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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은퇴를, 50대는 재취업을

로빈후드 CEO 블라드 테네브의 최근 발언이 흥미롭다. 19세에 은퇴계좌를 개설하는 Z세대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 사례처럼 들리지만, Z세대의 평균 은퇴 저축 시작 연령은 22세로 베이비붐 세대(37세)보다 15년 빠르다. 10대 후반부터 노후를 준비하는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2014년 ‘파괴적 혁신’을 표방하며 등장한 로빈후드가 이제 젊은 세대에게 ‘안정성’을 강조하고, 오히려 기성세대에게 ‘혁신’을 판다는 아이러니. 테네브는 이를 “반대 현상(opposite thing)”이라 불렀다.

단순한 마케팅 전략의 변화일까. 아니다. 이는 세대론을 넘어 시대정신의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다.

세대의 역전: 젊은이는 전통을, 노인은 혁신을

뱅가드 연구에 따르면 Z세대의 47%가 은퇴 준비가 되어 있으며, 이는 전체 성인 평균 42%를 웃돈다. Z세대 401(k) 가입자의 20%가 로스(Roth) 옵션을 선택하고, IRA 기여금의 95%를 로스 계좌에 넣는다. 이는 세금 혜택을 먼 미래로 이연하는 선택이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의 목표 은퇴 연령이다. Z세대는 59세 은퇴를 이상적이라고 보는 반면, 베이비붐 세대는 67세를 꼽았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잡코리아-알바몬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57%가 파이어(FIRE)족이 될 생각이 있다고 답했고, 목표 은퇴 연령은 평균 39세였다. 엠브레인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81.3%가 경제적 자유를 중시한다고 답했으며, 파이어족 인지도가 2021년 24.7%에서 2023년 52.3%로 급등했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과 한국의 경로가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동가입 시스템이 Z세대를 은퇴 준비로 이끌었고, 한국은 공적연금 불신이 청년들을 자발적 준비로 내몰았다. 경로는 달라도 결과는 같다. 양국 모두 20대 초반부터 노후를 걱정하는 세대가 등장했다.

구조가 만든 조숙함: Z세대는 왜 19세에 노후를 걱정하나

이들을 ‘보수적’이라 부르는 것은 틀렸다. 이들은 자신이 직면한 환경에 합리적으로 적응하고 있을 뿐이다.

Z세대 대부분은 2008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에서 성장했다. 리먼 브라더스 파산(2008년 9월)을 10대 초반에 목격했고, 부모 세대가 일자리와 집을 잃는 모습을 봤다. 금융위기는 단순한 경제 사건이 아니라 세대의 세계관을 형성한 트라우마였다.

구조적 불안정성은 일상이 됐다. 팬데믹, 인플레이션, 고금리, 기후위기. Z세대는 중산층이 누렸던 안정성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노후를 보장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안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셜 시큐리티 신탁기금은 2034-2035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며, 이후 급여는 약 17-23% 삭감될 전망이다.

한국의 2030세대는 더 심각하다. 2030 중 30대의 82.6%가 근로소득으로 원하는 부를 축적할 수 없다고 답했고, 20대의 70%는 주식과 부동산 투자로 부를 쌓은 사람을 닮고 싶어 한다. 파이어족 유행의 배경으로 ‘현재 삶이 너무 팍팍해서'(39.9%), ‘열심히 일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없어서'(36.1%), ‘국가가 노후를 보장하지 않아서'(35.8%)가 꼽혔다.

고용 불안정도 한몫했다. 긱 이코노미가 일상화되면서 Z세대는 평생직장 개념 자체를 경험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안정’은 조직에서 얻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불안한 세대가 더 잘 준비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시스템 개선도 있다. 자동가입(auto-enrollment) 확대와 DC플랜 접근성 향상 덕분에, Z세대는 자동으로 은퇴계좌에 가입되고 저축률이 설정되는 시스템의 혜택을 받는다. 이는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제도적 진보가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스템들은 Z세대에게 ‘쿨한 옛것’이 됐다. 한때 지루하고 보수적이라고 여겨졌던 401(k), IRA, 뱅가드 같은 것들이, 이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복고의 재발견: 바이닐처럼 돌아온 은퇴계좌

테네브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내 딸이 워크맨을 갖고 싶다고 했다.” 바이닐 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가 부활하는 것처럼, 젊은 세대가 은퇴계좌 같은 ‘레트로’ 금융상품에 관심을 보인다는 것. 이것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다. Z세대를 관통하는 문화적 코드다.

Z세대에게 ‘전통’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할아버지 세대가 사용하던 뱅가드나 피델리티 같은 금융기관, 401(k) 같은 은퇴계좌가 이제 “쿨”하다. 테네브의 표현대로, “오래되고 큰 유서 깊은 기업들이 다시 멋지게 느껴진다.”

