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중심, 소프트웨어 중심’ 김진형 앱센터 이사장
우리나라 1세대 개발자이자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지난 30여 년을 교수로 몸담은 김진형 이사장. 그는 ‘현장’에 주목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사업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해결해줄 방법을 고민하면서부터 그의 여정은 시작된다. 연구보다는 실무 교육에, 연구실보다는 현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는 눈으로 거듭났다.
인터뷰하는 날에도 그는 개발자들이 모여있는 현장에 있었다. 경기장에서 감독이 아닌 선수로 뛰고 있는 그를 보니 필자는 궁금했다. ‘어떻게 계속 뛰고 있는 거지?’ 선수들 뒤에서 뒷짐 지고 있어도 전혀 어색할 것 없을 그였다.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우선 지금까지 건강했고, 나만 건강한 게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도 건강했다. 능력이 되는 한 봉사하면서 살면 되겠다 싶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 거라 힘들지 않았다.”는 그의 심심한 답변에 미소가 번진다. 개발자와 소프트웨어를 사랑하는 사람만의 언어랄까. ‘그에게는 당연하지만, 필자에게는 궁금한’ 질문이 이어졌다.
김진형 (사)앱센터 이사장
앱센터 설립 계기
2007년 아이폰의 등장으로 외국에서는 앱스토어 시장이 열렸는데 굉장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피처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의 수익을 9(통신사) : 1(개발자)로 나누는데, 앱스토어에서는 3(애플사) : 7(개발자)로 나누고 있었다. 개발자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았다.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면서 “한국에서도 모바일 앱 개발 활성화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계속 다른 담당자에게 보냈고, 밀려올 혁명을 준비하자고 했지만, 찬밥신세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모든 휴대 전화에 ‘위피(WIPI)’라는 플랫폼을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하는 규제로 인해 아이폰 출시 국가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그 후로 2009년 4월 위피 탑재 의무화 폐지 후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오기까지는 2년이 걸렸다.
2009년 3월에 결국 “우리끼리라도 합시다.”라며 주변 사람들과 행사를 벌였던 게 앱센터(AppCenter)의 시작이었다. 600명이 모이는 바람에 좌석이 부족해 복도에 앉아가면서까지 강의를 들을 정도였고, 국내에 아이폰이 출시된 후부터는 정부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10년 봄에 첫 스타트업 위크엔드(Startup Weekend) 행사를 하기 전까지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했었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말고도 다른 앱센터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2주에 한 번씩 만나자고 해서 앱人(APPIN)이라는 행사를 만들었다. 최신 정보와 기술을 이야기하는 행사였다. 그다음으로, 2박 3일간의 스타트업 위크엔드가 너무 짧은 것 같아서 한 학기 정도의 기간 동안 10번 만나는 모임인 A-camp(A캠프)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참가자들이 앱을 만들지만, 비즈니스모델을 만드는 데에는 취약하더라. 비즈니스모델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 B-camp(B캠프)를 시작했다.
2010년 4월 법인화를 할 때쯤 되니 참가자 중에서 창업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투자도 받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투자해줄 수 있을 만한 사람 20명을 모아 ‘모바일투자자협의회’를 만들었다. 그러고 나니 사람들이 모이고, 팀을 구성하고, 앱을 만들고, 창업하여 투자를 받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로 연결되었다.
구글(Google)로부터 50만 달러 후원을 받고 나서는 영어 훈련, 프레젠테이션, 외국인 투자자 초청 멘토링 등 10주간의 교육 과정을 묶은 Kstartup(K스타트업)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다음에 ‘대학에서도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국 대학생들을 위한 앱 개발 챌린지, K-Hackathon(K-해커톤)을 개최하였다. 또한, 대학 단위가 아니라 개발 잘하는 사람이면 모두 모이라는 의미에서 SUPPER APP KOREA(슈퍼앱 코리아) 행사도 개최하였다.
2013년부터는 스타트업 위크엔드와 같은 방식이되 게임 개발에만 초점을 맞춘 Indie Game Weekend(인디게임 위크엔드)가 저절로 생겼다. 온라인상에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짜집기 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UMC(User Mash-up Contents) 공모전도 진행하였다. 한편, 방과 후나 주말에 학생들에게 앱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소프트웨어교육봉사단도 운영 중이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어떤가.
그동안 많은 사람이 앱센터를 거쳐 갔다. ‘번개장터’, ‘모두의 주차장’은 앱센터에서 잉태되어 탄생한 대표적인 스타트업이기도 하다. 참가자 대부분이 앱 개발에 정성을 쏟는다. 프로그램을 즐기는 분들은 굉장히 즐긴다. 그러다가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내가 앱센터를 하자고는 했지만,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층이 넓고 두텁다. 우리가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도록 도와준 점을 고맙게 생각하고, 많은 커뮤니티가 생긴 것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그때 앱센터를 만들지 않았다면 3~4년 후에야 이런 스타트업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거라고 평가한다.
앱센터의 핵심 가치를 꼽는다면.
앱센터의 핵심 가치는 진정성과 참신성이다. 우선 진정성을 꼽을 수 있다. 성공에 가까워진 스타트업, 어느 정도 무르익은 스타트업에 관심 있는 조직은 많다. 그러나 대학생, 스타트업을 만들지도 않은 사람 등 극 초기 단계의 창업가를 도와주는 곳이 거의 없다. 우리는 이들을 도와주는 프로그램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다른 곳에서 과연 모바일 개발자를 돕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분위기가 가능할까? 우리는 효율을 찾아가지 않는다. 그건 ‘달성해야 할 숫자’를 맞춰야 하는 것도, ‘이건 해야 하고, 저건 아닌’ 범위도 없어서 가능하다.
우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내는 참신성을 자랑한다. 누군가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해본 후 반응이 좋으면 계속 운영하는 것이다. 어느 누군가가 혼자 이끌어가지 않는 문화이다. 지금까지 앱센터 운영에 조금이라도 참여해본 분이 100명을 넘겼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기술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을 하려면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야 하는데,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 나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가 초기 스타트업을 돕고 있는 일과 어긋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나섰으면 좋겠다. 소프트웨어 능력을 갖춘 후 스타트업을 할 것을 권한다.
기술 수준이 낮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초, 중, 고교 때 관련 교육 과정 없이 대학생 때 몇 년 배우는 정도이다. 성장 사다리가 적은 이유도 있다. 대기업이 투자로써 스타트업을 키우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기술을 뺏어가거나 베껴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있지 않나. 대기업만이 아니라 남의 것을 베끼는 걸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이디어만 갖고 창업하기에는 더욱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밖에 없다. 대기업에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에도 한계가 있다. 스타트업 같이 작은 회사가 커가면서 일자리가 생기지, 이미 성장한 기업에서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큰 자본이 필요하지 않거니와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매력이 있다. 실험해보면서 크게 피해 보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외국 사례를 보더라도 성공한 IT 기업 중에 소프트웨어 기업이 많다.
앱센터는 앱 개발자들이 모여 네트워킹하는 플랫폼이다. 모바일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게 하자는 막연한 생각 하나로 시작했다. 인큐베이션을 하거나 특정 스타트업만을 서포트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우리를 통해서 큰 꿈을 갖고 도전하여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앱센터와 비슷한 걸 만들고, 후배를 키워주면서 서로서로 도와줄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원문 : [앱센터 사람들 4] ‘현장 중심, 소프트웨어 중심’ 김진형 앱센터 이사장
안경은 앱센터 외부필진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즐깁니다. 글로 정리해 사람들과 공유할 때 신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