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298] 독서 모임 만들어 돈 버는 스타트업 ‘트레바리’
개인적으로 독서 모임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 도서 선정부터 장소 섭외, 날짜 투표, 공지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이 적지 않고, 모임 삼십 분 전에 ‘사정으로 인해 불참하겠다’는 메시지를 받고도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독서 모임은 좋은데, 그 모임이 성사되기 전까지의 준비 과정은 번잡스럽다.
직접 독서 모임을 주관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이 고충을 바탕으로 윤수영 대표는 트레바리를 창업했다. 이들은 독서 모임으로 돈이 되는 사업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이다. 트레바리는 순우리말로 <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한다.
트레바리 팀원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윤수영 대표.
사명인 트레바리는 ‘이유 없이 남의 말에 반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란 의미다. 처음에는 외국어라고 생각했다.
거의 모든 지적 성취는 삐딱함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 ‘정말 그래?’라고 딴지를 건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들고나오지 않았나. 의미도 좋았고, 순우리말인데 영어처럼 느껴지는 점도 좋았다.
‘다음’에서 사회 초년 생활을 시작했다고.
2014년 ‘다음’일때 입사해서 2015년 ‘다음카카오’일 때 퇴사했다. 그 1년이 다사다난했다.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스토리볼 콘텐츠 등을 기획하는 일을 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뭔가.
첫 번째로는, ‘팔릴수록 세상에 도움이 되는 걸 팔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오그라들 수도 있지만, 나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컨텐츠와 광고주를 위해 일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세월호와 이스라엘 가자 지구 공습 사건을 접하며 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두 번째는 ‘먹고사니즘’ 때문이었다. 2014년에 텐센트, 버즈피드 등 세상을 먹어치우고 있는 기술 기업과 자본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위기감이 들었다. 앞으로 50년은 넘게 경제활동 해야 하는 데 경영대를 나온 문과생인 나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까. 테크 회사에서 임원으로 크는 게 정답인 거 같지 않았다. 세상의 변화를 예측하기보다는 어떤 변화가 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에서의 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장에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경험을 쌓아야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고. 물론 하고 싶은 일과 함께할 동료들이 생겼다는 점도 큰 이유였다.
창업 아이템을 ‘독서 모임’으로 잡은 이유는?
2010년 대학 시절부터 독서 모임을 해왔다. 그러면서 내가 20대 때 했던 지적 성장의 대부분이 강의실이 아닌 독서 모임에서 이뤄졌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은 외로운 사회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편협함과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에 있어, 독서 모임은 꽤 좋은 도구가 된다. 원론적인 문제 제기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나올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그런데 한국에서 독서 모임 수명이 2년이 채 안 된다. 생각보다 운영이 힘들기도 하고, 모임의 중심이었던 한 두 명이 그만 두면 흐지부지 되기 때문이다. 독서 모임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만, 절대 자연스러운 선의에 의해 오래 유지될 수는 없는 집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이게 직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거다.
취지는 좋은데, 이 아이템으로 수익을 낼 수는 있나?
처음엔 사업이라기 보단 실험을 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했다. 작년 5월에 지인 10명을 모아서, 회비를 받으며 독서 모임을 주최해봤다. 대놓고 ‘여러분이 내는 건 회식 비용이 아닌 트레바리의 마진’이라고 말했는데 거부감이 없더라. 우리가 영리 목적에서 이 모임을 주관한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첫 모임이 작동하는 걸 보고 6월에 클럽 하나를 더 만들었다. 그런 식으로 확장하며 작년 8월에 총 4개 클럽, 80명의 회원으로 정식 서비스 개시를 했다. 그리고 이게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회비가 4개월에 19~29만 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다. 저렴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기간 설정과 가격 책정을 설명해 준다면?
