탭조이 이창수 부대표 “최악의 직원은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는 사람”
2014년 8월, 모바일 게임 운영 분석 업체인 파이브락스(5Rocks)가 미국의 모바일 광고사인 탭조이(Tapjoy)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탭조이는 전 세계 14개의 지사를 갖고 있으며, 월간 순사용자 6억 명에 육박하며, 구글과 트위터, 페이스북 다음으로 꼽히는 모바일 광고 회사다.
파이브락스 대표였던 이창수 탭조이 부대표는 인수합병 후 작년 8월부터 미국으로 본거지를 옮겨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가 오늘 역삼동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조금 다른 실리콘밸리 이야기>라는 주제로 자신의 경험담을 전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회의 때 최악의 팀원은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안 하는 사람.
미국 회사에서는 미팅과 콜이 대단히 많다. 이것을 경험하면서 한국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는 미팅이 토론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주로 탑다운 방식의 일방적인 지시이거나, 아래로부터의 단순한 보고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는 미팅의 목적이 토론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왜?’라는 질문이 항상 따라 나온다.
실제 탭조이 회의에서 대표가 ‘올해 시장 트렌드가 이러하니 우리 회사의 방향은 이렇게 나가야한다’고 말했더니 한 팀원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저번엔 이게 더 중요하다며?’라고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 자체가 그들에게는 익숙하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얽매여서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 ‘계급장 떼놓고’라고 까지 표현하면 조금 과장한 거 같지만, 어쨌든 의사 표현이 자유롭다. 물론 눈치는 본다. 해고될 수도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회의 때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은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자신이 아는 주제에 대해서도 회의 때 이야기를 잘 안 꺼낸다. ‘내가 아니까, 다들 알겠지’하는 생각에서다. 자신이 모르는 주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공부해서 따로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해서 또 말을 안 한다.
미국인들은 일단 자기가 아는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정말 많이 한다. 모르는 게 있다면 그 자리에서 질문을 해서 알아간다. 회의에서 얻어가는 게 굉장히 많은 거다.
탭조이 지사는 유럽과 한국, 중국, 일본에 있는데 시차 때문에 모두 다 같이는 아니지만 각 국가마다 타운홀 미팅을 매달 한 번씩 개최한다. 전 직원을 모아놓고 회사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다. 이걸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에 날을 잡아서 타운홀 미팅을 3번 해야 한다. 유럽 아침 8시, 미국 10시 반, 한·중·일 저녁 이런 식이다.
보통 미국이나 유럽 미팅은 제한된 시간에 마치는 게 어렵다. 질문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많은 직원이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내기 때문에 본인이 입을 열어서 분위기가 싸해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반면 한중일 미팅의 경우, 제발 누가 질문 좀 해줬으면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말을 꺼내는 데 쑥스러워한다.
미팅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다. 적재적소에 좋은 질문을 던지고, 적절하게 비판도 하고,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는 사람은 업무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다.
WFH (Work From Home)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미국 회사가 물리적 공간에 대한 제약에서 자유롭다. 한국은 나인투식스(9:00~18:00) 근무가 일반적이다. 그나마 스타트업은 좀 더 자유로운 편이다. 미국은 공식 근무 시간 자체가 나인투파이브(9:00~17:00)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에 대해 별다른 편견이 없다.
물론 생산성이 좋지 않은 직원이 자주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한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곤란할 거다. 하지만 자기 일을 명확히 맡기는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
또 좀 다른 것이, 회사보다 가족을 중요시하는 정서가 당연하게 깔려있다는 거다. 만약 가족이 아프거나, 자녀의 학교에서 행사가 있다면 당연히 회사에 휴가를 내거나 해서 가족 곁에 있어야 한다. 가족 일을 뒤로 미뤄두고, 회사 일에만 전념하는 직원에 대한 평가가 결코 높지 않다. 결국 가정이 무너지면 그 사람의 생산성도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해서도, 영어만 잘해서도 안 된다.
미국 회사에 있으면서, 국내 영어 교육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론적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교육을 받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기본적으로 영어로 어떤 의제를 놓고 토론하고 퍼실리테이션하는 측면에 대해 우리는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 말하는 상대방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고, 상대방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파악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영어를 아예 못해도, 미국 비즈니스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국내 창업자들도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건 아닌 것 같다. 말 안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소비되는 에너지가 얼마나 큰가.
반면 영어만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틀리다. 한국말은 무지 잘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사람과는 오래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지 않나. 영어도 똑같다. 영어 능력과 동시에 실제적인 컨텐츠가 그 사람에게 있어야 한다.
미국 회사에서 미팅 때 논의가 잘 이루어지는 이유는 참여자 각자가 적재적소에 질문을 던질 줄 알고, 또 비판하는 말일지언정 긍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회의 중에도 상대방에게, 너는 이걸 못했고 저건 잘못됐고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꾸면 이렇게 좋아진다, 는 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간다. 아주 직접적인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논의를 통해 생산적 결과를 도출해낼 방법을 아는 것이다.
미국, 영국, 호주, 인도…다양한 억양의 영어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다들 조금씩은 있을 거다. 특히 많이 신경 쓰는 것이 발음이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발음보다 리듬이나 억양이 더 중요하다. 말하는 것뿐 아니라, 가청 능력에서도 그렇다. 실제 캘리포니아에는 인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도 거의 인도라고 보면 된다. 인도 사람이 말하는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꽤 훈련이 필요하다. 전화 미팅 같은 것을 하게 되면, 표정도 못 보니까 더 알아듣기가 힘들다. 다양한 액센트의 영어가 들려오는 곳이다. 내 경우에도 가청 폭이 굉장히 좁았고, 지금까지도 훈련하는 부분이다.
