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서밋2016] VR이 대세라는데… 한국에는 기회가 있나?
올해가 VR 대중화의 원년이 될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VR이 대중의 일상에 주는 파급력이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레티지 애널리틱스는 VR에 대한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올해에는 오직 6%의 미국 소비자만이 VR 헤드셋을 구매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당초 예상됐었던 콘텐츠 부족의 문제도 대중화의 걸림돌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게임사들이 VR과 AR 시장을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돌파구로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카카오는 물론 중견 개발사인 엠게임, 한빛소프트 등도 올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VR과 AR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시기는 늦춰질 수 있으나 VR의 시대는 반드시 올 거라는 판단에서다. 현재 50억 달러인 글로벌 VR, AR 게임 시장 규모는 오는 2020년에는 1,500억 달러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급변하는 상황 가운데, 기업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지난 14일 개최된 ‘맥스서밋 2016’에서 리얼리티리플렉션의 노정석 CSO, 일리언의 박범진 대표, 구미(Gumi)의 쿠니미츠 대표가 관련 토론을 벌였다.
현재 국내 VR 시장은 어떤 단계라고 보고 있나.
일리언 박범진 대표(이하 박) : 주관적으로 볼 때, 국내 VR 시장은 2009년 아이폰3가 출시되기 직전 분위기라고 본다. 좋다는 소문은 들려 오는데, 실제 국내에 사용자나 앱 개발사도 많이 없는 초기 시장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초기 시장이 지닌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지금 VR 시장에 뛰어드는 게 가장 적기라고 본다. 현재 인터넷 대기업들도 PC나 모바일 초기 시절에는 하나의 작은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발 앞서 나가 주도권을 잡고 그것을 기반으로 현재 큰 회사가 된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2년 뒤 상업 타이틀 게임 하나를 만들 수가 있다. 지금 당장은 국내에 시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2년 후에는 어느 정도 가시적으로 시장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리얼리티리플렉션 노정석 CSO(이하 노) : 업계에서 작년에 전망하길 올해 VR 기기가 몇 백만대 팔릴 거라고 했었다. 그러나 올해 여러 디바이스가 출시되기는 했지만 바이브 정도가 30~40만 대 팔렸고, 오큘러스는 그보다 덜 팔렸다. 하지만 게임사나 투자사를 만나면서 느낀 것이 올해에는 하나의 합의점이 분명히 생겼다는 것이다. 모바일 시대는 저물고 있고, 그 다음 시대의 플랫폼은 AR과 VR이 될 거라는 것이다. 현재 수면 아래 있어 잘 보이진 않지만, 대형 게임 회사나 영화사가 VR 관련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확실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상태다. 하지만 내년 따뜻해지는 계절 즈음에는, 마치 아이폰3가 나왔던 시점처럼 모멘텀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VR 시장에서 실제 의미있는 수익은 언제부터 날거라 보나?
노: 모바일처럼 대중적인 시장에서는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존재한다. 하지만 VR은 아직 얼리어답터, 매니아 중심의 콘솔 시장과 비슷하다. 당분간은 지불 용의가 높은 고객이 비싸게 구매해주는 시장이 될거다. 그러나 디바이스 보유자가 몇 십만 밖에 안됐는데도, 10억 매출을 내는 회사가 생겨나고 있다. 우리 회사도 9월에 서비스를 런칭했는데 꽤 매출이 나오고 있다.
박: VR 시장이 언제 열릴지 아는 것은 점술가의 영역이 아닐까. 하지만 VR이 근본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가치가 있다. PC 시대에는 항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사용할 수 있었던 서비스들이 모바일 시대에는 전부 주머니 안으로 들어왔다. 그 시점에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콘텐츠와 서비스와 앱들이 출발할 수 있었다. VR은 양상이 좀 다를 거라고 본다. 모바일과는 다르게 VR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처럼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을만한 디바이스가 아니다. 하지만 VR은 처음으로 인류가 모니터 스크린 안으로 머리를 집어 넣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VR의 핵심 가치다. 이런 장점을 극대화 한 ‘VR다운 콘텐츠’가 언제 나오는가가 관건이다. 그게 나오는 시점에 전체적으로 VR 시장의 규모가 확립될 거라고 본다. 많의 논의되다 시피 성인용 콘텐츠가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콘텐츠가 VR에 가장 적합할지, 어떤 콘텐츠를 VR로 만드는 게 유의미할 지를 계속해서 국내 개발사들이 고민하고 있다.
