Derek의 반응은 흥미롭다.
“겉모습만 따라 했을 뿐, 저희가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에 대한 철학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다음 발언이다.
“상업 세계에서 모방은 흔한 일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그런 일을 조금 더 자주 보게 되죠. 많은 창업 회사들이 모방당했을 때 직접적으로 소통하거나 외부에 알리는 것을 주저합니다. 하지만 저는 첫 시간에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한 모방 행위를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낸 말이다. 우리는 ‘조용히 넘어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특히 대기업이나 더 큰 회사가 모방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어차피 이겨봐야 소용없다”, “괜한 적을 만들 필요가 있나” 같은 생각들이 지배적이다.
Derek의 관점은 다르다. 침묵은 그런 행위를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장기적으로는 생태계 전체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기술 벽은 없다, 속도가 전부다”
Derek이 AI 스타트업의 경쟁 환경에 대해 한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것이다.
“현재 AI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 절대적인 기술 벽은 존재하기 어려워요. 결국 승부는 속도에서 갈리고, 속도의 배경에는 인식이 있습니다. 한 발 앞서 계획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죠.”
이 관점은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일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기술적 우위’나 ‘특허’ 같은 전통적인 경쟁 장벽을 찾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런 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AI 분야처럼 변화가 빠른 영역에서는 그런 장벽들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대신 Derek이 강조하는 것은 ‘속도’와 ‘인식’이다. 빠르게 시장의 변화를 파악하고, 빠르게 제품을 개발하며, 빠르게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하는 것.
“저희는 선개발 후공개 방식을 택합니다. 제품이 준비된 다음에 외부에 알리는 거죠.”
이는 제품의 완성도를 우선시하되, 시장 출시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윈난성에서의 집중 개발과 Z세대의 마케팅 감각
올해 4월, Flowith의 전체 팀원 10명이 중국 윈난성으로 향했다. Neo 개발을 위한 집중 작업을 위해서였다. 한 달간 현지에 머물면서 폭포 아래 거대한 바위를 기어오르고, 견수청(현지 버섯)을 먹으며 새로운 경험을 쌓았다.
“새로운 체험이 저희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이 접근법은 개발실이 아닌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여전히 ‘야근 문화’와 ‘고강도 업무’를 미덕으로 여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들의 마케팅 감각이다. X ACADEMY 운영 과정에서 만든 ‘후인류 직업 테스트’가 대표적이다. “2070년 당신의 직업은 무엇일까?”라는 컨셉으로 만든 이 테스트는 하루 만에 수십만 팔로워를 안겨줬다.
Zion의 설명을 들어보자.
“저희 팀은 과학기술과 철학을 교차해서 사고하는 편입니다. 이 게임의 배경 사고는 인간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집착을 갖는다는 점이었어요.”
이는 Z세대 창업자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소셜미디어와 바이럴 마케팅에 노출되어 자랐기 때문에, 어떻게 주목을 끌고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기존 기업들이 제품의 기능이나 성능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구나 심리를 건드리는 콘텐츠를 만든다.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들이 마케팅에서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감각의 부족일 수 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리고 포지셔닝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중국 시장의 특수성과 글로벌 확장의 가능성
Flowith의 성공을 분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 시장의 특수성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언어 시장 중 하나이고, 동시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용성도 상당히 높다. 특히 AI 기술에 대한 중국 사용자들의 반응은 독특하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보다는 편의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하고, 새로운 인터페이스나 사용법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 시장의 경쟁은 극도로 치열하다. 수많은 AI 스타트업들이 난립하고 있고,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거대 플랫폼들도 AI 영역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런 환경에서 Flowith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성공이 글로벌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해외 소셜미디어에서도 Neo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하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다.
글로벌 확장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AI 창작 도구는 특히 언어에 민감한 영역이다. 영어권 사용자들이 중국에서 개발된 AI 도구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던지는 질문들
Flowith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째, 우리는 ‘안정성’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Derek처럼 16세에 수능을 포기하고, 대학을 중퇴하면서까지 자신의 길을 가는 창업자가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이 항상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는 필요하지 않을까?
