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황, “나인앤틱이 AR게임을 만든 이유? 사용자를 더 걷게 만드는 것.”
“증강현실(이하 AR) 게임을 만드는 우리의 첫 목표는 평범한 회사원이 출근길에 한 블럭을 더 걷게 만드는 것이었다.”
‘포켓몬고’의 제작사인 나이앤틱의 데니스 황 이사는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AR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설명했다. 데니스 황은 ‘구글 두들’을 만든 구글의 스타 디자이너 출신으로, 2011년 사내 벤처인 나이앤틱에 합류해 현재는 UX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가 오늘 ‘넥스트 콘텐츠 컨퍼런스’의 기조 강연을 통해 인기 게임 ‘인그레스’와 ‘포켓몬고’를 탄생시킨 나이앤틱의 성공 비결과 AR 기술의 미래를 공유했다.
나이앤틱 데니스 황 이사
스마트폰 중독에 빠진 자녀를 위해 시작한 구글의 사내벤처
나이앤틱은 구글 내에서 더 빠른 의사 결정과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만든 사내 벤처였다가 2015년 말에 구글과 완전히 분리된 독립 벤처가 됐다. 나이앤틱의 대표인 존 행키(John Hanke)는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는 자녀에 대한 고민으로 이 팀을 결성했다. 그는 스마트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내다볼 시간도, 가족 사이의 대화할 기회도 점점 적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소셜 네트워크 기술과 스마트폰 GPS 기술을 버무리면 세상을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회사를 설립했다.
대세 기술이라는 VR이 아니고 왜 AR을 선택했냐고?
VR은 몰입형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 간 대면 만남이 더 줄어들고,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AR은 조금 다르다고 봤다. AR은 지금 이 순간 펼쳐지는 현실의 경험을 더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표는 ‘평범한 회사원이 길을 돌아 출근하게 하는 것’
나이앤틱은 포켓몬고로 대중에게 유명해졌지만, 그 이전에 인그레스(Ingress)라는 또 다른 AR게임을 출시했었다. 인그레서는 1,500만 회 이상 다운로드 됐고, 전 세계 200개 국 나라에서 지금 현재도 계속 플레이되고 있다. 인그레스 세계 사용자의 누적 이동 거리를 합산하면 2억5천8백만 Km가 넘는다.
인그레스는 걸어 다니면서 땅에 흩어져 있는 에너지를 수집해야 하는 성격의 증강현실 게임이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포켓몬고를 수집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실제 삼성동 코엑스도 게임에 등장한다. 보드 게임처럼 특정 위치를 뺏기 위해 사용자들끼리 경쟁하는 구도인데, 글로벌 규모의 거대한 땅따먹기 게임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우리가 인그레스를 기획할 때 가졌던 목표는 소박했다. “한 평범한 회사원이 인그레스를 플레이하면서, 출퇴근길에 지름길을 포기하고 한 블록 더 걷게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초기 목표를 고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개발자로서 ‘사용자들이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걸 싫어할 게 뻔한데, 꼭 이런 게임을 만들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 밖으로 걸어 나와 움직이게끔 만들자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47%의 사용자들이 인그레스를 플레이하면서 100Km 이상을 움직였다고 답했다. 15%는 1,000Km 이상을 걸어다녔다. 60%의 사용자들의 체중 감량을 경험했고, 무려 90%의 사용자들이 오직 인그레스 게임을 하겠다는 목표로 다른 도시를 여행했다. 5%의 사용자들은 50개 이상의 도시를 방문했다. 한 중년의 일본인 사용자는, 인그레스 게임을 하기 위해 여권 발급 후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게임을 런칭하고 나서 ‘실제로 가보지 않았던 공원 등을 들려서 멀리 돌아갔다’는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고 우리팀은 굉장히 즐거워했다.
