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감독, “보편적 정서와 VR 기술이 콘텐츠 몰입도를 높인다”
“보편적 정서와 VR 기술이 콘텐츠 몰입도를 높인다”
국내에서 865만 관객을 동원하고 전 세계 11억 달러(1조2,600억 원)의 매출을 거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조 루소(Joe Russo) 감독이 8일 한국을 찾아 성공하는 콘텐츠의 비결과 영화 산업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의 루소 형제(조 루소, 앤서니 루소)는 영화 단 두편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미래를 이끌어 갈 재목으로 인정 받은 바 있다.
이 자리에는 영화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분노의 질주> 등의 유통과 브랜딩을 총괄하는 불릿(Bullit) 사의 토드 마커리스 대표도 동석해 최근 불릿이 집중하고 있는 VR 기술에 대해 소개했다. 불릿은 토드 마커리스와 루소 형제를 포함한 4명의 대학 동창생이 만든 콘텐츠 유통사다. 두 연사의 강연 내용을 ‘보편성’과 ‘확장성’ 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보편성 : 다른 우주, 다른 시간, 다른 문화 속 히어로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
강연의 맨 마지막 질문자가 ‘배트맨 대 슈퍼맨>의 실패 원인이 무엇인 것 같냐’는 질문을 했을 때, 루소 감독은 “타 작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시청자가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들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번 강연 내내 그가 콘텐츠의 성공 비결로서 강조한 것은 이야기의 ‘보편성’ 이었다.
“마블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슈퍼 히어로가 이해하기 쉬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은 세인트 루인스에 사는 사람과 비슷한 사건과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 조 루소(Joe Russo) 감독
“우리가 IP(지적 재산권)를 찾아 나설 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스토리가 보편성을 담고 있는 지의 여부다. 히어로 캐릭터가 겪는 모든 사건과 감정들이 우리 모두가 경험해봤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몰입할 수 있다. 캐릭터가 세상에서 너무 동떨어져 있거나,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뤄서 감정 몰입이 힘들다면 그 영화는 잘 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IP 발굴 기준 중 중요한 요소다.” – 토드 마커리스(Todd Makurath) 대표
확장성 : VR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포털이다(VR as portal to another world)
루소 감독과 토드 대표는 VR 기술을 스토리텔링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도구적 관점에서 설명했다.
“인터넷이 빨라지고, TV를 통해 언제든 영화를 꺼내볼 수 있게 되면서 영화 산업은 위태로워졌다. 넷플릭스를 통해 대중은 열 시간을 연달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TV 드라마 역시 영화만큼의 정교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는 이제 대중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들과 스토리텔링 경쟁을 해야 한다. 우리 형제는 기술을 좋아한다. 스토리텔링을 극대화 하기 위한 장치로 발견한 것이 VR이다. 2030년 까지 메가 기술 테마는 VR이 될 것이다. VR은 기술이고, 플랫폼이며 매체다. 앞으로 30년 간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오직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만이 장애물이 된다. 마블 세계의 팬들은 최소 1,2년 간 다음 시리즈를 기다려야만 그들의 히어로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헤드셋을 쓰고 언제든지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와 상호 작용하고 어벤저스 본부에서 같이 먹고 자고 할 수 있다면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스토리텔링의 미래는 언제든지 대중이 그 세계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드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 조 루소 감독
“영화 산업은 만들어낸 콘텐츠를 다양한 플랫폼에 적용시켜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사업자 관점에서는 더 많은 돈을 끌어 모아서,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VR은 그것에 대한 답이 된다. 우리가 불릿을 설립한 이유도 그것이다.” – 토드 마커리스 대표
아래는 조 루소 감독, 토드 마커리스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Q.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는 860만 명 관객수를 돌파하며 흥행했다. ‘아메리카’라는 타이틀을 건 히어로 물이 중국·한국 등 국가 경계없이 흥행했던 이유는 뭐라고 보나.
