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실에 에어컨 바람이 시원했다. 준호는 노트북 화면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슬라이드 열두 장. 완벽했다.
대학 창업 동아리 시절부터 데모데이는 여러 번 봤다. 관객으로. 무대 위 발표자들이 떨리는 목소리로 피칭하고, 심사위원들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순위가 발표되는 순간의 환호와 탄식.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3년 준비한 아이템. 졸업 후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엔 달랐다.
민수가 생수병을 들었다. 목젖이 움직였다. 물을 다 마시고 병을 탁 소리내며 내려놓았다. 얼굴이 밝았다.
수진이 거울로 얼굴을 확인했다. 옆머리를 귀에 걸었다 풀었다 반복했다. 손이 떨렸지만 웃고 있었다.
준호는 시계를 봤다. 두 시. 한 시간 남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대감이었다.
옆 테이블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세 명의 젊은 남자가 노트북 화면을 보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후드 티셔츠 팀. 한 명이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여유로웠다.
창가 쪽 팀은 네 명이었다. 정장 차림. 여자 둘, 남자 둘. 자료를 펼쳐놓고 마지막 점검을 했다. 한 명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른 팀원들이 웃었다.
구석에 있는 팀도 분위기가 좋았다. 나이 든 남자가 가운데 앉았다. 마흔대여섯쯤. 낡은 양복이었지만 표정은 환했다. 소매가 약간 짧았다. 팔목이 보였다. 양옆의 젊은 남자 둘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이 든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준호는 다시 화면을 봤다. 첫 장. 넥스트웨이브. 로고가 깔끔했다. 민수가 어제 밤 다섯 번을 고쳐서 만든 거였다. 두 번째 장. 문제 정의. Z세대의 고립. 세 번째 장. 솔루션. 알고리즘이 아닌 사람 중심 큐레이션. 네 번째 장…
문이 열렸다.
스태프가 들어왔다. 클립보드를 들고. 미소를 지었다.
넥스트웨이브 팀을 불렀다.
준호가 손을 들었다. 심장이 뛰었다. 빨랐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세 명이 일어났다. 민수가 가방을 챙겼다. 수진이 머리를 한 번 더 정리했다. 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무거웠다. 하지만 든든했다.
복도로 나갔다. 길었다. 형광등이 밝았다. 스태프의 구두 소리가 경쾌했다.
리허설이라는 말에 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수진이 민수의 팔을 쳤다. 민수가 웃었다.
스튜디오 문이 열렸다.
생각보다 컸다. 오백 석. 객석이 텅 비었지만 곧 사람들로 가득 찰 자리. 무대 위 조명이 환했다. 카메라 세 대. 스크린 하나. 앞쪽에 심사위원 테이블. 다섯 자리.
무대 중앙. 스태프가 가리켰다. 대표만.
준호가 올라갔다. 조명이 따뜻했다. 심사위원 테이블이 보였다. 비어 있었다. 곧 채워질 자리.
테스트라는 말이 들렸다. 준호는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울렸다.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넥스트웨이브입니다.
됐다는 말에 준호는 내려왔다. 민수와 수진이 박수를 쳤다. 작게. 준호가 웃었다.
대기실로 돌아왔다. 다른 팀들도 돌아와 있었다. 분위기가 좋았다. 밝았다.
세 시. 한 시간 남았다.
후드 팀 중 한 명이 에너지바를 꺼내 먹었다. 다른 둘과 나눠 먹었다. 씹는 소리. 웃음소리.
정장 팀이 마지막 체크를 끝냈다. 한 명이 노트북을 덮었다. 이제 됐다는 표정. 서로 손을 마주쳤다.
구석 팀의 나이 든 남자가 화장실에 갔다. 돌아왔다. 얼굴에 물기가 있었다. 세수를 한 모양이었다.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젊은 남자 둘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이 든 남자가 웃었다.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냈다. 가족사진이었다. 아내와 아이 둘. 사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하늘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민수가 스트레칭을 했다. 목을 돌렸다. 어깨를 풀었다. 수진이 거울을 다시 꺼냈다. 립스틱을 발랐다. 옅은 핑크.
