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기업의 66%가 향후 3년 내 신입 채용을 줄일 계획이다. 한국도 61%로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더 충격적인 건, 이미 기업 10곳 중 9곳에서 직무 변화나 대체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HR 플랫폼 딜(Deel)이 22개국 기업 임원 5,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신입으로 입사해 실무를 익히고, 실패하고, 배우면서 성장하는 전통적 경로가 무너지고 있다.
신입의 자리가 사라진다
변화의 진원지는 명확하다. 전 세계 기업의 99%가 이미 AI를 도입했고, 70%는 전면적 통합 단계에 있다. 그 충격을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받은 건 신입 직군이다.
한국 기업의 43%는 AI 도입 이후 직무가 “크게 변화했거나 완전히 재편되었다”고 답했다. 이는 홍콩(48%), 인도(43%)와 함께 최상위권이다. AI가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면서, 과거 신입들이 담당하던 업무의 상당수가 증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신입 대신 AI가 앉았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제 “차세대 리더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에 직면했다. 전 세계 기업의 71%가 초급 학습 경로 소멸로 리더 육성이 어려워졌다고 토로했고, 69%는 신입 직원의 실무 학습 기회가 줄었다고 답했다. 한국은 각각 72%, 70%로 더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0년 후 이 회사를 이끌 리더는 어디서 나올까?
재교육의 딜레마: 투자는 하는데, 답은 없다
기업들도 손 놓고 있진 않다. 전 세계 기업의 67%가 AI 교육과 리스킬링 프로그램에 투자 중이며, 한국도 65%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장애물은 전문 강사 부족(45%)이다. 한국에서는 이 비율이 59%로 더 높다. AI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직원 참여 부족(57%), 예산 제약(51%)도 만만치 않은 걸림돌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AI 재교육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사 차원의 협업 조직을 구축한 기업은 고작 1%에 불과했고, 23%는 누가 책임자인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재교육은 하되, 전략도 컨트롤타워도 없는 셈이다.
학위의 몰락, 기술의 부상
AI 시대는 채용 기준까지 바꿔놓았다. 한국 기업 중 대학 학위를 필수로 보는 곳은 이제 5%뿐이다. 대신 중요해진 건 AI 도구 및 코딩 부트캠프 자격증(65%), 문제 해결 및 비판적 사고 능력(55%), 실무 경험(55%) 같은 ‘즉시 전력화 가능한 역량’이다.
전 세계 기업의 66%가 이제 더 구체적이고 기술 기반의 역량을 채용 기준으로 삼는다고 답했다. 4년간 대학을 다니며 쌓은 학위보다, 3개월 부트캠프에서 배운 AI 툴 활용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AI 인재 쟁탈전: 연봉 프리미엄 50% 이상
역설적이게도 AI가 일자리를 위협하는 동시에, AI 전문 인력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 기업의 47%가 AI 도입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 ‘AI 인재 부족’을 꼽았고, 채용 과정에서도 71%가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그 결과 AI 전문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 세계 기업의 절반이 AI 전문가에게 25~100% 높은 급여를 지급 중이며, 한국 기업의 25%는 50% 이상 높은 연봉을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22개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신입 자리는 사라지는데, AI 전문가는 구할 수 없다. 일반 직원은 재교육하고 싶은데, 가르칠 사람이 없다. AI 시대 기업들이 마주한 아이러니다.
규제는 안개 속
혼란은 거버넌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자국 AI 규제를 “잘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16%에 불과했다. 한국은 50%가 국내 AI 규제를 잘 모른다고 답했고, 규제가 명확하고 비즈니스 친화적이라고 평가한 비율은 21%뿐이었다.
기업들은 AI를 도입해야 한다는 압박과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 중이다.
자동화와 인간, 함께 가는 길
IDC 아시아태평양 AI 담당 부사장 크리스 마셜(Chris Marshall) 박사는 “AI는 인류가 경험한 그 어떤 기술보다 빠르게 노동시장을 재구성하고 있다”며 “성공적인 기업은 자동화와 인간 중심의 비전을 결합해 리스킬링과 리더십 육성을 함께 발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딜 글로벌 정책 총괄 닉 카티노(Nick Catino)는 “이번 연구 결과는 AI가 일하는 방식과 비즈니스 운영 전반을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초급 직무의 성격과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 모두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이제 근로자와 기업 모두가 이 변화에 신속히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신입 자리가 사라진 시대에 차세대 리더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학위가 무의미해진 시대에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재설계되어야 하나, AI 인재 부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AI가 대체하는 업무와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하고, 그 경계에서 사람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것. 지금은 변화의 속도와 대응의 속도 사이 간극이 벌어지는 시기다. 그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는 앞으로 몇 년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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