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up’s Story #15] “고객이 우리를 성장시켰다!” 온오프믹스 양준철 대표 이상규 부대표
최근 플래텀에서 웹2.0시대에 주목받던 기업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내부에서는 가칭 ‘응답하라 웹2.0′정도로 부르는 프로젝트다. 웹 2.0시대에 태동해 현재까지 활발히 비즈니스를 진행중인 기업을 재조명해보자는 의도이다.
그런 이유로 찾아간 기업은 온오프믹스이다.
온오프믹스는 온-오프라인 행사 및 이벤트 관리 서비스다. 이벤트 개설자는 몇 번의 클릭만으로 업무회의, 비즈니스 미팅, 교육, 세미나, 전시회와 같은 공적인 만남부터 동호회, 모임, 파티, 취미생활, 공연, 시사회에 이르는 사적인 만남까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수 많은 모임들을 온라인상에 만들고 관리할 수 있다. 게다가 참가비 결제 및 세금 처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서비스다. 온라인을 오프라인으로 옮긴 대표적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웹2.0 시대 태동했던 기업들 상당수가 업종변경을 통해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는 반면에, 온오프믹스는 탄생에서부터 현재까지 서비스를 유지하고 발전해 나가는 회사라는 것이다.
겨울비가 추적이던 날 온오프믹스 양준철 대표와 이상규 부대표를 만나고 왔다. 인터뷰 중 두 사람에게서 느낀것은 ‘정중동(靜中動)’이라는 한자성어였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보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플래텀(이하 ‘플’) : 온오프믹스는 웹2.0시대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비즈니스를 이어가고 있을 뿐만아니라, 서비스 변경없이 동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띄입니다.
양준철 대표(이하 ‘양’) : 아, 한 가지 모델로 이어오는 회사가 저희 밖에 없나요?
플 : 저희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온오프믹스가 유일한듯 싶습니다.
양 : 그렇군요. 관련 부분을 생각해 본적은 없었습니다.
플 : 시대흐름에 맞춰 변화를 모색하는 추세인데 꾸준히 한 길로, 그것도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계셔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설하고. 2007년 창업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양 : 아시겠지만, 2007년 온오프믹스 초기 모델은 저희가 만든건 아닙니다. 당시 저나 이상규 부대표는 온오프믹스의 초기 사용자였을 뿐이었어요. 당시 온오프믹스를 이용하면서 불만이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운영자께서 몸이 안좋으셔서 병원에 계시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웠죠. 그러던 차에 소프트뱅크 미디어랩에서 온오프믹스 인수를 제안해 왔어요. 그래서 이상규 부대표와 논의를 했고 인수 결정을 했죠.
플 : 인수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양 : 저희말고 온오프믹스를 인수하겠다는 업체가 나타났어요. 그래서 그 업체와 소프트뱅크 미디어랩, 그리고 저 이렇게 삼자대면을 했지요. 그 자리에서 상대 업체는 자신들 팀에는 엄청난 인력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동시에 저의 학생 신분을 단점으로 지적하시더군요. 저도 제 의견을 말씀드렸죠. 사업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발자 팀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업에 대한 의지와 뜻이 중요하다구요. 결과적으로 제가 최종으로 2008년 4월에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본격적으로 온오프믹스를 ‘어떻게 바꿔야하는가’와 ‘어떻게 버텨야하는가’라는 두 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플 : 인수 초기 대표님은 군복무 중이셨잖아요?
양 : 병역특례중이었죠. 당시 상황에서 운신폭이 좁았어요. 주식회사 설립도 불가능했고, 어떻하든 자력으로 살아남아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버티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2008년부터 2010까지는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상규 부대표가 당시 고생이 많았죠.
플 : 양준철 대표님과 이상규 부대표님은 적지않은 기간동안 함께 사업을 함께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처음 만나셔서 의기 투합하셨나요?
양 : 이 부분은 이상규 부대표 관점에서 먼저 듣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부대표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부대표의 상경스토리는 잘 모르거든요(웃음).
이상규 부대표(이하 이): 저희는 고교 재학시절 창업을 계기로 알게 된 사이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양대표는 서울에서 고등학생 시절에 각자 창업을 했어요. 그러다 전국에서 창업한 고등학생들 모아 목소리를 내보자는 목표로 협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로 친해졌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제가 군대를 가게 되면서 중간에 연락이 단절되었어요.