굉장히 좋은 건 언제나 지루함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게임도 규칙과 조작법을 익혀야 하지 않나. 그런 의미에서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는 기간을 4개월로 잡았다. 학창 시절 친구라는 게, 꼭 잘 맞아서가 아니라 한 공간 안에 긴 시간 부대끼다 보니까 친해지지 않나. 사회생활 하다 보면, 나와 안 맞다 싶은 사람은 한두 번 보고 아예 연을 끊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네 번 정도 보면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가격은 철저히 공급자적 관점에서 책정한 거다. 가격이 싸다는 것이 꼭 좋은 걸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쉽게 깎을 수 있는 게 사람 몸값이다. 나는 좋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서비스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최소한의 경제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가격 정책이다.
가격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회원은 없었나.
많다. 그런데 그런 문의가 오면 나름 확고한 태도로 대응한다. 이 정도 가격을 받아야, 우리 직원에게 이 정도 급여를 지급할 수 있다는 식이다. 여담이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개인의 노동에 대해 합리적인 대가를 지급하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가격이 착하다’는 말은 폭력적인 표현이다.
미래 보상을 핑계로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커너먼은 ‘사람이 어느 수준 이상의 연봉에 이르면 돈을 더 받는다고 해서 행복도가 증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어느 수준 이하의 연봉을 받으면 불행해지는 건 자명하다. 돈 때문에 행복해질 수는 없지만, 불행해질 수는 있는 거다. 나는 한 기업의 대표로서 직원들에게 회사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돈을 많이 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게 주기는 싫다. 내 기준에 그게 5천만 원인데, 아직 그렇게 못 주기 때문에 기분이 별로다. 또 우리 커뮤니티 멤버들을 노동자를 착취하며 즐거움을 얻는 사람으로도 만들고 싶지 않다. 트레바리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이 기업은 좋은 일도 하고, 돈도 나름 벌고 살아요’라고 내놓을 수 있는. 그렇게 되어야 더 많은 혁신과 사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민음사의 신규 문학 잡지 <릿터>를 읽는 모임. (이미지=트레바리)
서비스 이야기를 해보자. 모임마다 테크·미디어·경제 등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크게 총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다. 일단 특별한 주제가 없는 제네럴 클럽(General club)이 있다. 회원들끼리 서로 돌아가며 발제를 맡는다. 모임 파트너는 공지, 투표를 올리는 등 운영만 한다. 그리고 산업군·관심사 별 주제가 명확한 버티컬 클럽(Vertical club)은 클럽장이 있는 모임과 그렇지 않은 모임으로 나뉜다. 현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 다음카카오 시절 지인이 클럽장 활동을 하고 있다. 클럽장에게는 일정한 보수가 지급된다.
모임 운영도 클럽장이 맡고 있다면, 트레바리 직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우리 팀원은 항상 바쁘다. 파트너들이 성공적으로 클럽을 운영해나가기 위해서는 5분, 20분 단위로 촘촘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각 시간마다 이야기 주제까지 정리해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제공한다. 또 클럽장 모두 본업이 있기 때문에, 놓친 부분을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이 사업을 멤버십 비즈니스라고 정의한다. 고객이 처음에는 빠른 배송을 이유로 아마존 프라임을 선택하지만, 더 많은 혜택 덕분에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도 독서 모임 이외의 더 많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한다. 한 예로 매주 금요일마다 디자이너, 애널리스트 등의 주도로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한다. 보드게임 파티 등도 비정기적으로 한다. 여러모로 트레바리는 노동 강도가 약한 조직은 아니다.
트레바리 회원이 팀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당분간은 쭉 그런 방식으로 팀원을 채용하려고 한다. 면접이라는 것이 복불복이고, 상대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우리 비즈니스가 겉으로 보기엔 재밌어 보이니까 이력서를 내는 이들도 많다. 책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해서 지원한다고 하면 팀원 말고 우선 회원으로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우리는 회원들이 모임을 할 수 있게, 그 나머지 귀찮은 문제들을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회원 증가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작년 4개 클럽 80명으로 첫 시즌을 시작했다. 올해 첫 시즌에는 9개 클럽, 175명으로 회원이 두 배 늘었다. 두 번째 시즌에는 18개 클럽에 310명이, 현재는 34개 클럽에 680명이 참여하고 있다. 매 시즌 2배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보통 어떤 식으로 회원이 클럽에 참여하게 되나. 지인추천이 많다고 들었다.
