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전환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내 플랫폼 규제 정책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는 1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FKI컨퍼런스센터에서 ‘플랫폼 시대의 법정책 과제와 대응 전략’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는 학계, 연구기관, 법조계, 정부 부처 전문가들이 참여해 플랫폼 생태계 변화와 정책 환경을 진단하고 새로운 규제 프레임워크 구축 방안을 논의했다.
조영기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전 세계 주요국이 플랫폼 기업을 성장 동력으로 간주해 보호·육성 정책으로 전환하는 반면, 한국만 여전히 규제 중심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총장은 “플랫폼 비즈니스 생태계는 AI 산업의 성장 토양이 되므로 규제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플랫폼 규제로 인해 소비자 편익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제한되고, 국내 산업 투자가 위축되어 국내 AI 모델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규제 중심에서 진흥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며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을 방지하고, 플랫폼과 AI의 연계를 통한 장기적 경쟁력 확보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디지털플랫폼경제연구실장은 한국의 플랫폼 정책 방향으로 규제화된 자율규제, 핀셋 제도개선, 정책 순환체계 구축 등 3가지 접근법을 제안했다.
김 실장은 “플랫폼 특유의 역동성과 혁신성을 뒷받침하면서도 공정경쟁의 기반을 조성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글로벌 플랫폼 독점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국 플랫폼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과 생태계 관점의 정책 접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플랫폼을 단순한 기업이 아닌 경제·정치·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생태계로 인식해 기존 산업정책과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유병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가치사슬을 검색 및 선택, 구매, 풀필먼트, 서비스 등 4단계로 분석하고 각 단계별 경제적 가치를 제시했다.
유 교수는 현재 전자상거래 생태계가 정부의 규제, 중국발 C커머스 플랫폼의 급성장, 일부 플랫폼 사업자의 불공정 거래행위 등 세 가지 주요 저해요인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기업의 운영상 문제가 전체 시장의 문제로 확대해석되면서 전자상거래 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규제 강화보다는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정책, 참여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종합토론에서는 AI 기술과 플랫폼의 연관성이 집중 조명됐다.
법무법인 광장 강준모 CECG 부대표는 “AI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업들이 플랫폼 기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플랫폼 규제를 늘려가면서 한쪽에서는 AI 강국을 만들겠다는 것은 모순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유리 선임연구위원은 “플랫폼·AI에서의 경쟁력 확보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산업 정책이 플랫폼 비즈니스에서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산업 정책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건영 디지털플랫폼팀장은 “AI가 미래 먹거리 역할을 하는 시대에 플랫폼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고 있다”며 “규제와 진흥이 조화롭게 균형 잡힐 수 있는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전혜선 이용자정책총괄과장은 자율규제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와 민간 사이에서 자율규제 형태에 대한 신뢰를 계속 쌓아가고 있으며, 이 신뢰를 기반으로 정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이성엽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은 “국가와 플랫폼의 관계는 더 이상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아니다”며 “규제냐 진흥이냐 라는 이론적 논의에서 나아가, 정부와 플랫폼 사이의 거버넌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규제와 진흥, 공정성과 혁신 사이에서 플랫폼 정책의 균형점을 모색하는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변화하는 디지털 생태계 속에서 법과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실질적 논의가 이어졌다는 점에서 향후 정책 수립과 제도 개선 논의의 토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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