준호는 손을 봤다. 떨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네 시가 됐다.
문이 열렸다. 같은 스태프. 웃고 있었다.
입장 시간이라고 했다. 순서대로.
모두 일어났다. 짐을 챙겼다. 옷매를 만졌다. 숨을 고르렀다.
인피니티랩이 먼저 나갔다. 정장 팀. 네 명이 일렬로 걸어 나갔다. 자신감 있는 걸음.
넥스트웨이브 차례. 준호와 민수와 수진이 일어났다. 복도로 나갔다. 다른 복도였다. 조명이 약간 어두웠다. 분위기가 달랐다.
여기서 대기라고 했다. 호명되면 나가라고. 스태프가 미소 지으며 사라졌다.
세 명은 벽에 기댔다. 벽 너머로 소리가 들렸다. 음악. 경쾌했다. 웅성거림. 환호.
본 녹화 시작한다는 사회자 목소리. 마이크를 통해 증폭됐다. 스타트업 서바이벌! 강남구 예선! 다섯 팀 중 한 팀이 천만 원의 상금과 다음 라운드 진출권을!
관객이 환호했다. 크게. 열렬하게.
심사위원 소개가 시작됐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박수. 유명 액셀러레이터 대표. 박수. 시리즈B 투자사 파트너. 박수. 십 년 전 엑시트한 기업가. 박수.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 박수.
첫 번째 팀. 인피니티랩! 음악이 커졌다. 박수. 환호. 발표 시작.
민수가 준호를 봤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 손을 꼭 쥐었다 폈다. 준비 운동하듯.
벽 너머로 목소리가 들렸다. 선명했다. 또렷했다. 발표가 매끄럽게 흘러갔다. 박수가 터졌다.
이제 질의응답. 15분.
심사위원 목소리가 들렸다. 질문. 대답. 또 질문. 또 대답. 웃음소리도 섞였다. 분위기가 좋았다.
15분이 지났다.
다음 팀. 넥스트웨이브!
문이 열렸다. 조명이 쏟아졌다. 환했다. 따뜻했다.
준호는 민수와 수진을 봤다. 둘 다 웃었다. 긴장했지만 설렜다.
세 명이 무대로 걸어 나갔다.
조명이 밝았다. 뜨겁지 않았다. 딱 적당했다. 관객 오백 명. 손에 LED 응원봉을 들었다. 파랑, 빨강, 초록으로 바뀌었다. 예뻤다.
심사위원 다섯 명이 테이블에 앉았다. 노트북을 펼쳤다. 한 명이 물을 마셨다. 다른 한 명이 펜을 돌렸다. 모두 미소를 지었다. 준비된 얼굴.
스크린에 팀 이름이 떴다. 넥스트웨이브. 로고가 크게. 민수가 어제 밤 만든. 깔끔했다. 세련됐다.
준호는 중앙에 섰다. 민수와 수진은 양옆. 완벽한 위치.
준호는 마이크를 잡았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좋았다.
안녕하세요. 목소리가 울렸다. 또렷했다. 저희는 넥스트웨이브입니다.
박수가 나왔다. 생각보다 컸다. 관객이 호응했다.
Z세대는 외롭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통계 그래프. 막대가 높았다. 숫자가 선명했다. 2030세대의 67%가 깊은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SNS는 많지만 진짜 연결은 부족합니다.
고개 끄덕이는 관객이 보였다. 공감하는 얼굴.
준호는 리모컨을 눌렀다. 슬라이드가 매끄럽게 넘어갔다. 저희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민수가 한 걸음 나왔다. 기술 스택을 설명했다. 목소리가 안정적이었다. 연습한 대로. 차트가 뜨고 다이어그램이 나타났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진이 나왔다. 디자인 시연을 보여줬다. 화면이 바뀌었다. 인터페이스가 깔끔했다. 색감이 좋았다. 관객 중 몇 명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준호는 비즈니스 모델을 설명했다. 수익 구조. 확장 계획. 목표 지표. 숫자가 정확했다. 논리가 단단했다.
