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유명 화가에게 거금을 주고 멋진 초상화를 부탁했거나, 실력 좋은 건축가에게 의뢰해 꿈에 그리던 집 설계도를 손에 넣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기획도, 자금도 모두 의뢰자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초상화와 설계도의 저작권도 의뢰자에게 있을까요?
우리는 흔히 돈을 지불했거나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면 저작권도 가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저작권법은 저작자를 판단하는 독자적인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창작물 의뢰자의 법적 지위에 대해 이번 칼럼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창작을 의뢰한 자, 즉 위임이나 도급계약 등에 통해 타인에게 창작을 맡긴 자는 원칙적으로 저작자가 아닙니다.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에서 수임인이나 수급인은 위임인이나 도급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지휘감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재량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초상화의 의뢰자, 건축설계를 의뢰한 건축주처럼 제작 기회를 제공한 자는 저작자로 볼 수 없습니다. 의뢰자가 창작을 기획하고 투자를 하였다고 해도 직접 창작에 관여하지 않은 이상 마찬가지입니다.
종업원이 업무 과정에서 저작물을 창작한 경우에도 저작자는 종업원이며, 원시적으로 저작권을 가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번역사무실을 차려놓고 어학에 능통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번역을 시켰다면, 저작자는 실제로 번역을 한 번역자이지 번역사무실의 운영자가 아닙니다.
다만 예외도 있습니다. 법인이나 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 하에 종업원이 피용자의 지위에서 업무상 작성하여 법인의 명의로 공표되는 저작물(업무상저작물)의 경우 계약이나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한 그 법인 등이 저작자가 됩니다(저작권법 제2조 제31호, 제9조).
구체적인 사례에서, 단순히 창작을 의뢰한 것인지(이 경우 제작자가 저작자로 됨) 아니면 사용자와 피용자의 관계에 있는 것인(이 경우 저작권법 제9조에 의하여 사용자가 저작자로 될 수 있음)는 판단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업무상저작물을 설명하면서 다시 보기로 하겠습니다.
또 하나 문제가 되는 상황은, 의뢰자가 스스로 저작물의 작성 기획을 주도하고 저작자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창작 과정에서 세부적인 주문이나 지시를 내려 자신의 의도대로 저작물을 작성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의뢰자가 저작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지시의 정도와 구체성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실제 저작물을 작성한 사람을 저작자로 보아야 합니다. 일본 동경지방법원 1964. 12. 26. 판결(일명 ‘파노라마 지도’ 사건)에서는, 원고가 파노라마 형식의 동경 시내 지도 제작을 기획하고, 편집부원들에게 현지 답사 및 도로의 주요부분을 공중 촬영하는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게 한 후, 화가 A에게 자료를 제공하며 지도를 제작하도록 의뢰한 사안이 있었습니다.
이때 원고는 지도의 도안·도형·색채는 물론이고 지도에 들어갈 주요 도로나 건물, 시설 등에 이르기까지 상세한 지시를 하였습니다. 화가 A도 그러한 지시에 따라 지도를 작성했지만, 화가 A가 지도를 제작함에 있어서 원고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와 답사결과에 기초하였고 또 원고의 지시를 가능한 한 화면에 담고자 노력하였지만, 그것을 도형이나 그림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함에 있어서는 그의 화가로서의 예술적인 감각과 기술이 구사되었고, 스스로의 창의와 수단에 따라 원고로부터 의뢰 받은 지도의 원화(原畵)를 제작하였습니다. 법원은 이 경우 지도의 저작자는 화가 A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일본 동경지방법원 1961. 10. 25. 판결에서는, 과학잡지에 게재할 목적으로 출판사의 편집방침에 따라 세부적인 지시를 받아 동물의 생태를 묘사한 원화(原畵)를 사실적으로 그린 경우가 있었습니다. 법원은 미술화가로서의 감각과 기술에 의한 창조적인 정신적 노력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출판사가 아니라 화가에게 원화에 대한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저작물을 기획하고 저작자에게 지시나 주문을 하며 자료를 제공하였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그것 만으로는 의뢰자가 저작물의 저작자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저작물을 작성을 맡겼더라도 실제로 작성에 종사하는 자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고 사실상 자신의 수족처럼 사용하여 저작물을 완성한 경우라면, 그 지시에 의하여 저작물의 작성에 종사한 자는 저작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저작자의 보조자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위탁자가 구체적이고 상세한 지시를 하고, 수탁자는 기계적으로 이를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면 위탁자가 저작자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 하급심 판결 중에는 발주자가 지엽적인 부분까지 상세하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고, 모두 직접 교정을 보는 등 최종 마무리까지 직접 주도한 경우, 수탁자 측이 직업적으로 궁리하고 노력한 점은 인정되지만 창작적인 요소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발주자를 창작자로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지시 내용이나 구체성 따라서는 의뢰자를 저작물의 공동저작자로 보아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작물의 작성을 의뢰한 자를 저작자로 볼 것인지의 여부는 일률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구체적인 사례마다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순한 지시와 창작적 기여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업무상 저작물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사전에 법률전문가의 상세한 법률 검토를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첨예한 전략 및 저작권 문제에 대해 법무법인 비트 TIP(Technology, Intellectual Property)팀은 저작자 판단, 침해 대응, 계약 해지 등 수많은 저작권 사안을 검토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이고 전문적인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트의 TIP팀은 저작권 분쟁에 관한 특화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장을 역임하며 저작권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승종 변호사,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안일운 변호사, 그리고 저작인격권 침해 소송 승소 사례를 다수 보유한 전용환 변호사를 중심으로 저작권 분쟁을 사전 계약 단계부터 관리하고 분쟁에 대한 전략을 제시해 드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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