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 리포트 #1] 7만 제곱미터 규모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 중국은 준비됐다. 응답하라 한국!
중국 청두(成都)에 탄생할 7만 제곱미터(약 2만 1175평) 규모의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이하 보육파크)’가 주인 없는 유령 건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청두시가 오는 3월 개소하는 창업 단지에 한국 기업에게 건물 두 채를 통으로 내주겠다며 나섰지만, 양국 정부 간 구체적인 실무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리커창 총리의 한마디로 시작된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
발단은 작년 10월 31일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의 리커창 총리의 발언이었다. 그는 방한 일정 동안 중국 서부 지역의 거점인 청두에 ‘중한 청년 혁신 단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반복해서 언급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중국의 대중창업·만중혁신(大众创业, 万众创新) 전략과 한국의 창조경제 전략은 모두 청년의 창의력을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리커창 총리는 ‘인터넷 플러스’ 정책을 내세우며 중국 창업 부흥의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상회담에서 반복해 언급한 사안이고 국가 간 합의도 이루어진만큼, 양측 정부도 실질적인 계획 추진을 위해 TF 팀을 결성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듯 했다.
이에 따라 리커창 총리의 발언 이후 중국 청두시 측에서는 오는 3월 개소하는 약 7만7천 평의 창업혁신단지인 롱창광장(蓉创广场, Chengdu Start-up Hub) 내에 한국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뒀다. 총 8개의 건물 중 2, 3번 건물 전체와 8번 건물의 일부를 중한혁신단지로 선정한 것이다. 해당건물 외벽에는 한글로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라는 네온사인 간판도 큼지막하게 걸려있다.
입주할 한국기업에 할애된 건물 3개 소, 8번 건물의 일부는 991m2 (300평) 규모의 한국 관리소 자리다.
개관이 두 달 남았는데 … 속도가 빠른 중국, 신중한 한국.
그러나 롱창광장 조성을 주도하는 청두 하이테크존(Chengdu Hi–Tech Zone, 이하 CDHT)의 리 강(Li Gang) 대표에 따르면, 개소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도 한국 정부와의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이루어진 바가 없다.
리대표에 따르면, 본래 작년 12월 한국 정부 측 대표가 청두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당시 한국 측 대표의 불가피한 사유로 만남이 연기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한국 정부로부터의 재방문 혹은 논의 관련 연락이 중단된 상태라는 것이다.
리대표는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를 포함해 롱창광장 전체가 3월에 동시 개관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입주 예정된 한국 기업은 한 곳도 없다”면서, “300평 규모의 한국 측 관리 사무실도 따로 마련해 두었지만, 아직까지 관할 담당자 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청두시 측에서 공간을 마련해두었다고 해도, 국내 기업의 실질적 입주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안이 필요하다. 입주 기업 선발부터 지원 프로그램의 내용, 지원 정책, 양국 간 이해 관계 정립 등 물리적 공간을 채워나갈 수 있는 컨텐츠를 청두시와의 논의를 통해 도출해 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신중하게 접근하는 반면 중국 쪽이 다소 과속을 한 상황일 수도 있다. 리커창 총리가 한중 창업 협력을 직접 언급한 지는 세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서두르기 보다는 숨을 고르고,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 사안인 것은 맞다.
우리 정부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사안을 두고 미래부 측에서도 현재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한중 양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창업 협력 프로젝트인만큼, 큰 사안에 관한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기에 3개월이라는 시간은 확실히 짧다는 것이다.
하지만 협력 관계인 청두시 측이 한국 정부가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은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리커창 총리의 발언 이후 CDHT 관계자는 우리 정부 인사와 단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으며, 현지 답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중해도 너무 신중했다.
한중 창업 협력 위한 빠른 논의 재개가 필요
양국 관계자 간 협조가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직접 방문한 중한혁신창업보육파크는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한 준비로 분주했다.
그 중 롱창광장이 근래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그램은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센터’ 운영 계획이다. 아직 정식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해외 기업이 중국에서 창업 활동을 하며 부딪힐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센터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센터 내에는 법률·세무 사무소, 통역 회사 등이 들어설 예정이며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지원된다. 장소만 내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해외 기업이 청두 지역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성장해나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국 창업 환경에서 살아남을만큼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이 국내에 많지 않을 수 있다. 실제 현장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점 역시, ‘국내 창업 지원 기관에도 공간이 남는 판국에, 이 넓은 공간을 채울만한 수의 한국 스타트업이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기술력과 인력 유출 등 염려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한중 창업 협력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었고,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방치하는 것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덧붙여 소비력 높은 도시이자 앞으로 더 큰 창업 생태계를 이루게 될 청두가 국내 스타트업에게 의미있는 창업 환경인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중국 청두는 준비가 됐다. 응답하라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