사람 간 상호 작용도 활발히 일어났다. 인그레스의 91%의 사용자가 ‘이 게임을 통해 둘도 없는 친구를 만들었다’고 답했다. 30%의 사용자들이 인그레스를 통해 연애를 시작했다. 실제 결혼한 커플도 있고, ‘인그레스둥이’들도 태어났다.
부대 수익 효과도 톡톡히 봤다. 17%의 사용자들이 게임을 하며 1,000달러 이상의 여행 경비를 쓴다고 답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의 한 편의점과 제휴를 맺어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마치 속초의 편의점들이 ‘포켓몬고’ 효과를 누리듯이 말이다.
인그레스를 통해 AR이 가진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AR은 우리의 일상과 관계를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포켓몬고가 만들어졌다.
포켓몬고, 구글의 만우절 농담에서 우울증 극복 도구가 되기까지
포켓몬고는 모두가 잘 알고 있듯, 2014년 구글의 만우절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구글맵 위의 포켓몬을 잡으러 다니라’는 농담이 시초가 됐다.
이후 포켓몬컴퍼니의 총괄 책임자가 우리 게임인 인그레스의 열렬한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물론 그의 부인까지 고레벨 플레이어였다. 이를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회사 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게임 런칭 후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초월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트래픽보다 19배 이상 접속자 수가 많았다. 5억 번 이상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졌고, 사용자들의 이동 거리는 46억 Km를 넘었다. 지구와 해왕성 사이의 거리 정도라고 한다. 현재 160여 개 국가의 사용자가 포켓몬고를 즐기고 있다. 즐거운 일이긴 했지만 그 여름 내내 모든 팀원이 잠도 못 자고 서버 복구에 매달려야 했다.
포켓몬고를 런칭한 후에 특이한 현상들이 생겨났다. 아동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위해 포켓몬고를 활용했더니, 치료 효과가 높아졌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린 환자들이 포켓몬고를 통해 집 밖으로 걸어나갔고, 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포켓몬고를 통해 증진된 건강 효과를 수치로 따져보면 280만 명의 수명이 늘어나는 수준이라고 한다. 사실 포켓몬고에서 구현된 AR 기술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대단한 하드웨어도 필요없다. 설득력 있는 프로덕트와 운이 더해진 결과다.
[데니스 황과의 일문일답]
포켓몬고의 성공에는 기술 뿐 아니라 IP의 효과가 굉장히 컸다고 생각한다.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콘텐츠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증강현실 기술을 다루고 있다보니, 최대한 현실 속에서 재밌게 풀 수 있는 콘텐츠를 선호한다. 예컨대 우주를 배경으로 한 IP를 선택한다면 포켓몬고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상상해내야 한다.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매우 어려운 선택인 셈이다.
포켓몬은 동물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현실에 있는 나무와 풀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그레스도 마찬가지로 현실 세계의 랜드마크와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공상적 요소가 너무 많은 IP의 경우 기술과의 마찰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도 앞으로 어떤 콘텐츠가 위치 기반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 지 다 예측하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자 회사가 우리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우리의 기술을 공개할 예정이다. 지금은 그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에 애를 쓰고 있다. 우리가 위치 기반, AR 게임을 독점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 플랫폼이 준비되었을 때, 한국의 유능한 게임 개발자와 개발사들이 많이 찾아와 좋은 게임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나이앤틱에서 UX 총괄을 맡고 있다. 애플과 삼성의 UX를 어떻게 보나?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 애플의 인터페이스는 깨알같은 디테일에 매우 집착한다고 본다. 사용자 입장에서 정확한 위치를 눌러야만 되는 인터페이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편하진 않다. 향후에는 대충 만져도 사용자의 용의를 알아채고 구동되는, 좀 더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의 경우 디테일이 지나치진 않다. 하지만 생략의 기술이 부족하다고 본다. 원래 인터페이스 디자인 중 가장 힘든 것이 생략의 과정이다. 사용자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기능 추가는 오히려 쉽다. 하지만 빼는 것이 더 어렵다. 향후 트렌드는 심플한 구조의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