왜 이런 역설이 일어났을까.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적 확실성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 변동성 큰 암호화폐, 불안정한 긱 워크로 점철된 삶에서, 이들은 ‘만질 수 있는’ 안정을 원한다. 바이닐 레코드가 스트리밍보다 “진짜” 같고, 카세트 테이프가 MP3보다 “소유하는 느낌”을 주듯이, 401(k) 계좌는 암호화폐보다 “확실한 무언가”로 느껴진다.

역설적이게도, 혁신과 파괴를 상징하던 로빈후드는 이제 젊은 세대에게 안정성과 오래된 금융 상품을 강조한다. 반대로 기성세대는 로빈후드에서 “혁신적이고 쉽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테네브가 “반대 현상”이라고 부른 이유다. 세대가 서로의 플레이북을 바꿔 들었다.

가치관의 전환도 동반됐다. 조기 은퇴 계획자는 현재를 즐기기보다 미래를 위한 저축을 우선시하며, 본인을 위한 취미활동이나 여가·문화생활 소비에 소극적이다. YOLO에서 FIRE로의 전환이다.

한국에서도 2024년 연금저축 가입자는 764만명으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고, 20세 미만 가입자가 66% 급증했다. 자녀에게 일찍부터 장기 자산형성을 가르치는 부모가 늘었다는 의미다.

젊은 세대의 조기 준비는 단순한 의식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의 파이어족은 실제로 어떻게 자산을 쌓고 있을까. 조기 은퇴 계획자의 총자산은 평균 3억 1,768만원으로 정년 은퇴 계획자보다 4,073만원 많다. 금융투자상품에 1.6배, 암호화폐에 2배 더 많은 자산을 예치한다. 빠른 은퇴를 위해 단기간에 자산을 불리고자 고위험, 고수익 금융상품 중심으로 공격적인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는 것이다.

역전된 생애주기: 20대는 은퇴를, 50대는 재취업을

“Z세대는 왜 보수적인가”라는 질문은 잘못됐다. 올바른 질문은 “왜 19세가 은퇴를 걱정해야 하는가”다.

그리고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왜 50대가 재취업 시장을 헤매야 하는가.” 한국의 평균 퇴직 연령은 50대 초반이지만, 국민연금 수급은 이르면 63세부터 시작된다. 그 사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50대는 경비, 택배, 대리운전으로 향한다. 재취업 후 임금은 이전의 60%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실질 은퇴 연령은 72.3세다. 50대 초반에 주된 일자리를 잃고, 20년을 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다, 7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노동시장에서 나온다. 20대가 은퇴를 준비하고, 50대가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회. 이 기묘한 역전 현상은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사회안전망의 붕괴다. 20대는 미래의 안전망을 믿지 못해 스스로 준비하고, 50대는 과거의 안전망이 사라져 다시 일터로 나간다. 고용 불안정, 공적연금 신뢰 붕괴, 세대 간 부의 이전 실패가 생애주기 전체를 뒤틀고 있다.

직장인들이 경제적 자유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금은 10억~20억원(30.8%)이며, 20억 이상이라는 응답도 60%를 넘었다. 이는 정상적인 근로소득으로는 달성 불가능한 목표다.

정책적 함의는 명확하다. 첫째, Z세대의 조기 은퇴 준비는 공적연금 신뢰 붕괴의 신호다. 둘째, 청년층 자산형성 지원이 선심성이 아니라 사회 안정의 필수 조건이 됐다. 셋째, 이들의 투자 열풍을 투기로 매도하기 전에, 왜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동시에 개인에게도 경고가 필요하다. 은퇴에 필요한 금액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해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2020년 95만달러였던 필요 금액이 2024년 146만달러로 53% 상승했다고 추정한다. 너무 이른 은퇴 목표는 과도한 저축 압박으로 이어지고, 현재를 희생하는 삶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합리적 적응의 결과, 그러나

Z세대의 조기 은퇴 준비는 ‘특성’이 아니라 ‘환경’의 반영이다. 이들은 사회가 제공하지 못하는 안정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로빈후드가 젊은 세대에게 안정성을 팔게 된 이유도, 바이닐이 부활한 이유도 같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실한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갈망.

그러나 이것이 바람직한 해법인가. 19세가 노후를 걱정하고, 50대가 재취업을 걱정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무언가 잘못된 사회다. Z세대의 합리적 선택을 칭찬하기 전에, 우리는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묻고 답해야 한다. 개인의 적응을 넘어 구조의 변화로.

기자 / 제 눈에 스타트업 관계자들은 연예인입니다. 그들의 오늘을 기록합니다. 가끔 해외 취재도 가고 서비스 리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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