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즈니의 AI 선택…한 시대 표준을 만든 제국은 어떻게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가

오픈AI에 1조5000억원 투자하며 200여 캐릭터 3년간 개방…할리우드 최초 대규모 AI 협력

월트디즈니가 오픈AI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투자하고 200여개 자사 캐릭터에 대한 3년간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AI 개발사에 이같은 규모로 투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1일(현지시간) 양사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번 협약으로 오픈AI의 동영상 생성 플랫폼 ‘소라(Sora)’와 챗GPT에서 디즈니·마블·픽사 캐릭터를 활용한 AI 콘텐츠 제작이 가능해진다. 미키마우스, 미니마우스를 비롯해 인어공주, 신데렐라, 라이온킹, 겨울왕국, 인사이드아웃, 몬스터주식회사, 토이스토리, 주토피아 등 주요 캐릭터들이 포함된다. 마블 영화의 캡틴아메리카, 블랙팬서, 데드풀 시리즈의 애니메이션 버전 캐릭터도 이용 가능하다.

다만 배우들의 초상권이나 음성은 이용 범위에서 제외됐다. 예를 들어 토이스토리의 우디 캐릭터는 사용할 수 있지만, 톰 행크스의 목소리는 활용할 수 없다.

금액보다 중요한 선언의 무게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자체는 양사 모두에게 결정적인 금액이 아니다. 디즈니의 연간 매출은 900억달러에 달하고, 오픈AI의 최근 기업가치는 1570억달러로 평가된다. 10억달러는 디즈니 연매출의 1.1%, 오픈AI 기업가치의 0.6%에 불과하다. 이번 협약의 진짜 의미는 투자 규모가 아니라 ‘누가 AI를 선택했는가’에 있다.

디즈니는 방송미디어와 콘텐츠 IP 산업에서 단순한 강자가 아니다. 한 시대의 문법을 만든 기업이다. IP를 중심으로 테마파크 같은 체험 공간을 구축하고,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며, 수직계열화를 통해 영향력을 집중하고, 끊임없는 기술 혁신으로 제작 효율을 높이는 방식. 넷플릭스를 포함한 후발주자들이 따라하는 이 모델은 디즈니가 완성했다.

산업의 표준을 세운 기업이 AI를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미디어 생태계 전체에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오픈AI 입장에서도 구글과의 경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엔터테인먼트 파트너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가 크다.

기술 변화 컨설턴트 마이크 월시는 “디즈니는 미드저니는 고소하고 구글은 경고하면서 오픈AI는 파트너로 선택함으로써 명확한 선을 그었다”며 “디즈니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막으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형성해왔다”고 말했다.

쇠퇴마다 새 길을 연 회사의 생존법

이런 규모의 기업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디즈니 역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매번 새로운 방향을 찾아내며 생존해왔다. 실제로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디즈니랜드를 방문할 때마다 어트랙션 기술이 눈에 띄게 고도화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로봇 시대가 와도 이 회사는 그 기술을 자신의 체험 공간에 통합하며 오히려 번성할 것이다. 어리석은 리더가 이끌지만 않는다면.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몇 달간 유니버설 픽처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등 할리우드 주요 스튜디오들과 협업을 타진했으나, 대부분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스튜디오들은 지식재산권 활용 방식에 대한 우려와 함께 AI 활용에 비판적인 할리우드 노조의 반발을 의식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디즈니가 먼저 움직였다. 밥 아이거 디즈니 CEO는 CNBC 인터뷰에서 “디즈니는 지식재산권 보호에 공격적이었지만, 오픈AI의 성장세와 라이선싱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샘 올트먼 CEO와 그의 팀이 만들어내는 것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거 CEO는 “기존 사업모델의 파괴를 포함해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 흐름에 올라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디즈니가 역사적으로 취해온 태도와 일치한다. 막을 수 없는 변화라면 그것을 자신의 조건으로 재설계하는 것이다.

