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292] “디자인과 창업의 공통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 렌딧 김성준 대표
김성준 대표 인생의 두 가지 큰 주제인 ‘디자인’과 ‘금융업’은 마치 다른 별에서 탄생한 학문처럼 이질적이다. 그래서 “디자이너 출신이 금융업을 잘할 수 있겠냐”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그는 두 가지 주제를 동일한 문제로 인식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
산업 디자이너 시절 활용했던 ‘디자인씽킹(Design thinking)’이라는 공식으로 금융업의 문제를 풀겠다 나선 것이 어느덧 1년 전이다. 현재 렌딧은 개인 P2P 대출 부문 1위 기업이 됐다.
지난 2005년부터 끊임없이 창업에 도전했던 연속 창업가이기도 한 그에게 디자인씽킹에 관해 들었다.
렌딧 김성준 대표
창업 초기인 지난해 5월에 플래텀과 인터뷰를 했었다. 지난 1년간의 변화가 있다면.
제일 중요한 건 지금까지 210억 원 정도의 대출 지급이 됐다는 거다. 우린 개인 신용 대출만 집중해서 다루고 있는데, 작년 말을 기점으로 이 분야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업계 자체도 커졌다. 작년에 업계 전체 누적 대출액이 50억 정도였던 것에 비해 지금은 2천억 원대로 성장했다.
1년 전엔 일곱 명이었던 팀원도 스물넷으로 불어났고, 작년 이맘때 제품 개발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면, 지금은 팀 내부 커뮤니케이션과 관리에도 시간을 나눠쓰고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느끼는 큰 변화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본인이 정의하는 디자인씽킹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중심에 둔 논리적 사고방식이다. MBA나 전문 경영 교육에서는 회사의 수익성에 기반한 논리적 사고를 가르친다.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닌 회사의 ‘시스템’과 ‘효율’에 관한 사고다. 디자인 씽킹은 근본적으로 서비스 사용자의 니즈에 공감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민하는 사고의 과정이다. (디자인씽킹에 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산업 디자이너 시절 만들었던 포트폴리오를 봤다. 서문에 ‘실증적인(evidence-based)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썼더라. ‘공감’을 감정의 영역에서만 생각했었는데,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서 새로웠다. 디자이너는 사용자에게 공감하기 위해 어떤 증거를 수집하는 지가 궁금해졌다.
가능한 모든 일을 한다. 소비자를 관찰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관찰 방식은 사용자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에스노그래피(EthnoGraphy, 민속학)라는 관찰 방식도 있다. 함께 생활하거나 카메라를 설치해 사용자의 모든 행동을 관찰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 카페에 테이블 하나를 배치하더라도, 감이 아니라 손님의 동선이나 소음 민감도와 같은 데이터를 고려하게 된다. 좀 더 극단적으로는 아이를 인터뷰하는 방법도 있다. 아이는 생각을 여과하지 않고 쏟아내기 때문에 서비스나 상품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창업자로서 렌딧을 창업할 때에는 어떻게 사용자를 관찰했나. 물리적 제품을 디자인할 때랑은 접근법이 달랐을 것 같은데.
달랐다. 내가 직접 사용자가 돼 본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여러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2014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들어왔을 때 급전을 대출하려고 하다가 거절당했다. 그렇게 1차적으로 국내 대출 구조의 비효율을 직접 경험했고, 이후에 통계를 찾아봤다. 국내에도 미국의 렌딩클럽 같은 서비스가 꼭 있어야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자로서 고객에게 공감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직접 고객이 되어보는 것’일까.
직접 사용자가 되어보거나, 가까운 사람이 경험하는 걸 관찰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없으면 중간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사업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 시장 환경이 달라질 수도 있고, 고통스러운 피봇 과정을 견뎌야 할 수도 있고. 창업자가 이 문제에 공감하고 꼭 풀어야겠다는 확신이 없으면 장애물을 만났을 때 쉽게 포기하게 된다.
디자인씽킹 과정 중 하나인 ‘프로토타이핑’과 ‘테스트’는 ‘린스타트업’ 개념과 비슷한 것 같다. 준비했던 걸 다 버려야 할 위험도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단계인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가정의 범위를 너무 크게 잡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만든 시제품을 통해 검증해야 할 명제의 범위가 너무 크면, 그게 틀렸을 때 서비스 전체를 다 갈아엎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어느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게 쪼개서 보는 게 중요하다. 검증해야 할 단위가 작으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버릴 수 있다. 문제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디자이너 시절과 달리, 렌딧은 만져지지 않는 금융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브랜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일관성이다. 돈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투명성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출자, 투자자에게 모두 대쉬보드를 통해 금리 형성 과정과 상환 스케쥴, 투자처 등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기존에 적금을 들거나 펀드에 투자하면 수익률 이외에 자세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정보를 불투명하게 제공하면, 투자자에게 신뢰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또 금융 용어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는 어려운 면이 있는데, 최대한 풀어서 쓰려고 노력한다. 보통 금융 기업의 홈페이지에 가면 숨기고 싶은 정보는 깨알만 하게 적고, 강조하고 싶은 문구는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고객이 자의에 의해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별할 수 있길 원하기 때문에 정보를 최대한 동등하게 보여주고 있다.
로고 리뉴얼과 사무실 공간 디자인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들었다.
금융업에서도 브랜딩은 중요하다. 한 두 사람이 며칠 고민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봤다. 전체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데 세 달이 걸렸다.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효율, 정교함, 투명성. 키워드를 뽑은 후에는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 지를 조사한 다음 그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시각적 표현을 고민했다. (디자인 과정 동영상)
새 로고는 뭘 상징하고 있나.
