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 특집①] 불멸의 IP 명가 닌텐도, 천만 양덕 양산의 비결은?
포켓몬 고(pokemon go) 열풍이다. 닌텐도는 이 게임을 통해 지식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 역량을 가진 기업이 그 잠재력을 얼마만큼 폭발적으로 터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많은 매체에서 다뤘던 것처럼 닌텐도의 주가는 포켓몬 고 출시 이후 급증하면서 일주일 사이 86%가 뛰었다. 시가총액은 약 17조 원에 달해, 미쓰비시 상사와 유니클로를 뛰어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이 아닐 수 없다.
1889년 화투 제조업체로 출발한 닌텐도는 어떻게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열광적인 팬들을 만들어내는 엔터테인먼트사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주요 전략을 정리해봤다.
닌텐도 마을 3대장
<동키콩>
- 탄생 비화: 지금의 닌텐도를 있게 만든 장본인인 야마우치 히로시 회장이 만화 <뽀빠이>를 기반으로 한 게임을 만들고 싶었으나, 판권 획득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난항을 겪었다. 이를 후에 ‘게임의 신’이라 일컫어지는 미야모토 시게루가 뽀빠이 캐릭터가 가진 목표, 즉 ‘소녀를 구하기 위해 악당을 물리친다’는 설정만을 뽑아와 독자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당시에는 비디오 게임에 악당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유행했으므로 거대한 악당 고릴라 이름이 타이틀로 붙여 어리석다는 의미의 동키(Donkey)와 킹콩의 콩(Kong)이 합쳐진 <동키콩>이 탄생했다. 동키콩은 게임에 스토리텔링을 더한 최초의 작품이 되었고, 1981년 이전까지 짝퉁 게임을 만들며 연명하던 닌텐도를 늪에서 구원하게 된다.
- 탄생 연도: 1981년
- 주인공의 목표: 악당 동키콩을 물리치고 사랑하는 소녀를 구한다.
- 게임 리스트 : <동키콩> 외 30여 개
<마리오>
- 탄생 비화: 마리오는 원래 <동키콩> 게임의 이름없는 조연이었다. 이것을 미야모토 시게루가 별도 타이틀로 발전시켜 패미컴 게임으로 출시했다. 원래 마리오는 건축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출신이었지만, 마리오의 작업복과 모자, 작은 키 등이 배관공에 더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 직업이 변경됐다. 향후 슈퍼 마리오 시리즈는 200개 버전으로 출시되며 약 2억6천만 개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비디오 게임 시리즈가 된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편의 OST인 “Ground Theme”은 무려 125주 동안 빌보드 차트에 올라 있었다. 일본 정부는 마리오 탄생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80엔 짜리 슈퍼 마리오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마리오는 현재까지도 닌텐도의 간판스타다.
- 탄생 연도: 1985년
- 주인공의 목표: 쿠퍼왕을 무찌르고 피치 공주를 구한다. 마리오가 피치 공주를 사랑하기 때문에 구하러 가는 로맨스 장르로 착각하기 쉬우나, 버섯 왕국 국민들에게 걸린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가 피치 공주이기 때문에 구출하러 간다는 것이 정설이다.
- 게임 리스트 : 마리오 브라더스 1편 외 200여 개
<포켓몬스터>
- 탄생 비화: 곤충광 개발자 타지리 사토시가 자신이 10살 때 그렸던 만화 ‘캡슐 몬스터’를 모티브로 150마리의 포켓몬을 탄생시켰다. 통신 연결로 사람들이 함께 테트리스를 즐기게 만들어줬던 게임보이에 영감을 받은 사토시는 통신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캐릭터와 아이템을 서로 교환하거나 대전하는 형식의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사토시의 아이디어를 맘에 들어 한 닌텐도가 제작과 개발에 전격적으로 자금을 투자했다. 1997년 4월 방영을 시작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게임 판매량도 급격히 증가했다.
- 탄생 연도 : 1996년
- 주인공의 목표 : 본래 포켓몬스터는 상대편 파이터를 죽이는 전투 게임으로 기획되었으나, 후에 150개의 숲 속 생물을 모두 모아 도감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게임으로 바뀌었다. 제작사가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있기 때문에, 끝이 없는 게임이다.
