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직원들의 ‘멘탈 붕괴’를 관리하는 방법
매일 생존이 버거운 스타트업에게 ‘직원의 정신 건강도 신경 써달라’는 요구는 기각되기 쉽다. 하지만 생존 다음 단계에 도입한 조직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감정 노동자가 전체 노동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이 경우 직원 개개인의 정신 건강과 감정 상태가 생산성과 직결된다. 2007년, 이미 국내에서는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직원 한 명당 연간 74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이는 당시 개인 연봉의 26%에 이르는 수치였다.
스타트업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O2O 분야 창업이 늘면서, 직원 개인과 고객 간 접점이 계속해서 확대되는 추세다. 고객과 대면하는 직원의 인상은 브랜드 신뢰도와 직결되는 요소다. 이에 급성장을 겪은 몇몇 스타트업들이 조직의 전열을 가다듬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멘탈 붕괴’를 관리하고 있다.
알지피코리아의 발리룸 전경
배달앱 요기요·배달통의 운영사인 알지피코리아에서는 근로자 지원 프로그램(Employee Assistance Program, EAP)의 일환으로 전문 상담 공간인 ‘발리룸’을 운영한다. 발리룸 내에는 주 3회, 오후 5시부터 9시까지 전문 심리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으며, 사전 예약을 하면 직원은 근무 시간 중에도 자유롭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상담 내용은 업무 영역뿐 아니라 집안 문제, 대인 관계 등 사적인 영역 모두를 포함한다. 개인이 전문가에게 심리 상담을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7-10만 원의 비용이 지출되는데, 현재 알지피코리아에서는 전액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 사내 상담 프로그램을 기피하는 요소 중 하나인 개인 정보 노출을 막기 위해 상담 내용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다.
알지피코리아 이화영 과장은 “지난해 서비스 런칭 만 3년이 지나면서, 조직원 수가와 업무량이 급격하게 늘었다”면서, “팀원 개개인이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필요성을 느꼈다”고 발리룸 도입의 계기를 설명했다.
알지피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 2월까지 전체 직원 중 총 50명이 발리룸에서 상담을 받았다. 두 달 간의 상담 건수는 무려 70건에 이른다.
한 직원은 “회사 지원 덕분에 경제적 부담 없이 자신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게 됐고, 상담 과정에서 깨달은 좋은 생각이나 경험을 동료들과 나누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지난해 6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상반기 매출만 180억 원을 기록했던 쏘카 역시 사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선 알지피코리아와는 달리 쏘카는 조금 더 직무 중심적인 리더십 코칭을 진행한다. MBTI 진단을 통해 직원 각자에게 맞는 문제 해결·협업 방식을 찾아내 실제 업무에 적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쏘카의 이상헌 매니저는 “쏘카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을 지원하여 조직 잠재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코칭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바일 심리 상담 스타트업 ‘소울링’은 상담을 전문 분야로 다루고 있는 만큼, 그 노하우를 자사 조직 내에도 녹여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힐링 워크샵인 플레이샵(Playshop)이다. 심리 검사인 HTP, 그림 치료, 그룹 토의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직원들이 서로의 심리적 뿌리를 이해하며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소울링 내에서 정신 복지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정민아 수석연구원은 “사내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 개개인의 참여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면서, “개인이 이러한 상담 과정을 업무의 연장선으로 느끼지 않도록, 피상적인 정보 제공 보다는 개개인의 욕구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나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복지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기업의 관점은 중요하다. 업무 능률 향상에만 집착하다 보면 개개인의 삶의 질 향상에는 무관한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이때 직원들은 ‘이제 사생활까지 관리하려고 드냐’는 불만을 갖게될 수 있다.
정민아 수석연구원은 “조직은 개인으로 구성된 집합체이기 때문에 결국 조직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에서 유발된다”면서, “업무 능률뿐 아니라 개인적 삶에 대한 가치를 함께 다룸으로써 자연스럽게 효율성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앞서 말했듯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에게 이러한 정신 건강 복지 문제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가 쉽다. 비용적 부담이 크다면, 기업용 모바일 상담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최근 등장하고 있는 모바일 심리 상담 스타트업의 경우, 시중의 대면 상담가의 40~50% 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B2B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직원의 전반적인 심리 상태를 훑어볼 수 있는 리포트를 추가 제공하기도 한다.
소울링 내 힐링워크샵 진행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