구미 쿠니미츠 대표(이하 쿠) : 현재 플레이스테이션 VR이 100만 대, HTC 바이브가 30만 대, 오큘러스가 20만 대 정도 팔렸다. 합치면 150만 대 정도가 시장에 깔려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1위 매출을 내는 게임들이 대략 누적 3~5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내년에는 시장에 보급될 하드웨어 대수가 올해의 5~6배 정도 늘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단순히 이 수치를 대입해보면, 최상위 게임사들은 15~20억 엔 정도의 매출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억 엔 정도면, 대기업에서는 작은 시장이지만 작은 기업에게는 나쁘지 않은 시장이다. 오히려 충분치 않은 시장 규모 때문에 대기업들이 쉽게 뛰어들지 못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기회다. 본격적인 VR 시장이 열리는 것은 3년 후라고 생각한다. 3년 뒤면 스마트폰이 현재의 HTC 기기 수준의 VR 구현을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모두가 VR을 체험할 수 있는 시점에 시장이 폭발할 것이라고 본다.
초반에는 콘솔 시장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다가 3년 후 쯤 모바일 디바이스가 따라오면서 본격적인 대중 시장이 생겨날 것이라는 게 중론인 거 같다. 모바일 VR 시장은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쿠 :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VR 콘텐츠의 필수 요소인 ‘몰입감’을 구현해 내는 것이다. 몰입감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는 방 안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즉 미래는 ‘룸 스케일 모바일 VR'(특정 공간 내에서 이용자의 동작을 인식하는 기술, 착용자가 직접 몸을 움직여야 플레이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고 본다. 현재 구글의 데이드림이나 삼성 기어VR은 3D와 유사한 경험을 준다. 3D TV가 실패한 이유는, 굳이 일상에서 3D로 영상을 봐야할 이유를 대중이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몰입도 측면에서 어떤 차별성도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도, 룸스케일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구글이나 오큘러스도 룸스케일 기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 : 쿠니미츠 씨가 말한 것처럼, 해외 업계에서도 룸스케일 경험과 양손 콘트롤을 중요시 하고 있다. 일부 의견에는 공감하면서 조금 다른 생각도 해본다. 기본적으로 VR 기가라는 게 로우엔드와 하이엔드 시장이 극명하게 갈리지 않나. 게임 시장에도 콘솔과 모바일 시장이 따로 존재하는 것처럼, VR도 룸스케일 시장과 스마트폰용 VR 시장이 각각 성장할 거라고 본다. 모바일 VR 시장 동향을 살필 때에는 구글의 정책 변화를 참고하는 게 좋다. 작년에 이미 중국에서 스마트폰용 VR 기기가 수십만 대 팔려나갔지만, 기기와 콘텐츠에 대한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기 때문에 시장이 열리지 못했다. 이번에 구글이 데이드림 플랫폼을 발표하면서, ‘스마트폰에서 VR을 작동시키려면 이 정도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최소 사양의 가이드라인을 보여줬다. 이렇게 일정한 기준이 있다는 건, 콘텐츠 개발사 입장에서도 용이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긍정적이다.
여기있는 패널들은 각각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VR 콘텐츠를 만들어왔다. 실제 VR을 다뤄보니 예상과 달랐던 점이 있었나.
박 : VR은 결국 매니아 시장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글로벌을 목표로 시작해야 한다. 국내 시장이라는 것은 올해에도, 내년에도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우리같은 작은 스타트업에게 기회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가 부족한 상황이다보니, 작은 게임 하나를 출시해도 해외의 주목도가 꽤 높은 편이다. 경쟁을 피해야하는 스타트업에게 지금이 적기다. 다만 플랫폼을 설정하는 게 굉장히 어렵다. PC, 콘솔, 모바일 중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가 늘 고민이다. 시장도 급변한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는 오큘러스 기기도 겨우겨우 구했는데, 이제는 양손 콘트롤러가 표준이 됐다. 개중 플레이스테이션 VR이 개발사에겐 좋은 플랫폼이다. 현재 시장에 4천만 대가 보급되어 있고 이 사용자들이 평균적으로 주머니가 깊고, 지불 용의와 게임에 대한 열정이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광고 단가로만 치면 이런 프리미엄 사용자들을 1명 데려오는 데 만 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쿠 : VR 콘텐츠에 몰입감을 주기 위해 현실성이 얼마나 적용되어야 하는지가 관건이었다. 실제 사람과 세계를 눈 앞에 재현해놓는다고 해서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의 데이드림은 얼굴과 손만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그 두 가지 요소만으로도 우리는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현실같은 체험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중요하다.