- 게임 리스트: <포켓몬스터 적·녹·청> 외 24 개
이 밖에도 닌텐도는 <젤다의 전설>, <별의 커비> 등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받는 슈퍼 IP를 보유한 회사다. 본토인 일본과 가까운 아시아권은 그렇다 쳐도, 닌텐도가 바다 건너 이렇게나 열광적인 양덕들을 양산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결정적인 이유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그 너머의 전략적 비결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공들인 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먼저 닌텐도는 일찍이 1980년대부터 북미 시장에 주력했다. 야마우치의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가 첫 닌텐도 아메리카의 수장이 되어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북미 시장 진출을 강행했다. 실제로 사위인 아라카와는 야마우치 대표에게 몇 번이나 북미 시장 진출을 포기하겠다는 사임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물론 장인은 몇 번이고 반려했다. 진출 초기 당시 북미 지역에서는 ‘모두가 PC 게임을 하는데, 아직도 가정용 게임기를 내놓는 바보들이 있느냐’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출시 해에 참여한 CES에서도 무참히 외면당했다.하지만 닌텐도는 기존 패미컴의 이름을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로 바꿔 게임기가 아닌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재포지셔닝하며 끝끝내 성공을 거둔다.
이후엔 오히려 본토 일본이 북미 시장을 위한 테스트 베드가 됐다. 일본의 경우 연구가 필요하며, 한 번 플레이하고 나면 다시는 손대고 싶지 않은 어려운 시뮬레이션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반면 북미의 경우 쉬워서 계속 반복해 플레이할 수 있는 아케이드형 게임에 열광했다. 따라서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게임이라도, 북미 사용자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히 수정해서 내놓았다. 예를 들어 NES용 골프 게임의 경우 미국판이 좀 더 코스가 적고, 홀이 쉬웠으며, 상금을 지급해 여러 번 플레이하도록 유도했다. 닌텐도가 35년이 넘게 북미 사용자를 학습하는 동안 아타리, 세가 등 주요 경쟁자들이 흥망을 거쳐 사라졌다.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위기론 가운데에서도 닌텐도는 때마다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게임의 문법을 만든 사람’,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사람 그 자체
닌텐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미야모토 시게루다. 미야모토를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마리오의 아버지’, ‘게임의 신’을 넘어 ‘미야모토 시게루가 곧 닌텐도’라는 표현까지 수용될 정도다. 1977년도에 닌텐도에 입사한 미야모토는 6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닌텐도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그는 “VR 기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해 기대를 모았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의 대표 IP인 <동키콩>, <마리오>, <젤다의 전설>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1980년도에 발매된 <동키콩>은 1년 만에 아케이드 기기 5만 대를 팔아치우게 만들만큼 흥행했으며, <마리오> 시리즈는 역사 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야마우치 대표는 전형적인 재판관 스타일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고도 1~2분만 지켜보면 성패 여부를 판단하는 놀라운 직관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한다. 미야모토는 직관을 넘어 무엇이 사람들을 게임에 몰입하게 하는가를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디자인해 나가는 만능 목수였다. 그가 ‘게임의 기본 문법을 제시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 덕분이다. 현 디즈니 인터랙티브 부사장인 빌 로퍼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것을 창조했다고 보는 게 옳다”고 까지 말했다.
제프 라이언의 저서 <닌텐도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에는 미야모토가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간 사고의 과정이 적혀있다.
미야모토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단순히 플레이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되도록 만들었다. 어떤 값진 상자들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쳐야 찾을 수 있었다. 플레이어는 그것들을 찾기 위해 모든 레벨의 모든 지점마다 허공으로 뛰어다니느라 몇 시간을 보내야 했다. 게임 하나에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또 다른 일들을 꾸미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개발자들은 올바른 게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난데 없는 곳으로 튀면 안 된다. 마리오는 떠난 곳과 도착할 곳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미야모토는 이 규칙을 어길 수 없기에 규칙을 약간 꼬았음이 분명하다. 레벨 마다 미야모토는 플레이어에게 짓궂은 장난을 걸고 있었다.
마리오는 크로아티아 태생의 심리학자인 미하니 칙센트 마하이가 몰입이라고 칭한 플레이에 관한 것이었다. 몰입의 즐거움은 행동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성취하고 완수하는 느낌이다. 자동차 엔진을 만지작거리느라 옷을 쇼핑하느라 친구와 대화를 나누느라 또는 음악을 연주하느라 행복한 시간에 빠져봤던 사람들은 누구나 몰입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게임이 너무 쉽거나 너무 어렵지 않고 정확히 적당한 정도로 반죽 됐을 때의 최적 지점이 바로 몰입이다.
