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996은 축복”이라며 장시간 근무를 옹호해 논란을 일으킨 이후 지난 6년 간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근무시간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장시간 근무가 일상화돼 있어,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평가다.
‘996은 축복’ 마윈 발언, 논란의 시작
알리바바는 창업 초기 장시간 초과 근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복대 착용을 홍보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장려했다. 마윈은 창업 초기 투자자들에게 “아침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사람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대적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윈은 2019년 4월 사내 행사에서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에서 996 근무를 하는 건 우리가 만들어낸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회사나 사람들이 996근무를 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한다”며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어떻게 성공하길 바라는가”라고도 반문했다.
996 근무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하는 것으로, 하루 12시간, 주 72시간 근무에 해당한다.
마윈의 발언은 즉각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네티즌들은 “자본가의 진면목을 드러냈다”며 비판했고, 관영 언론인 인민일보도 “996 근무는 노동법 위반”이라며 거리를 뒀다.
‘896’으로 확대됐다가 정부 규제 시작
마윈의 발언으로부터 5년이 지난 2024년, ‘996’에서 더 나아간 ‘896’ 근무제가 등장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 1위 닝더스다이(CATL)가 그 중심에 있었다.
2024년 6월 17일 중국 SNS 웨이보에 CATL이 ‘896(오전 8시~오후 9시, 주 6일 근무)’ 근무제를 시행했다는 소식이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매일 오전 8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 방식으로 100일간 분투할 것을 요구했다.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이를 적용하지 않아 내부 직원들의 비판이 제기됐다.
CATL의 초과근무 압박은 시장 점유율 하락과 3개월 연속 배터리 업계 2위 기업 BYD와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2024년 5월 CATL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43.87%로 전월 대비 0.77%포인트 감소하며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중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와 최고인민법원은 2021년 8월 초과 근무와 관련한 노동쟁의 사례를 제시하며 996 노동 관행이 불법임을 명확히 했다. 정부가 과도한 경쟁 속 기업과 직장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규제에 나서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2025년 2월 말부터 중국 최대 드론 제조업체 DJI는 오후 9시 퇴근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오후 9시가 되면 의무적으로 퇴근해야 하며, 메이디, 하이얼 등도 유사한 조치를 도입했다.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는 2021년 11월 ‘1075(오전 10시~오후 7시, 주 5일 근무)’ 근무제를 도입했다.
법과 현실의 괴리
중국의 사례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준다. 중국 노동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일일 근무 시간은 8시간,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44시간을 초과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 규정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베이징의 한 기술 회사 직원은 “우리는 더 이상 초과근무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만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뿐”이라며 “보통 오후 9시 30분이나 10시쯤 일을 마치고, 때로는 오후 11시까지 퇴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업량을 동시에 줄이지 않으면 단축된 근무 시간에 더 정신없이 바빠질 것”이라며 조기 퇴근이 오히려 더 많은 업무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광둥성 개혁협회의 펑펑 회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시장 변화와 번아웃 방지 정책에 부합하는 것이 상호 이익”이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이 직장 규범을 재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마윈의 ‘996 축복론’에서 시작된 논란은 6년여의 사회적 논쟁을 거쳐 일부 대기업의 근무시간 개선 조치로 이어졌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교훈은 명확하다. 법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업무 방식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실질적 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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