A. 작품을 사랑해줘서 고맙다.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한국 관객들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다. 캡틴 아메리카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토리텔링의 보편성과 몰입력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메리카’가 붙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흥행이 어려울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캡틴은 미 정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정의를 위해 싸운다. 이상을 지향하고 다른 사람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으려는 히어로의 정서는 아주 보편적인 인간애 코드라고 생각한다.
Q. 시빌워는 많은 것들을 성취한 시리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수많은 히어로 간의 균형이 놀랍도록 잘 잡혀있다는 점이다. 기존 히어로 군단에 스파이더맨, 앤트맨과 같은 새로운 히어로도 합류했다. 이들 캐릭터 간 각각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균형을 맞춘다는 지점이 창작자로서 골치 아팠을 것 같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A. 사실 그런 이유로 시빌워는 만들기 가장 어려운 영화였다. 캐릭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잘못 해석되어 있다면 그 팬이 실망하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스크립트 부터 세계관까지 체크할 게 많았다. 해당 캐릭터가 가장 마지막으로 스크린에서 보였던 모습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에게 많은 부분을 의존했다. 세상에서 그 캐릭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 아닌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등과 촬영장에서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갔다.
Q. 러닝타임 2시간 30분 중 각각의 캐릭터가 몇 분씩 등장하는 지도 계산해서 만들었나.
A.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각 캐릭터가 충분한 시간을 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니까 이 캐릭터에게 영화를 시작하고 끝내는 역할을 주고, 그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영화가 지나치게 무겁게 흘러가지 않게 하기 위해 스파이더맨과 앤트맨이 가진 유쾌한 톤을 활용했다. 캡틴과 아이언맨이 개그를 하면 캐릭터 톤이 무너진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와 앤트맨은 할 수 있다. 이들이 영화의 어두운 부분을 일부 상쇄시키고 내용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Q. 캡틴 아메리카를 만들면서, 마블의 거대한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이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연출색을 잃지 않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마블 스튜디오의 수장인 케빈 파이기와의 의견 조율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하다.
A. 마블은 훌륭한 회사다. 케빈 파이기 대표와는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우리의 톤은 제임스 건(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이나 페이튼 리드(앤트맨 감독) 와는 다르다. 스토리텔러가 누구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스토리텔링이 탄생한다. 케빈 파이기 대표는 감독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했다.
Q. 컨텐츠 국경이 희미해진 시대다. 창작자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각 문화가 가진 특수성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시점인 거 같다. 다른 문화권에서 작품에 대한 원천 소스 혹은 영감을 얻은 경험이 있는가.
A. 스토리텔링을 하면서 항상 글로벌한 관점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이야기가 세계인 모두에게 관련이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까도 말했던 보편성의 문제다. 앞으로도 마블 세계관 내에서 다양한 문화, 인종을 다루는 컨텐츠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2달 동안은 중국의 영화 제작자들과 밀접하게 만나왔다. 장 웬(장 문)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굉장히 독특하고 다이나믹한 캐릭터를 풍부한 표현력으로 그려내고 있다. 2018년 개봉할 [인피니티 워]의 아젠다 중 하나가 아시아 캐릭터를 집어넣는 것이다.
Q. 콘텐츠 타깃 시장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아시아 시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우리가 IP를 찾을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이 스토리의 보편성이다. 누구나 느껴봤을 감정을 캐릭터들을 통해 표현해야 한다. 아시아에는 매우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역사가 있다. 수 천년 동안 전해 내려온 스토리텔링, 즉 아시아만의 목소리가 있다. 우리는 중국에 앤썸픽처스(Anthem Pictures)라는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아시아 문화와 IP에 접근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문화권에서 떠오르는 신예 스토리텔러들을 기존의 전문가와 엮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콘텐츠에 아시아의 문화적 요소들이 녹여내는 것이 목표이고, 한국 역시 그런 면에서 아주 비옥한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Q. 앤썸픽처스를 통해 [캡틴 차이나] 라는 중국판 히어로물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A. 사실이 아니다. 매체의 오보다.