군 복무를 마칠즈음에 제대 후 다시 사업을 할지, 입사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사업을 하려면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체계적으로 단계를 밟아야겠다는 결심하에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개발 쪽이라 전역 후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바로 취업을 했어요. 재미있었던 것은 입사하기로 한 회사 지근거리에 양대표의 집이 있더군요(웃음). 그 때 당시 서울에 아는 사람도, 지낼 곳도 없었기 때문에 양대표에게 얹혀살아도 되는지 바로 전화했습니다.
플 : 과감한 제안을 하셨네요(웃음).
이 : 물어보기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하지만 양대표가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을 해주더군요. 고마웠죠.
양 : 사실 저 혼자 쓸쓸히 사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이 : 그래서 저는 양대표 집에 자리를 잡고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죠. 그러던 중에 온오프믹스 인수 제안이 왔구요. 저도 평소에 그런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동의를 했어요.
플 : 그럼 그 때 바로 과감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셨나요?
이 : 조금 시일이 걸렸어요. 급하게 관둘 상황도 아니었구요. 인수 당시 저는 준정부기관에 근무하고 있었어요. 제가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자리가 보장된 안정된 상황이었고, 인수 초창기 온오프믹스에는 사용자가 정말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비스의 방향을 고민을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당장 회사를 그만두기는 일르다고 판단했죠.
여기에 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을 때, 온오프믹스에 대한 언론기사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온오프믹스를 찾기 시작했어요. 이런 속도로 탄력이 붙게 되면 철저한 서비스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 오는데 제가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같이 병행하는 체제에서는 관리가 불가능했습니다. 한 명이 어떻게라도 집중도 있게 이 일을 처리를 해야만 서비스 성장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당시 회사에는 저희 둘 밖에 없었고 양대표는 병역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어요. 제가 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어요. 이대로가면 온오프믹스가 죽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중에 매우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서비스에 몰입 하기 시작했습니다.
양 : 우리 두 사람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부대표가 2학년 때 만났습니다. 당시 저와 부대표는 각각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저와 위자드웍스 표철민 대표가 몇 번 방송을 타다 보니 지방에 있는 기업인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 계기로 지방에서 사업을 하고있는 저희와 같은 친구들을 모아 ‘한국청소년비즈니스연합회’를 만들게 되었고 KT 명동 전화국 꼭대기층에서 협희의 첫 모임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때가 저희의 첫만남이었어요.
이후 기술적 질의응답을 하면서 교류가 이어졌죠.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불편함이 생겨 말을 놓게 되었고 그게 결정적으로 저희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함께 살 때에도 딱히 싸울 일도 없이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상형이 완전 달라요(웃음).
플 : 그 점은 정말 다행이네요.(웃음)
양 : 제 관점에서 보는 부대표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백업을 잘해줍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중심의 리더십을 갖고 있다면 부대표는 ‘서번트 리더쉽(SERVANT LEADERSHIP)’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 : 두 분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시군요.
양 : 네. 저는 원래 지르는 타입이었어요. 하지만 부대표와 함께 지내며 감응을 받아서인지 최근에는 저도 서번트 쪽으로 많이 변하게 되더라구요. 4 ~ 5년 전에 저를 알고 있던 사람과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은 저에 대한 평가가 극명할겁니다. 그정도로 부대표는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플 : 얼마 전에 온오프믹스 내에서 플레이스와 마켓서비스를 시작하셨잖아요. 온오프믹스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대표님께서 생각하셨던 만큼의 반응이 있나요?
양 : 플레이스나 마켓은 둘 다 파일럿 단계예요. 이벤트 비즈니스를 위한 플랫폼 구축에 있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이구요. 저희는 충분한 테스팅을 거친 후 결정, 투자하는 편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둘의 수요에 맞춰 기본기능 외에 얼마나 확장할 것인가를 결정할 예정이예요.