둘째, 우리는 ‘범용성’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한국 스타트업들이 범용 AI 어시스턴트를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논리대로라면 그런 방향은 스타트업에게는 승산이 낮은 싸움일 수 있다.
셋째, 우리는 ‘모방’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는 모방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문화가 있다. 하지만 그런 문화가 장기적으로는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넷째, 우리는 ‘속도’보다 ‘완성도’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많은 스타트업들은 제품을 완벽하게 만든 다음에 시장에 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AI처럼 변화가 빠른 영역에서는 그런 접근법이 오히려 기회를 놓치게 할 수 있다.
젊음의 힘, 혹은 도전 정신의 가치
Flowith 팀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그들의 ‘도전 정신’이었다. 단순히 나이가 어리다는 뜻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사고방식과 과감한 실험 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현상급 제품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Neo 출시 후 4일 만에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답하는 자신감. “절대적 기술 벽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대기업과의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시장 조사를 철저히 하고, 경쟁사 분석을 꼼꼼히 하며, 위험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접근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합리성’이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Flowith 팀이 보여주는 것은 조금 다른 종류의 합리성이다. 장기적 비전에 기반한 과감한 선택,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학습하는 능력.
에이전트 패밀리와 AI 생태계의 미래
Derek과 Zion은 올해 안에 소셜미디어 콘텐츠 창작, 심층 조사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수직형 에이전트들을 추가로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에이전트 패밀리’다.
“각각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여러 에이전트들이 협력해서 더 복잡하고 고도화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는 AI 생태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제시한다. 하나의 범용 AI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전문화된 여러 AI들이 협력하는 방식. 마치 인간 사회에서 각자 다른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해서 복잡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다.
과연 사용자들이 그런 복잡한 에이전트 생태계를 원할까? 아니면 여전히 하나의 간단한 인터페이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할까? 이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Flowith 팀이 그런 미래에 대한 나름의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험하는 자들과 구경하는 자들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과연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실제 사용자들에게 의미 있는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수직형 에이전트 전략이 범용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까? 캔버스 인터페이스가 일반 사용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AI의 협업 방식은 정말로 그들이 예측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답이 없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포인트일 수도 있다. Flowith와 같은 팀들이 그런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 말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돌아보면, 우리는 대체로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영역에서 경쟁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을 한국 시장에 맞게 최적화하거나, 해외에서 성공한 제품을 로컬라이징하는 식으로. 안전하고 합리적인 접근법이긴 하다. 실패 확률도 낮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런 접근법으로는 진짜 혁신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혁신은 대개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Derek이 16세에 수능을 포기한 것도, Zion이 대학 시절부터 창업에 뛰어든 것도, 전체 팀이 윈난성으로 가서 한 달간 집중 개발을 한 것도, 어찌 보면 모두 그런 실험들이다. 성공할지 실패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한국에서는 그런 실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실패에 대한 관용도 낮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검증된 길’을 선택하게 된다.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구경하는’ 쪽에 서게 되는 것 같다. 중국의 Flowith나 미국의 여러 AI 스타트업들이 하는 실험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저런 것을 해봤으면…” 하고 아쉬워하는.
물론 모든 실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Flowith의 시도 역시 실패로 끝날 수 있다. Neo가 화제성에 비해 실제 시장에서는 외면받을 수도 있고, 에이전트 패밀리라는 비전이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은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배울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 몇 년간 AI 분야에서는 수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 중 일부는 성공할 것이고, 대부분은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서 진짜 혁신이 나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여전히 구경하는 쪽에 서 있을까, 아니면 직접 실험하는 쪽에 서 있을까?
Flowith의 이야기는 결국 그런 질문을 던진다. 완벽한 성공 사례로서가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용기 있는 실험의 사례로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실험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모두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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