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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46% ‘AI 자동화 원한다’…하지만 정작 필요한 곳엔 투자 1%뿐

스탠포드 대학교 1,500명 대상 최초 대규모 조사…”고부가가치 업무 집중하고 싶어”

AI 에이전트(인공지능 자율 프로그램)가 본격적으로 직장에 도입되는 가운데, 미국 근로자 절반 가량이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의 자동화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탠포드 대학교 연구진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104개 직업군의 1,500명 근로자와 52명의 AI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Future of Work with AI Agents:Auditing Automation and Augmentation Potential across the U.S. Workforce) 결과, 46.1%의 업무에서 근로자들이 AI 에이전트 자동화에 긍정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잠재적 실직 우려와 업무 만족도 감소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한 후에도 나타난 결과여서 더욱 주목된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단순 설문조사와 차별화된 방법론을 도입했다. 연구진은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음성 인터뷰 방식을 통해 더욱 자연스럽고 깊이 있는 응답을 이끌어냈다.

미국 노동부의 O*NET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2,131개 업무를 287개 직종으로 체계화한 후, 컴퓨터로 수행 가능한 업무만을 선별했다. 각 업무에 대해 최소 10명 이상의 실제 종사자가 평가에 참여하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최종적으로 844개 업무가 분석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실제 직장에서 월 1회 이상 수행되는 업무들이다.

자동화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부가가치 업무를 위한 시간 확보'(69.38%)였다. 이어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46.6%), ‘업무 품질 개선 기회'(46.6%),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25.5%) 순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세무사의 ‘고객 약속 일정 조정'(5.0점), 공공안전 통신사의 ‘응급전화 파일 관리'(4.67점), 급여 담당자의 ‘임금 조정 기록'(4.60점) 등이 자동화 선호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반면 편집자의 ‘기사 작성'(1.60점), 물류 분석가의 ‘공급업체 연락'(1.50점), 여행사 직원의 ‘고객 수하물 추적'(1.50점) 등은 자동화를 강력히 거부하는 업무로 나타났다.

한 아트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AI를 콘텐츠 창작에는 절대 사용하지 않겠다. 워크플로우를 개선하고 반복적이고 지루한 업무를 줄이는 용도로만 활용하겠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번 연구에서 주목할 점은 연구진이 도입한 ‘Human Agency Scale(HAS)’라는 새로운 척도다. 이는 기존의 ‘자동화 vs 비자동화’ 이분법을 넘어 인간과 AI의 협력 수준을 5단계로 세분화한 것이다.

H1(AI 완전 독립)부터 H5(지속적 인간 개입 필수)까지 나뉘는데, 놀랍게도 H3(동등한 파트너십)이 104개 직업 중 47개에서 가장 선호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는 45.2%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특히 수학자나 항공우주 엔지니어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종에서는 H5(필수적 인간 개입) 수준을 선호했다. 한 수학자는 “현재로서는 AI가 수학 연구에 무용지물”이라며 “AI가 기존에 제안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핵심 질문”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이 Claude.ai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자동화를 가장 원하는 상위 10개 직종의 실제 AI 사용률이 전체의 1.26%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는 현재 AI 도구들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기존 AI 사용 패턴은 얼리어답터나 특정 직종에 편중되어 있어, 실제 현장 수요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흥미로운 것은 근로자와 AI 전문가 간 인식 차이다. 전체 844개 업무 중 26.9%에서만 근로자와 전문가가 같은 HAS 수준을 선택했다. 47.5%의 업무에서는 근로자들이 전문가보다 더 많은 인간 개입을 원했다.

이는 기술적으로는 자동화가 가능하지만 근로자들이 여전히 인간의 역할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특히 자동화 욕구는 일자리 상실 우려(상관계수 -0.223)와 업무 즐거움(상관계수 -0.284)과 부정적 상관관계를 보였다.

연구는 현재 투자 방향과 실제 현장 요구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지적했다. 근로자 요구와 기술 역량을 기준으로 업무를 4개 구역으로 나눈 결과, Y컴비네이터 투자 기업의 41.0%가 ‘낮은 우선순위’와 ‘신중 접근’ 구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투자가 집중된 상위 5개 직종은 컴퓨터정보시스템 관리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컴퓨터시스템 엔지니어/설계자, 소프트웨어 품질보증 분석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분석가 등 소프트웨어 개발과 비즈니스 분석 분야에 편중되어 있었다.

반면 AI 에이전트 연구 논문들은 상대적으로 ‘R&D 기회’ 구역에 더 집중되어 있어 고무적이지만, 여전히 컴퓨터 과학과 엔지니어링 분야에 한정되어 있다는 한계를 보였다.

연구는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직장 내 핵심 역량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임금 수준과 AI 시대 인간 개입 필요도를 비교 분석한 결과, 세 가지 주요 트렌드가 나타났다.

첫째, 전통적으로 고임금을 받았던 ‘데이터 분석’이나 ‘지식 업데이트’ 등 정보 처리 기술의 중요성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조직 계획 및 우선순위 설정’, ‘교육 및 지도’, ‘의사소통’ 등 대인관계 및 조직 운영 기술의 중요성이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셋째,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술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산업별로는 뚜렷한 온도차가 나타났다. 컴퓨터/수학 분야에서는 53.8%의 업무가 자동화에 긍정적이었지만, 예술·디자인·미디어 분야는 17.1%에 그쳤다.

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AI는 데이터 분석 워크플로우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내 디자인은 직접 만든다. 연구용으로만 AI를 사용한다”고 명확한 경계를 설정했다.

AI 자동화에 대해 두려움이나 우려를 표현한 28%의 근로자들은 ‘AI 정확성·신뢰성·역량 부족'(45.0%), ‘일자리 대체 두려움'(23.0%), ‘AI의 인간적 특성이나 역량 부재'(16.3%)를 주요 우려사항으로 꼽았다.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근로자들이 선호하는 AI 협력 방식도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23.1%는 ‘역할 기반 지원'(특정 역할이나 개인화된 기능을 체현하는 AI 시스템)을 원했고, 23.0%는 ‘보조적 지원'(워크플로우 일부 또는 전체에 대한 지원 도우미), 16.5%는 ‘순수 자동화’를 선호했다.

Anthropic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초 기준으로 36%의 직업에서 근로자들이 업무의 25% 이상에 AI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약 80%의 미국 근로자가 업무의 최소 10%에서 대형 언어모델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며, 19%는 업무의 절반 이상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연구는 AI 에이전트 역량과 근로자 선호도를 동시에 조사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라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현재 104개 직업만을 다뤄 전체 287개 컴퓨터 사용 직업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한 한계도 있다.

또한 2025년 초 기준의 AI 역량 평가이므로,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고려할 때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번 연구가 보여준 것은 명확하다. 근로자들은 이미 AI와의 협력 방식을 알고 있다. 문제는 기술 개발자와 투자자들이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AI 혁명은 더 똑똑한 기술이 아니라, 현장의 수요와 개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될 것이다.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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