플레이스의 경우 작년 하반기부터 장소 대관에 관한 고객 문의가 계속 오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올해 하반기 정도에는 온오프믹스를 통해 모임장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성숙될 것 같습니다. 플레이스의 경우 고객들의 수요를 보면 온오프믹스가 대중성이라는 허들만 넘는다면 가장 활발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마켓은 제가 검색광고 관련 회사 생활을 할때 가장 불만이었던 것에서 착안했습니다. 기념품, 판촉물 키워드가 한 달에 몇 백 만원에 팔려나가지만 내부 지표에서 CTR이 1%도 나지 않는 상황이 한 예입니다. 그리고 을지로, 청계천 주변에서 이 장사를 하시던 분들이 장지동으로 옮겨가면서 시장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판로개척을 위한 쇼핑몰들이 다수 생겼어요. 대부분 에이전시들을 통해 만들어진 건데요. 컨설팅을 의뢰 때문에 집적 가서 확인해보니 들어오는 소득은 미미한데 광고 회사에 계속 많은 돈을 내고 계시더군요. 정말 불합리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불합리한 시장상황에서 불이익을 받는 분들의 마켓을 온오프믹스로 옮겨와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죠.
하지만 이 부분의 화두는 온오프믹스를 대중들이 아는지가 관건입니다. 지금 마켓에는 기본적인 상품들만 올라가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구매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것을 보면서 수요가 있는 이 시장을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이벤트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 확실히 자리 잡기 전에 마켓이 먼저 성장하게 되면 오픈마켓과 경쟁을 하는 구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지금은 온오프믹스의 자체 기능에 주력, 집중을 하고 있어요. 대신 플레이스와 마켓은 온오프믹스가 성장한 만큼 따라올 서비스라고 보아 지금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 플레이스와 마켓, 이 둘은 장기 전략으로 가져가는 서비스입니다. 2008년 처음 사업 기획 시 온오프믹스와 더불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서비스들이 지금 오픈이 된 거죠. 그래서 온오프믹스가 지속 된다고 볼 때 그 안에 또 다른 생태계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작은 생태계들도 장기적으로 이끌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저희의 장기적 사업의 시작 단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성과 면에서 보면 갓 시작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플 : 기대됩니다. 이야기를 바꿔서, 온오프믹스와 유사한 서비스들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과도 나쁘지 않은것 같은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 : 경쟁의 관계보다는 오히려 같이 가야하는, 상생하는 상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저희를 선발주자라고 말하시지만 저희는 현재 2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바일 쪽에 비하면 큰 수치도 아니죠. 그런 측면에서 아직까지 이 시장이 그렇게 성숙한 시장은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시장 자체를 더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는 저희와 비슷한 서비스들이 더 개발되고 등장해야 한다고 봐요. 함께 서비스 질을 높여 시장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지금 생겨나는 업체들의 사이트를 보면 온오프믹스와 비슷하다고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사업적 속성들은 각자 다르기 때문에 저희와 같이 가야하는 손을 잡아야하는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플 : 대표님 의견도 같으신가요?
양 : 제 답변은 다릅니다(웃음). 그 서비스들과 온오프믹스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철저한 플랫폼 중심으로 접근합니다. 콘텐츠가 있는 파트너들에게 저희가 갖고 있는 플랫폼 역량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것이 저희의 정책입니다. 반면 지금 등장하는 서비스들의 대부분은 콘텐츠에 집중하는 형태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시작점과 지향점이 다르죠. 더불어 자신감이 있어요. 거대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저희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것을 바로 따라잡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플 : 온오프믹스를 운영해오시면서 많은 행사와 모임을 보셨을 텐데요.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모임이나 주목을 받았던 모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양 : 청춘 콘서트, 이준석의 빨간 파티, 비런치, T스토어 사업발표회, 테드엑스서울 정도가 떠오르네요. T스토어 사업발표회 당시 SK에서는 모객을 걱정했지만, 신청 페이지 오픈한지 이틀 만에 모집이 마감되었어요.
이 : 저희도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그 행사 이전까지 2주 만에 1,400명을 모으는 경우가 없었거던요. 하지만 이틀이라는 시간만에 신청완료가 된 것을 보고 저희 스스로도 고무되었었죠.
양 : 온오프믹스가 재밌는 것은 이 모든 행사들이 회원이 직접 가져온 것이라는 점입니다. 세일즈를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이 자발적으로 온오프믹스의 성장의 굵직굵직한 성장동력을 가져다 주셨어요.
플 :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양 : 청춘 콘서트는 2011년 6월에 시작되었는데요. 어느 날 평화재단에서 연락이 왔어요. 행사 모객을 하셔야한다구요. 무료행사인 경우 얼마든지 플랫폼을 열어드리고 진행을 도와드린다고 했는데요. 당시 저희가 첫 번째 행사를 실패로 만들었습니다. 급격한 동시접속자수로 인해 서버가 다운되버렸거던요.
