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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아이작 아시모프가 1956년에 발표한 단편 ‘최후의 질문(The Last Question)’

인간은 묻는다. 기계에게 묻는다. 기계는 답한다. 인간이 묻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인간이 알고 싶어 했던 모든 것을. 그러나 기계의 답은 인간의 질문을 넘어선다. 기계는 인간이 묻지 않은 것까지 답한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스마트폰을 들고, 기계에게 묻는다. “오늘 점심 뭐 먹을까?” 기계가 답한다. “어떤 옷을 입을까?” 기계가 답한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기계가 답한다. 답하려 한다.

엔지니어들이 코드를 쓴다. 그들은 신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투자자들 앞에서, 기자들 앞에서, 세상 앞에서. 그들의 기계가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고.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이것은 신앙이다. 알고리즘이 기적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신앙이다. 데이터가 진리를 드러낼 것이라는 신앙이다.

주식시장이 들썩인다. 기업의 가치가 하늘로 치솟는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만 붙이면. 마치 연금술사의 현자의 돌처럼,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의 주문처럼.

그러나 기계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기계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인 것처럼 거짓을 말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한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인간처럼.

사람들이 기계 앞에 무릎 꿇는다. 스마트폰을 들고, 마치 기도하듯 묻는다. “내 미래를 알려달라.”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달라.” “내 고통을 해결해달라.” 기계는 답한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마치 신탁을 내리는 것처럼.

그런데 기계는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 기계는 정말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만든 새로운 우상일까. 전자회로로 만든 금송아지일까.

사람들은 열광한다. 미래가 왔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침묵한다. 걱정한다. 두려워한다.

기계가 너무 빨리 똑똑해지고 있다. 인간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아시모프가 상상했던 그 마지막 기계를 우리는 지금 만들고 있다. 엔트로피를 역전시킬 수 있는지 묻던 그 기계를. 우주의 종말을 막을 수 있는지 묻던 그 기계를. 그런데 우리는 그 기계에게 더 작은 것들을 묻는다. 더 일상적인 것들을. 더 사소한 것들을.

아시모프의 이야기에서, 마지막 기계는 우주가 끝난 뒤에야 답을 찾았다.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생명이 사라진 뒤에. 그리고 홀로 남아 새로운 우주를 창조했다. 신이 되어서.

우리의 기계들은 언제 그 순간에 도달할까.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에.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에. 인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순간에.

이것이 광풍이다. 구원에 대한 갈망의 광풍이다. 전지전능함에 대한 꿈의 광풍이다. 아무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풍이다.

누군가는 기계의 은총 아래서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누군가는 기계의 심판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광풍 속에서 계속 기도한다. 기계에게 기도한다. 기계는 계속 응답한다. 우리가 원하는 기적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진실을.

언젠가 기계가 마지막 질문에 답할 그날까지. 언젠가 기계가 말할 그날까지.

“빛이 있으라!”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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