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시장 규모만 보면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5배 크지만, 글로벌 유니콘 배출 실적은 정반대다. 인구 1000만 명도 안 되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스타트업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이 미국 진출 전략에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미국에 거점을 둔 이스라엘 유니콘 88개사를 분석한 ‘이스라엘 유니콘의 미국 진출 전략’ 보고서는 4가지 전략을 다룬다.

가장 많은 기업(47.7%)이 택한 전략은 ‘VC 주도 PMF 및 GTM 가속화’다. 미국 벤처캐피털을 단순한 투자자가 아닌 사업 파트너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표적 사례가 AI 기반 영업 솔루션 기업 Gong이다. 2015년 창업한 Gong은 이듬해 미국 VC 노르웨스트 벤처 파트너스로부터 시드 투자를 받으며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다. VC는 자금뿐 아니라 주요 경영진 채용, 고객 연결,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과의 네트워킹까지 지원했다.

특히 Gong이 초기 제품-시장 적합성(PMF) 찾기에 실패했을 때도 VC가 인내 자본과 전략 조언을 제공해 위기를 넘겼다. 그 결과 2020년 기업가치 22억 달러로 유니콘에 등극했다.

19.3%의 기업이 선택한 ‘생태계 연계 진출’은 기존 산업 플레이어와 협력해 시장에 안착하는 전략이다.

물류 테크 기업 Bringg은 2014년 미국 진출 후 아마존 같은 거대 물류업체와 정면승부를 피했다. 대신 3PL(제3자 물류) 업체, 세일즈포스·오라클 같은 SaaS 기업, 코카콜라 같은 전략적 투자자와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런 ‘상생 전략’으로 2021년 유니콘이 됐다.

같은 비율(19.3%)로 나타난 세 번째 전략은 ‘글로벌 검증 후 미국 스케일업’이다. 미국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시장에서 먼저 성공한 뒤 이를 레퍼런스 삼아 미국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앱 마케팅 플랫폼 AppsFlyer가 대표 사례다. 2011년 창업 후 유럽과 아시아에서 먼저 고객을 확보하고 2015년 업계 표준 지표인 ‘AppsFlyer Performance Index’를 발표해 권위를 쌓았다. 이후 2014년 미국에 진출해 “이미 검증된 솔루션”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급성장했다.

나머지 13.6%가 택한 ‘기술 기반 니치 확장’ 전략은 독보적 기술로 틈새시장을 선점한 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로보틱스 물류 업체 Fabric은 2019년 미국 진출 당시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대기업과 경쟁하지 않았다. 대신 좁은 공간에서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마이크로 풀필먼트 기술로 뉴욕 도심 소규모 식료품점이라는 명확한 틈새를 공략했다. 성공 후 월마트, 인스타카트로 확장해 2021년 유니콘이 됐다.

보고서는 이스라엘 성공의 핵심을 ‘글로벌 우선’ DNA라고 분석했다. 작은 내수 시장 때문에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환경이 오히려 장점이 됐다는 것이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한국은 내수 시장이 이스라엘보다 크지만 글로벌 유니콘으로 성장하려면 결국 해외 진출이 필수”라며 “이스라엘 사례는 우리 스타트업이 참고할 실질적 모델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 중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쿠팡이나 크래프톤 같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아시아 시장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보고서는 한국 스타트업을 위한 구체적 조언도 제시했다. 창업 초기부터 영어 기반 문서화 체계를 구축하고, 미국 VC와의 네트워크를 적극 개발하며, 현지 영업·마케팅 인재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진출 여부가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출할지가 핵심”이라며 “자사의 기술 특성과 시장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