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고객을 둔 마케터를 위한 10가지 체크리스트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하고 있던 몇몇 스타트업들이, 최근 마케팅 부문에서 대차게 미끄러졌다.
■이런 광고로 무슨 세상을 바꿔요
작년 말 뷰티 커머스 기업 미미박스는 입점 기업의 광고를 검수없이 내보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해당 제품 광고에는 ‘여자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까만 유두를 보면 아줌마같이 느껴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등의 문구들이 사용됐다. 향후 논란이 커지자 미미박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해당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지만, 이후 많은 고객이 해당 사이트의 탈퇴를 인증하며 불매 운동을 이어갔다. 미미박스는 이전에도 조르지오 알마니의 립스틱 제품을 광고하며 ‘남친에게 조르지오’라는 문구를 사용한 일로 눈총을 받은 바 있다.
모바일 부동산 중개 서비스 직방의 경우에는 페이스북에 게재한 콘텐츠가 화를 불렀다. 직방은 지난 2월 26일 직방은 성범죄의 원인이 ‘집을 대충 알아본’ 여성 본인에게 있다는 뉘앙스의 웹툰을 광고로 내보냈다. 누리꾼들은 ‘혼자 사는 여성에게 주거 침입과 성범죄 사건은 생존이 달린 문제’ 라면서, ‘늘 현재 진행형의 공포를 느끼고 있고,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범죄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광고 소재 거리로 사용한 점이 불쾌하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해당 페이스북 관리자는 다음 날 ‘온라인상에서 돌아다니는 썰(이야기)을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소재 선택에 신중함이 부족했다’는 사과문을 올리고 해당 웹툰을 삭제했다.
논란이 된 광고들 속에서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은 낯설지 않다. 여성 신체에 대한 편견 재생산과 성범죄 공포를 역이용한 마케팅은 이전에도 숱하게 봐왔던 서사다. 그런데 낡은 관습을 전복시키고 새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 출사표를 내던진 스타트업들이, 성평등 문제에서만큼은 적폐를 그대로 껴안는 게으른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유감이다. 서비스와 조직 문화는 혁신적이어야 하는데, 광고는 ‘하던 대로’ 해도 괜찮다는 것일까?
■ ‘여혐 논란’이 스타트업에게 치명적인 이유
기업 마케팅 담당자의 젠더 의식 수준에는 개인 차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물건과 서비스를 팔아야 할 주요 대상이 여성이었고, 그들 앞에 이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설득해야 할 대상에게 모욕감을 주다니. 도덕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전략적인 실패인 셈이다.
2016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선정한 ‘올해의 책’ 1위는 페미니즘 도서인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이 차지했다. 이 밖에도 작년부터 올해까지 수 많은 페미니즘 도서가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다. 이는 많은 고객의 젠더 의식이 이미 변화하고 있고, 이들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마케팅 팀이라면, 사실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마케팅 회의 때 재밌을 거라고 확신했던 그 지점에서, 일부 고객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단순히 유머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고객 간 젠더 의식 수준이 다를 때 벌어지는 일이다.
때때로 이러한 사고는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진다. 위기 상황에 대처할 대외 홍보 인력과 노하우를 충분히 갖추지 않은 스타트업이라면, 수습은커녕 2차, 3차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 ‘일부 고객이 예민하게 반응한 탓’이라는 안일한 태도는 더 큰 화를 불러올 뿐이다. 산불처럼 번져가는 여론 앞에서, 여러 해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자금도, 인력도 넉넉지 않은 스타트업이 고객과의 관계까지 틀어져 버리면 남는 게 무엇일까. 그렇기에 이런 마케팅 실수는 싹을 잘라버리는 것이 낫다. 비록 그것이 특정한 신념에 따른 선택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특히 여성이 주고객인 기업이라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 페미니스트가 아닌 마케팅 담당자를 위한 10가지 체크리스트
그래서 마케팅 마지막 검수 단계에서, 확인해보면 좋을 사항을 열가지로 정리해보았다. 광고를 포함한 SNS 등 모든 대외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참고할만한 사항이다. 앞서 말했듯, 스타트업이라면 본의가 어떻든 논란을 일으킬만한 위험 요소를 최소화 하는 것이 좋으니 말이다. 각 사항별 예시 광고 사례도 첨부한다.
1) 여성의 구매 동력을 남성(애인, 남편)의 만족으로 설명하지 않기. (ex. 남친이 더 좋아하는~ 으로 시작되는 모든 광고)
2) 데이트 폭력 · 성범죄에 대한 여성의 공포를 마케팅 소재로 사용하지 않기. (ex. 직방, 플레이베이직)
3) 맥락 없이 여성의 신체를 선정적으로 전시하지 않기. (ex. T 월드 매장 여성 전신 스티커, 현대자동차 i30)
4) 성 역할 고정관념이 내재되어 있는 서사 만들기 않기. (ex. 애경그룹 트리오)
5) ‘OO녀(女)’라는 프레임으로 여성을 대상화하지 않기. (ex. 각종 언론사 헤드라인)
6)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전제하지 않기. (ex. 대한민국 출산지도)
7) 함부로 ‘여성적 취향’을 재단하지 않기. (ex. ‘여성여성한’ OO)
8) 여성의 외모를 희화화하거나, 여성의 신체를 수치화해 평가하지 않기. (ex. 스노우, 미미박스 유두 크림 )
9) 여성을 ‘꽃’, ‘홍일점’ 등으로 대상화하지 않기. (ex. 공대 아름이)
10) 독립적인 소비 주체로서의 여성을 삭제하지 않기. (ex. 마몽드, 공차, 미미박스 조르지오 알마니)