우리 일 자체가 기술로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풀어내는 거다. ‘기술에 금융을 담는다’는 의미로 렌딧 스펠링 중 맨 앞 L과 맨 끝 T를 조금 변형 시켜 홑낫표(「」)를 만들었다. 색의 경우 초기 로고에서 달라지지 않았다. 은행권에서는 신뢰감을 더하기 위해 보통 파란색이나 녹색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는 젊은 회사이고, 좀 더 기술 지향적인 집단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민트색을 사용했다.
사무실 공간을 디자인할 때에는 직원들에게서 어떤 욕구를 읽고, 반영했나.
브랜딩의 연장 선상에서 공간 디자인을 했다. 가장 중점을 두었던 건 공간 구획이다. 회사에 사람이 10명이 넘어가면 개인 공간이 사라진다. 하루에 8시간을 넘게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용한 개인 공간, 적당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공간, 모두 개방된 공간이 별개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방 공간의 경우 편하게 앉아서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계단식 형태로 설계했다. 공간은 사람의 행동을 좌우한다. 각 공간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면, 서로 간 업무 스타일을 존중하는 일도 수월해 진다. 이를테면 폐쇄된 개인 공간에서 일을 하면 ‘지금은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니, 조금 후에 이야기 나누자’는 의사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직원들의 만족도는 어떤가.
호응이 좋다. 이사한 뒤에 팀이 다같이 모여 공간 설계 과정과 철학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자금이 좀 더 넉넉했다면 좋았겠지만, 미니멀하게 공간 구획에 집중하고 시공만 맡겼기 때문에 시중가 대비 20% 정도 싸게 했다.
왼쪽 하단 공식은 “매일 1%씩 발전하면 1년뒤 37.8배 성장할 수 있지만, 1%씩 퇴보하면 시작 때의 3% 수준으로 축소된다” 라는 뜻이라고.
디자이너 시절 ‘모든 디자인 결과물은 한 사람이 아닌 팀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말을 했다. 개인을 너머 ‘디자인씽킹을 할 줄 아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리더는 어떤 일을 해야하나.
가교 역할이다. 디자이너가 핀테크를 한다고 하니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이 문제를 더 잘 풀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 이유는 융합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산업 디자이너 시절에도 기계과, 디자인과 친구들 사이의 중재자가 되어 관리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렌딧도 마찬가지다. 금융과 기술이 융합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시스템이 고도화될 수록 개발자, 기획자, 디자이너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진다. 디자인씽킹으로 팀을 중재하고,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앵글을 고려해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본다.
디자인 포트폴리오에는 모든 작품에 대한 개인의 기여도를 도표로 그려놨더라.
아이디오(IDEO)의 톰 켈리 대표가 쓴 <이노베이터의 10가지 얼굴>이라는 책이 있다. 혁신가가 가져야 할 10가지 역량을 문화인류학자, 실험자, 협력자, 디렉터, 스토리텔러 등으로 나누어 설명한 책이다. A 프로젝트에서는 협력자였던 사람이, B 프로젝트에서는 디렉터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이 모인 팀 안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대해 정의를 명확히 내려주는 게 중요하다. 한 프로젝트에 관찰자만 다섯 명이 모여 있으면 일이 진행이 되겠나. 한 회사에 여러 명의 기획자가 있다고 해도 그들 모두 성향이 다르다. 그들의 과거 경력과 경험을 관찰해 리더가 적절한 역할을 부여해주어야 한다. 나도 우리 팀원들에 대해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관찰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산업 디자이너 시절 만든 재활의료기구와 각 팀원의 기여도를 표시한 도표
산업 디자인과 창업의 가장 큰 공통점과 차이점은 뭐였나.
공통점은 사람이 필요한 걸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다. 사람이 필요로 하지 않는데 아름다운 것은 그냥 예술이다. 산업 디자인과 사업은 소비자의 욕구를 알고, 그걸 개발해서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차이점은 디자인은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만 깊이 고민하면 되는 반면, 사업에서는 팀 빌딩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채용 전략, 조직 문화 정립 등 팀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 산업 디자인과는 다르다.
지난 2월에는 사회적 기업인 ‘우주’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현재 개인 신용 대출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향후 기업과 부동산 대출 분야로 확장하고자 하는 움직임인가.
부동산이나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서는 우리도 언제나 열려 있다. 미국 렌딩클럽에서도 개인 대출과 부동산 대출 등을 적당한 수준으로 섞어 포트폴리오를 늘림으로써 투자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 사업 확장의 가능성은 당연히 있다. 다만 우주와의 업무협약은 조금 특이한 경우다. 우주는 공유경제 기업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개인에게 거주처를 제공한다. 따라서 개인 대출을 하고 있는 우리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사회적 의미도 찾을 수 있었기에 업무 협약을 맺은 것이다.
렌딧의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개인 신용 대출 분야에서 렌딧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전체 금융 시장을 놓고 보자면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내실을 다져 더 탄탄하면서 빠르게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게 단기적인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대출 뿐만 아니라 금융 전반의 비효율을 기술로 풀어내는 기업이 되고 싶다.
마지막으로 대표 김성준에게 ‘렌딧’의 의미는.
내가 대출을 거절 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창업했다고 하면, 다 꾸며낸 이야기 아니냐고 묻더라. 거짓말이 아니다. 이전에 하던 사업을 다섯 번 피봇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금융 문제를 발견했다. 그렇기에 내게 렌딧은 ‘벼랑 끝에 찾아온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