기술이 아닌 수익모델이 핵심이다

디즈니는 소라에서 제작된 팬 크리에이터 영상 중 일부를 자사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플러스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또한 오픈AI API를 활용해 디즈니플러스를 포함한 신규 서비스를 구축하고, 직원들의 업무에 챗GPT를 도입하기로 했다. 디즈니는 추가 지분 매입 옵션도 확보했다.

디지털 전략가 닉 시세로는 “이 협약은 기술 실험이 아니라 수익 전략”이라며 “디즈니는 무단 콘텐츠 사용과 유튜브로 이동하는 시청자라는 두 가지 존재적 위기를 동시에 해결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소라가 디즈니에게 브랜드 안전성을 확보한 합법적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광고 수익 모델로 전환할 첫 번째 확장 가능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AI로 현혹되도록 아름다운 콘텐츠를 만드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핵심은 그 기술로 기존 자원과 자산을 어떻게 활용해 지속가능한 수익을 만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느냐다. 디즈니가 수십 년간 테마파크에서 기술을 고도화해온 방식을 보면, 이 회사는 AI 시대에도 기술 자체가 아닌 그것의 전략적 활용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 비즈니스 개발 총괄 제임스 밀러는 “디즈니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공식화하는 전략을 택했다”며 “일부 캐릭터는 이미 퍼블릭 도메인에 진입했고, 이 협약으로 디즈니는 AI 트렌드를 법정 분쟁이 아닌 수익화로 전환하고, 품질 기준 설정으로 저품질 무단 콘텐츠를 차단하며, 독점권 상실 전 팬 사용 데이터를 확보하는 세 가지를 동시에 달성한다”고 분석했다.

수익모델 설계 능력이 평가를 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문가들의 평가도 결국 ‘수익모델 설계 능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갈린다. AI 라이선스 전문가 라지 칼라는 “이것은 AI 영상 생성 내 공식 라이선스 크리에이티브 생태계의 시작”이라며 “디즈니는 단순히 캐릭터를 여는 게 아니라 브랜드 안전성을 확보하고 권리를 존중하는 생성 콘텐츠의 첫 번째 프레임워크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그는 “디즈니의 10억달러 투자는 다음 세대 스토리텔링 인프라의 지분 확보이자 모든 브랜드가 따라야 할 블루프린트”라고 덧붙였다.

미디어 컨설턴트 피터 카시는 “완전히 라이선스된 캐릭터 사용, 저작권 존중, 창작자 커뮤니티 파트너십까지 갖춘 제너레이티브 AI의 올바른 사용 방식”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IBM 소비자 역량 센터 리더 칼 홀러는 “디즈니가 라이선스료를 받는 게 아니라 1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추가 지분 매입 옵션까지 포함하면 디즈니가 더 많은 것을 주는 셈”이라며 거래 조건에 의문을 제기했다. 엔터테인먼트 변호사 사이먼 풀먼도 “시청자 수용성, 라이선스 종료 가능성, 브랜드 훼손 방지 등 미지수가 많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야 할 때

내년 초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AI 콘텐츠 생성 서비스가 시작되면, 미디어 산업 전체의 AI 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디즈니의 이번 선택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사라지지 않을 것을 지키려 방어하는 대신, 바뀌어가는 지점을 직시하고 그 변화의 흐름에 빠르게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다.

한 세기 가까이 살아남으며 각 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조건으로 흡수해온 디즈니의 역사는, 기술 변화 앞에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보여준다. 막다가 무너지거나, 받아들이고 형성하거나. 디즈니는 후자를 선택했고, 이제 나머지 산업이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차례다.

플래텀 에디터 / 스타트업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댓글

댓글 남기기


관련 기사

이벤트 인사이트

일자리가 분해되고, 재조합된다

글로벌

미 국방부, 제미나이 기반 AI 플랫폼 본격 도입

스타트업

‘정타’, AI 시대 과제 제출 플랫폼 출시… “복사·붙여넣기 차단”

이벤트

340명 대학생이 4개월간 찾아낸 AI 활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