5분이 흘렀다. 정확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호가 고개를 숙였다. 민수와 수진도 함께.
박수가 터졌다. 크게. 길게. 관객이 일어섰다. 스탠딩 오베이션까지는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응원봉이 흔들렸다. 빛이 춤췄다.
준호는 웃었다. 민수가 주먹을 쥐었다. 수진이 눈을 감았다. 안도.
질의응답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목소리.
교수가 먼저 물었다. 타겟 시장 규모가 인상적이네요. 검증 방법은?
준호는 준비한 대답을 했다. 설문조사 오백 명. 심층 인터뷰 오십 명. 프로토타입 테스트 백 명.
좋습니다. 교수가 노트북에 뭔가 쳤다. 고개를 끄덕였다.
액셀러레이터가 물었다. 경쟁사 대비 차별점은?
민수가 대답했다. 기술적 우위. 특허 출원 중. 데이터 아키텍처의 독창성.
흥미롭네요. 액셀러레이터가 웃었다.
투자자가 물었다. 현재 트랙션은?
수진이 대답했다. 베타 사용자 천 명. 주간 활성 사용자 팔백. 리텐션 65%.
나쁘지 않습니다. 투자자가 펜을 돌렸다. 미소를 지었다.
기업가가 물었다. 팀 구성은?
준호가 대답했다. 대표는 경영학. 민수는 컴공. 수진은 디자인. 3년 호흡. 완벽한 조합.
좋은 팀이네요. 기업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변호사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법적 이슈는 검토했나요? 개인정보 처리 같은.
준호가 대답했다. 검토 완료. 전문가 자문. 컴플라이언스 준비.
완벽합니다. 변호사가 웃었다.
15분이 끝났다. 빨리 지나갔다. 순조로웠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말했다. 대기석으로.
세 명이 내려왔다. 손을 맞잡았다. 셋 다. 뜨거웠다.
대기석에 앉았다. 심장이 뛰었다. 빨랐다. 하지만 기분 좋은 빠름이었다.
세 번째 팀이 올라갔다. 코드나인. 후드 팀. AI 코딩 어시스턴트. 발표가 유창했다. 데모가 인상적이었다. 관객이 박수 쳤다. 심사위원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네 번째 팀. 그린스타트. 정장 팀. 친환경 포장재. 실물 샘플을 돌렸다. 관객이 만져봤다. 감탄했다. 이미 계약 건수가 있다고 했다. 심사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극적으로.
다섯 번째 팀이 올라왔다.
나이 든 남자가 중앙에 섰다. 젊은 남자 둘이 양옆. 셋 다 표정이 밝았다. 긴장했지만 희망찼다.
퓨처브릿지입니다. 나이 든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하지만 단단했다. 저는 김태수입니다. 마흔여섯에 시작했습니다.
관객이 박수 쳤다. 응원하는 박수.
늦었다는 말 많이 들었습니다. 김태수가 웃었다. 하지만 아내가 믿어줬습니다. 아이들도. 그래서 지금 여기 섰습니다.
박수가 더 커졌다. 환호도 섞였다.
슬라이드가 넘어갔다. 중소기업 회계 자동화 솔루션. 설명이 시작됐다. 김태수의 목소리가 점점 안정됐다. 흐름이 생겼다.
5분이 흘렀다. 시간 안에. 완벽했다.
감사합니다. 김태수가 고개를 숙였다. 깊게. 젊은 남자 둘도 함께.
박수가 터졌다. 크게. 관객이 일어났다. 진짜 스탠딩 오베이션. 김태수가 눈을 감았다. 숨을 들이쉬었다. 젊은 남자 둘이 그의 어깨를 감쌌다.
질의응답이 시작됐다. 심사위원들이 질문했다. 날카로웠지만 호의적이었다. 김태수가 대답했다. 막힘없이. 젊은 남자들도 거들었다. 팀워크가 좋았다.
15분이 끝났다. 완벽한 마무리.
심사 시간. 사회자가 말했다.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입력하겠습니다.
다섯 팀 모두 대기실로 돌아갔다. 분위기가 좋았다. 모두 웃었다. 긴장도 있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최선을 다했다.
