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nAI DevDay 2025 발표를 보며: 2008년의 기시감
얼마전 만난 지인이 프로그래밍 학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요즘 바이브 코딩이 유행이잖아. 그래도 코딩을 배워야 제대로 이해하지 않겠어?” AI 시대 적응을 위한 대책이란다.
나는 집에 돌아와 『강철의 연금술사』 작가 아라카와 히로무의 인터뷰를 다시 찾아봤다.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가 한 일. 학원을 알아본 것도, 책을 산 것도 아니었다. 펜촉을 샀다. 그리고 바로 그리기 시작했다.
10월 6일, 나는 책상 앞에서 OpenAI DevDay 2025 스트리밍을 켰다. 화면 속 샘 알트먼을 보면서, 나는 이 두 장면을 떠올렸다.
화면 속 풍경
샌프란시스코 Fort Mason에 모인 1,500명의 개발자들. 무대에 선 샘 알트먼이 흥미로운 말을 했다. “20대 초반 중퇴자들이 부럽다.”
2005년 스탠포드를 중퇴한 그가, 2025년의 20대를 부러워한다. 왜일까?
숫자를 보면 짐작이 간다. ChatGPT 주간 사용자 8억. 개발자 400만. API 토큰 처리량은 2년 만에 20배 증가해 분당 60억 개. 그리고 이날 발표된 Apps SDK는 이 8억 사용자에 대한 즉시 접근권을 개발자들에게 준다.
알트먼이 창업하던 2005년에는 상상도 못 할 숫자다.
17년 전의 기시감
2008년 7월 11일이 떠올랐다. 애플이 아이폰 앱스토어를 열던 날. “이제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다”는 홍보 문구를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앱을 만들어봐야지.’
Objective-C 책을 샀다. 두껍고 어려웠다. 온라인 강의를 수강했다. 그리고 몇년 뒤 첫 앱을 출시했다.
그 사이에 Instagram은 10억 달러에 팔렸고, Uber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내 앱? 2000여 명이 다운로드했다가 잊혔다.
당시 성공한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대부분 비슷했다. “튜토리얼 하나 따라하고 바로 만들기 시작했어요. 망하면서 배웠죠.”
그들은 펜을 샀다. 나는 학원을 알아봤다.
화면 속의 시연
DevDay 화면에서 로메인 휴엣 OpenAI 총괄이 실시간 시연을 했다. Sony FR7 카메라를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30년 된 VISCA 프로토콜이 필요했다.
그는 Codex에게 설명했다. 시스템은 프로토콜을 학습했다. 정확한 헤더를 식별했다. 작동했다. 이어서 Xbox 컨트롤러를 통합하고, 조명을 제어하고, 음성 명령으로 앱을 재프로그래밍했다.
“코드를 손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화면 너머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나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2008년 앱스토어가 열렸을 때도, 누군가는 무대에서 “이제 누구나 앱을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때 “준비”를 선택했다.
89세 은퇴자의 선택
알트먼이 소개한 사례 중 하나. 일본의 89세 은퇴자가 ChatGPT로 독학해 고령자용 아이폰 앱 11개를 만들었다.
그는 코딩을 배웠을까? 아니다. 만들고 싶은 게 있어서 ChatGPT에게 물어보기 시작했고, 만들면서 배웠다.
내 지인은 지금 프로그래밍 학원의 3개월 커리큘럼을 검토 중이다.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Python 문법, 자료구조, 알고리즘.
89세 은퇴자는 그 시간 동안 11개의 앱을 만들었다.
변곡점의 증거들
DevDay에서 발표된 것들:
Apps SDK – ChatGPT 내부에서 완전한 앱 구축 가능 AgentKit – 8분 만에 AI 에이전트 구축 Codex – 코딩 없이 소프트웨어 생산
Cisco는 Codex 도입 후 코드 리뷰 시간을 50% 단축했다. OpenAI 내부 엔지니어는 주당 풀 리퀘스트를 70% 더 만든다. 출시 이후 40조 토큰을 처리했다.
알트먼은 “Abundant Software” 시대를 말했다. 과거에는 개발자가 제한적이어서 소수의 범용 앱만 존재했다.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만든다.
애리조나 주립대 의대생은 환자 대화 연습 앱을 만들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예술품과 대화하는 앱을 만들었다. 코딩을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숫자가 말한다. API 사용량이 사용자 증가보다 빠르게 늘고 있다. 사용자는 8배, API는 20배. 개발자들이 더 복잡하고 깊게 통합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두 부류
발표를 보면서 댓글창을 읽었다.
“오늘 저녁부터 프로젝트 시작한다. 드디어 만들 수 있겠네.”
“일단 Apps SDK 문서를 정독하고, 관련 강의를 찾아봐야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8년의 내가 후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랫폼의 탄생
기술 전략 분석가들은 이번 발표를 2008년 앱스토어에 비유한다. 당시 애플은 아이폰으로 사용자를 모으고 앱스토어로 개발자를 유치해 모바일 생태계를 장악했다.
2025년 OpenAI도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ChatGPT로 8억 사용자, Apps SDK로 400만 개발자. Agentic Commerce Protocol로 수익화.
Microsoft와의 관계도 흥미롭다. OpenAI의 최대 투자자지만, OpenAI가 플랫폼이 되면 Microsoft는 단순 인프라 제공자로 격하된다. 1980년대 Microsoft가 IBM PC용 OS 공급자에서 플랫폼이 된 것처럼.
역사는 반복되는가?
내가 놓친 것
2008년 앱스토어 초기, 기회의 창은 약 2년 열렸다. Instagram, Uber, Airbnb가 그 사이에 탄생했다. 개인 개발자들도 성공할 수 있었다.
나는 그 2년 동안 준비하고 있었다.
2010년이 되자 시장은 달라져 있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마케팅 비용이 올라가고, 주목받기 어려워졌다. 내가 2014년에 출시한 앱은 이미 늦었다.
만약 2008년에 불완전하더라도 빠르게 시작했다면? 실패하면서 배우고, 사용자와 대화하며, 시장과 함께 성장했다면?
지금 이 순간
2025년 10월. 나는 다시 같은 지점에 서 있다.
내 지인은 3개월 후 “Hello World”를 출력할 것이다. 기초가 탄탄할 것이다. 체계적으로 배웠을 것이다.
펜을 산 사람들은 그 3개월 동안 무엇을 할까? 첫 번째 앱을 만들고, 실패하고, 두 번째를 만들고, 조금 나아지고, 세 번째는 친구 10명이 써주고, 네 번째는 100명이 다운로드하고…
나는 어느 쪽일까?
변곡점의 의미
역사를 보면 패턴이 있다.
플랫폼 탄생 → 도구 민주화 → 초기 채택자 폭발 → 대중화 → 경쟁 심화
2008년 앱스토어는 2010년쯤 대중화됐고, 2012년부터 경쟁이 치열해졌다. 기회의 창은 약 4년이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있을까? 초기 채택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대중은 아직 모른다. 여전히 “준비”를 말하고 있다.
기회의 창이 얼마나 열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8억 사용자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펜과 학원
아라카와 히로무는 펜을 샀다. 그리고 후일 『강철의 연금술사』와 같은 명작을 그렸다.
내 지인은 학원을 알아본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 어쩌면 둘 다 맞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 틀렸는지도.
다만 한 가지는 안다. 2008년에 나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는 명확했다.
2025년, 나는 또 선택해야 한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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