박 : 글로벌 게이머들이 기대하는 게 바로 쿠미니츠씨가 말한 콘텐츠다. 그래픽 퀄리티가 아무리 좋아도, 매력이 없는 게임이 있다. 굳이 모바일로 할 수도 있는 게임을 왜 VR로 만들었는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다. VR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친구와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사냥을 가는 것 같은 현실감을 전달할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는 게 핵심이다.
논의가 많은 성인용 VR 콘텐츠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쿠 : 일본은 이 분야에서 세계 탑클래스다. 이미 주변에도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성인 콘텐츠 제작에 도전하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양질의 성인 콘텐츠가 일본에서 출시될 거라 본다.
박 : 현재 남성향, 여성향 콘텐츠 모두 시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VR 영상과 연동되는 섹스 토이들도 등장하고 있다. VR은 식욕을 제외한 인간의 거의 모든 욕구를 대리 충족해줄 수 있다고 본다. VR 콘텐츠를 통해 자신의 외모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 안전하게 성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단순히 야한 게임 차원을 넘어 성의 민주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통 RPG 개발사들이 VR 시장에서 실패할 경우 최후의 보루로 성인용 콘텐츠 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집집마다 VR 기기가 한개씩 보급되게 만들 수 있는 앵커 역할을 하는 콘텐츠가 될 거라고 본다.
노 : 성인 콘텐츠라는 것이 노골적인 성행위가 등장해야만 인기를 얻는 건 아니라고 본다. 사람 간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감정과 관계 형성이 VR 내에서 구현될 수 있다. 다양한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를 잘 구현해내는 게 성공 요인이 될 것이다.
박 : VR은 스토리 전달 면에서 매체 중 가히 최고라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드라마나 영화의 시청자로서가 아니라, 직접 주인공으로서 극을 즐길 수가 있게 된다.
쿠 : 최근 일본에서는 아이돌과 데이트 하는 VR 콘텐츠가 유행하고 있다. VR은 극 속 캐릭터가 바로 내 앞까지 올 수 있다. 이 근접감이 VR 콘텐츠의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박 : 현재 VR 업계에 영화, 광고 쪽 아티스트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VR 콘텐츠 속 캐릭터와 ‘아이 컨택’하는 순간에 굉장히 극적인 힘을 발휘할거라 말한다. 이 부분을 파악하면, 콘텐츠를 제작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미국은 어쨌든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 수 있는 시장이고, 중국은 시장 규모가 거대하다. 일본은 콘솔 시대 등을 거치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많다. 한국 VR 시장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 있을까? 한국 VR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쿠 : 한국 VR 시장이 유리한 면을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로 모바일 게임을 만들 수 있는 인력이 많다. 모바일에서 VR 게임으로 넘어가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기술이나 엔진 측면에서 공통 분모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대기업에서 팀 단위로 퇴사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팀워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특수한 환경은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 : 우선 북미 스타트업에 비해 인건비나 개발 비용이 3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게 강점이다. 두 번째로는 스토리텔링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한국 유명 드라마 작가들과 협업해 로맨틱한 여성향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런 콘텐츠 개발을 하면 동남아, 중국, 북미, 유럽 시장까지 파급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등한시 했던 기존 엔터테인먼트 인력과 협업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노: 서양 쪽은 절벽을 오른다던지, 화성에 간다던지, 대자연을 탐험하는 큰 규모의 콘텐츠가 많다. 반면 동양에서는 휴먼 인터랙션하는 아기자기한 콘텐츠가 많은 편이다. 믿을 건 한국 사용자들의 감성밖에 없다. 한국적 강점을 가진 콘텐츠를 잘 만들어내서 중국에 선보이는 것이 포인트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