Q. 내년 1월부터 크랭크인하는 [인피니트 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들려달라.
A. 내가 무언가를 얘기하면 마블에서 보낸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나를 끌고 갈거다. (웃음) 인피니트워는 마블 시리즈를 처음부터 따라 온 팬에게는 아주 중요한 영화가 될거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일어났던 모든 것들이 하나로 모여 정점을 찍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스케일을 극대화 시킨 작품이 될거다. 이것만 알려줄 수 있다. 마블의 거의 모든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캐릭터 간의 상호 작용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거라고 생각한다. 인피니티 워는 무한한 전쟁, 가장 큰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Q. 토드 대표에게 질문하겠다. 영화사 불릿(Bullitt)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 확장 사례는 무엇인가.
A. 가장 흥미로운 것은 새로운 기술과 뉴미디어에 관한 것이다. 특히 VR에 관심이 많다. 우리가 만든 컨테츠가 시청자들 개개인에게 어떻게 하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들이 보는 방법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직접 콘텐츠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보니 VR이라는 답이 나왔다. VR 기기를 착용한 시청자가 만들어내는 움직임, 반응 하나하나가 콘텐츠에 대한 피드백이 된다. 시청자는 이를 통해 자연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참여하게 된다.
Q. 루소 감독은 오랫동안 ‘필름 메이커(film maker)’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서, 필름메이커의 정의 자체가 변화했다. 이제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을만한 가장 적절한 타이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좋은 질문이다. ‘미디어 메이커(media maker)’ 정도가 어떨까? 영화도, 미디어도 진화하고 있다. 20년 후의 영화가 지난 100년의 모습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화관이 관객이 동그랗게 모여 앉고 가운데에 360도 스크린이 있는 형태로 변할 수도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오히려 스토리텔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질거다.
Q. 영화에서 특정 장면을 CG로 할 것인지, 실사 촬영을 할 것인지는 어떤 기준에 따라 선택하고 있는가.
A. 첫번째로는 예산이겠다. 하지만 여력이 될 때에는 최대한 실제 장소, 스턴트, 배우들로 촬영하려고 한다. 아이언맨은 예외다. 항상 CG다. 촬영 기법의 경우 어떤 스토리를 풀어야 하는지,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는지, 해당 시퀀스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로 나와줘야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최고 수준의 CG 아티스트와 비주얼 이펙터들과 작업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시빌워의 공항신은 85%가 CG다. 공항의 경우 실제 공항을 폐쇄한 채 촬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35일을 촬영한다고 하면 3일이 실제 로케 촬영이고 나머지는 모두 블루스크린 앞에서 CG 촬영을 했다.
Q. 성공하는 컨텐츠를 만드는 비결이 있다면?
그런 비결은 없다. 다만 나는 코믹북을 보면서 자라왔고 아직도 작품들을 수집하고 있다. 시빌워의 히어로들은 나에게도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스파이더맨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히어로들과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건 내 꿈을 이루는 것이었다. 감독이 되어서도 이 히어로들에 대한 어린 시절 감정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가 영화를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은 마블 팬이다. 하지만 마블 포럼에 들어가면 16명의 히어로 팬들이 제각기 엄청 싸우고 있다. <헐크>의 브루스 배너와 나타샤가 사귀는 게 맘에 안들었다는 둥… 다양한 이유로 싸우고 있다. 이 200만 명이 원하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를 작품에 다 반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성공했던 이유는 우리를 위한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적 캐릭터를 보며 꿈꿨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어내고, 시청자들도 마음에 들어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지금껏 작품을 해오면서, 가장 큰 실패를 맛봤던 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예측하려고 했을 때’다. 그러면 열정과 감정, 진정성이 스토리에 전달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빠르게 눈치챈다. 최근 5년 간 시청자들이 아주 똑똑해졌다. 영화가 개봉한 지 3시간 후면 이미 SNS에는 악평 혹은 호평이 퍼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좋은 이야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블 세계 안에서 캐릭터들은 언제나 진화한다. <인피니티 워>도 기대해달라. 아마 깜짝 놀라게 될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