후드 팀이 서로 어깨동무를 했다. 정장 팀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퓨처브릿지 팀의 김태수가 젊은 남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 같은 손길.
준호와 민수와 수진도 손을 맞잡았다. 셋이서. 동그랗게. 아무 말 없이. 필요 없었다.
30분이 지났다. 빨랐다.
다시 호명됐다. 무대로 나오라고.
다섯 팀이 무대에 섰다. 한 줄로. 나란히.
조명이 밝았다. 환했다. 관객의 얼굴이 보였다. 모두 미소 지었다. 응원봉을 들었다. 흔들었다.
심사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었다.
화면에 로딩 바가 돌았다. 천천히. 극적으로.
그리고 떴다.
심사 결과
1위: 코드나인 (평균 9.2점) 2위: 그린스타트 (평균 8.8점) 3위: 넥스트웨이브 (평균 8.1점) 4위: 인피니티랩 (평균 7.8점) 5위: 퓨처브릿지 (평균 7.3점)
준호는 숨을 내쉬었다. 길게. 천천히. 3위. 살았다.
민수가 소리 없이 소리쳤다. 입만 벌렸다. 수진이 준호의 팔을 잡았다. 힘껏. 흔들었다.
관객이 일어났다. 박수가 터졌다. 환호. 음악이 흘렀다. 신나는 음악. 응원봉이 미친 듯이 빛났다. 모든 색깔로.
축하합니다! 사회자가 외쳤다. 상위 네 팀! 다음 라운드 진출!
코드나인 팀이 서로 얼싸안았다. 그린스타트 팀이 점프했다. 인피니티랩 팀이 주먹을 쥐었다. 넥스트웨이브 팀도 웃었다. 크게. 마음껏.
준호는 관객을 봤다. 모두 기뻐했다. 함께. 이 순간을. 축하해줬다.
사회자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갔다. 미소가 사라졌다.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리고… 목소리가 낮아졌다. 5위. 퓨처브릿지 팀.
음악이 멈췄다.
준호는 퓨처브릿지 쪽을 봤다. 김태수가 서 있었다. 젊은 남자 둘도. 셋 다 움직이지 않았다.
김태수가 한 걸음 내디뎠다. 천천히. 젊은 남자 하나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흘렀다. 다른 한 명이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막지는 않았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는 걸.
무대 중앙으로. 사회자가 말했다.
김태수는 혼자 걸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무대 중앙. 조명 아래.
준호는 김태수를 봤다. 등이 보였다. 약간 굽었다. 양복이 낡았다. 소매가 짧아 팔목이 보였다. 하지만 떨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사회자가 마이크를 건넸다.
김태수가 마이크를 잡았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목소리가 담담했다.
관객이 조용해졌다.
후회 없습니다. 김태수가 말을 이었다.
젊은 남자 둘을 봤다. 너희는 잘해. 끝까지. 가족 사진 보여줘. 아내한테.
젊은 남자 둘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떨렸다. 눈물이 흘렀다. 조용히.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사회자에게 건넸다. 미소를 지었다. 작게.
무대 양쪽에서 검은 정장 둘이 걸어 나왔다. 하나가 총을 꺼냈다. 김태수의 머리에 댔다.
터졌다.
김태수가 쓰러졌다. 피가 퍼졌다.
준호는 자기 다리를 봤다. 떨렸다. 온몸이 얼었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다는 걸. 하지만 실제로 보니. 진짜였다. 김태수의 등이 보였다. 낡은 양복. 짧은 소매. 저 등이 자기 등일 수도 있었다. 다음 주에.
관객이 환호했다. 음악이 흘렀다. 응원봉이 빛났다.
사회자가 웃었다. 아쉽지만 퓨처브릿지 대표는 여기까지입니다! 남은 네 팀에게 박수!
검은 정장들이 시체를 끌었다. 스태프가 바닥을 닦았다. 깨끗해졌다.
