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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톺아보기] 디지털자산기본법, 171개 조문이 그린 ‘제도화 청사진’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대표 발의한 ‘디지털자산기본법안’은 우리나라 디지털자산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는 입법이다. 총 171개 조문, 10편으로 구성된 이 법안을 면밀히 살펴보면, 기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한계를 뛰어넘어 디지털자산의 전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통합 법제의 면모가 드러난다.

법안은 크게 3개 층위로 설계됐다. 1편(총칙)에서 4편(디지털자산업)까지는 기본 개념과 업종별 진입·운영 체계를, 5편(발행 및 유통)에서 7편(협회 등)까지는 디지털자산의 생성부터 유통까지의 생애주기를, 8편(감독 및 처분)에서 10편(벌칙)까지는 사후 규제와 처벌 체계를 다룬다.

주목할 점은 디지털자산의 정의다. 법안 제3조는 디지털자산을 “분산원장에 디지털 형태로 표시되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서 거래 또는 이전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게임 아이템이나 선불전자지급수단 등 7가지를 명시적으로 제외했다. 이는 디지털자산의 범위를 명확히 하여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안의 핵심은 업종별로 차별화된 3단계 규제 체계다. 자기자본 5억원 이상이 요구되는 인가제는 디지털자산매매업·중개업·보관업에 적용된다. 이들은 직접 이용자 자산을 다루는 핵심 업종으로, 가장 엄격한 요건이 부과된다.

자기자본 1억원 이상의 등록제는 지갑관리업·집합관리업·일임업·자문업이 대상이다. 특히 일임업과 자문업에는 디지털자산운용인력이나 매매권유자문인력 확보 의무가 부과돼 전문성을 담보하도록 했다.

상대적으로 간소한 신고제는 주문전송업과 유사자문업에 적용된다. 이는 업무의 성격상 이용자 자산을 직접 취급하지 않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법안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스테이블코인(자산연동형 디지털자산) 제도다. 제103조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인은 별도 인가를 받아야 하며, 자기자본 5억원 이상과 환불준비금 적립 계획을 갖춰야 한다.

핵심은 제103조 제3항의 도산절연 조치다. “누구든지 발행인이 적립한 환불준비금을 상계·압류하지 못하며, 발행인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외에는 환불준비금을 양도하거나 담보로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이는 발행인이 도산하더라도 이용자의 환불권을 보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다.

법안은 정부와 민간의 역할을 명확히 분리했다. 대통령 직속 디지털자산위원회(제15조)는 정책 수립과 조정을, 한국디지털자산업협회(제122조)는 실무적 자율규제를 담당한다.

디지털자산위원회의 특징은 민간 전문성 강화다. 위원장 포함 30명 이내로 구성되지만, 공무원이 아닌 위원이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이는 기존 정부 위원회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협회 내 두 위원회의 역할 분담도 주목할 만하다. 거래지원적격성평가위원회(제130조)는 디지털자산의 거래소 상장을, 시장감시위원회(제132조)는 불공정거래 감시를 담당해 견제와 균형을 이룬다.

법안의 처벌 조항은 기존 금융법 수준을 뛰어넘는다. 제163조에 따르면 미공개중요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등을 한 자는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위반행위 이익의 4배 이상 6배 이하 벌금에 처한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제163조 제2항이다. 위반행위 이익이 5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이 가능하다. 금융범죄에 무기징역까지 가능하다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다.

법안은 단계적 시행을 통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려 했다. 기본 조항은 공포 후 3개월, 인가·등록·신고 관련 규정은 공포 후 1년 이내 시행된다.

기존 사업자에 대한 배려도 눈에 띈다. 부칙 제4조는 현재 가상자산업을 영위하는 사업자가 법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2개월 이내에 신고하면, 요건을 갖춘 경우 법 시행일에 인가·등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민병덕 의원이 이 법안을 “규제법이 아니라 가드레일 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엄격한 틀 안에서 창신을 허용하겠다는 의지다.

한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하며, 최신 창업 트렌드와 기술 혁신의 흐름을 분석해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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