저녁이 있는 삶? 고위직은 똑같이 힘들게 일한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할 때 ‘저녁이 있는 삶’ 이야기를 많이 한다. 기본적으로 나인투파이브니까 일찍 끝나기는 한다. 그런데 사실 디렉터 이상급 직원과, 그 밑의 직원들은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본다.
보통 미국 회사는 C레벨, SVP(부사장 혹은 전무급), VP(상무급), 디렉터, 매니저, 실무자로 직급을 나눈다. 그런데 디렉터 이상의 팀원은 한국 회사원처럼 회사의 성공과 자신의 인생 방향이 웬만큼 일치되어 있다. 밤 12시가 되도 메일 다 확인하고, 내일까지 끝마쳐야 하는 일이 있으면 밤새 작업한다.
그런데 디렉터 이하 직원이 이렇게 일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특히 엔지니어의 경우 실리콘밸리 내에서도 수요가 워낙 많다 보니, 회사의 성공보다 자신의 경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다. 경력을 쌓아 더 나은 회사로 가는 데에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이들은 5시 퇴근 이후에는 일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디렉터 급 이상은 다르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모든 팀원이 회사의 성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다 보면 성과가 나오질 않는다. 윗단에서는 훨씬 더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다.
[청중 일문일답]
일본 비즈니스를 하며 느낀 가장 큰 애로사항은 뭔가.
한국은 보통 결정이 빠르다. 사장이 내일부터 하자고 하면 개발자들도 손이 빠르니까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온다. 반면 일본 회사의 경우 안건이 올라오고 나면 관련 부서가 수많은 회의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라면 6시간 걸릴 것을 6번의 회의를 거쳐 결정하는 거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저 시간에 하고 말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한번 결정을 하면 오래간다는 특징이 있다. 또 스타트업하다보면 정말 수많은 메일에 답장을 해야 한다. 영어면 Ok! 한 문장에 끝날 것을, 일본 비즈니스 예절에 맞춰서 작성하다 보면 앞뒤로 붙여야 하는 사족이 많다.
한국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직원 관리를 어떻게 했나.
직원 관리라는 말 자체가 맞지 않는 거 같다.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을 뽑았다면, 잘못 뽑은 거다. 내보내야 한다. 기본적으로 관리 안 해도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 본인의 목적이 뚜렷하고 똑똑한 사람은 오히려 ‘내가 지금 충분히 회사에 기여하고 있나’하는 지점에서 괴로워한다. 왜 일을 이 정도밖에 하지 못 했냐고 지적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뽑지 않는 게 맞다.
2012년도에 <린스타트업>이라는 책을 번역했다. 이유가 뭔가.
나는 스타트업 행사에 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스타트업 대표는 한눈팔면 안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책 번역도 솔직히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페이포워드(pay forward) 하자는 생각에서 번역했다. 내가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도움이 필요한 후배들에게도 나누어주자는 뜻에서다. 내가 경험한 삽질은, 또 누군가 시작하는 지점에 있는 사람이 경험할 수밖에 없다. 사실 번역은 투입되는 시간 대비 이익 측면에서 따져보면 하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기여하는 마음으로 했다. <린스타트업> 책을 보면서, 워낙 내 비즈니스에 적용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실제 파이브락스 제품에도 많은 내용이 녹아 있다. 하지만, 읽으신다면 원서를 추천드린다.
포잉을 하다가 파이브락스로 피봇했다. 피벗 과정에서 팀원 이탈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이겨냈나.
피봇을 한다고 결정했을 때, 그걸 통과하는 과정은 정말 괴롭다. 일단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사기는 엄청나게 떨어진다. ‘나는 이 일 하려고 회사 온 것 아니야’, ‘처음 말한 건 이게 아니었잖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당연히 생긴다. 기본적으로는 될 때까지 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그만두면 그 전에 이루어 놓았던 것들도 다 사라진다. 피봇 이후에 성공하면, 그 전의 고생이 다 자양분이 된다. 절대 그만두지 말아야 한다. 내가 피봇 이후에 가장 많이 했던 것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우리 제품에 대한 칭찬을 팀원들에게 자주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잘하고 있어’라는 인상을 주는 게 중요했다. 처음엔 회의적이었던 사람도, 긍정적인 평가를 접하다 보면 확신을 하게 된다.
스타트업이 B2B 시장에 진입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큰 회사를 대상으로 영업하려고 할 때, 유명하지도 않고 레퍼런스도 적으니 신뢰를 주기 어려운 것이다. 노하우가 있었나.
일단 우리가 스타트업이고, 많이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이런 것은 우리 사정이다. 돈 내고 서비스를 쓰는 고객사 입장에서 그걸 배려해줄 의무가 없다. 그래서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레퍼런스 포인트를 확장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첫 고객사에게는 훨씬 더 잘해줘야 한다. 우리는 SAAS 모델이기 때문에 결국 글로벌 확장성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한·중·일, 미국에서 사업을 해보니 한국과 일본의 고객사가 굉장히 특이하다는 걸 느꼈다. 특히 일본 고객사의 경우 특이한 요구를 많이 한다. 초기에는 그런 요구에 거절할 입장이 못 된다. 일본 시장에서는 특히 레퍼런스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반에 닥치는 대로 고객사를 늘리기보다는, 자사가 생각하는 제품의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고객사를 유치하는 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좋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