준호는 그 자리를 봤다. 김태수가 섰던 곳. 조명이 환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퓨처브릿지의 젊은 남자 둘이 고개를 숙였다. 한 명이 주저앉았다. 울었다. 소리 없이. 어깨만 떨렸다. 다른 한 명은 그냥 섰다. 눈물만 흘렸다. 말없이.
민수가 옆에서 떨었다. 수진이 눈을 감았다. 숨을 참았다.
코드나인 팀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그린스타트 팀 대표가 눈을 감았다. 인피니티랩 팀 대표가 주먹을 쥐었다.
살았다는 안도. 다음엔 자기 차례일 수도 있다는 긴장. 섞였다.
다음 주! 사회자가 외쳤다. 서울 예선 2차! 열 개 팀이 경쟁합니다! 하위 다섯 팀 대표 탈락!
스크린에 텍스트가 떴다.
서울 예선 2차 생존자 4팀 + 신규 6팀 하위 5팀 대표 처형 예상 생존율: 50%
처형. 그 단어가 떴다. 선명하게. 생존율 50%. 반반.
음악이 더 커졌다. 조명이 화려해졌다. 관객이 춤췄다.
감사합니다! 사회자가 소리쳤다. 스타트업 서바이벌!
화면이 꺼졌다.
스태프가 다가왔다. 미소를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출구는 저쪽입니다.
준호는 걸었다. 다리가 무거웠다. 민수가 따라왔다. 천천히. 수진도.
복도가 길었다. 형광등이 밝았다.
문을 열고 나갔다. 밖은 어두웠다. 해가 졌다.
차가 지나갔다. 사람들이 걸었다. 웃었다. 치킨 상자를 들었다. 저녁이었다.
건물 앞에 두 젊은 남자가 있었다. 퓨처브릿지 팀원. 한 명은 벽에 기댔다. 울지 않았다. 그냥 섰다. 다른 한 명은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끌어안았다. 고개를 숙였다. 가족사진을 쥐고 있었다.
준호는 지나쳤다. 뒤돌아볼 수 없었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꺼냈다. 알림.
[스타트업 서바이벌] 3위 팀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상금 3백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다음 라운드 일정 안내 참가 확인서 제출 기한: 3일 이내
준호는 휴대폰을 봤다. 숫자가 보였다. 3,000,000원. 입금 완료.
휴대폰을 껐다.
수진이 물었다. 집 갈까?
응. 준호가 대답했다.
걷기 시작했다. 민수와 수진이 따라왔다. 세 명. 나란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계단이 길었다.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휴대폰을 봤다. 웃었다. 영상을 봤다. 음악을 들었다. 일상이었다.
플랫폼. 전광판을 봤다.
2호선 강남행 2분 후 도착
준호는 선로를 내려다봤다. 깊었다. 어두웠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민수가 옆에 섰다. 수진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전동차가 들어왔다. 바람이 불었다. 차가웠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렸다. 웃으며. 떠들며. 저녁 약속이 있는 사람들.
준호는 탔다. 민수와 수진도.
문이 닫혔다. 출발했다.
준호는 창밖을 봤다. 터널이었다. 어둠만 보였다.
창문에 자기 얼굴이 비쳤다. 선명했다.
눈을 봤다. 자기 눈을.
무대에 올랐을 때보다는 떨리지 않았다.
휴대폰을 켰다. 화면이 밝았다. 알림이 떴다.
참가 확인서 제출 기한: 3일 이내 서울 예선 2차 예상 생존율: 50% 전국 본선 예상 생존율: 20% 최종 우승 예상 확률: 0.8%
준호는 화면을 봤다. 숫자들이 보였다. 통계. 확률.
손가락을 올렸다.
전동차가 흔들렸다.
손가락이 화면을 눌렀다.
제출 완료.
민수가 고개를 돌렸다. 준호를 봤다. 수진도 고개를 돌렸다. 준호를 봤다.
준호는 휴대폰을 껐다.
전동차가 역에 들어갔다. 불빛이 쏟아졌다. 환했다.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내렸다. 웃으며. 떠들며. 살아있었다.
준호는 앉아 있었다. 민수도. 수진도.
문이 닫혔다. 다시 출발했다. 어둠 속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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