이 : 사실 저희가 처음 연락 받았을 때는 200명 정도가 참여하는 평이한 행사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출근을 해보니 서버가 죽어 있더라구요(웃음).
양 : 지금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이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때 당시 저희 회사에서는 일명 ‘손클라우드’를 사용했어요. 손클라우드라는 것은 서버가 모자라면 엔지니어 출신인 저희 둘이서 직접 실시간으로 서버를 늘리는 것입니다(웃음). 당시 예상 외 상황으로 인해 실시간으로 서버를 늘리면서도 용량이 부족했어요. 신청자들의 항의, 문의 전화가 굉장히 많이 왔었습니다. 심지어 욕설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역설적으로 저는 욕먹는것 조차도 좋았어요. 온오프믹스 이용이 활발한 것이기 때문이죠.
첫 행사를 마치고 평화재단에 전화를 해서 ‘죄송하다. 예측을 넘어서는 결과가 나와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 서버를 늘렸고 향후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게 할테니 앞으로 행사 진행시에도 저희와 함께 해달라’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평화제단에서는 흔쾌히 행사를 같이 하기로 결정했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그 행사가 24개의 도시에서 하는 줄도, 연말까지 총 36회나 하는지도 몰랐어요.
이 : 연말까지 하는 줄도 몰랐습니다.(웃음)
양 : 청춘콘서트가 12월 까지 쭉 가면서 매회 2,000명에서 4,000명 가까이 오다보니 2011년 3, 4분기 회원 가입이 5만 4,000명정도입니다. 총 회원수가 20만명인 점에서 5만은 굉장히 큰 숫자예요. 더욱이 서울 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했던 행사라 욕도 각 지역 사투리로 먹었어요(웃음). 이렇게 청춘콘서트를 통해 온오프믹스가 여러 지역에 알려지면서 그 다음 트래픽들을 계속 만들어 오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행사들에 저희는 플랫폼만 제공한 거죠. 온오프믹스라는 서비스는 고객들이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플 : 온오프믹스의 터닝 포인트는 고객들이 만든 거군요?
이 : 그렇습니다. 온오프믹스에서 제공하고 있는 기능들은 모두 고객들의 요청이 많은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플 : 역시 고객은 옳군요.
양 : 사람들이 저희가 2010년부터 성장했다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부대표가 2008년부터 2년 가까이 버티는 동안 끊임없이 욕을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고객들에게 들었던 모든 내용들을 저장하고, 이를 토대로 실효성을 따져가며 회의를 한 결과죠. 그리고 저희 둘로는 인력이 부족해서 다섯 명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팀빌딩이 끝나자마자 쌓아 놓았던 고객의 니즈를 반영해 2011년 5월에 되어서야 사용자가 원했던 기본적 서비스를 구현해 냈습니다. 기본적인 서비스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만에 청춘 콘서트가 들어오게 되었구요.
플 : 그동안 사업을 진행해 오시면서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으셨을거라고 봅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지원책이든 간에 말이죠.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요?
양 : 일단 저는 조이 한성은 부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강원테크노파크가 저희에게 투자 하지 않았다면 팀이 깨질 뻔한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물질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가 2009년 4, 5월이었어요. 그 때 한부사장님께서 저희를 노미네이트 해주셔서 저희가 강원도 본사 설립 조건으로 지원을 받게 되었죠.
플 : 강원도에 있는 본사와 서울 사무소가 기능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나요?
양 : 본사는 본사의 역할을 해요. 세금 납부요(웃음). 강원도는 세제해택이 좋기도 하거니와 저 개인적으로는 지역사회에 기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쪽에 본사를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업이 서울에서 이뤄져서 서울 사무소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고 법인 등기상으로는 강원도가 본점, 서울이 지점으로 되어있어요.
양 : 더불어 류한석 소장님께도 감사해요. 온오프믹스를 외부에 많이 알려주셨고,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창업스쿨을 알려주셨어요. 그 계기로 별도의 경영수업을 받게 되었고 저희 둘이 만든 PPT가 최우수상을 타면서 2,000만원의 상금을 타게 되었어요. 그것이 2009년을 버틸 수 있었던 큰 힘이었죠.