광고를 통한 유입도 많다. 일단 재참여율이 70%가 넘는다. 4명 중 3명은 남는 것이다. 이 남은 회원이 보통 다음 시즌에 한 사람 정도를 데리고 온다. 현재 약 30%가 기존 회원들의 지인이다.
재참여율이 높은 이유는 뭐라고 보나.
우리가 굳이 헬스장에 안 가도 운동은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멤버십에 가입하는 이유는 그래야지만 운동을 하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학습하기 때문이다. 트레바리에 한 번 참여한 이들은 속는 셈 치고 돈을 내봤더니 안 읽던 책을 읽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대세에 따르지 않고 내 주관대로 살기 힘든 사회 아닌가. 현대인은 직장 생활하면서 ‘현재의 나’에 대해 친밀하게 이야기 나눌 사람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반가움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트레바리는 교육 기업인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소셜벤처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우리는 스스로를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라고 정의하지만, 어떤 기업인지는 우리가 아니라 시장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본다. 그래서 매의 눈으로 기민하게 시장 반응을 살펴야 한다. 우리가 교육 쪽에 많은 기회가 있고 더 잘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갈 것이다. 반대로 커뮤니티 분야라면 그쪽으로 진출할 테고. 둘 다 잘할 수 있거나, 아니면 둘을 같이 해야만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판단을 우리가 내리기에는 아직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본다.
조금 더 구체적인 사업 확장 방향을 세워둔 것이 있다면.
일단 최고 경영자 과정 시장에는 진출할 예정이다. 대학에서 기업 고위급 인사를 대상으로 6개월당 1천만 원의 비용을 받고 있다. 이렇게 니즈가 분명한 시장인데, 그 안의 컨텐츠 질이 좋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걸 다 알면서도 최고위 과정을 밟는 이유는 네트워킹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책과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도움이 될지를 커뮤니티 반응을 통해 예측할 수가 있다. 이런 역량을 기반으로 제대로 된 콘텐츠의 최고위 과정을 만드는 것에 도전하고 싶다. ‘사람 안 변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모임을 계속하면서 느끼는 것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원진 급 인사들의 생각이 바뀌면, 그 밑에 달린 수많은 직원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겠나.
투자 제안이 몇 번 왔지만 거절했다. 투자 유치 계획이 아예 없는 건가.
그렇지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확장이라는 개념이, 원 컨텐츠가 제대로 마련된 이후에 복사, 붙여넣기 하는 과정 아닌가. 냉정하게 평가하면, 우리는 아직 원본을 못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모듈이라는 것은 매뉴얼이 촘촘히 갖춰져서, 인력이 없이도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 전에는 투자 받는 것이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주주 관리에 힘을 쏟다가 서비스 고도화에 실패하는 사례를 여럿 봤다. 투자는 투자자에게 10배 수익을 돌려주고도 우리한테 100배 남을 것 같을 때 받을 예정이다. 신중하게 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트레바리의 단기 목표와 중장기 목표를 말해달라.
이번 시즌에도 2배로 규모를 확장하고 싶다. 다음 시즌에는 회원이 1,000명으로 늘었으면 좋겠고.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고 양적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은 내게 중요한 주제다. 또 내년 초에 최고위 과정인 ‘트레바리 블랙’을 런칭할 예정인데, 잘 됐으면 좋겠다. 장기적으로는 우리 회사가 진짜로 사람들을 좀 더 친하게 그리고 지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또 그걸 만들어나가는 우리 동료들이 항상 스스로의 삶과 직업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갈 길이 멀지만 꼭 이루고 싶다.
트레바리 내에는 영문 서적을 읽는 모임도 개설되어 있다. (이미지=트레바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