행복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등불이었다. 난이도는 어떤 게임에서도 양날의 검이다. 너무 쉬우면 다시 도전할 맛이 안 나고, 너무 어려우면 플레이어를 내쫓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플레이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웃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짧은 다리로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굼바스라는 귀여운 버섯과 관능적인 빨간색 입술을 가진 끈끈이 주걱 피라냐 식물과 하얀색 오징어 불루퍼가 악당이 됐다.
성숙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 of seasoned technology)
닌텐도에서 게임보이를 만들어낸 개발자 요코이 군페이는 늘 ‘성숙한 기술의 수평적 사고(lateral thinking of seasoned technology)’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인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이를 깊게 새기며 게임을 만들었다. 이 명제는 닌텐도의 오랜 전통이 되었다.
여기서 ‘성숙한 기술’이란 ‘최첨단, 최신 기술’의 대칭어다. 즉 이미 개발된 지 꽤 되어 충분한 연구를 거쳤기 때문에, 값이 싸고 널리 알려진 기술을 뜻한다. ‘수평적 사고’란 이러한 기존의 기술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도입한다는 의미다.
요코이는 한 인터뷰를 통해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서 첨단 기술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기발하고 재밌는 게임 플레이가 더 우선된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작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닌텐도를 이끌었던 사토루 이와타 사장 역시 닌텐도 DS와 위(Wii)를 만들 때 이러한 철학을 제품에 담았다.
이번 포켓몬 고 역시 최첨단 기술 덕에 성공한 게임이 아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포켓몬 고는 증강 현실(AR) 개념이 일부 적용되어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는 기술적으로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세계에 3차원 가상 물체와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라는 본래 정의만 두고 따져봤을 때는 오히려 스냅챗이나 스노우앱이 제공하는 얼굴 꾸미기 기능이 더 AR 본질을 잘 구현해 낸 서비스라는 설명이다.
포켓몬 고는 지리 정보 시스템을 아주 잘 활용한 위치 기반 게임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수십 년 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해 왔던 아주 일반적인 기술이다. 닌텐도는 이 평범한 기술을 ‘숲 속의 포켓몬을 모두 모아 도감을 완성시킨다’는 자사 IP의 핵심 내러티브와 완벽하게 반죽해 오늘 날의 포켓몬 고를 탄생시켰다. 이것이 바로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도 만들어낼 수 없는 게임 ‘포켓몬 고’를 탄생시킨 닌텐도의 저력이다.
게임보이는 출시 당시 아주 값싼 기술이었던 도트 디스플레이와
반도체 기술로 만들어졌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다음 행보는?
닌텐도의 80년대 경쟁자가 아타리였고, 1990~2000년대 초반 경쟁자가 세가, 마이크로소프트, 소니였다면 현재의 닌텐도는 애플과 페이스북을 견제하고 있다.
닌텐도는 애플과 공통점이 많다. 일단 두 회사 모두 폐쇄적이기로 유명하고, 국가와 나이를 초월한 열광적인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스타일과 재미를 추구한다. 실제로 닌텐도는 애플의 앱스토어를 흉내 낸 자체 게임 마켓을 만들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하드웨어가 핵심 역량이었던 기업에게 있어서, 플랫폼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다. 또 캐쥬얼한 사용자의 빈둥거리는 시간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페이스북과도 대상층이 겹친다.
포켓몬 고가 흥행했고, 이제 중요해진 것은 닌텐도의 다음 행보다. 사실 닌텐도의 이번 선택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자사 게임기에 IP를 얹어 출시하는 것이 이들의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고집이 센 기업이다. 모바일 세계에 진입했다고 해서 오랜 전통을 버리고, 스마트폰 게임에만 전력을 쏟아붓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닌텐도는 일주일 전, 새로운 콘솔 기기인 닌텐도 NX 출시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NX를 위한 VR 헤드셋까지 개발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각생이라고 조롱받았던 닌텐도는 포켓몬 고를 시작으로 이제 그 누구보다 빠르게 모바일 시장에 침투할 것으로 보인다. 키미시마 타츠미 대표는 “향후 모바일 게임사들에 IP를 더욱 개방할 예정이며, ‘닌텐도 스타일’의 스마트폰 전용 게임 콘트롤러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아직 간판 스타 마리오가 모바일 게임계에 등판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 14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닌텐도는 일본의 스마트폰 게임 개발사인 DeNA와 인공 지능(AI) 합작 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이는 향후 닌텐도가 출시할 스마트폰 게임의 기술적 기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앞서 말했듯 미야모토 시게루는 VR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닌텐도의 귀여운 캐릭터들은 앞으로 어떤 플랫폼 위에 올라타게 될까?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