또한 노정석 대표님도 감사한 것이 2009년 말 트위터 파티 때 저를 권도균 대표님께 소개시켜주셨어요. 그 계기로 프라이머가 법인 설립한지 3개월 된 저희를 1호 투자기업으로 선정했지요. 프라이머한테도 감사하구요. PR 쪽에서는 이미나 이사님이 정말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는 고마워 해야 할 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플 : 이러한 훌룡한 분들의 도움을 받으셨던것 처럼 현재는 여러 스타트업의 멘토 역할도 하시잖아요? 가장 보람을 느끼실때는 언제인가요?
양 : 저는 직설적으로 조언을 하는 편인데요. 제가 진심어린 조언을 했을 때 상처받는 이들도 있지만, 저의 진심을 알아듣고 자기 영역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고맙고 보람있습니다.
플 : 온오프믹스 말고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신가요?
양 : 당분간은 없습니다.
이 : 저희가 사업 초창기에 사업계획을 만들면서 한 달 정도 치열하게 토론했어요. 그 한 달 동안 구상했던 내용이 거의 10년 분량이예요. 4 ~ 5년 더 이 서비스로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플 : 두 분의 사업연차로 따지면 스타트업이라기보다는 벤처에 가깝잖아요? 최초로 사업을 시작한 연도부터 따지면 무려 13년차이시고, 온오프믹스로만 따져도 6년차 기업인이신데요. 그간 사업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소감이나 술회가 있을까요? 그리고 후배 창업인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 일단 정부의 돈을 지원 받기 위해 창업을 하는 것은 창업자 자신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고 봅니다. 부끄럽지 않고 후회하지 않게 노력야 한다고 봐요. 창업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정부지원을 바라기보다는 회사에 들어가 공부를 더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는 창업은 단순히 돈이 목적이 아니예요. 자신의 열정으로 스스로의 삶을 리드해나가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양 : 창업가가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면 바보가 됩니다. 기업인으로 성장하고 싶으면 힘들고, 어렵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자신의 그릇을 키워야 한다고 봐요. 말을 잘하고 학력이 좋다는 이유나 정부의 지원금만을 바라보고 사업을 한다고 하면 당장은 배도 부르고 인기인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한 때 일 뿐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이 창업했던 분들만 봐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당시 잘 나간다는 사람들은 상상 못할 만큼 매스컴에서 조명했어요. 하지만 정작 지금은 남아 있지 않아요. 양호한 케이스로는 대기업으로 들어간 분도 있지만, 교도소에 가신 분, 한국을 떠난 분,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습니다. 10년 전 주목을 받았던 기업인이 오늘날 범죄인이 된다는 것은 그들이 너무 급하게 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 로그아웃 직전까지 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만 창업을 해야 해요. 그리고 그 사업을 멈추는 때는 타인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시점이 될 수 있게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봐요. 처음에는 하수를 만나니까 말을 잘해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나중에 실질적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멘토들 앞에서는 그 부족한 것이 발각이 됩니다. 멘토들에 의해 잘못된 대표들이 정제 될 때 그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플 : 플랫폼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플랫폼에서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외에도 핵심으로 생각하고 좀 더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느 것이 있나요?
양 : 원래 플랫폼이라는 것이 기차 플랫폼의 개념이 IT쪽으로 넘어온 거잖아요? 기차 플랫폼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선로 옆에 콘크리트로 길과 계단을 만들어 놓았을 뿐인데 음료자판기가 생기고, 도시락, 우동가게가 생기더라구요. 즉, 사람들이 오가는 곳과의 접점을 하나 만들어 놓으니 많은 경제활동이 이루어지게 되는거죠. 온오프믹스의 볼륨이 늘어나기 위해서도 플랫폼 사업자는 플랫폼으로 남아있고 고객이 누구인지,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랫폼은 절대적 플랫폼으로 남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어요.
플랫폼 사업을 생각하신다면, 하루 아침에 성공할 거라 생각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희는 버텨왔기 때문에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 또한 플랫폼은 큰 호흡으로 가야해요. 아이튠즈를 통해 음악을 다운 받고 하는 것이 2, 3년 만에 퍼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팟부터 시작해 10년 정도 차근 차근 준비를 해왔기에 현재와 같은 과실을 얻을 수 있게 된거잖아요? 플랫폼은 길게, 큰 호흡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플랫폼은 나라를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양쪽 사이드에서 고객들의 접점을 지정해 주어야 해요
플 : 긴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온오프믹스의 정중동 행보를 응원하겠습니다!
인터뷰 정리 : 최예은 플래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